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2화 (162/425)
  • 해보자는 건가 (2)

    소년매거진에 삼사라랑 유사한 만화가 연재중이라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잠시 멍하게 있자 지로가 그런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잠시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준다.

    잠시 동안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고 난 뒤 곧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거 표절만화가 연재중이라는 겁니까?”

    그 말에 지로가 약간 주춤하더니 곧 한숨을 짧게 쉬고는 입을 열었다.

    - 그게 좀 묘합니다.

    “묘하다니요?"

    - 아시다시피 그림체의 경우는 비슷한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라서요. 그것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도의적인 건 맞는데, 그것을 제지할 만한 근거로는 부족하거든요.

    이건 나도 납득하는 부분이다.

    내가 살던 시절에도 원피스와 레이브(페어리 테일도 같은 작가)가 비슷한 그림체여서 논란이 있긴 했어도 그냥 넘어갔으니까.

    물론 레이브의 경우는 좀 특이한 게 처음부터 원피스의 그림체가 아니라 연재를 해가면서 원피스 그림과 닮아진 케이스라 좀 애매하긴 하지만,

    별명이 '짝퉁 오다' 였지 아마.

    그리고 '조조의 기묘한 모험의 경우에도 표절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지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표지 일러스트를 비롯해 특정 장면들은 일본의 과거 유명한 만화에서 가져와 그대로 넣었지만, 결국 다 출판까지 나왔으니.

    아무튼 미래에도 그랬으니 이때야 뭐, 그림체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대놓고 누군가가 떠오르는 만화도 많았으니까.

    특히 아키라 풍의 만화도 수십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나오기도 했으니..

    아, 지금 최고의 인기 만화인 북두의 권역시 영화 매드맥스의 세계관이나 복장, 비슷한 등장인물이 다수 등장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후에 나오게 될 슬램덩크, 헌터X헌터도 특정장면의 트레이싱 문제는 유명했으니까.

    당장 내년에 개봉하게 될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로봇병 역시 1941년에 제작된 미국의 플라이셔 형제의 TV애니 '슈퍼맨'에서 등장한 로봇을 거의 가져오다 시피 했다. 물론 오마쥬라고 하긴 했지

    -문제는 스토리와 설정부분인데요.

    "……."

    -상당히 유사하다는 건 확실한데, 일단 이야기 자체는 완전히 똑 같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희 쪽에서 그것을 문제 삼아 항의를 넣었지만, 저쪽에선 강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티브정도는 인정하고 있지만요.

    모티브정도만 인정이라.

    뭔가 알 것 같다.

    똑같지 않지만, 비슷하게 만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삼사라의 설정이 모두 오리지널은 아니다.

    대부분 이미 나온 설정들과 이야기를 새롭게 뒤섞어 재창조한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내 것과 닮았다고 무작정 몰아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오마쥬와 표절, 혹은 모티브, 클리셰는 늘 논란이 생길 때마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해도 막상 작품에서 사용될 때는 애매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살던 시절이 아닌, 80년대다.

    80년대의 일본이 버블경제니 잘 나갔니 어쩌니 해도 내가 살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솔직히 한국보다야 표절에 대한 의식이 일찍 깬 것이 일본이기는 하지만, 일본 역시 70년대까지 외국, 특히 미국 것에 대한 표절이 넘치던 때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70년대라고 해봐야 지금의 기준에선 몇 년 전의 일뿐이니까.

    어찌되었건 따지고 들어도 묘한 선에서 비슷한 작품으로 만들어 낸 탓에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거겠지. 그나마 재미라도 없었으면 그냥 연재를 중단시키면 되지만, 인기까지 있다고 하니.

    -그런데 이스터 에그 부분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물론 삼사라와는 다르지만 누가 봐도 삼사라를 도용한 작품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거든요.

    “흐음. 이스터 에그까지 나온 다라……."

    이쯤 되면 막나가자는 건가.

    누가 봐도 이스터 에그가 등장하면 삼사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데.

    -저희 쪽에서 강력하게 항의를 해보기는 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회사의 규모가다르다보니 잘 먹히지도 않고요. 일단 연재 반응이 좋아서 저쪽에선 연재를 계속할 모양이라.

    지로도 답답한지 말 사이, 사이에 한숨이 묻어나온다.

    어쨌거나 지금 그 말로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가 'X맨'에서 설정을 많이 가져온 경우와 비슷하려나?

    물론 그림까지 비슷하다고 하면 차원이 다른 경우긴 하지만,

    “그래, 그거 제목은 뭐죠?"

    -좀비 사무라이'입니다.

    "……."

    제목도 참…….

    이왕 할 거 제목이라도 좀 멋지게 지을 일이지.

    괜히 삼사라까지 도매금으로 싸게 넘겨지는 기분이네.

    -그런데 잡지사가 워낙 커서 그런지 아마 단행본으로 나온다면 삼사라의 판매를 월등히 추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네요. 잡지 사의 레벨이…….”

    소년매거진과 소년 히어로는 일단 사이즈 자체가 다른 회사니까.

    “아카기 씨. 부탁 좀 할게요."

    -네. 말씀하세요.

    “먼저 그쪽 만화를 좀 모아서 보내주세요. 저도 일단 만화를 보고 생각해 봐야겠어요.”

    -네? 생각이라뇨?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 그 점은 저희가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니까, 선생님은 그냥 작품에만 집중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이런 상황에서 말씀드리긴 좀 뭐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아뇨. 법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 ……그럼 뭘 하시려고?

    “작품으로 하려고요. 나름의 방법으로.”

    -작품으로요?

    ***

    며칠 후,

    도쿄시내의 한 지하 카페.

    이곳은 만화나 게임, 혹은 밀리터리연구회의 동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대부분 만화관련 연구회에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오늘은 '좀비 사무라이'와 '삼사라'에 대한 이야기가 이들의 주된 관심거리였다.

    “진짜 뻔뻔하다. 그 정도로 노골적이라니. 소년매거진에 실망했어.”

    “나, 오늘 열 받아서 소년매거진 편집부로 전화 계속 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라.”

    “아마 항의 전화가 엄청 갔을 거야. 대학교 만화연구회에서도 몇 명 전화를 걸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나도 오늘 중으로 전화 걸어볼래.”

    “그나저나 그 미친놈들이 요즘 소년점프에게 밀린다고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그래도 소년점프 쪽은 못 건드리는 거 봐. 소년 히어로정도니까 만만하다는 거 아닐까? 솔직히 삼사라가 이름값에 비해서 연재되는 곳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잖아.”

    “요즘 소년 히어로도 잘나가.”

    “그래도 어디 소년매거진에 비할까.”

    “맞아. 거기다 지금 소년 히어로가 잘나가는 것도 거의 삼사라 덕분이지. 상위권 작품들 대부분이 삼사라가 나온 뒤에 나왔으니까. 심지어 중하위권 작품들조차 삼사라 영향권에 있다는 얘기도 있고.”

    “그뿐이 아니지. 같은 출판사 잡지인 빅히어로랑 스피릿 히어로엔 삼사라 세계관에 들어가는 만화가 연재중이잖아. 까놓고 말해 출판사 전체가 영향을 받는 거나다름없어.”

    “그나저나 좀비 사무라이도 요즘 정말 황당하더라. 아예 대놓고 설정 몇 곳은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스토리도 앞부분은 죄다 날려버리고 삼사라와 진행속도까지 거의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분하며 말하고 있었지만 몇몇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던진다.

    “우리끼리 이러면 뭐해? 일반 독자들은 재미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분위기잖아.”

    “그건 그래. 솔직히 연구회 쪽 사람들 중에는 삼사라 같은 만화가 더 생겼다고 좋아하는 놈들도 있을 정도니까."

    “하아, 진짜 만화 쪽 흘러가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한숨만 나온다. 이러다 진짜 70년대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 아니야?”

    “내 말이.”

    대화는 결국 길었던 내용과는 달리 허무한 결론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지로가 보내준 '좀비 사무라이' 만화를 살펴보고 있었다.

    나름 그동안 소년매거진에 연재된 분량을 잘 정리해서 따로 잘라 책으로 묶어 보내준 탓에 보기 쉽게 되어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일단 이제까지 연재된 분량은 총 9화 분량이다.

    거의 연재되고 두 달 만에 내게 전달되었으니 일찍 알아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시절의 정보흐름 체계라 든가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성, 그리고 잡다한 경우까지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첫 연재 땐 좀 묘하게 닮았다는 거 말고는 긴가민가하는 부분도 있으니 일단 넘어가고,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부터 슬슬 냄새가 난다.

    화면 연출은 분명 다른데 묘하게 닮아있는 분위기와 진행이다.

    캐릭터도 복장 다르고, 이름까지 다르지만, 그냥 원래 삼사라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넣어도 같은 만화 같다.

    애초에 캐릭터의 성향이 거의 같고, 스토리에서의 역할도 같으니까.

    표절이라는 걸 피해가려고 나름 머리 쓴 부분도 상당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만화를 본 사람은 거의 삼사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

    “이거 웃기는 놈일세. 꼴에 꽤나 준비했나 보군.”

    만화가의 이름을 확인해보니, 모르는 이름이다.

    내가 모르는 만화가도 당연히 많았으니 그건 됐고, 쭉 읽어보니, 일단 삼사라의 기본 줄기는 분명 따라가고 있다.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 중 스토리에 꼭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진행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은 스토리에서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묘한 점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삼사라를 이미 봤다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니까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농담이 아닌 거다.

    배경도 다른 도시를 그렸다 뿐이지 같은 느낌이고, 결국 지로에게 얘기했던 대로 해야 할것 같다.

    *

    박상식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토리 수정?”

    “어.”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이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럼 만들어놓은 콘티 다섯 편을 몽땅 갈아엎어야 한다는 거잖아."

    “뭐,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내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자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하긴, 말이 다섯 편이지 그거 정리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짜증날 만도 하다.

    그래도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내가 하는 말이니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고,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잠시 어깨를 축 늘어뜨렸던 박상식이 한숨을 푹 쉬며 졌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 뭐.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좀 알고나 수정하자.”

    “지금 좀비 사무라이라는 만화가 소년 선데이에 연재되고 있다는 건 들었지?"

    그 말에 박상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래. 그런데 그거랑 수정하는 거랑 무슨……, 설마 그거 의식해서 이야기를 전부 바꾸겠다는 거야? 야, 그러면 오히려 이쪽 이야기가 무너지게 되는 거야. 그냥, 무시하고 원래대로 진행…….”

    “일단 떡밥을 이용해야겠어."

    “떡밥?”

    떡밥이라는 말도 내가 평소에 자주 썼던 탓에 금방 알아들은 거다.

    아무튼 박상식이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응 가짜 떡밥을 좀 사용해 볼 생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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