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7화 (167/425)
  • 만화 엘리트 소녀 (1)

    "끽끽끽."

    이대봉이 거실마루에 앉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만화책을 보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다.

    지금 그가 읽고 있는 건 얼마 전에 나온 소년점프인데, 요즘 저 인간은 화실에 왔다하면 가장 먼저 저걸 찾아보고 있다.

    요즘 이대봉의 일과는 틈만 나면 전국을 싸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방랑벽이 잦아지면 이렇게 화실로 와서는 저렇게 만화책을 보거나, 화실 식구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낸다.

    저런 와중에도 중원요리왕의 콘티는 빼먹지 않고 잘 만들어나가고 있으니, 확실히 재능이 넘치는 인간이다.

    거기다 요즘 중원요리왕은 전보다 확실히 재미있다.

    파시엔시아와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가끔 4위를 하는 바람에 실버를 더 열 받게 만들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 이 자식 이거 엄청 얍삽하네. 진짜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야."

    이대봉이 만화 속 크리링을 가리키며, 말한다.

    자주 보는 만화는 역시 드래곤볼이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땐 좀 시큰둥해 하더니 한권분량을 넘기고 부터는 꽤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듯하다.

    최근 드래곤볼의 이야기는 무천도사 밑에서 동기인 사악한 크리링과 함께 수련을 받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거기다 런치라는 매력 있는 여자 캐릭터가 추가되어 슬슬 재미의 포텐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조만간 천하제일무도회가 열리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드래곤볼의 독주가 시작될 것이다.

    "요즘 들어서 슬슬 재미가 있네. 이야기가 이제야 뭔가 목적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야. 전엔 그냥 드래곤볼을 모아야한다는 둥 하면서 이야기에 목적이 없어보였는데, 제일 황당한 게 오룡 녀석의 소원으로 빤스 떨어지는 장면이었어. 그거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 시선은 만화책에 고정되어 있다.

    "너는 할 일도 없이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것 같은데."

    역시 이번에도 실버가 심심했던 탓인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시비에 이대봉도 쉽게 걸려들지는 않는다.

    "할일이 없긴, 요즘 얼마나 바쁜데."

    그렇게 대답하며 여전히 만화를 보며 낄낄거린다.

    그런 이대봉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슬쩍 노려보며, 말했다.

    "한가하구만 도대체 어디가 바쁘다는 거냐."

    "여기, 여기."

    "……."

    계속 시선을 책에 고정시킨 이대봉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하자, 실버가 헛웃음을 짓는다.

    "웃기는 소리."

    "궁금하면 머릿속으로 들어오든가."

    실버는 씨도 안 먹히자 콧바람만 씩씩 거리며 원고에만 집중한다.

    그런 실버를 살짝 힐끔 거리던 이대봉이 책을 덮고는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화실에만 있으면 갑갑하지 않니?"

    "글쎄, 별로, 난 집에서 만화 보는 게 좋아서."

    원래 내 취미는 만화 덕질이니까.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던 시절보다 정보를 얻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료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서 받아보고 있기 때문에 늘 행복하지.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재미가 없어? 생각 난 김에 오늘 나랑 드라이브 할까?"

    "관둘래. 아직 초보딱지도 못 땐 사람 차타고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아."

    내 말에 이대봉이 뿌루퉁한 표정이 된다.

    "야, 내가 지금 주행 거리가 얼만지 아냐? 알면 놀라 자빠질걸?"

    "관심 없다니까."

    "관심 좀 가져, 관심. 젊은 남자, 자동차. 얼마나 어울리냐?"

    "형이 하고 있잖아."

    "너 말이야. 너!"

    "어. 노력해 볼게."

    "……."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이번엔 실버가 머리를 처박은 채로 낄낄거린다.

    그런 실버를 살짝 노려보던 이대봉이 ‘쳇’ 하며 혀를 찬다. 그때 대문 밖 초인종소리가 들린다.

    "내가 나갈게."

    성준희가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들어오더니 내게 다가와서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일본여자애가 찾아왔는데?"

    "뭐?"

    "어허, 이걸 놀랠 노자네? 윤환이 드디어 일본 여자랑?"

    이대봉이 건수를 찾았다는 듯 헤벌쭉거리며 말했지만, 성준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니라고?"

    "네. 어설프게 발음하긴 했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엔 선희 쪽을 바라본다.

    "……선희를 찾는 것 같아요."

    "일본애가 선희를?"

    이대봉이 놀란 얼굴로 선희 쪽을 바라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 때 곁에서 책을 읽고 있던 경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간다.

    "쟤가 왜 저래?"

    "……?"

    "……?"

    모두가 의아한 시선으로 경희를 바라보는데, 잠시 후 경희가 웬 여자애들 데리고 들어오는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긴 생머리에 다소곳해 보이는 하얀색 블라우스, 푸른색 니트 조끼에 치마……, 뭐랄까 청순한 느낌이긴 한데, 경희보다는 조금 성숙해 보이는 외모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저 가방…….

    뭔가 집나온 느낌도 있다.

    설마, 한국까지 가출해 온 애는 아니겠지.

    어시들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작업을 멈추고 마루의 창가 밖으로 시선을 보낸다.

    선희는 작업에 몰두한 탓에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림에만 빠져있다.

    곧 경희가 마당에서 여자아이에게 뭔가를 얘기하고는 폴짝거리며 화실로 들어온다.

    "누구야?"

    이대봉이 궁금해서 물었지만 경희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서둘러 선희에게 다가갔다.

    "야, 선희야"

    하지만 여전히 원고에만 빠져있다.

    아무래도 과도한 집중상태인 모양이다.

    어쨌건 선희가 반응이 없자, 경희가 책상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얘!"

    그제야 선희가 머리를 들었다.

    "……?"

    "왔어, 진짜로 왔어."

    "……누가?"

    "걔 말이야, 걔. 전에 다시 오겠다고 했던 걔. 스미레."

    그 말에 선희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서둘러 거실마루 쪽으로 가 밖을 보더니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튀어 나갔다.

    "얘, 슬리퍼라도 신고 가."

    그렇게 말하며 경희가 슬리퍼를 손에 쥔 채로 선희를 따라 나간다.

    사람들은 여전히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간 선희가 여자애를 보자마자 확 껴안는다.

    "어?"

    "어머?"

    "얼래?"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선희가 누군가를 저렇게 반갑게 맞이한 걸 본적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상대방을 격하게 껴안기까지 하니까 그나저나 선희에게 반가운 손님이라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누구지?

    여자애는 분명 일본인이라고 했는데.

    나랑 두 번 일본을 가긴 했는데, 그 때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만화연구회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 저런 여자애는 본 기억이 없다.

    사람들도 일순간 나를 바라본다.

    이들도 나랑 선희가 같이 일본에 갔을 때 만난 사람인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누구야?"

    "몰라. 기억에 없는 사람이야."

    "뭐? 너랑 붙어 다닌 거 아니냐?"

    "맞는데, 모르겠어."

    "동생에게 관심이 없어, 관심이."

    이대봉이 혀를 차며 말한다.

    그랬나?

    나도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선희와 일본여자애가 한참 뭐라고 대화를 하는 동안 경희가 화실로 들어온다.

    이대봉이 이번에도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경희에게 물었다.

    "얘, 도대체 쟤 누군데?"

    "아, 일본인."

    "그건, 아는데, 어떻게 친해진 거냐고?

    전에 일본에 갔을 때 사귄 거니?"

    "아니, 저번 달에 우리학교 경주로 수학여행 갔잖아. 그때 만난 애야."

    "경주에서 만났다니? 저애 일본인 아니니?"

    이대봉의 말에 이번엔 박수미가 끼어들었다.

    "제임스 오빠는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닌다면서 그런 것도 몰라?"

    "모르긴 뭘?"

    "요즘 일본고등학생들 한국으로 수학여행 많이 오잖아."

    "아, 참."

    "내 말이 맞죠?"

    박수미가 경희를 보고 묻자 경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일본에서 수학여행 왔던 애예요."

    "오, 그래? 그런데 어떻게 친하게 된 거야? 빨리 얘기해봐."

    이대봉의 재촉에 경희가 밖을 잠시 힐끔거리고는 곧장 얘기를 시작했다.

    "천마총 갔을 때, 저 둘이 우연히 알게 된 모양이야. 난 친구들이랑 놀고 있어서 못 봤는데, 나중에 보니까 일본 교복 입은 애랑 선희가 같이 있더라고. 뭐, 자세한건 선희가 알겠지만, 그림 때문에 친해진 모양이야."

    "아."

    "역시 그림이군."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다.

    선희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저 일본 여자애가 본 모양이다.

    "스미레가 그림을 엄청 잘 그려서 나도 엄청 놀랬어. 선희가 그리는 모습을 많이 봐서 내 눈 엄청 높은데 말이야. 경희도 스미레가 그림 그리는 걸 보고 관심이 갔던 모양이야."

    "뭐, 선희가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니고?"

    "응."

    예상이랑 정반대네.

    그런데 경희가 나를 보며 뭔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저기, 스미레 말이야. 화실에 들어와도 돼?"

    아무래도 화실에 대한 사실을 보통의 일본인인 여자애에게 보여주려는 모양인데, 그래도 신경은 쓰인 모양이다.

    "뭐, 어때. 그렇게 해."

    "고마워."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엔 경희가 맨발로 뛰쳐나간다.

    잠시 후,

    스미레 불린 여자애랑 쌍둥이가 같이 들어왔다.

    스미레는 실내를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꾸벅했다. 그리고는 곧장 일본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고토 스미레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어서와, 난, 제임스, 한국엔 혼자 온 거니?"

    "네. 아빠에게 허락받고 혼자 왔어요. 그런데 제임스 씨는 일본어를 잘하시네요."

    "여기 화실에 일본말 잘하는 사람이 좀 많아."

    그 말에 여자애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 언어 때문에 신경이 쓰였을 테니까.

    "으그, 제임스 오빠는 좀 비켜봐."

    그렇게 말한 경희가 화실사람들을 하나 하나 소개한다.

    "그런데, 여긴 많은 분이 모여 살고 계시네요. 건물도 조금 익숙한 구조고."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게 신기했는지 스미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번에도 이대봉이 나선다.

    "이 집은 옛날에 일본인이 살았던 곳이야. 조금 개조하긴 했지만, 그리고 여기는 지금 화실로 쓰고 있어. 만화 알지? 여기 사람들은 여기서 일하고 있고."

    "네? 화실요? 여기가 만화가 화실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내부를 슬쩍 둘러보더니 벽에 있는 그림과 각종 물건들을 보며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그리고는 벽에 있는 그림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며 이대봉에게 물었다.

    "여기 삼사라 그림이 보이네요. 설마…… 삼사라를 그리는 곳인가요?"

    역시, 쌍둥이들이 말하지 않은 모양이 아무튼 스미레의 질문에 이대봉이 나를 슬쩍 바라본다.

    내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하자, 이대봉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맞아. 여기가 삼사라를 그리는 화실이야."

    "네? 정말요?"

    이번엔 진짜 놀란 모양이다.

    "당연하지."

    "그, 그럼 써니 선생님은……?"

    "니 옆에 있잖아. 선희."

    그 말에 커다래진 눈으로 선희를 돌아본다.

    선희는 별다른 감정변화 없는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같이 바라본다.

    "정말 네가 써니 선생님이라고?"

    "응."

    "진짜!"

    "응."

    야야, 눈알 튀어나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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