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3화 (163/425)
  • 해보자는 건가 (3)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상식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테이블을 툭툭 쳤다.

    “자자, 일단 스토리를 시작하자, 하다보면 형도 느낌이 올 거야.”

    그런 내 말에 박상식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팬다.

    “……그냥 설명해주면 안되냐?"

    하지만 난 여전히 설명보다는 스토리에만 집중했다.

    “음, 새로써야 할 부분이 여기부터 맞지?"

    “너, 진짜.”

    박상식이 살짝 표정을 찌푸리더니 곧 그냥 힘없이 웃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미 스토리를 진행하겠다고 더 졸라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연습장과 펜을 준비한다. 차라리 메모할 준비나 하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박상식이 준비를 끝내자 나는 곧장 평소 삼사라 콘티 제작 때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장면에선 발밑이 꺼지는 거야. 음, 폭은 직경 5미터정도. 바로 앞부분, 지진과 같은 느낌은 없이 그냥 폭삭! 이런 느낌. 아무튼 여기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야 해.”

    내용의 전개가 갑작스러웠는지 박상식이 좀 당황스러워 한다.

    “새로운 캐릭터? 원래 이야기랑 확실히 전개가 달라지는 느낌이네."

    “그래, 미끼니까.”

    미끼라는 말에 조금 납득했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미끼라. 그리고?"

    “여기선……”

    이야기를 시작하자 평소처럼 선희도 다가와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

    입에는 사탕을 문 채로,

    단거를 입에 넣고 내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더 잘된다나 뭐라나.

    당 떨어진 노인네도 아니고, 참.

    아무튼 평소에도 내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박상식의 콘티를 보며 원고 작업을 하는데, 이렇게 하는 편이 상상에도 도움이 더 된다는 건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아무튼 박상식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선희는 그것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다.

    잠시 후, 세편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끝내자 박상식이 그것을 정리하다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는 날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짜 떡밥이라는 네 말, 어째 이해가 되는 데? 이거 원래 이야기에선 상상도 못할 전개잖아?”

    정말 이해를 한 건가?

    “지금 그 좀비 사무라이라는 만화가 네 전개를 응용해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이렇게 진행하면 결론을 이 방식으로 밖에 예상할 수 없겠지."

    박상식의 말대로다.

    결국 마음 급한 상대라면 충분히 걸려 들 만큼 먹음직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쨌건 박상식은 싱글벙글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한다.

    그때 조용히 있던 선희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곧바로 자신의 자리에서 종이와 연필을 가져온다. 그리고는 내 앞 테이블에 그것을 펼치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려간다.

    슥슥슥.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만들어가는 건 내가 방금 말했던 장소인 폐허의 도시장면이다.

    기본적인 형태라고는 해도 도시, 그것도 폐허의 장면인데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정교한 느낌이다. 그냥 슥슥 그리는 게 다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의 풍경처럼 살벌하다.

    아니, 뭐 이거야 하도 많이 보던 장면이라 이젠 익숙하긴 한데.

    갑자기 이걸 왜 그리는 거지?

    그런데 배경을 다 그렸다고 생각했는 데, 결국 그게 끝이 아니다.

    이번에 배경 아래를 옅은 선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투시도…… 같은 건가?

    아무튼 무너진 구멍 아래의 그림까지 자세하게 그려 가는데…….

    어?

    설마?

    그림을 다 그린 선희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게 있으면 더 확실히 걸려들 거야.”

    “……떡밥을 강화하는 거냐?"

    내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원래는 새로운 악당 캐릭터가 등장만 하는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막상 이야기를 만들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희의 그림은 이 악당이 등장해야할 당위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번 반복되던 장면에서 절대로 넘지 못하던 것.

    주인공 켄이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의 능력으론 임팩트스톤을 안전하게 가져가지 못하는 이유가 처음으로 설명되는 듯 보이니까.

    물론 이건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상황이지만,

    선희의 그림으로 그것이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거 좋은데?”

    “……난 잘 모르겠는데.”

    박상식은 선희의 그림을 보고도 아직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여기 장면부터 좀 더 추가해서 이야기 해 볼게.”

    선희의 그림을 기반으로 다시 이야기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여기 통로 아래의 이야기부터…….”

    조금씩 내 이야기를 듣던 박상식이 메모를 해나가다 곧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번쩍 들며 나를 바라본다.

    “이거…!”

    “자자 집중.”

    “아, 미안.”

    박상식은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으며, 내 이야기를 계속 메모해나갔다.

    ***

    몇주후,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사무실.

    “어이, 아카기.”

    야지마가 지로의 자리 쪽으로 다가오며, 새롭게 나온 소년 히어로를 흔든다.

    “이번 삼사라, 드디어 그동안 사람들을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던 진짜 이야기 등장했네. 그동안 나도 이거 엄청 궁금했거든, 분명 돌파할 내용일거라는 예상은 되는데, 상황을 보면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그 부분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엄청 속이 시원하다."

    “그렇죠.”

    하지만 지로의 표정은 그저 무덤덤해 보인다.

    그런 지로를 보며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담당이라서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거냐? 야, 그래도 나한텐 좀 힌트라도 좀 주지. 이런 걸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냐?”

    “아시잖아요. 담당이 하는 일이 그런 거라는 걸.”

    “그거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지로의 어깨를 툭 친다.

    “그럼, 다음 이야기도 기대한다고 잘 좀 전해줘. 아무튼 이번 이야기 때문에 우리 무카이 선생도 힘을 내겠구나, 수고해."

    “네. 선배도 수고하세요.”

    "어.”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더니 가방을 챙겨 바깥으로 나간다.

    요즘 야지마도 중원요리왕의 자료 때문에 서점을 들락거리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아무튼 지금 지로는 야지마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방금 야지마가 삼사라이야기를 했을 때 표정관리를 하느라 엄청 애를 먹은 탓이다.

    실제로 그는 담당인 관계로 스토리가 많이 수정되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평소에 미리 완성되는 네임은 정기적으로 소포를 받아 확인하는 상황이었다.

    최근 소년매거진에 연재중인 좀비 사무라이 때문에 편집부에서도 수시로 항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별다른 결과가 없었다.

    물론 이윤환이 작품으로 해결하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을 때만 해도, 그저 퀄리티로 승부하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하지만, 통화 이후 며칠 만에 날아온 네임을 보고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놀랍도록 정교한 함정.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야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해서 들은 것도 있고, 미리 받아두었던 대략적인 콘티도 있다. 덕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악당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의 등장에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캐릭터가 등장한 시점부터 묘하게 이야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탓이다.

    진행되는 상황만으로 보면 원래 알고 있던 이야기로 넘어가기가 상당히 어려우니까.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네임을 보고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야기로만 보면 커다란 반전부분이라 독자들에게도 상당한 인상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이 이야기는 분명한 타깃이 존재한다.

    바로 좀비 사무라이다.

    지금 좀비 사무라이의 경우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 이야기가 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설정까지 상당히 닮아 있는 탓에 삼사라의 주인공의 고통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같다.

    그래서 빨리 넘어가야 할 시점에서 이야기가 갑자기 지지부진해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듣기론 독자들이 갑자기 늘어진다며 불평을 한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을 통해 건너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해 줄만한 오아시스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만약 예상대로라면 반드시 저쪽에선 이번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이용하려 할 것이다. 아니, 지금 이야기가 급하니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결하려 할 것이 틀림없다.

    안 그래도 최근 일부 독자들과 여러 출판사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자신들이 결코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번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면 스토리의 독자 노선을 탈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라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드디어 2주후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예상대로 소년매거진의 좀비 사무라이에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삼사라에서 조금 복잡하게 설명한 것을 단순화 시키고, 조금 이야기를 비틀긴 했지만, 본질은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그동안 삼사라의 이야기는 그 부분에서 조금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좀비 사무라 이는 그 문제를 아주 호쾌하게 풀어가고 있었다.

    얼핏 보면 삼사라는 실마리를 잡고도 이야기를 질질 끌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상황. 그런데 표절시비에 시달리는 좀비 사무라이는 이야기를 빠르게 정리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 다음 주부턴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소년매거진이 나온 다음날 소년 히어로 편집부에선 아침부터 직원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이, 소년매거진 쪽 이야기 들었어?"

    “뭔데?”

    “그쪽 아는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긴데. 좀비 사무라이 저번 주에 나온 이야기 때문에 앙케이트 순위가 쭉쭉 올라간 모양 이야."

    “전에 듣기론 7위쯤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런데 이번에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고 하더라고.”

    “와, 그 정도예요?”

    “나도 그 얘기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천하의 소년매거진이잖아. 그런데 그곳에서 신인이 3위라니. 그것도 연재한지 몇 주가 흘렀는데.”

    “저번 주 이야기는 그럴 만 했지. 솔직히 내가 봐도 엄청 재밌더라. 거기다가 삼사라…….”

    “야.”

    “아.”

    말을 하려던 직원이 입을 스스로 막았다.

    근처에 삼사라의 담당인 지로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로는 별다른 반응 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삼사라와 파시엔시아 원고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아마도 인쇄소로 가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지로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모두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삼사라의 이야기가 최근 지지 부진 했잖아. 엊그제 앙케이트에서 다시 2위로 떨어졌다며?”

    “진심의 남자에게 다시 1위를 뺏겼어."

    “그러니까.”

    “솔직히 저도 이번 에피소드가 시작됐을 땐 엄청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엄청 두근거렸거든요. 그런데 요 몇 주간 삼사라가 평소답지 않아서 좀 의아하긴 했어요."

    “듣기론 스토리를 담당하는 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소문도 있던데.”

    “아카기 씨는 그런 얘기 안하던데.”

    “에이, 무슨 좋은 얘기라고 그런 걸 떠벌이겠어?”

    “하아, 이거 담당인 아카기 씨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겠다."

    “그러게.”

    직원들이 다시 지로의 자리 쪽을 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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