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78화 (178/425)

써니 이펙트 (3)

써니 이펙트?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종류의 칭호인데.

가만 보자…….

생각이 날 듯 말 듯 한데 말이지.

그런데 그때 키도의 감탄한 음성이 들려온다.

-대단하다. 대단해. 벌써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법을 창조하다니. 이쯤 되면 스타만화가 아니더냐. 만화가들의 스타. 이거 정말 부러운 걸?

"으음, 역시 이타노 서커스 같은 건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키도가 의아한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타노 서커스? 그게 뭐냐?"

어? 키도는 모르나?

하긴, 애니메이션과 만화 쪽은 분야가다르긴 하니까. 거기다 키도가 딱히 오타쿠 같은 사람도 아닐 테고, 그런데 전화기 너머가 소란스럽다.

키도와 누군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다.

아, 화실 어시들인가?

그런데 대충 흘러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주변에서 이타노 서커스에 대한 설명을 해준 모양이다.

아무튼 대화가 대충 끝났는지 곧장 키도의 음성이 커진다.

- 아, 그렇구만. 알았어.

이타노 서커스는 이타노 이치로라는 유명 애니메이터가 만든 기법으로 메카닉액션 묘사법이다. 이데온에서 그 명칭이 굳어졌으며 일반인에게는 마크로스의 화려한 미사일과 그것을 피해내는 비행기들의 움직임으로 유명하다.

어쨌거나 특징적 기법에 사람의 이름을 붙여 사용된 건 그만큼 그 분야의 전문가 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얼마 전에 선희가 그렇게 열심히 보던 버스의 작화를 맡았던 카나다 요시노리 역시 '카나다 섬광', '카나다 점프’, ‘카나다 이펙트' 라는 기법으로 유명하다.

어? 카나다 이펙트?

써니 이펙트를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뭔가 오리지날틱 하지 않은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마치 수많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먼저 찾아서 먼저 찜을 하는 것 같은 거니까.

솔직히 광각렌즈 사진 같은 배경 같은 경우엔 미래엔 자주 쓰이는 편이긴 하니까. 거기다 여러 장면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아직 내겐 생소하지만 누군가 결국 사용할지도 모를 일이고, 생각에 잠겨있는데 키도가 다시 말을 잇는다.

-맞아. 네가 말한 그 이타노 뭔가 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야. 야, 그나저나 역시 넌 애니메이션 쪽에도 아는 게 많구나.

하긴 이 시절엔 애니메이션 쪽 관계자가 아니라면 이럴 걸 아는 인간은 오타쿠밖에 없을 테니까.

아, 참. 잊고 있었다. 나도 덕후가 맞는데.

그래도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

-그래도 만화가로서 그런 칭호까지 얻다니. 대단하다. 이제 만화가로 활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키도 형도 예전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뭐더라……? '통제불능 키도' 라던가?"

연재 중 느닷없는 결말로 편집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만화가라는 뜻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로에게 들은 말이지만, 아무튼 이런 내 말에 키도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갑자기 왜 과거의 이야기를……. 크

잠시 그렇게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칭호라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라는 건 알고 있을 거다. 그만큼 이 분야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니, 어떨 땐 내가 더 답답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쉰다.

"형이 왜 답답해하는데?"

-그렇잖느냐. 동생들이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의 실력을 갖췄는데, 단순히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춰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이 형은 그게 안타까운 거란다.

그건 나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80년대다.

내가 살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폐쇄성이 강한 시기다.

물론 업계사람들의 경우엔 이해해 주는 이들도 많을지 모르지만, 아직은 시대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금은 인터넷 같은 커뮤니티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일부러 밝히지 않는 이상은 독자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로 인해 소문이 퍼지기도 할 테지만, 아무래도 '카더라'식의 뜬 소문처럼 여겨질 테니까.

더불어 일본의 만화계는 그 중에서도 가장 폐쇄성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일본의 출판계 소식이 그리 많이 공개되지 않은 덕분에 '바쿠만' 같은 만화가 나오면서 만화계에 대한 속사정이 외부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나마도 소년점프에 한정된 이야기고 다른 잡지사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바쿠만'만 보고 무작정 만화계에 뛰어들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였다.

아무튼 키도는 우리가 한국인 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어떻게 상황이 진행될지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더 분통해 한 어쨌거나 이 양반, 이렇게나 마음 써 주는 모습을 보니까 고맙기는 하다.

-아 그리고 보니 중요한 소식을 빼먹고 있었군.

"중요한 소식?"

-그래. 이 형이 며칠 후에 도쿄 시내의 큰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며 멋들어지게 웃는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결국은 그거 자랑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던 거군. 칭호 어쩌고 한건 그냥 거들뿐이었냐?"

-아, 아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그리고 이건 출판사에서 하는 평범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깟 사인 이벤트, 이전에는 전혀 참여 하지도 않더니만,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어?"

-크음. 네 녀석은 아는 게 너무 많아.

편집부에 스파이라도 심어 둔거냐?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쑥스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사인회를 하시는 거요?"

-왜긴 왜야! 다 독자들을 위해서지.

그 말에 내가 콧방귀를 뀐다.

"이거 왜 이래? 키도 선생님이 헛소리나 하고 말이지. 바른대로 말씀하시지?"

내가 추궁하자 곧 혀를 한번 차고는 말했다.

-쯧. 니시다 그 놈이 사인회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나섰지.

"아, 역시 앙케이트 전쟁의 연장선이었군."

-부끄럽지만, 그렇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 녀석에게는 지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요즘 에스퍼 존의 인기가 올라서 진심의 남자랑 2위 다툼이 더 치열해지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떠나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고, 평소에도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니까.

-아무튼 심심하면 사인회에 와도 좋고, 필요하면 내가 직접 초청을 해주마.

"어. 생각 있으면 연락할게."

-그래라.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

"그러슈."

그렇게 키도와 전화를 끊고 나자 경희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키도 오빠, 뭐래? 이번에 내가 보낸 스토리는 마음에 든데?"

"그런 이야기는 없던데?"

"뭐? 칫."

저 딴엔 고민해서 보낸 건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으니 섭섭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보면, 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키도 성격에 늘 스토리만 칭찬할 리도 없으니, 거기다 아직 경희의 스토리 능력은 부족하니까.

"그런데 사인회 이야기는 뭐야?"

"아, 그거 들었냐?"

"응. 키도 오빠 사인회 한데?"

"어. 니시다 선생이랑 같이 한다나봐."

"와, 가보고 싶다. 사람들 엄청 오겠지?"

"글쎄,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경희와의 대화에 어시들이 관심을 보인다.

"두 분 같이 사인회라니, 평소에도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그런데 사인회가 앙케이트에 영향을 꽤나 준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거죠."

"사인회장이 외나무다리라니……. 어째 흥미진진한데요?"

그때 가만히 있던 실버가 은근히 끼어들었다.

"보나마나 누가 더 사인을 많이 해줄지 경쟁할걸?"

그 말에 김기철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요. 누가 그런 걸로 경쟁을 해요? 애도 아니고."

"니시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키도, 그 양반은 분명 그럴 거다."

"진짜요?"

"그래. 확신한다."

그 순간 대화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 역시 키도 선생 바라기."

언제 왔는지 이대봉이 화실에 들어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실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요즘 삶에 의욕이 없나보군."

"응? 아닌데? 근데 왜 그렇게 말해?"

"죽고 싶은걸 보니까."

"끄응. 넌, 그 폭력성이 문제야."

"아니지. 폭력을 유도하는 놈이 문제인 거지. 그 세치 혀만 어떻게 해버렸으면 좋겠는데."

"너는 어떻게 꼭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니?"

"시끄러."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난 선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선희를 쳐다봤다.

역시 새롭게 익힌 기법을 잘 활용하며, 꽤나 흥미로운 연출의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다가온 내가 신경 쓰였던지 선희가 작업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올리고는 날 쳐다본다.

"왜?"

"너, 칭호가 생겼다고 하더라."

"칭호?"

"어."

"그게 뭔데?"

"흐음, 그러니까 뭐랄까……."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데 한참 실버와 옥신각신하던 이대봉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홱 돌리며 말했다.

"무협지에 나오는 그런 거 말하는 거지?"

그 말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그래. 맞아. 비슷한 거야."

하지만 이곳에는 무협지에 대해 지식이 1도 없는 인간들이 제법 있다. 거기에 선희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번엔 경희가 그런 선희를 위해 보충 설명을 했다.

"무협지 보면 자신의 이름 대신 쓰는 이름이 있어."

"만화가들이 쓰는 필명 같은 거?"

"아니, 그건 본인이 자신의 이름대신 쓰는 거지만, 방금 오빠가 말해준 칭호라는 건 남이 만들어준 이름 같은 거야. 가령 아, 그래. 박치기왕 김일 있잖아. 거기서 박치기왕이 칭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오, 역시 경희가 설명을 잘 하는 구나.

아무튼 그제야 선희가 알아들었다는 득머리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선희에게 칭호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열심히 설명해주던 경희가 나를 보며 묻는다. 어시들도 한참 투닥거리던 실버와 이대봉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연히 선희도,

"최근에 새롭게 선희가 그리던 표현 방식이 꽤나 알려 졌나봐.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기법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써니 이펙트’래."

그 순간 모두 놀란 표정이 된다.

그리고는 한꺼번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갑작스러운 어시들의 반응에 선희도 얼떨떨해 한다.

"와, 작은 선생님 대단하세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벌써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법을 만들어 내셨으니까요."

"위인전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오, 어쩌면 미래엔 가능할 지도."

"선희야, 나도 나만의 기법이 가지고 싶어졌어. 너무 부럽다."

이대봉이 눈물까지 훔치며 귀부인처럼 고상한 동작으로 박수를 짝짝거리며 말한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아까까지도 처 잠만 자던 백설기가 언제 깼는지 선희의 책상위로 팔짝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선희의 팔에 머리를 비비적거린다.

"백설기도 작은 선생님이 자랑스러운가 봐요."

"하여튼 저거 은근히 요물이라니까."

은근히가 아니라 진짜 요물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