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8화 (168/425)
  • 만화 엘리트 소녀 (2)

    과도하게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부담스럽다.

    "정말 네가 진짜, 진짜 써니 선생님?"

    "응."

    "……."

    어어, 얘가 왜 이래?

    애가 안절부절 하는 건 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렇게 울려고 하다니.

    뭔가 격렬한 감정이 밀려드는 모양이다.

    설마 감동해서 저러는 건가?

    그때 경희가 스미레의 어깨를 탁탁 치며 웃었다.

    "선희가 말 안한 건 사정이 있어서니까, 네가 이해를 해줘."

    그 말에 선희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사정이 있어."

    "응, 그래. 뭔지 알 것 같아."

    스미레가 눈물을 손가락으로 살짝 훔치며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삼사라는 지금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작품이잖아. 그러니까, 삼사라 만화가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조심스러울 테고, 출판사도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거야."

    스미레의 말이 정확하다.

    80년대의 일본은 내가 살던 시대에 비해 좀 더 패쇄적이니까.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도 강했고.

    아무튼 스미레의 말에 이대봉이 의외란 표정으로 물었다.

    "너, 생각보다 많이 아네? 너도 만화연구회 그런데서 활동하니?"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

    시 입을 열었다.

    "아빠가 만화가세요."

    "아빠가 만화가라고?"

    "네."

    이대봉이 호기심어린 표정을 물었다.

    "혹시 누구신지 말해줄 수 있어?"

    "격 주간 잡지인 소년파워에서 낙오자의 고시엔'이라는 만화를 그리는 고토 미노루가 제 아빠세요."

    "……."

    딱 보니, 여기서 그 만화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빼고는 아무도 없다.

    나도 사실은 그런 만화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뿐이다.

    만화는 아예 본적도 없다.

    너무 인기가 없었는지,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고 결국 나도 책에서 봤기 때문에 그런 만화가 있었다는 것 정도만 겨우 알뿐이니까.

    아무튼 모두 전혀 아는 눈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는지 곧장 스미레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저. 사실 모르신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일본에서도 별로 알려진 분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선희를 돌아본다.

    "그나저나 요즘 그렇게 주목받는 삼사라의 작가가 너라니 정말 놀랐어. 난 그냥 네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다시 널 만나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온 건데.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네 그림을 처음 보고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나 싶었더니 결국 당연한 거였네."

    그렇게 말하며 어쩐지 쓴웃음을 짓는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어쩐지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부끄러워."

    "나도 네 그림 좋았어."

    선희의 말에 스미레가 웃는다.

    "그랬니?"

    "응."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너 굉장히 잘 그려."

    "고마워."

    그래도 선희가 인정할 정도면 진짜 잘그리긴 하나보다.

    "그런데 네 오빠는 누구……?"

    그 말에 선희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자 스미레가 날 쳐다보더니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어? 왜 저렇게 날 보는 거지?

    설마 쌍둥이 녀석들이 나에 대해 흉라도 본 건가?

    그때 경희가 끼어들었다.

    "우리오빠는 삼사라 스토리를 쓰고 있어."

    그 말에 스미레의 눈이 다시 커졌다.

    "삼사라 스토리? 정말?"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를 돌아본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본 듯이 움찔거리며 머뭇거린다.

    그때 이대봉이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한국에 혼자 찾아올 생각을 다하고, 무섭지 않았어?"

    "무서웠어요. 한국에 대한 선입견도 좀 있었고, 하지만, 전에 수학여행 와본 기억도 있고, 한국에 오면 찾아오라고 선희가 주소도 알려줬으니까."

    "부모님은 걱정 안하시니?"

    "엄마는 걱정하시는데, 아빠는 이런 것도 경험해야 된다고, 많은 경험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대단한 아버지시네."

    이대봉이 감탄한다.

    나 역시 동감이다.

    나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테니까.

    일본에 경희나 선희가 혼자 가겠다고 말한다면 절대로 허락은 안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물었다.

    "그럼 학교는?"

    그러자 날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학교는 며칠 쉰다고 얘기해뒀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학교랑 병행해서 '극화촌숙(劇?村塾)'에 다니고 있어요.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그곳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에요."

    "극화촌숙?"

    "네. 아빠가 제대로 하려면 그곳에서 배우라고 하셨거든요. 저에게 재능도 있다고 하셨고요."

    만화가인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면 단순히 그림뿐만이 아니라 만화에도 재능은 있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선희 때문에 무작정 한국까지 찾아올 정도면 열정도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나이도 어린데 본격적이네."

    "선희에 비하면 늦었는걸요."

    "그야 그렇긴 하지."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스미레가 날보며 묻는다.

    "그런데 극화촌숙에 대해 아세요?"

    "뭐, 조금."

    "…… 놀라워요. 극화촌숙을 아시다니."

    스미레가 정말 놀랐다는 듯 말했다.

    극화촌숙은 이 당시 유명했던 만화가 양성학교다.

    '크라잉 프리맨’과 ‘생추어리' 그리고 '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스토리 작가로 유명했던 코이케 카즈오가 설립한 곳이다.

    이곳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우루세이 야츠라의 '다카하시 루미코'다.

    앞으로 미래의 일이기는 한데, 1988년에 문을 닫은 뒤 2006년에 다시 문을 열게 된다.

    그나저나 극화촌숙까지 다닐 정도면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모양이다. 거기다 아버지가 만화가라면 어릴 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왔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면 은근히 만화에 대해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모양이네.

    "우리 오빠 저래 봬도 만화에 대해선 엄청 많이 알아."

    경희가 스미레에게 자랑이랍시고 말하고 있다.

    저래 봬도 라니, 은근히 날 디스하는건가?

    그런데 스미레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본다.

    "역시 선희가 그렇게 자랑한 이유를 알것 같아요."

    "뭐? 선희가?"

    선희를 쳐다보니 멀뚱거리며 평소처럼 멀뚱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의외네.

    선희가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니.

    그것도 무려 자랑을?

    궁금하기는 한데, 그 얘긴 낯간지러워서 묻기가 좀 그렇다.

    그때 선희가 스미레에게 물었다.

    "너, 전에 납득할 만한 걸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그 말에 스미레가 깜짝 놀랐다.

    "어? 그 말 아직 기억하고 있었니?"

    "기뻐. 네가 기억해 주니까."

    "가져 왔어?"

    "응.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곧장 서류봉투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는 곧장 봉투를 열고는 거기서 종이들을 꺼낸다.

    만화원고다.

    "읽어봐도 돼?"

    "내가 오히려 부탁하고 싶어."

    스미레가 긴장한 표정으로 원고를 선희에게 내밀었다.

    친구가 아닌 선생님에게 테스트를 받는 제자 같은 표정이랄까.

    아무래도 선희가 삼사라를 그린 만화가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탓이겠지.

    선희가 그림을 펼쳐보기 시작하자 스미레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듯한 표정이다.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것 같은데.

    그 순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선희 주위로 모여들더니 곁에서 원고를 힐끔거린다.

    "와, 만화원고네? 설마, 얘 만화가에요?"

    박수미가 묻자 경희가 대답했다.

    "아니, 공부는 하고 있지만 아직 만화가는 아니래요."

    "그런데도 이렇게 잘 그려요? 대단하다. 펜선도 정말 깔끔하고."

    "아빠가 만화가래요."

    "아. 그렇구나."

    일본어로 대화를 한 덕분에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세한 상황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아까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경희가 설명을 해주자 모두 놀라는 분위기다.

    "와 여고생이 혼자 한국에, 그것도 작은 선생님 만나자고 찾아오다니, 대단하네요."

    "나더러 혼자 일본 가라면 솔직히 무서워서 못 갈 것 같은데."

    "누가 널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겁은 많아서."

    "언니는 안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

    "뭐야, 그게."

    "그나저나 그림이 정말 예쁘다. 순정만 화랑 극화가 약간씩 섞인 느낌이야. 여자라서 순정만화일줄 알았는데."

    "그러게. 그림이 정말 화려하고 멋지네..

    정말 고등학생이 그린 거 맞아?"

    "왜 그래, 우리 작은 선생님도 있는데."

    "아, 참. 그렇지. 가끔 우리 작은 선생님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니까."

    나도 얼핏 근처에서 살펴보니 그림 자체는 괜찮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다카하시 루미코의 영향을 받은 듯한 화풍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조금 더 꼼꼼하다는 느낌이다.

    잠시 후 다 읽은 선희가 입을 열었다.

    "뭔가 불편해. 꺼끌꺼끌한 느낌."

    역시 친구고 뭐고 가차 없구만.

    "……불편하고 꺼끌꺼끌한 느낌?"

    "응."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스미레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무슨……말인지 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스미레의 질문에 선희가 잠시 동안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명하기 힘들어."

    "……."

    역시 AS도 최악이야, 최악.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지어진다.

    하지만 내가 읽어보니 선희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선 알 것 같다.

    할 수 없지.

    부족한 AS기사를 동생으로 둔 내가 나서야겠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네. 부탁해요."

    "의욕이 너무 앞선 채로 만화를 그려서 그래."

    "네?"

    "모든 장면을 동일하게 집중해서 그린 탓이야."

    그리고는 스미레가 그린 원고 장면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것도, 이것도, 이것 역시 마찬가지. 모두 따로 놓고 보면 그림 자체는 훌륭해."

    스미레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날 바라본다.

    "그런데 만화는 이야기잖아. 그럼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그림의 임무가 되어야 해. 그런데 지금 네 그림은 독자에 대한 그런 배려심이 부족해. 그냥 화려한 그림 실력만 뽐내려고 하니까,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거야."

    "……."

    아, 이거. 너무 심하게 말한 건가?

    아직 고등학생일 뿐인데.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내가 너무 심하게……."

    "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부탁?"

    "저 여기서 일주일간 머무르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뭐?"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런데 스미레가 작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눈을 반짝이며 힘 있게 말했다.

    "사실은 저 하루 정도만 선희를 만나고 나서 곧장 돌아갈 생각으로 오긴 했는데, 생각을 바꿨어요."

    "……."

    "저, 여기에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할게요. 어시일이건 청소건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까요."

    "……."

    "혹시 돈이 필요하시면 지금 가진 돈 몽땅 드릴게요. 그러니까, 일주일동안 조금씩만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셔도 상관없어요. 그냥 일주일동안 지내게만 해주세요."

    스미레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얘, 지금 진심이구나.

    거참, 이거.

    "제발, 부탁드릴게요."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전화 드리면 되요. 아버지도 제가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걸, 아시면 반대하진 않으실 거예요."

    "그치만……."

    "오빠, 나도 부탁해."

    이젠 선희까지 나선다.

    "일주일이라고 해봤자 네가 배울 건 별로 없을 텐데."

    "그거면 충분해요.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머리를 푹 숙이며 말한다.

    그때 경희가 실실 웃으며 날 어깨로 특친다.

    얘는 또 왜 이래?

    "에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끄덕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