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6화 (166/425)
  • 해보자는 건가 (6)

    “이번 주 앙케이트입니다. 여기.”

    “고맙습니다.”

    직원이 넘겨주는 종이를 지로가 건네받았다.

    그리고 바로 순위를 확인했더니…….

    삼사라 1위.

    진심의 남자 2위다.

    과연 이번에 나온 특별호의 위력이 상당했던 모양인지 모처럼 1위를 차지했던 진심의 남자를 다시 멀찌감치 멀리 따돌려버렸다.

    사실, 이번 내용의 여파는 상당했다.

    잡지가 나온 뒤로는 온통 삼사라 얘기 뿐이었을 정도니까.

    사실, 이건 편집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독자엽서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일러스트도 삼사라에 관한 것이 압도적으로 늘었고, 독자의견에도 온통 삼사라가 재미있었다는 얘기뿐이다.

    거기다 외부에서는 그런 반응을 느낄기회가 있었다.

    며칠 전 삼사라 연구회를 다녀온 그로서는 조금이나마 팬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번 편에 대한 이야기로 연구회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이번 거, 정말 재밌었어.”

    “좀비 사무라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궁금한데?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는 이제 완벽하게 달라져 버렸으니까. 어쨌거나 그냥 그대로 연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그거 저번 화부터 이야기가 막 꼬이고 있었는데. 이번엔 정말 어떻게 풀어갈지 흥미로운데?"

    “솔직히 그동안 남의 이야기 표절하면서 잘도 연재했잖아. 작가라는 인간이 양심도 없고, 그걸 허용해 주는 출판사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뒤집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과연 써니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나?"

    “난 써니 선생님이 어떻게든 뭔가 해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놀고 있네. 너, 저번 주까지만 해도 써니 선생님은 이제 한물 간 거 같다며?"

    “내, 내가 언제! 너 이상한 이야기 퍼트리지 마!”

    “쯧, 그러게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는 거야.”

    “…….”

    "아카기 씨는 이거 이미 알고 있었죠?"

    “노코멘트.”

    “아, 죄송합니다.”

    “야, 너는 그런 걸 왜 물어? 팬으로서 지킬 건 지켜라.”

    “미안, 나도 모르게.”

    그 대화를 떠올리며 지로가 웃었다.

    그렇게 앙케이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팀장이 다가왔다.

    “아는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지금 소년 매거진 분위기 엄청나게 안 좋다더라.”

    그 말에 지로가 깜짝 놀랐다.

    “설마 삼사라 때문에요?"

    “삼사라 때문이긴 하지만, 뭐 직접적인건 아니고.”

    “무슨 소리예요? 그게.”

    “좀비 사무라이를 그리는 만화가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져 버렸다더라.”

    황당한 말이었다.

    만화가가 사라져버리다니.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망이라도 쳤다는 거예요?”

    “뻔해, 스토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겠지. 신인들 중에서 가끔 그런 애들 있잖아. 갑자기 주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숨어버리는 애들."

    "……."

    그런 일이라면 지로도 가끔 들어본 적있다.

    특히 신인들에게서.

    그러고 보면 좀비 사무라이 정도면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요즘 삼사라 표절로 욕을 많이 먹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걸 한번 뒤집어 보려고 스토리까지 빨리 진행해 먼저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무리수까지 뒀으니.

    물론 그게 잘 되었으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결국 이야기도 꼬여버렸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삼사라의 이번 이야기가 공개되었으니, 그 파장이 제법 컸을 게 분명하다.

    “확실한 내용입니까?"

    “듣기로는 담당이 작가를 찾아다닌다고는 하는 모양인데.”

    “완전히 잠적한 걸까요?”

    “글쎄. 거기에 대한 건 나도 들은 게 없어서. 그나저나 그쪽 지금 진짜 난리 났겠다. 들은 대로라면 일단 휴재는 결정되었을 거고, 새로 단편이라도 넣어야 할 테니까. 뭐, 소년매거진이면 대기 중인 단편이 많긴 하겠지. 쳇, 그러고 보면 저런 큰 출판사는 작가진이 워낙 탄탄해서 이런 돌발 상황에서도 대응하기가 좋구만, 확실히 이런 건 부럽네.”

    그렇게 말하며 투덜거린다.

    그런 팀장을 보며 지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 소년매거진이 출간되었는데, 팀장의 말대로 좀비 사무라이는 휴재였다.

    *

    “황당하구만, 이런 식으로 도망을 치는 건가?”

    키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애초에 남의 이야기를 표절했으니, 이런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었을 겁니다.”

    담당인 테고시의 말에 키도가 이맛살을 구겼다.

    “능력이 없으면 도둑질이 용납되나?"

    “그건 아니죠. 그런데 왜 저한테…….”

    테고시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자 키도가 이번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혀를 찼다.

    “쯧, 하여튼 정신머리가 썩어빠진 놈들이 의외로 많다니까. 거기다 그게 돈이 된다고 거드는 출판사도 마찬가지고, 그래, 소년매거진 쪽 사정은 어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너무 궁금한데?"

    잠시 고민에 빠진 키도가 곧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다가 전화를……?"

    “싫은 녀석.”

    “네?”

    키도는 곧장 다이얼을 돌린다. 그리고 상대방에서 전화를 받았는지 곧장 입을 열었다.

    “거기 선생님 좀 부탁합시다.”

    잠시 후,

    “어, 나야. 자네 그쪽에 아는 사람 있지?”

    -그쪽이라뇨?

    “소년매거진 말이야.”

    -……아. 소식을 알고 싶은 겁니까??

    “그래. 아는 대로 말해보게.”

    -제가 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잔소리 말고 그냥 이야기 해봐.”

    "……."

    잠시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지더니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곧장 저쪽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좀비 사무라이는 계속 휴재될 것 같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 그쪽 담당은 지금 바짝 마르고 있겠군.”

    -이번 일로 소년매거진도 타격을 받았으니, 몇 명은 징계조치가 내려질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아마도 담당이랑, 팀장 그리고 편집장 정도가 그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오, 소식이 빠방한데? 과연 잡지사를 여러 군데 옮기더니 마당발이야.”

    -욕입니까?

    “아니, 칭찬.”

    -어딜 봐서…….

    “아무튼 고마워.”

    딸깍.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더니 피식 웃었다.

    “역시, 좀비 사무라이는 끝장인 모양이군."

    “저기, 근데. 방금 어디에 전화를 거신 겁니까?”

    “응? 아. 방금 말이야?"

    “네.”

    "니시다.”

    “네? 설마, 니시다 선생님이요? 에스퍼존의……?”

    “그 인간 말고 내가 아는 니시다가 어디 있어?”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하자 테고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서,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니시다 선생님을 단순 정보원처럼 쓰시다니……. 그리고 방금 전화를 그냥 툭 끊어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나랑 별로 안 친하니까 상관없네.”

    그 말에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 된다.

    “아니, 별로 안 친한데 왜……?”

    “후후, 역시 이리저리 떠돌던 녀석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이 많더군. 모처럼 도움이 되었어.”

    “선생님.”

    “응? 왜?”

    “휴우. 아닙니다.”

    *

    “이 망할 인간! 또 그냥 전화를 끊었어!”

    니시다가 전화를 끊으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어시들이 놀라 머리를 푹 숙이며 작업에 집중한다. 지금 같은 때엔 그저 조용히 있는 것만이 답이다.

    그때 니시다의 화실에 담당인 오오타케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오오타케의 인사에 어시들이 머리를 살짝 들어 고개로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머리를 숙인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오오타케가 씩씩거리며 데생에 몰두하는 니시다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번에도 아쉽게 되었어요. 키도 선생님의 진심의 남자가 2위로 밀리긴 했지만, 삼사라가 다시 1위를 다시 차지하는 바람에 저희는 이번에도 3위입니다. 하지만, 키도 선생님 작품과 표차가 얼마나지 않으니까…….”

    “너까지 그 인간 이야기를 왜 하고 그래?!”

    갑자기 니시다가 버럭 하자 오오타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

    “1위 축하드려요!”

    “드디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군요."

    “역시 삼사라는 1위에 어울려요.”

    어시들이 축하 인사를 보낸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서 뚱한 얼굴로 그저 작업만 하는 인간이 있다.

    실버다.

    “파시엔시아엔 신경 안 쓰는 거냐?”

    그 말에 화실 막내인 김기철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형,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지금 파시엔시아도 엄청 재밌잖아요. 라이벌 만화들이 대단해서 그러지 4위를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거잖아요.”

    “한때는 그래도 1위까지 했어. 그때만 해도 삼사라를 완전히 뛰어넘고 있었는데.”

    “어머, 그건 아니죠. 단행본에선 삼사라가 더 앞서고 있었는데.”

    "……."

    정미자가 불쑥 나서자 실버가 곧장 입을 다문다.

    저 인간은 저렇게 투덜거리다가도 정미자의 한 마디면 꼼짝도 못한다.

    뭐랄까?

    실버가 슈퍼맨이라면, 정미자는 인간 클립토나이트라고 하면 될까?

    말빨, 등빨, 인상빨 모두 최강의 히어로 급이지만, 역시 정미자에겐 쥐약이다.

    그때 이대봉이 서둘러 화실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서는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

    “어떻게 되긴, 앙케이트 1위래.”

    박수미의 말에 이대봉이 손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거 말고, 소년매거진 말이야. 그 쪽 어떻게 되었냐고.”

    그 말에 내가 입을 열었다.

    “휴재래.”

    “휴재? 그냥 한편 쉬는 거야?"

    “키도 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무래도 소년매거진 쪽에서는 연재를 중단할 거라는 얘기가 나온 모양이야.”

    “오, 정말? 이건 완전히 크로스 카운터네?”

    “아직은 확실한 게 아니니까.”

    “키도 그 아저씨, 그렇게 가벼워 보여도 헛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그럼 어느 정도 확실한 정보겠네. 흐흐흐, 역시 넌 사악하다니까.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 아니겠냐.”

    “안 좋아해도 되거든.”

    “크크크.”

    그렇게 이대봉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그런 그의 모습을 힐끔거리던 실버가 입을 열었다.

    “넌 그렇게 좋아할 때가 아니야.”

    그 말에 웃던 이대봉이 정색하며 실버를 쏘아본다.

    “너는 또 심기가 불편한 거야? 왜 그래,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아서."

    “중원요리왕 잘하면 6위로 떨어지겠던데?”

    그 말에 이대봉이 화들짝 놀랐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 6위랑 겨우 두 표 차이라더라. 그런데도 넌 여유가 있네?"

    "……."

    그 순간 이대봉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변해간다.

    “왜?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은 거냐?"

    “……너.”

    “크크. 그렇게 세월 좋게 유랑 따위나 하고 있으니, 도끼자루 썩어가는 줄도 모르는 거지.”

    “우리 중원요리왕이 도끼자루라는 거야?”

    “글쎄다……….”

    이대봉이 버럭 하자 실버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저 두인간은 어째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건지.

    그때 옆방에선 경희의 노랫소리가 들여 오고 있었다.

    “~신난다. 재미난다. 어린이 명작동화!”

    혼자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고등학생인 주제에 저렇게 TV를 보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던 어시들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마치 두 사람이 싸우는 그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들려온 탓이다.

    “쟤는 정말…….”

    이대봉이 헛웃음을 지으며 옆방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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