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61화 (161/425)

해보자는 건가 (1)

토요일 오후,

점심식사 후 어시들의 퇴근시간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빵 하는 클락션 소리와 함께 이 대봉이 화실에 들어왔다.

어디서 샀는지 얼굴을 다 가릴 것처럼 커다란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제임스 오빠, 오늘 선글라스 너무 멋진데? 데이트 있어?"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 보여."

내가 보기엔 저 선글라스가 거슬리는데.

여자어시들은 이대봉의 모습에 환호하는 모습이다.

하긴 선글라스는 그렇다 치고 지금 저 인간이 입고 있는 청자켓에 청바지 패션은 요즘 꽤나 유행하는 모양이니까.

거기다 솔직히 저 잘난 얼굴은 패션이 완성이니까.

아무튼 화실 여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은 이대봉이 피식 웃으며 팔짱을 낀다.

그리고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지."

더 좋은 거라니.

그런데 이대봉이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지금 퇴근시간이지?"

"어."

"그럼 모두 날 따라 나와."

"밖에 뭐 있어?"

"후후후."

이대봉이 히죽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따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대봉이 번쩍거리는 차 앞에서 모델처럼 자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이거 스텔라 아니에요? 굉장히 고급스럽다."

화실어시 막내인 김기철이 흥분해서 소리치자 박소미가 손바닥을 짝하며 쳤다.

"스텔라? 이게 스텔라야? TV에서 광고 엄청 하던데."

"네. 작년인가 재작년부터 나온 차잖아요. 실내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이거 엄청 비쌀 텐데."

그 말에 이대봉이 선글라스를 낀 채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훗, 600만원이 넘게 들었지."

그 말에 화실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제임스 오빠, 돈 많이 벌었구나."

"와, 언제 그만큼 모았어?"

"에이, 저 오빠한테 그런 거금이 어딨어? 일본에서 연재 시작한지 몇 달이나 됐다고, 월부로 샀겠지."

구자희의 말에 이대봉이 입을 삐죽거렸다.

"월부 아니야. 가지고 있던 돈이랑 이번에 중원요리왕으로 들어온 원고료 탈탈 털어서 산 거거든?"

"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왔어?"

내 말에 이대봉이 허리에 양손을 척 하올리고는 크게 웃었다.

"하하, 역시 일본이라 그런지 빵빵하더라니까. 나야, 어시가 있기를 하나, 화실 유지비가 들기를 하나. 들어오면 그냥 착착 은행에 쌓이지."

"와, 그럼 제임스 오빠도 우리 선생님들처럼 금방 갑부 되겠네?"

그 말에 이대봉이 나랑 선희를 보면서 히죽 웃는다.

"에이, 그건 아니지. 저 괴물 같은 남매들한테 비하면 조족지혈이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윤환이를 따라잡는 날도 오겠지."

"누가 잡혀 준대?"

저 인간 작년에 자동차면허 딴다며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더니, 드디어 올 초에 결국 따고 말았다.

사실 나도 정확한 건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절에 면허를 따는 건 내가 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물론 시험이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는 등록해서 실기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4-5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붐빈다고 한다.

요즘 TV에서도 마이카니 뭐니 하며 자동차 광고도 늘어서 자동차면허를 따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확 들어버린 탓이다.

덕분에 면허시험장은 늘 사람들로 만원,거기다 지금 시대엔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서 일도 더디니 시험등록하고 반년 가까이 기다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학원에서 시험을 치는 게 아니라 100프로 시험장에서 치르는데, 듣기론 하루 종일 합격자가 몇 명 안 나오는 모양이다.

이대봉이 시험 친 날도 실기 시험에 200명 정도가 응시해 겨우 3명만 합격했단다. 그런 낮은 확률로 합격한 탓에 그날 이대봉의 콧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었다.

아무튼 길고 지루한 면허시험을 치르고 결국 면허증을 손에 넣더니 이렇게 잽싸게 차까지 구입한 것이다.

원래부터 방랑벽이 있는 인간이라 언젠가는 차를 살 거라더니, 이렇게 돈이 생기자마자 차를 덥석 사버리는 행동력은 대단하긴 하다.

요즘엔 중원요리왕 때문에 인천 지역의 화교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자주 들락거리는 모양이던데, 아무튼 차가 생겼으니 이젠 수시로 갈게 틀림없다.

"와, 포니보다 훨씬 비싸지 않아요?"

"300만 원대 포니랑 비교하면 안 되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요?"

김기철은 차에 관심이 많은지 이대봉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차를 구경하기 바쁘다.

"부럽지?"

이번엔 내게 묻는다.

"뭐. 괜찮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겐 고대 유물처럼 보일 뿐이라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곧 박소미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제임스 오빠, 우리 드라이브 시켜주면 안 돼?"

"후후, 그럴까?"

그렇게 말하며 입 꼬리를 획 끌어올린다. 그리고는 초승달 눈을 한 채로 날 보며 물었다.

"우리 윤환이는 어때?"

"난 됐소. 초보에게 내 생명을 맡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야, 그동안 나름 연습 많이 했어. 너무 초보거리지 마라."

"초보를 초보라고 하는 게 어때서."

"쯧."

"난 탈래!"

경희가 손을 번쩍 들자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인다.

"역시, 경희는 내편! 좋아. 넌 특별히……."

하지만 내가 곧장 저지했다.

"안 돼. 일단 3개월 이상 대봉이 형이 살아있으면 그때 타."

"엥?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윤환이 너 너무 냉정한 거 아니니? 말속에 일말의 정도 없잖니."

"시끄럽고, 초보 주제에 누굴 태운다는 거야? 충분히 기름 30번은 더 넣고 태워."

"경희 넌 이 제임스를 믿지?"

그런데 금방까지만 해도 흥분해 있던 경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대봉의 시선을 회피한다.

"음, 역시 울 오빠 말 듣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 아무리 차가 좋아도 역시 내 생명은 소중하니까."

"여자가 왜 그렇게 지조가 없냐?"

"난 조선시대 여자 아니거든."

"그럼 선희 너라도……."

그런데 선희는 진작 이대봉의 시선을 외면한 채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자 이대봉이 황망한 얼굴로 변해버력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낄낄거렸다.

"거, 속 시원하네."

"야, 실버! 넌 또 왜 정 떨어지게 그래?"

"나 먼저 퇴근할게."

"실버 너! 나 무시하니?"

"하하하."

"웃지 마!"

결국 이렇게 이대봉의 자랑질은 마무리가 되었고 화실식구들은 하나 둘 퇴근했다. 물론 내 말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대봉이 못미더운 탓인지 모두 각자 돌아갔다.

그들에게 이대봉이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떼를 썼지만, 모두 못들은 척 하며 그곳을 떠나 버렸다.

"모두 너무하네, 진짜!"

*

모두 퇴근하고 난 뒤 모처럼 조용한 화실에 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Z건담이다.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시대에 보는 건 실시간이니까 그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거기다 뭐랄까.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내 몸에 흐르는 덕후의 피 때문이겠지.

역시나 주말엔 이렇게 밀린 비디오나 일본에서 보내온 잡지 같은 걸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

비록 인터넷이 없는 탓에 정보에 대한 갈증은 심하지만, 나름 이런 느긋함도 나쁘진 않다.

"오, 벌써 Z건담의 등장장면이네."

건담 MK-2가 밀리고 있을 때 극적으로 등장하는 Z건담.

아마 이 장면 때문에 일본에선 꽤나 시끄러웠을 거다.

나야 많이 본 장면이라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보니 이것도 좀 특별하긴 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빠! 일본 아저씨 전화!"

경희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일단 비디오를 스톱 시키고는 엉거주춤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지로가 본론을 말했다.

-삼사라 암흑왕이 이번 스피릿 히어로 앙케이트에서 2위입니다.

"그래요?"

놀라운 일이다.

솔직히 암흑왕이 스피릿 히어로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벌써 3화가 들어간 상황에서 2화의 성적이 2위가 나왔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갓 프로 데뷔를 한 사람의 성적이라고는 믿기 힘든 결과이다.

물론 스피릿 히어로가 그리 인기 있는 잡지도 아니고, 눈에 띌 만한 작품이 많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건 맞다.

내가 스토리 감수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 진행에 대해선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 상황. 그러니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차지한 성적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자면 솔직히 재미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긴 하다.

너무 덕후스러운 스토리다보니 대중성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2위라는 성적이 나온 것도 팬들이 집중적으로 잡지를 샀기 때문일 거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단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없긴 하지만.

-그리고 암흑왕이 연재된 이후로 스피릿 히어로의 판매부수도 1만부 이상 늘어서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그거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삼사라의 세계관이 확장된 덕에 저도 이야기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어서 요즘엔 스토리를 만드는 게 더 재밌거든요."

-이래저래 시너지가 생기는 모양이네요. 어쨌건 삼사라에겐 좋은 일 같습니다.

지금 삼사라도 단행본의 판매부수가 꽤 늘었다.

얼마 있으면 3권이 나올 예정인데, 지금도 1-2권의 판매량은 조금씩 늘고 있다는 모양이다.

진짜 만화가의 주 수입원이 단행본이라더니, 최근 단행본 판매에서 들어오는 돈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소년 히어로에서는 거의 1위로 고정된 모양이고, 최근엔 경희가 참여 덕분인지 진심의 남자가 몇 주간 계속 2위를 차지한 상황.

파시엔시아는 에스퍼 존과 3위 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조만간 에스퍼 존의 TV판이 나올 예정이라 또 순위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연재만화의 경우 TV애니 방영에 따라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하니까.

물론 TV애니가 망하면 반대의 경우가 생길수도 있고.

-다크 프린세스도 순조롭습니다. 앙케이트 1위는 놓치지 않으니까요. 빅 히어로 편집부에선 다음 40페이지 권두컬러특별편을 기대하고 있더군요.

"그건 내일 중으로 완성 될 겁니다. 다른 원고들이랑 모레 보내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전에 말씀하셨던 '메가존23'은 다른 자료들과 함께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관련 음반들과 함께 모두 구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게 될 전설의 애니 메가존23'은 발매되자마자 곧장 지로에게 부탁해 뒀었다.

뭐, 이미 다 본 작품이라 급하진 않다.

그저 중요한 작품을 그 시대에 사서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 것일 뿐.

뭐, 성인용이라 선희나 경희에게 들키지 않게 혼자 잘 봐야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충 통화를 끝내려고 했는데, 지로가 갑자기 '잠시 만요'라는 말과 함께 조용하다.

직원들이랑 무슨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나랑 관계없다면 그냥 끊으면 되는데 기다리라고 하는 걸 보면 뭔가 관련이 있는 걸까.

잠시 후 지로가 조금은 흥분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소년매거진에서 새로운 만화가 연재되고 있는 모양인데요."

새로운 만화?

이 시절 소년매거진에 특별한 게 있었나?

"그런데 그게……, 내용이 삼사라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합니다. 타임루프, 좀비가 등장하고 심지어 그림체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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