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법석 코미케 (2)
"자, 새롭게 만든 과자예요. 드셔보세요."
키도의 부인이 과자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그녀의 주위에 서있던 경회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들도 나름 열심히 도와서 만든 거예요."
"그렇답니다."
키도 부인이 웃으며 그 말에 동의하자 니시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과자를 들어 입에 넣는다.
"오빠들도 좀 먹어봐. 맛이 엄청 좋아."
"어. 그래."
"잘 먹으마."
나와 키도도 얼떨결에 과자를 집었다.
못생긴 과자야 보나마나 쌍둥이들 작품일테니 다른 걸로…… 먹으려 했지만 쌍둥이들의 눈빛에 살기가 번뜩여 결국 가장 못생긴 놈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는다.
오도독 오도독.
그래도 맛은 좋구나.
다른 키도와 니시다도 맛이 있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그제야 만족한 여자들이 웃으며 수다를 떤다.
"이제 부엌으로 갈까요?"
키도 부인의 말에 애들이 대답을 하더니 그녀를 따라 부엌으로 사라진다.
그리고는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니시다는 써니를 만나겠다고 무작정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뭔가를 결심했는지 날 보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제 작품을 보시는지……."
"네?"
"에스퍼 존이라고 제 작품인데, 그거 혹시 보시나 해서요.
"물론 봤어요. 처음부터 쭉요."
"소년 히어로에 온 뒤부터 연재한 분량말씀이시죠?"
"아뇨. 니시다 선생님이 데뷔 때부터 연재하신 분량 전부요."
"……아."
당연히 니시다의 에스퍼 존은 다 읽어봤다.
솔직히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극장판은 물론 OVA로 나온 애니까지 모두.
그러나 소년 히어로에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뒷부분의 이야기가 달라졌다. 애니의 경우야 초반 이야기였으니 다를 게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기억하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 중이다.
물론, 내가 기억하던 내용보다 더 재밌다.
아무튼 내 말이 의외인지 니시다가 꽤 놀라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피식 웃으며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난 이 친구는 오타쿠야, 오타쿠. 자네 오타쿠 들어봤지? 나도 이 친구 때문에 처음 들은 말이긴 한데, 아무튼 완전 만화 광이야. 어지간한 만화는 죄다 봐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야."
"아……, 그러시군요. 혹시, 그럼 저의 만화를 보시고 뭔가 아쉽다는 건 없으셨는지."
"어? 뭐야? 니시다 자네, 이게 무슨 수작질이지? 이거 반칙 아닌가?"
"바, 반칙이라뇨?"
"그렇잖아. 지금 나랑 자네 순위다툼 치열한데, 지금 유난에게 은근히 도움을 청하고 있잖아."
"전, 그냥. 혹시 제 작품에 대한 의견 정도만 물었을 뿐입니다."
"야, 유난의 의견이 그냥 의견이야? 이 친구 말 한마디면 레벨이 갑자기 뛰어 오를 수도 있다고."
"아, 그렇다는 건, 키도 선생님도 이미 경험하셨다는 거군요."
"어……, 그건 뭐 꼭 그렇다고 말하긴 좀……."
"그럼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키도 선생님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면요."
"누가 영향이 없었다고 했어?"
"그럼, 저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 뭔가 이상한데."
키도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결론이 하나로 귀결되자 키도가 당황한 모양이다.
난 이 두 사람의 황당한 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다 곧 입을 열었다.
"뭐, 의견이라기엔 좀 그렇습니다만, 최근 에스퍼 존은 처음의 느낌이 많이 사라져서요. 그게 좀 아쉬워요."
"처음의 느낌…… 인가요?"
아마도 많이 들어본 말이겠지.
지금 내가 여기서 뭔가 대단한 말을 하길 바랄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이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스토리의 방향을 잡아주거나,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해봐야 그때의 위기만 잠시 넘길 궁여지책에 불과할 테니까.
"……."
역시 조금은 실망한 듯한 얼굴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스로의 힘으로 벽을 뚫지 않으면 영원히 똑같은 벽에 가로막힐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의견 정도는 괜찮겠지.
"아마추어 동인지 활동을 하실 때, 영향을 주셨던 작품들이 많으셨죠?"
"……그럼요. 그중에서 사이보그 009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리고 연재를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건 바벨 2세고요."
사이보그 009 같은 경우엔 1985년 현재에도 연재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저도 그 작품들 좋아해요. 사이보그 009 같은 경우 전대물의 시조 격이라, 그것도 흥미롭고, 아, 전대물도 개인적으로 좀 좋아하거든요."
내 말에 니시다가 반갑다는 표정을 짓는다.
"저도 그렇습니다. 요즘 나오는 전격전대 체인지맨도 재밌고요."
"그렇군요. 저도 요즘 틈틈이 보고 있습니다."
내 반응에 니시다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사이보그 009나 전대물 시리즈, 가면라이더 시리즈 등이다.
처음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야기가 넘어갔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즐거운지 멈출 생각도 없이 계속 이야기 한다.
하긴, 에스퍼 존도 몇몇의 동료들이 도와주며 싸우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이런 류의 이야기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나긴 하지.
어쨌거나 어지간히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나보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드는 사이 결국 저녁식사를 키도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나와 니시다는 식사 중에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 양반 덕후력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6-8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에 대한 건 내가 딸릴 정도다. 하기야 직접 경험한 세대고, 일본인이니까. 난 대부분 간접경험,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 다 반수 이상이니.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대화는 결국 스미레의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니시다는 대화를 끝내고 헤어질 때가 되자 내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게 많습니다."
"깨닫다니 뭘 말인가요?"
"제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서요."
"……."
"그동안 제가 뭘 좋아했는지 잊고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난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스토리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냥 대화만 했을 뿐인데, 스스로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뭐, 이건 그냥 결국 대화가 적어서 그런 모양인데.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다.
"그럼 내일 열릴 코미케에 한 번 가보세요."
"코미케요?"
"니시다 선생님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을 텐데."
"……."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저, 그런데. 가끔 연락을 드려도 괜찮을지……."
"네. 아무 때나 연락하세요. 하지만, 국제전화라 요금이 상당할 텐데."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간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키도가 내게 슬쩍 물었다.
"넌, 쟤가 마음에 드는가 보다."
"왜?"
"죽이 잘 맞는 것 같아서."
"형, 질투해?"
"뭐라는 거냐? 그런 거 아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깜짝 놀랐네."
"크음, 원래 소리가 커서 그런 거다."
그 말에 경희와 스미레가 웃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젠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인사를 하고 화실을 나서는데, 그때 키도 부인이 따라나서며 스미레에게 커다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오늘 만든 과자랍니다. 가져 가셔서 드세요."
"어머, 내일 화실 어시 분들에게 주실거 아니에요?"
"내일 건 내일 만들면 되죠. 그건 저한테 맡기시면 된답니다."
"그럼, 잘 먹올게요."
"네, 잘 먹을게요."
"잘 먹을게요."
무슨 메아리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키도와 헤어진 이후 곧장 택시를 타고 스미레의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날.
8월 11일.
도쿄국제 전시장, 도쿄 국제 무역 센터의 서관, 신관 1층 이곳에 지금 '코미케28'이 한창 열리고 있다.
28번째 코미케 행사로 행사일은 하루다.
오늘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인해 행사가 열리는 장소 야외엔 우산을 쓴 사람으로 만원이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개장이 지연, 결국 오전 11시에 개장이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오늘 비 때문에 동인지 피해도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튼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몰려 들어간다.
그 행렬에 쌍둥이와 나 우리 세 사람도 같이 걸어가고 있다.
입장료는 300엔.
실내로 들어서자 선희는 연신 북적되는 이 분위기가 신기한지 정신없이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그런 선희의 손을 꼭 잡은 경희가 선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 이 손 놓으면 안 돼! 잘못하면 미아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오빠도 너무 멀리 떨어 지지마."
"알았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좀 덜 덥네."
아침부터 비가 내렸음에도 사람들이 많이도 모였다.
내가 경험했던 때보다 덜하다고는 해도, 진짜 장난이 아니다.
파란색 옷을 입을 경찰들이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주변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뭐, 이정도면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지.
듣기론 작년에 2만5천명이 몰렸다고 했는데, 올해는 더 많이 몰렸다고 하니까.
"책보고 가세요!"
"라무 짱 만화 있어요!"
"샤아 있어요! 보고 가세요!"
어설픈 코스프레를 한 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동인지를 홍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인기 있는 부스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책을 사기위해 이 더운 날 저렇게 착실하게 줄을 서서 사가는 모습은 지금의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뉴스에서도 심심하면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방송국에서 나온 걸로 보이는 카메라와 미모의 여자 리포터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던 경희가 곧 정신을 차리곤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스미레는 어디에 있지?"
"돌다보면 어디 있겠지."
스미레는 우리보다 일찍 집에서 출발했어제 밤에 출판사에서 걸려온 전화 때문인데, 얼핏 듣기론 소년점프의 부스 일을 돕기 위해서란다.
만화가가 어째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스미레 담당이 신입인데 그를 돕기 위해서란다.
뭐, 스미레 입장에선 신인만화가이니 편집자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절, 일본의 사정이나, 여자들의 처우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게 없으니 무조건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아무튼 덕분에 우리 셋만 이렇게 이리 저리 분주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오빠, 오빠! 저기, 저기!"
"어? 왜?"
"저거, 삼사라 맞지?"
경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과연 삼사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역시 인기 캐릭터인 켄, 그리고 다크 프린세스의 칼파나도 그려져 있다.
"어머나! 눈가려!"
갑자기 경희가 선희 눈을 가린다. 그리고는 나에게도 소리쳤다.
"악! 오빠도 시선 돌려!"
"갑자기 왜?"
"그, 그냥 내 말 좀 들어! 얼른!"
경희가 내게도 달려들며 눈을 가리려 한다.
"나 참, 왜 이래? 더워 써 죽겠구만."
"악! 보면 안 돼!"
뭔가 했더니 칼파나의 누드가 그려진 책표지도 보인다.
그 앞에 선 안경 낀 남자가 펼친 장면엔 켄과 칼파나의 므흣한 장면도 보인다.
"오빠는 뭘, 그렇게 자세히 봐? 빨리 지나 가자!"
"와, 확실히 일본은 다르지? 저것도 색 다른데?"
"오빠!"
아이구, 귀청이야!
"알았다. 알았어."
"나도 볼래."
"너까지 왜 그래?! 그냥 가자니까!"
그렇게 말하며 선희와 날 질질 끌고 그곳을 벗어나 버린다.
"와, 가슴 떨려!"
하기야, 경희에겐 컬쳐쇼크였겠지.
그런데 이번에 섹시…… 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상당히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 두 명이 날 붙잡으며 말했다.
"더티페어에요. 저희 책 한번 보세요!"
아, 더티페어라고 하기엔 비주얼이 좀…….
역시 내가 살던 시절과는 상당한 퀄리 티의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은근히 대담한 복장이 제법 보인다.
과연 일본!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반쯤 헐벗은 여자 둘이 내게 달라붙는 모습에 기겁한 경희가 나를 여자들에게서 떼어놓으며, 소리쳤다.
"오빠, 그만!"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도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야, 이러면 아무것도 구경 못해!"
"좀 건전한 걸 보면 되잖아."
"알았다. 알았어."
이 정도면 진짜 건전한 편인데……….
경희가 미래의 코미케에 왔다면 그냥 기절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선희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스미레……."
"어, 정말이네?"
이제야 경희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스미레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