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89화 (189/425)
  • 요란법석 코미케 (4)

    "소년점프에서 뽑은 신인, 거기다 써니, 토리야마 선생님과도 친분이 있는데 자네가 이런 식으로 말단 직원 부리듯 한다는 걸 그. 분. 들이 아시면 곤란하지 않을까?"

    유독 '그 분'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우리보고 들으라는 것처럼.

    아무튼 니시다의 말에 턱수염의 얼굴색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그 모습을 커다란 눈으로 살피던 경희가 머리를 내 쪽으로 돌리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와, 완전 카멜레온 같다, 카멜레온. 어떻게 저렇게 사람의 얼굴색이 자주 바뀔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린다.

    그리고는 곧장 니시다가 한 말을 떠올렸는지 내게 확인 차 물었다.

    "토리야마 선생님이면 전에 통화한 그 사람 맞지? 실버 오빠가 좋아하는 만화, 드래곤볼."

    "어, 맞아. 그런데 그 만화 나도 좋아해."

    "야해서 그러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나저나 그 토리야마 씨, 전에 닥터슬럼프 그렸다고 했지? 와, 그래도 과거 성공작이 있으니까, 저렇게 대접받는구나."

    "앞으론 드래곤볼이 더 대단해 질 거다."

    "정말?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야."

    얘가 날 어떻게 보고.

    그렇게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니까.

    아무튼 니시다에게 꾸지람을 듣던 턱수염이 이번엔 스미레를 향해 머리를 연신 숙인다.

    "죄송합니다, 고토 선생님.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스미레는 턱수염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에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무튼 니시다의 등장으로 인해 주변 분위기가 확 바뀐 탓에 적응을 못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덕에 스미레가 써니와 친분이 있다는 것, 덕분에 스미레에게 주목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소년점프 직원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다른 출판사 직원들까지.

    아무튼 대충 상황이 무마되는 분위기가 되자 소년점프 한명이 턱수염에게 다가와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간다.

    그런데 턱수염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

    아마도 같은 출판사 선배인 모양이다.

    얼핏 봐도 데리고 가는 남자가 턱수염에게 인상을 팍 쓰며 뭔가 잔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이번엔 니시다가 곧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주변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니시다 선생님."

    니시다는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인지 우리에게 인사만 할뿐 신분이 드러날 만한 말은 하지 않는다.

    직원들도 그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인가보다 하는 눈치만 보일 뿐이다.

    그 와중에도 몇몇 팬들은 니시다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자, 선 채로 간단하게 사인을 해주기도 한다.

    아무튼 니시다가 스미레에게서 멀어지자 이때다 싶었는지 다른 출판사 직원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신인 이시라구요? 이건 제 명함인데, 혹시 기회가 되시면 연락 주세요."

    "소년매거진입니다. 이거."

    "저도요."

    스미레에게 명함을 건네자, 소년점프직원들이 다가와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

    "이거 너무하네. 우리 출판사 신인인데, 이러는 건 반칙 아닙니까?"

    "반칙이라니, 아직 정식 연재도 시작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리고 소속 작가도 아니고, 침 발라 놓은 것도 아니면서."

    "맞아요. 천하의 소년점프가 신인 한명 때문에, 정말 째째하네."

    "이봐요, 당신들. 방금 니시다 선생님 말씀 때문에 이렇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거잖아요."

    "와, 말이 심하네. 하이에나라니."

    "내가 말이 틀렸어요?"

    우리가 멀어지자마자 직원들끼리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뭐, 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거지.

    아무튼 선희와 경희는 그런 출판사 직원들 사이에 끼어있는 스미레를 데리고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부스 인근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난 뒤, 난 니시다와 함께 출판사 부스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엔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조금 소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주목을 좀 덜 받으니까 나쁘지 않네.

    그리고 이곳 회장에서 조용한 곳이 따로 있을 리도 없으니까.

    곧장 내가 니시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오셨네요? 전대물 관련된 동인모임은 저기 입구 쪽에 많이 보이던데."

    어제 대화를 하면서 니시다가 전대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말했는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닙니다. 그냥, 오늘은 이것저것 구경이나 해볼까하구요. 여기 오니까 동인지 시절 생각도 나고요. 뭐, 코미케에 참가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아마도 그럴 거다. 코미케가 시작한 게 1975년이니까, 지금부터 딱 10년 전이다.

    니시다가 데뷔한 건 더 오래되었으니까.

    물론 코미케가 시작할 당시엔 이렇게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아무튼 코미케를 둘러보는 니시다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추억에 빠진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니시다가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모여 만화를 그리던 이야기, 만화가를 무작정 찾아갔던 이야기 등등.

    그렇게 다시 그와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친다.

    "……."

    누군가 싶어서 돌아봤더니 의외의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바로 키도였다.

    "어? 형도 왔어?"

    "그래. 역시 니시다 자네도 왔군."

    "아, 키도 선생님."

    "어째 별로 반가워 보이는 눈치는 아닌데?"

    "선생님도 저랑 비슷해 보입니다만."

    니시다가 툭 쏘듯이 말하자 키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피식 웃었

    "혹시, 유난과의 대화를 방해했다고 그러는 건가?"

    "별로 그런 건 아닙니다만."

    니시다가 냉랭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뭐야, 표정 보니까, 맞네."

    "아닙니다."

    그렇게 딱 잘라 대답하고는 곧장 내게 인사를 한다.

    "그럼, 전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선생님."

    "네, 저도요. 니시다 선생님."

    "키도 선생님, 다음에 뵙죠."

    "어, 그래. 잘 가."

    "……."

    니시다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지더니 곧 분주한 인파사이로 들어간다.

    그런데 가는 방향을 보니, 입구근처.

    긴 전대물 관련 동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역시, 그 쪽 취향이라는 거군.

    곧 그곳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키도를 돌아보며 물었다.

    "애들은 만났어?"

    내 질문에 키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그래. 아까 잡지사 쪽 부스근처에 있더군, 이미 만나고 왔지. 그런데 내가 없는 사이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던데."

    "들었어?"

    "어. 니시다 녀석이 한건 했다며? 아무튼 가끔 이럴 땐 쓸모가 있다니까."

    "그나저나 형은 여기 어쩐 일이야? 형은 이런 행사 싫어한다지 않았어?"

    "맞아."

    "그런데?"

    "코스…… 머시긴가를 구경하러 왔지."

    "뭐? 설마 코스프레?"

    이 형 진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왜, 웃어?"

    "아니, 평소 형과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서."

    "무슨 소리? 진짜 남자는 이런 거 좋아해."

    "거기에 진짜 남자가 왜 나와?"

    그렇게 말하는데 키도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되어있다.

    슬쩍 같은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우르세이 야츠라'의 히로인, 라무 복장을 한 여자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참, 노출도가 생각보다 높다.

    확실히 표범무늬 비키니가 현실에선 좀 야하긴 하지.

    아무튼 재밌다는 표정으로 키도를 바라보자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크음'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한다.

    "그럼 나는 천천히 구경하고 있을 테니, 너도 네 볼일 봐라."

    "어, 그래."

    "그럼 이 형은 가보마."

    그렇게 말한 키도가 돌아선 채로 손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웃은 뒤 곧장 몸을 돌려 애들이 있는 출판사 부스 쪽으로 갔다.

    그런데 쌍둥이들은 보이지 않고, 스미레 혼자 어떤 여자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모른척하며 쌍둥이들이 어디 갔나 슬쩍 둘러보는데, 이거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확실히 이렇게 사람 많은 장소, 그것도 일본이라는 타국에 온 이상 신경 쓰이기는 하네.

    그나마, 선희 곁에 경희라도 붙어있다고 생각하면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에 잠겨 머리를 긁적이며 있는데, 그런 날 봤는지 스미레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 오빠."

    "어. 그런데 쌍둥이들은?"

    "부스 돌아보고 온다며 같이 갔어요. 아까 갔는데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아, 그래?"

    "역시 오빠 오면 같이 보낼걸 그랬나봐요."

    "아냐. 어린애도 아닌데, 알아서 잘 돌아보고 오겠지."

    그런데 스미레 뒤쪽을 슬쩍 보니, 아까 대화중이던 여자가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를 들어 살피고 있다.

    아마도 콘티인 모양이다.

    "괜히 내가 방해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극화촌숙에서 같이 공부하던 언니인데, 콘티를 가져온 게 퇴짜를 맞았나봐요."

    "아, 소년매거진?"

    "네."

    아. 그래서 저런 표정으로 콘티를 보고 있었구나.

    그때 여자가 스미레를 보며 다음에 보자는 인사말을 하고는 곧장 헤어진다.

    그런데 걸어가는 뒷모습이 좀 애처롭긴하다.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던 스미레가 입을 열었다.

    "저, 언니……. 아마도 마지막 일거에요."

    "마지막?"

    "네. 나이가 벌써 28살이거든요."

    "그게 왜?"

    "어시 쪽에서도 나이가 많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고, 집에서도 얼른 결혼하라고 성화인 모양이에요."

    "아."

    저렇게 작가로 등단도 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한해만해도 수만 명은 될 거다.

    활동 중인 만화가들도 많긴 하지만, 그곳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 나 역시도 한때 만화가를 꿈꿨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기억도 있으니 저 마음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데 20살 정도로 앳돼 보이는 남자가 우리 쪽에 다가왔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서 만화원고도 봐주나요?"

    북부 쪽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우리에게 묻자 스미레가 대답했다.

    "저희는 관계자가 아니라서요. 하지만, 여기 소년매거진에서 신인들 원고는 즉석에서 봐주는 모양이에요."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며 돌아선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더니 소년매거진 부스 쪽으로 간다.

    이미 그곳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조금 많이 기다려야 할 듯 하다.

    "홋카이도 방언이네요. 아마 도호쿠방언 쪽 같아요."

    "자세히 알고 있네?"

    "네, 할아버지가 그곳에 계시거든요."

    "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를 바라본 그런데 남자의 얼굴이 묘하게 낯이 익다.

    하기야, 저런 스타일의 남자가 많으니, 비슷한 얼굴을 많이 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거두려고 하는 데, 남자가 기다리는 동안 원고를 꺼내 살펴보고 있다. 멀지 않은 곳이라 그림이 보였는데, 기억에 있는 그림체다.

    뭔가 당장 떠오른 작품이 있을 정도의 익숙한 그림체.

    내가 미간을 좁히며 그쪽을 주시하자 스미레가 궁금한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잠깐만."

    그렇게만 대답하고는 바로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남자의 외모를 천천히 살폈다.

    역시 눈에 얼굴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더니…….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기, 하나 물어봐도 돼요?"

    그러자 원고를 살피던 남자가 날 보고는 방금 봤던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저기 혹시 토가시 씨?"

    내 질문에 젊은 사내가 깜짝 놀랐다.

    "어? 절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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