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4화 (164/425)

해보자는 건가. (4)

키도의 화실.

키도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뜨자 어시들이 수군거렸다.

“선생님은 엊그제부터 왜 저렇게 우울해 보이시지?”

"몰라요. 앙케이트 1위라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저러시던데요?"

“다른 걱정 있으신 건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앙케이트 연락받기 훨씬 전부터 저러신 것 같던데."

후배어시들의 대화를 듣던 가장 선임어 시 난바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쯧, 지금 선생님 눈에 1위가 들어오겠냐?”

“네? 그럼, 뭐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맞아요. 1위 다시 탈환하겠다고 그렇게 분투하셨잖아요.”

“한심하긴, 삼사라를 실력으로 이겼다기보다는 삼사라가 스스로 무너져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심기가 불편하신 거고."

“뭐, 연재를 오래 하다보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맞아. 연재를 길게 하다보면 슬럼프도 오고 이상한 이야기도 만드는 경우도 있는 거고, 결국 그것도 다 실력 아닙니까?

그리고 키도 선생님이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니까, 즐거워 하셔도 되는 거고요"

그 말에 난바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너희들은 선생님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선생님 스타일에 스스로 넘어진 사람을 앞지르는 걸 좋아하실 분으로 보냐고."

그 말에 어시들의 표정이 뻘쭘해졌다.

“그야…….”

“뭐, 선생님이야 그런 스타일이 아니란건 알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리고 경쟁자의 컨디션까지 걱정해 줄 이유도 없고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잖아요.”

“자, 그럼 너한테 한 가지 물어보자."

난바가 어시 중 한명을 바라보며 묻자 지목당한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네? 저요?"

“그래 너.”

“왜요?”

“삼사라 팬이지? 그것도 엄청난.”

“네? 그야……. 그렇기는 한데, 여기 어시들 모두 삼사라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만.”

“네가 제일 열렬한 팬 인건 맞잖아.”

"……."

그 말에 움찔하던 후배가 곧 머리를 끄덕였다.

“뭐, 가장 좋아하는 만화 3개중 하나니까요.”

“그래, 그럼 네 생각엔 최근 삼사라 전개 이해가 되냐?”

"……그야.”

약간 어물쩡거린다.

“솔직히 네가 생각해도 이해 안 되지?”

“…네. 솔직히 좀 이상하긴 해요. 마치 다 풀어 논 이야기를 앞에 두고 딴 짓하는 느낌이랄까, 평소라면 절대 저런 식의 전개는 안했을 텐데, 요즘 좀 이상하긴해요.”

그 말에 난바가 피식 웃었다.

“거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럼.”

“그래. 삼사라의 이해할 수 없는 전개. 거기서 1위를 했으니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신 거라고, 단순히 컨디션이 어쩌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아무튼 삼사라 작가님과는 평소에도 형, 동생 하는 사이시잖아. 그러니까 더 그런 거고.""

“그러니까 선배 말씀은……?"

“이상하다고, 다 이상해. 뭔가 평소의 삼사라답지 않은데, 그게 컨디션 같은 문제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

어시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결론이 뭐죠?"

그 말에 난바가 움찔거렸다. 뭔가 난감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본 어시들이 가재미눈을 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선배는 무슨 추리만화 만들어요?”

“추리는 무슨, 이야기만 벌려놓고는 수습을 안 하는데.”

“야, 그래도 너희들 말을 너무 막 하는거 아니냐?”

그때 거실로 갔던 키도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오자 모두 입을 다물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는 척 한다.

그런데 그가 들어오자마자 주변으로 담배냄새가 확 지나간다.

담배를 끊었다던 키도의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고 있으니 어시들은 모두 눈알을 굴리며 서로를 힐끔거릴 뿐이다.

키도는 잠시 팔짱을 낀 채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원고에 집중하기 위해 네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어시가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키도에게 말했다.

“선생님, 니시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인데요?"

그 순간 키도가 묘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그런 표정.

“니시다? 에스퍼 존의 그 니시다?”

“네.”

“싸가지 없고 거만하면서 또 재수도 없는 그 니시다?"

“……아, 저기. 그건 저도 잘…….”

“에스퍼 존 니시다라며.”

“네. 그건 맞는데.”

“그럼 맞잖아.”

"……."

어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키도가 곧 전화기를 들으며 말했다.

“네. 키도입니다.”

-안녕하세요. 키도 씨. 싸가지 없고 거만하면서 또 재수도 없는 니시다입니다.

그 말에 키도가 어시 쪽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말할 때 어시가 손으로 막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키도는 잠시 혀를 차고는 곧장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그래. 오랜만이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

-이번에 소년 히어로 앙케이트에서 1위 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키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 그거?”

-그런데 어쩐지 별로 반갑지 않으신가 보군요.

“뭐, 지금은 그렇지. 정상이 아닌 상대와 싸워 이긴 것 같아서 찝찝하기도 하고.”

그러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왜 웃어?"

-아뇨. 키도 씨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린가? 혹시 시비?”

-별로요. 그런데 심력을 낭비할 생각도 없고요.

적응되지 않는 니시다의 능글맞은 목소리.

예전이랑 똑같다.

그 특유의 성격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키도 자신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삼사라의 진행이 왜 그런지 알것 같은데.

니시다의 말에 키도의 눈이 반짝거렸다.

“알 것 같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연재와 달리 지금의 전개방식 이상하잖습니까. 그래서 그러죠.

“이상하다고?”

-네. 제가 보기엔 그런데.

그 말에 키도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어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지 마. 자네가 삼사라 만화에 대해 알긴 해? 읽어보기나 했냐고.”

-그럼요. 저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나름 팬입니다. 책도 다 모았고, 연재 때도 몇 번씩 읽을 정도로요.

전혀 의외의 사실이었다.

니시다가 삼사라의 팬이라니.

아니, 그보다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할 인간이 아닌데.

하지만, 그런 건 둘째 치고 갑자기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팬? 팬이라면서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 그리고 삼사라 쪽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만화가는 일단 연재를 시작하면 기본이 몇 년이니까, 이런 슬럼프는 수시로 올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네만, 난 어차피 겪어야 할 홍역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키도가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하자 잠시 말이 없다. 그리고는 잠시 후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온다.

-키도 씨. 제가 듣기론 삼사라 작가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왜 소개시켜 달라고?"

-그래주시겠습니까?

“아니.”

"……."

키도가 실실 웃었다.

상대가 잠시 말이 없다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키도 씨는, 실은 친하기만 하지 작품에 대해선 관심이 부족한 모양이군요.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는 축하한다 어쩐다하며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이젠 시비인가?”

-그럴 리가요. 저한테 뭐 남는 게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또 웃는다.

“본론만 하지?"

-네. 그럴 겁니다.

옆에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니시다가 입을 열었다.

-그림, 구성, 스토리 모든 것을 봤을 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키도 씨도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

사실, 키도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상한 전개에 비해 만화의 느낌은 최상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본능적인 느낌으로는……

-기다리는 것 같던데.

자신도 그렇게 얼핏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왜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인가?

이건 너무 이상하다.

그런데 니시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좀비 사무라이가 걸려들기까지.

“뭐?”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최근 좀비 사무라이 이야기 읽어보셨습니까?

“그딴 쓰레기 만화를 내가 왜 읽어?"

키도의 대답에 또 낮게 웃는다.

저 웃음소리 기분은 나쁘지만 지금은 니시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키도 씨는 정말 변하게 없군요.

“본론만 얘기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도 좀비 사무라이의 전개가 삼사라의 전개를 따라갔습니다.

“망할 놈.”

-그런데 지금 삼사라가 머뭇거리는 동안 이야기가 더 앞서가 버렸습니다. 그것도 지금 나온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뻔해서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요.

"……."

-그런데 이게 너무 뻔한데, 그 상황에서 삼사라는 이야기가 진전이 없죠. 마치 '먼저 가라.' 하며 자리를 양보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럼, 삼사라가 지금 이렇게 질질 끄는 게 의도된 거라고?”

-제가 아까부터 하던 이야긴데.

“혹시 이게 함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좀비 사무라이인지 좀비 양아친지 하는 만화를 끌어들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죠. 저야 확실한 건 알 수 없으니까.

“네, 생각에는 그렇다는 거잖아.”

- 네. 뭐 그렇…….

“알았어.”

딸깍.

곧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의자등받이에 다시 기대앉는다.

함정이라…….

함정.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 간다.

그리고는 곧장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키도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어시들이 놀란 눈으로 키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난 바를 쳐다봤다.

난바의 표정은 어느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는 그의 입모양이 움직인다.

'어때? 내 말이 맞지?'

키도의 대화를 엿듣고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어시들은 금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에이, 그건 좀 아니다. 제대로 결론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맞아.”

“이상한 건 우리도 뭐 조금씩은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런 반응에 난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희들…….”

그때 한참을 웃돈 키도가 난바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더니 곧 다시 시선을 위쪽으로 향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맥 빠진 이야기를 갑자기 전개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

니시다가 끊어진 수화기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이 사람은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때 곁에 있던 오오타케가 그 모습을 보고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키도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딴 바보에겐 관심 없어.”

“네?”

오오타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니시다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왜 웃어?"

“그 바보 선생님을 그렇게 계속 신경 쓰는 누군가 때문이죠.”

그 순간 니시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쳇, 넌 너무 아는 게 많아."

니시다가 투덜거리자, 오오타게가 웃으며 말했다.

“완전 범죄라도 하시게요?"

“시끄러! 넌, 안 바쁘냐?"

“지금 이 미팅이 가장 바빠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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