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86화 (186/425)

요란법석 코미케 (1)

"오, 그러니까 이친구가 만화가라고?"

키도가 스미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지금 소년점프에서 짧은 거 연재중이야. 아마, 이번 거 마무리하면 바로 장편 연재를 시작할거야."

"아뇨, 확정된 건 아니라서."

내 말에 스미레가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대단하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며, 그런데도 벌써 만화가에 등극하다니. 확실히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구만."

"아니에요. 제가 선희 같은 천재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에요."

그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한 덕분인지 선희라는 발음도 꽤 잘한다.

아니, 지금 대화에서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참, 지금 우리는 오랜만에 키도의 자택에 와 있다.

오늘 어시들을 일찌감치 퇴근시킨 상황이라 화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스미레는 키도의 화실을 제대로 구경하고 있다.

"오늘은 예쁜 소녀들이 많이 와서 집이 환해지는 기분이에요."

키도의 부인이 평소처럼 웃으며 다가온다. 그녀의 손에 들린 쟁반에 먹음직스러운 과자와 차가 놓여있다.

"고토 씨, 집이 멀지 않으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요. 알겠죠?"

키도 부인이 스미레에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쵸?"

그렇게 말하며 키도를 돌아본다. 그러자 키도는 단번에 머리를 끄덕이며 웃는다.

"하하, 그래. 자주 놀러 와서 화실 구경도 하고,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정말 그래도 폐가 되지 않을까요?"

"폐라니, 당치 않아. 그리고 써니 친구면 내 동생이기도 하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키도 정도의 실력자라면 스미레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튼 내일 있을 코미케에 가겠다고?"

키도가 날 보며 묻자 머리를 끄덕였다.

"어."

"그런 고등학교 축제 같은 곳엔 뭐 하러?"

키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긴 이시대의 코미케는 키도의 말대로 딱 고등학교 축제수준에 지나지 않을 그런 분위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어설픈 부스에, 어설픈 코스프레.

대부분 고등학생들이 주류인.

물론 앞으로는 엄청나게 큰 행사로 자리 잡게 될 테지만,

"작년에 책을 판매한 인연도 있으니까."

"나도 그 얘긴 어시들에게 들었다. 한권 가격이 꽤나 비쌌다며? 뭐, 워낙 소량만 찍어서 그것도 금방 동 났다고는 하던데."

"하하. 그래."

사실, 담당인 지로가 가격을 실수로 잘못 말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건 들어 알고 있다.

"그럼 올해도 책을 팔 생각이냐?"

"책은 무슨? 그냥 구경이나 할까하고."

"이 참에 아예 어제처럼 그 고양이 탈을 쓰고 참가하는 건 어때? 재밌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키도의 부인이 가져다놓은 과자를 맛나게 씹고 있던 경희가 끼어들었다.

"이 더운 날에 우리 선희 잡을 일 있어?"

"아, 참. 그렇지. 서점 안이 그렇게 시원했는데도 꽤나 고생한 것 같으니까."

선희도 꽤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얼굴이 핼쑥해 보이는 얼굴로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다. 하지만, 사인회 자체는 즐거웠던 모양이니까 나름 추억거리는 되었겠지.

그런데 과자를 오도독 씹으며 먹던 스미레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키도부인에게 말했다.

"이거 정말 맛있어요. 혹시,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취미랍니다. 구경해보실래요?"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저도 보고 싶어요."

"저도."

쌍둥이들까지 나서자 키도부인이 즐거워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자, 그럼 절 따라오시겠어요? 아까 만들다 만 재료들이 남았는데, 같이 해보면 어떨까요?"

"네. 좋아요."

"와, 재밌겠다."

"그럼 모두 절 따라 부엌으로 가세요."

"네."

어미오리를 쫓아가는 새끼들처럼 키도 부인을 쫓아 모두 부엌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부인, 내가 나가보겠소."

키도의 말에 부엌 쪽에서 부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네, 고마워요."

키도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난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부엌 쪽에선 금방 들어간 여자들이 뭐가 즐거운지 까르르 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쌍둥이들이 여고생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야 남자라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여자애들이 과자나 케이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건 대충이나마 알고 있으니까.

사실, 그동안 화실 부엌에서 음식을 많이 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런 종류는 처음일 테니 재미있는 경험이 될 테지.

아무튼 여자들이 즐거워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키도 이 인간은 왜 들어오지 않는 거야.

대문밖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호기심에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본다.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보이는 대문 쪽에 키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키도 앞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몸으로 막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지?

일단은 다가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진채로 바라만 본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안 좋다.

키도의 거친 음성이 얼핏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싸우는 걸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인가 싶어서 그냥 다시 들어가려다가 키도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살짝 보인다.

그런데 어째 낯이 익다.

오래된 거라면 모를까 몇 시간 전에 본 얼굴이라서 금방 떠올랐다.

니시다 유키.

바로 에스퍼 존의 만화가다.

평소 키도가 별로 좋게 말하지 않는 만화가 인건 뭐,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왜 여길 찾아온 거지?

싸우기 위해 직접 찾아온 건가?

그렇다면 좀 악질인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때 거실의 창문이 열리더니 경희가 머리를 내밀고는 날 불렀다.

"오빠, 내가 지금 과자 만든 거 맛 좀 볼래?"

그 소리가 대문까지 들렸던 건지 갑자기 키도와 니시다가 우리 쪽을 향해 바라본다.

그러더니 니시다가 잽싸게 키도를 피해안으로 들어왔다.

"야, 니시다!"

키도가 불렀지만 니시다는 곧장 날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묻는다.

"혹시, 써니 선생님 가족분 아니신가요?"

"……네?"

"방금 한국어 맞죠?"

그렇게 말하며 창문 밖으로 여전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경희 쪽을 바라본다.

경희도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지 이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다.

그때 서둘러 따라온 키도가 니시다를 붙들었다.

"이거, 뭐야. 약속이랑 틀리잖아."

"아직 결과가 난 건 아니죠. 사인회를 끝까지 했다면 결과는 어찌될지 모르는거 아닙니까?"

"어차피 내가 이겼을 거라고."

"그건 억지죠."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나저나 뭘 이겨?

아무튼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때 다시 니시다가 날 보며 물었다.

"맞죠? 써니 선생님의 가족, 오오타케에게 들었습니다. 써니 선생님이 한국인이라는 걸요."

"오오타케가 누군데요?"

"아, 죄송합니다. 제 담당 편집자입니다."

"……아."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편집부 직원들이라면 써니가 한국인 이라는 정도는 꽤 알려졌을 테니까.

만화가들도 알려고 들면 알아낼 수 있는 문제이긴 할 테니.

키도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대부분 만화가들은 그림에 대해선 관심이 많아도 굳이 우리에 대해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니만.

아무튼 이 양반은 다른 만화가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사인회에서 굳이 선희의 사인을 받는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당연할 지도.

뭐. 이 정도까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조금씩 자연스럽게 우리의 존재를 알려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하고.

"네. 맞아요."

"아, 역시."

니시다가 만족한 얼굴로 웃는다.

그런 니시다 옆에 다가온 키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따진다.

"야, 이거 주거 침입죄야."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써니 선생님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숨기시다뇨, 그리고 아직 패배가 결정된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서점으로 가셔서 마저 승부를 보는 것도 좋구요."

"내가 거길 왜가?"

"그럼 저도 만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따로 만나시는 게 어딨습니까?"

"안된다니까."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승부타령인지 모르겠다.

그보다 뭔가 꿔다 논 보릿자루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네.

우리 의견 따윈 상관없는 건가?

그때 거실 문이 열리며 경희가 앞치마를 두른 채 바깥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과자가 든 접시를 들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자자, 이건 제가 만든 건데 한 개씩 드셔보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키도와 니시다에게 과자를 하나씩 건넨다. 그리고는 니시다를 보던 경희가 생각이 났는지, 아 하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크게 말했다.

"아, 아까. 우리 선희 곁에서 사인하고 있던 그 분 맞죠?"

그 순간 니시다의 눈이 커졌다. 방금 써니 비스 무리한 발음을 들었던 탓이다.

"써니 선생님 말이죠?"

"선희요? 아, 네."

경희가 그렇게 말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다시 키도를 본다. 그러더니 우리 둘 표정을 확인한 경희가 깜짝놀란다.

"어?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나, 사고 친 거야?"

그렇게 말하더니 접시들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 나 왜 이러지? 오빠 정말 미안."

"뭐, 그렇게 자학할 일은 아니고."

"그래도 미안, 일본에서는 조심하라고 했는데."

"키도 형이 이미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모양이라, 네가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는 없어."

그제야 자해를 멈춘다.

"정말?"

"무슨 소리야? 승부에서 이겼는데 무슨 약속?"

"결론이 안 났잖아요."

"내가 이겼는데 무슨 소리야?"

"아직 안 끝났다니까요."

이것들이 듣고 있자니까 정말!

"잠깐만! 그러니까 우리 선희를 두고 승부를 했다는 거야? 진짜?"

"……!"

"……!"

내 말에 두 놈들이 갑자기 멈칫한다.

지들이 생각해도 내가 화난 상황이 납득된 거겠지.

눈알을 데굴거리던 키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난, 그게 말이지……."

"시끄럽고,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봐. 아주 자세하게."

"아, 저, 사실은……."

키도가 쭈뼛거리면서 니시다를 힐끔거리고는 곧장 이야기를 해 나갔다.

두 사람이 말하는 승부라는 것과 그것에 왜 선희가 걸려있는 것인지.

대충 설명을 듣고 나자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허, 정말. 그러니까 우리 선희를 만나게 해준다는 걸 걸고 사인시합을 벌였다는 거야? 그게 사인회의 목적이었어?"

"아, 그게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전 그게 전부입니다."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화들짝 놀란다.

"야, 네가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왜 양심선언 따위를 하고 난리야?"

"전 정말 써니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림도 그렇지만 그 스토리의 깊이는 정말 감탄했으니까요. 키도 선생님도 그래서 이렇게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저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잠시 뻘쭘해졌다.

결국 선희만이 아니라는 건데.

그때 거실 문이 열리며 선희가 접시를 들고 나온다.

경희처럼 자신이 만든 걸 자랑하려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경회가 말했다.

"선희야, 넌 왜 나와?"

"이거 먹어봐. 맛있어."

분명 한국어로 대화했지만, 선희라는 말을 들었는지 니시다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리고는 이내 경희와 선희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자 키도가 옆에서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써니랑 경이는 쌍둥이야."

"오빠, 경희라니까."

"아무튼."

어쨌건 니시다는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인지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때 경희가 그런 니시다에게 말했다.

"스토리는 여기 있는 우리 오빠가 써요."

"……네?"

니시다가 거듭 놀라며 묻자 경희가 깜짝 놀란다.

"아, 뭐야? 또 나 실수한 거야?"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