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88화 (188/425)
  • 요란법석 코미케 (3)

    스미레가 있는 곳 근처까지 가자 주변 부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년매거진, 소년점프, 소년선데이.

    일본의 주간3대 만화잡지가 모여 있는 커다란 부스와 근처에 있는 떨거지들 잡지사 부스.

    거기엔 소년 히어로 부스도 보인다.

    뭐, 지금은 소년 히어로의 작가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니,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거기다 지로도 이번 행사에는 나오지 않은 것 같으니까.

    아무튼 스미레는 젊은 남자와 함께 책들을 같이 나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 경희가 앞으로 나섰다.

    "스미레, 우리 왔어."

    "아, 왔네? 오셨어요?"

    경희와 날 번갈아 보며 스미레가 책을 든 채로 머리를 숙여 인사한다.

    "우리가 도와줄게."

    "나도."

    쌍둥이들이 스미레에게 다가가 그녀가 들고 있는 책들을 나눠들었다.

    "아, 고마워."

    그때 스미레의 곁에 있던 젊은 남자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신입이라는 담당편집자인가?

    그가 쌍둥이들을 보고는 스미레에게 돌리며 물었다.

    "친구?"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우리 스미레 담당이세요?"

    경희가 남자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아뇨, 제가 오히려……."

    그때 소년점프 부스 쪽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옮기라고, 빨리!"

    "아, 네!"

    남자가 소리치자 서둘러 책을 옮기자 스미레와 쌍둥이들도 얼떨결에 빠른 걸음으로 책들을 나른다. 나도 뭔가 도울 일이 없나 기웃거렸지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책들을 나르고 나자, 방금 남자에게 소리쳤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검은 뿔테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투덜거리며 말한다.

    "지금 떠들 시간이 어딨어? 곧 선생님 오실 텐데. 책 다 옮겼으면 빨리 주변이라도 정리해."

    "아, 네."

    "거기 신인도 좀 도와줘요."

    그 말에 스미레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저쪽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생들?"

    "아뇨, 이분들은 고토 선생님 친구 분들 이에요."

    스미레 담당의 말에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픽 웃으며 중얼거린다.

    "선생님은 무슨, 아직 제대로 된 연재도 안 한 고등학생 초짜인데."

    저 자식 뭐래는 거야?

    그런데 선희나 경희도 저 싸가지 없는 턱수염 편집자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담당과 스미레가 아무 말 없이 부스 주변을 정리할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경희가 도끼눈이 되어서는 턱수염을 째려보다가 곧 내게 조용히 말했다.

    "저, 아저씨, 재수 없어. 말을 왜 저따위로 하는 거야?"

    "낸들 아냐. 여기 문화가 그런가보지."

    "으이그, 울화통 터져. 스미레 쟤는 너무 착해 빠져서……."

    경희는 화가 치미는지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린채로 턱수염을 째려본다.

    하지만 턱수염은 이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재수 없이 말하던 턱수염이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더니 소년점프 부스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다가가서니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다시 부스 쪽으로 안내한다. 조금 어려워하는 분위기를 보니까, 상급자이거나, 아니면 중견 만화가인 모양이다.

    그런데 아까 책자를 가져다 놓은 자리 쪽에 앉는 걸 보니, 아마도 만화가인 모양인데, 솔직히 누군지는 모르겠다.

    만화가가 자리를 잡고 앉자 곧장 턱수염은 주변 직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는 우롱차 캔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뭔가를 이야기한다.

    잠시 후 테이블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소년점프 직원들이 주변을 막고는 사람들을 일렬로 세운다.

    아, 사인회구나.

    그때 경희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스미레도 사인회 하는 건가?"

    "글쎄. 분위기로 봐서는 아닌 것 같은데."

    "뭐야? 스미레도 만화간데."

    "아무래도 아직은 인지도가 거의 제로라서 그럴 거야."

    "제로? 곧 진짜 연재 시작할 거 아니야? 작품도 짧은 거 하고 있잖아."

    "그걸 로는 어렵지. 정식 연재를 시작해도, 인지도 떨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 역시 여긴 약육강식의 정글이구나."

    "그래."

    "음, 그러고 보면 이런 곳에서 잘 싸워 나가고 있는 우리 선희랑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나네."

    "그러냐?"

    "응."

    그렇게 말하며 선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그런데 그때 턱수염이 사인회가 열리는 부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스미레와 그 담당에게 손짓하며 큰 소리로 불렀다.

    "둘이 이쪽으로 와봐!"

    그 말에 서둘러 턱수염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담당에게 먼저 말했다.

    "야, 넌 바쁜데 뭘 하는 거야? 빨리 앞에 붙어서 다른 직원들이랑 사람들 통제하고, 그쪽은 여기 선생님 곁에서 보조 좀 해줘."

    "어떤 보조요?"

    "아참, 척 보면 모르나? 여기 책자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가져다 놓아야지."

    "아, 네."

    무슨 책자인가 했더니 오늘 사인회에서 사용할 홍보용 책자인 모양이다.

    아까 얼핏 보니까, 잡지사 만화홍보용인 것 같긴 하던데.

    그나저나, 저 자식.

    스미레가 만화가지 여기 직원인가?

    왜 만화가에게 저런 일을 시키는 거야?

    아무리 이쪽업계가 신인들이나 무명작가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흔하다고 해도 이정도는 좀 심하네.

    그런데 턱수염이 이번엔 우리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어이, 거기 아직 안 갔어? 사인 받을 거 아니면 여기부스에서 좀 물러나 줘. 방해 되니까."

    "……."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려한다.

    경희도 화가 난 모양인지 씩씩거리다가 곧장 나와 선희를 붙들고 이곳에서 물러선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투덜거린다.

    뭐 들린다 해도 한국어라 못 알아듣겠지만,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인간말종이다, 진짜. 그나저나 우리 스미레, 불쌍해서 어째?"

    마치 어린 여자직원인양 분주하게 움직이며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한 모양이다. 물론, 나도 좀 그렇고, 아무튼 만화가의 사인회 때문인지 다른 부스와 달리 소년점프의 부스엔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든다.

    다른 부스들은 착실하게 팸플릿을 나눠주거나, 단행본을 팔기도 한다.

    소년 히어로도 마찬가지고.

    물론 소년매거진은 좀 다르다.

    거기에선 칸막이를 몇 개 만들어 찾아온 만화가 지망생들의 콘티나 원고를 보고 있다.

    아, 여기서도 신인등용을 하고 있구나.

    하기야, 지금은 만화계가 급속히 팽창하는 시기니까 실력 있는 만화가를 이런 코미케에서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지.

    "아, 거기 좀 제대로 해."

    그런데 또 턱수염의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도 별로 듣기 좋지 못한 터라 더 눈살이 찌푸려진다.

    곧장 무슨 일인가 시선을 돌려보니, 또 스미레랑 담당을 구박하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는 하지만, 당장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잡지사들이 모여 있는 이곳 부스 쪽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그런데 그게 익숙한 얼굴이다.

    바로 어제 키도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니시다다.

    그런데, 그가 잡지사 부스 쪽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자 그를 알아본 소년 히어로 편집자들이 다가갔다.

    "어? 니시다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뭐. 구경도 할 겸, 겸사겸사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를 알아본 건 소년 히어로 직원들만이 아니었다.

    "니시다 선생님!"

    소년점프의 직원 몇 명도 그를 알아보고는 서둘러 다가가서는 인사를 한다.

    "선생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그런데 부스를 돌때마다 그를 알아보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대부분 경력이 좀 되어 보이는 직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가 인기 만화가 인 것도 그렇지만 여러 잡지사를 돌았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많은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결국 소년점프 부스 근처까지 다가온다.

    그러자 이번엔 사인을 열심히 하던 만화가가 그를 보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인사를 한다.

    "아, 니시다 선생님!"

    그런 그를 알아봤는지 니시다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신고, 여긴……. 아, 사인 중이야?"

    "네."

    "바쁠 텐데 그냥 하던 거 계속해, 팬들이 기다리시잖아. 여긴 신경 쓰지 마."

    "아, 네. 죄송합니다. 니시다 선생님."

    "아냐, 아냐."

    그러자 신고라는 만화가 곁에 있던 턱수염도 니시다를 알아봤는지 서둘러 다가가 크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니시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우치다 선배가 담당하실 때 곁에서 몇 번 뵌 적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네. 그런데 우치다 씨는?"

    "네, 매거진 쪽으로 건너가서 부편집장님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 그래."

    "자, 이거 드십시오."

    언제 준비했는지 턱수염이 니시다에게 콜라 캔 하나를 내밀었다.

    "아, 고맙네."

    "뭘요."

    턱수염이 머리를 긁적이며 순진한 척하며 웃고 있다.

    그런데 그때 니시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아!"

    그리고는 뭐라고 소리치려다 곧 움찔놀라더니 우리를 향해 살짝 목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때 경희가 인사를 하자마자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니시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 곧 경희가 가리킨 방향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네 사람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미레를 발견했다.

    그러더니 무슨 상황인지 금방 이해를 못했는지 잠시 동안 스미레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곧 미간을 좁히더니, 곁에 있던 턱수염에게 물었다.

    "저기 저 여자분.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네? 아, 네. 사인회를 돕고 있습니다만."

    "왜?"

    "네?"

    "왜 그걸 직원이 아닌 만화가가 하고 있냐고?"

    "아, 그건……. 그냥……."

    턱수염이 당장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곧장 니시다가 인상을 팍 썼다.

    "여기로 모셔와."

    "네? 아, 네."

    그렇게 대답한 턱수염이 후다닥 스미레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데리고는 니시다 앞으로 갔다.

    그러자 얼떨해하던 스미레가 니시다를 알아보고는 인사했다.

    "아, 니시다 선생님."

    "반가워요. 고토 선생님."

    그러자 턱수염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변한다.

    그런데 사인을 하고 있던 신고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니시다에게 물었다.

    "니시다 선생님, 아시는 분이세요?"

    "그럼. 잘 알지. 실력 있는 젊은 만화가신데, 소년점프에서 데뷔한 신인이잖아. 모르나?"

    "아, 그래요? 전 몰랐어요. 그런데 니시다 선생님이 인정하실 정도면 대단한 실력인 모양이네요."

    "아, 아니에요."

    "아니긴, 써니 선생님에게 인정받았으면서."

    "써니……. 선생님이요? 설마 삼사라의 그 써니 선생님?"

    "그래."

    순간 턱수염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담당과 몇몇 직원들까지 깜짝 놀랐다.

    이내 니시다가 내 쪽을 살짝 돌아본다.

    눈빛으로 '이런 이야기해도 괜찮나요?' 라고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머리를 살짝 끄덕이자 이내 안도하는 표정이다.

    뭘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라고.

    아무튼 니시다의 말 때문인지 주변은 난리가 났다.

    사인을 하던 신고라는 만화가도 사인에는 관심을 잃었는지 연신 스미레 쪽만 힐끔거린다.

    지금 가장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인간은 턱수염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 자리가 완전 가시방석 같다는 표정이다.

    곧 니시다가 그런 턱수염을 돌아보며 인상을 팍 쓴다.

    "만화가가 출판사 직원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부려먹으면 곤란하지."

    "아, 죄송합니다."

    "고토 선생님이 오늘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걸 써니 선생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나?"

    "아……. 그게."

    "요즘 소년점프에서 드래곤이 북두의 권이랑 선두다툼을 벌인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혹시, 토리야마 선생님이 써니 선생님과 친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그야 당연히……. 헉!"

    니시다의 말에 턱수염의 얼굴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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