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58화 (158/425)

억울하다 (2)

어? 그런데 이 자식 왜 이래?

갑자기 내게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야, 이 새끼야!"

부웅. 부웅.

주먹이 내 머리 옆을 몇 번 스친다.

정확히는 내 몸이 반사적으로 이리저리 피한 거다.

완전 자동이다.

그나저나 이 자식이 미쳤나?

준모를 업고 있는데.

"이야앗!"

그런데도 이놈은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미친! 뭐하는 거야!"

등에 업고 있는 아이는 보이지도 않는지, 아니면 관계없다.

는 생각하는지 주먹을 막 휘두른다. 제법 묵직한 느낌의 주먹이긴 한데, 그런데도 내 몸이 알아서 모조리 피해버린다.

내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저절로 그렇게 반응해버리는 기분이다.

준모를 업고도 이렇게 몸이 가볍다니.

이곳에 온 뒤로 운동도 별로 한 기억이 없는데.

본체 이놈은 도대체 뭘 하며 살았던 거지?

얼핏 가족들이 하던 얘기를 종합해 봐도 그저 양아치 같은 삶을 살았다는 거 말고는 정확하지 않다. 아니, 그보다 이 미친놈이 내게 주먹질에다 그것도 모자라 발길질까지 하는데 그걸 죄다 피하면서 이런 망상까지 할 여유가 있다니. 거 참.

지금 이게 신기해 할 상황이 아닌데.

"오빠! 제발, 그만해!"

성준희는 미친 놈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소리쳤다.

그런데도 그런 성준희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계속 달려들기만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녀석의 주먹을 피하는데 등 뒤에 있던 준모 곁을 스쳐지나갔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자식이 정말! 위험하잖아!"

퍽!

결국 녀석의 정강이를 툭 걷어차 버렸다.

"악!"

그렇게 천지분간을 못하고 날뛰던 녀석이 순식간에 앞으로 엎어진다. 그러더니 정강이를 붙들고 고통에 신음했다.

"크으윽! 분하다. 전처럼 또 이렇게 당하다니……."

전처럼?

전에도 이런 짓을 했다고?

이거 바보 아닌가?

"오빠, 괜찮아?"

"그러게 오랜만에 만나서는 왜 밑도 끝도 없이 덤벼들어, 덤벼들길. 그리고 윤환이 등에 준모가 업혀있다고, 하마터면 준모도 다칠 뻔 했잖아."

"뭐? 준모?"

놀란 사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등에 업혀있는 준모를 그제야 발견했는지 깜짝 놀랐다.

"아이가 업혀있는 줄은 몰랐어. 아니, 그보다 쟤가 준모라고? 많이 컸네."

저 자식 이 와중에도 내 등에 업혀 있는 준모를 보며 놀라고 있다.

그리고는 나를 본다.

황당해하는 표정이다.

아까는 죽일 듯 노려보며 덤벼들더니, 이젠 또 왜 저런 표정인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어떤 행동이든 할 텐데, 그걸 모르니까 너무 답답하다.

"왜 갑자기 또 덤벼든 거야?"

성준희가 사내를 톡 쏘아붙였다.

"왜라니, 저 양아치 자식이 네 돈을 뜯어갔잖아. 요즘도 계속 그러는 거야?"

"그때도 아니라고 했었잖아. 그냥 내가 빌려 준거라고,,

"빌려준 거 좋아하네. 더 아직 준모……, 아무튼 혹시 그 새끼한테도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건 윤환이……때문에 완전히 해결되었어."

성준희가 날 힐끔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나저나 해결이라니?

"뭐? 정말?"

"그래."

"그래서, 아직 그 은혜 갚는다고 돈 주는 거야?"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렇게 말하던 성준희가 날 자꾸 힐끔거리더니 곧장 내게 다가왔다.

"유, 윤환아, 미안해. 준모 이리 줄래. 이제 내가 데려갈게."

"아, 어. 그래."

그 요란한 와중에도 세상모르고 자는 준모를 성준희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성준희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방금 일은 정말 미안해. 그리고……."

성준희가 뭘 말하려는 지 알 것 같아서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그래도 돌아가려고 했으니까. 그럼, 나, 갈게."

"준모 업어줘서 고마워."

"어. 그럼 간다."

"응, 잘 가. 내일 봐."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자마자 성준희가 입을 열었다.

"내일 보다니 무슨 얘기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런데, 오빠는 언제 돌아온 거야? 몇 년 만이야?"

"아, 2년."

"언제 또 나가는데?"

"이제, 배 안탄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육지에서 자리를 잡아야지.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여기 온 거고."

"여기 누가 있는데?"

"너, 기억 안나? 정숙이 이 동네 살잖아."

"아, 맞다. 그런데 아직 그 언니랑 안 헤어졌어?"

"젠장, 악담을 해라. 그런데 어째 저 자식 예전이랑 분위기가 다른 거 같은데? ……설마 저 녀석 혹시 널?"

"그 입 다물어 좀!"

뭔가 호기심 때문에 꺾어지는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발길을 멈추었다.

내가 관련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그나저나 대충 이야기를 들으니, 오빠는 맞는 거 같은데, 혹시 그럼 친척 오빠인가?

하긴, 내가 기억하는 성준희의 첫 번째 모습도 밑도 끝도 없이 돈을 내게 주던 모습이었으니.

그리고 말 들어보니, 저 남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고, 그렇다면 나로서는 좀 억울하지만, 저 남자가 화를 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내 동생이 어떤 새끼한테 삥 뜯기고 있다는 걸 봤다면 똑같이 했을 테니까.

뭔가 잘 모르겠지만, 성준희 쟤도 사연이 많은가 보다.

"그런데, 내일 또 보자니. 뭐야?"

"어? 저기 버스 온다. 그럼 나, 갈게."

"야, 그냥 가냐? 오랜만인데 뭐 좀 사줄까?"

"됐어."

"그래. 내일 저녁에 한번 들릴 테니까, 고모한테 안부인사 전해드리고."

"알았어."

음, 저 남자랑 고종사촌인 모양이군.

그제야 나도 멈추었던 발걸음을 떼고는 다시 빠르게 집을 향해 걸어갔다.

*

며칠 후,

오늘은 토요일이라 모두 일찌감치 작업을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모두 잘 가요."

경희가 대문에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화실로 들어 온 뒤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다.

"어? 누구지?"

경희가 뛰쳐나간다.

화실 식구들이라면 별달리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들어올 텐데.

"오빠, 손님."

"손님? 누구?"

"몰라. 오빠 찾아온 것 같은데."

"……?"

머리를 긁적이며 마당을 통과한 뒤 대문을 열었다.

"어?"

"아, 반갑다. 나 기억하지."

반갑다고 말하긴 좀 뭐하긴 하지. 며칠 전에 날 보자마자 달려른 녀석이니까.

그래도 뭐 본체 녀석이 과거에 한 짓 때문이니까, 딱히 화날건 없지만.

"역시반가운 건 아니려나? 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자기도 한 짓이 있을 테니까, 무안하긴 하겠지.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이거."

그렇게 말하며 봉지하나를 내민다.

"세탁용 세제, 준희한테 듣기론 세탁기 있다며?"

"……아, 고마워요."

"에이, 갑자기 왜 존대를 하고 그래. 어색하게."

"……."

역시 본체랑 여러 번 부딪친 전적이 있나보다.

어쨌거나 상대가 존대를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사내는 집이 궁금했는지 대문 안쪽을 힐끔거리다.

곧 입을 열었다.

"아, 이거. 혹시 바쁘지 않으면 잠시만 나랑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지금?"

"어. 밥 안 먹었으면 근처 국밥집이나 중국집도 괜찮고."

"뭘, 멀리가 안으로 그냥 들어와. 집에 먹을 거 많으니까."

"아, 그럴까?"

밝아진 얼굴로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 들어온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오며 마당이랑 집을 보며 연신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실에 있던 경희가 인사한 다.

"안녕하세요. 역시 오빠 친구 분?"

"아니, 성준희 오빠."

"사촌오빠에요. 고종사촌."

뭐 그렇게 자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는데.

그때 아직 책상에 앉아 그림에 몰두하던 선희가 머리를 들었다.

"어?"

"우리 쌍둥이에요."

"아. 그렇구나."

"커피 드릴까요?"

"네. 좋죠."

"삼삼삼?"

"네."

경희가 부엌으로 달려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준희가 일하는 곳이라니. 너 정말 출세했구나."

"할 말 있다며."

"아, 그래."

머리를 끄덕이더니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윤환 이랬나? 난 유찬이다. 박유찬, 나이는 너보다 3살 많은 26살. 앞으론 형이라고 불러줘."

"……."

"뭐, 그냥 친구처럼 불러도 되고."

"…….'

"……전처럼. 그냥 이놈 저놈해도 돼. 하하."

"용건만 간단히."

"알았어, 알았어.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옛날에 맞았던 옆구리가 다시 쑤시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더니 담배를 꺼내려다가 부담스러운지 다시 집어넣는다.

"뭐,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온 게야."

"……고맙다고?"

"그래. 이야기는 들었어. 성준희가 많이 밝아졌더라. 고모도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지셨고, 준모도 잘 큰 거 같고, 솔직히 2년 전에 떠날 땐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 아, 나 2년 동안 배 탔었다. 원양어선. 아, 그러고 보니까 2년 동안 진짜 고생많이 했지. 군대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더라."

이야기가 또 산을 타려는 찰나 경희가 커피를 가져왔다.

"여기 커피요."

"아, 고마워요."

그렇게 웃으며 말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원양어선은 솔직히 돈 아니면……."

"2년 전 이야기나 계속 해. 딴 얘기 하지 말고."

"아, 미안, 어, 그래 생각났다. 솔직히 그땐 더 때려죽이고 싶었거든. 우리 준희를 예전에 구해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준희를 구해줬다고?

무슨 말이지?

"그래도 꼬박꼬박 돈 뜯어가는 꼴을 보니까……. 뭐. 이젠 그 돈 이상 돌려준 거나 다름없지만."

"본인이 번 돈이야. 혹시 얼마인지 말해주면 그 돈 갚을게. 내가 기억력이 좀 안 좋거든."

"아니야, 이자도 충분히 받은 건 같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러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와, 입에 딱 맞네. 딱 맞아."

"나, 재작년에 머리를 좀 심하게 다쳐서 그런데 좀 자세히 말해봐. 뭘 구해줬다는 건지 기억이 잘 안 나서."

"……아, 역시 그렇구나. 안 그래도 성준희가 그 얘기 하더라. 네가 머리 다쳤다는 거 여동생에게 들었는데, 그때부터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고, 혹시 영화 속에 나오는 기억상실증 같은 거야?"

"실없는 얘기 그만하고."

"아, 미안, 그래, 네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니까. 솔직히 예전에 네가 준희를 임……. 아무튼 그 망할 새끼를 혼내줘서 고맙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준희한테 돈 뜯어가는 게 보면서 진짜 너도 똑같은 새끼라고 생각했지."

임? 설마, 임신?

역시 준모가 아들이었구나.

도대체 준모를 몇 살에 낳은 거야? 17살?

혹시나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이라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찼을 텐데.

어쨌건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본체 녀석이 뭔가를 하긴 한 모양이다.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분위기를 보니까 잘 처리한 모양이고, 궁금하긴 해도, 굳이 그런 것까지 캐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나저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때 몇 대 맞아줄걸 그랬나?

에이, 그래도 본체 대신 맞는 건 좀 그렇기는 하네.

"그래서 그때 너한테, 아, 뭐 내가 너한테 두들겨 맞았으니까 그 문제는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 아무튼 그랬거든. 그런데 2년 만에 돌아왔더니 또다시 너랑 있는 거 보니까 갑자기 눈이 뒤집혔던 거야. 아직도 너에게 돈을 뜯기고 있는 줄 알고……. 너도 알겠지만 준희는 애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계속 달라고 하지 않아도 줄 애니까."

대충 상황은 이해했다.

그리고 성준의 성격에 신세를 지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갚으려 했겠지.

그게 바보 같은 짓처럼 보여도.

그런데 박유찬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 어쩌겠냐.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떼는데,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나 좋아하는 모양이니까."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성준희가 좋아하는 상대는 내가 아니라 본체일 뿐이다.

"아무튼 고맙다. 불쌍한 앤데. 이렇게까지 잘해줘서. 언젠가 내가 크게 성공하면 이 은혜 내가 대신 갚을게."

"갚고 자시고 할 거 없다니까. 그리고 준희는 지금 우리 화실에서 중요한 인력이라서 내보내면 큰일이야."

"……그래, 네 마음 안다. 알아."

내 말을 안 믿고 있구나.

"그래도 더 알고 보면 좋은 녀석이었구나. 준희 말로는 학교 다닐 때도 여학생들한테 인기 있었다며, 그때 날라리 같은 여자애들한테 네가 인기가 최고……."

또 이야기가 새길래 툭 말을 끊었다.

"기억 안나."

"아, 그러냐? 그놈의 기억은 편리하네. 원하는 것만 쓱쓱 지우는 거 보면."

"……."

내 표정을 보던 박유찬이 움찔했다.

"아, 그냥 농담."

"거, 인상 좀 펴라.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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