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56화 (156/425)
  • 적통은 아니지만 (2)

    놀란 편집장이 서둘러 만화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과 함께 내용을 모두 살펴보고 난 뒤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야지마를 쳐다본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네 말대로 삼사라와 내용을 기반으로 만든 새로운 이야기잖아?"

    "네, 저도 그것 때문에 놀랐어요.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으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삼사라 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는 사람도 속아 넘어갈 사람 많을 것 같은데?"

    "사실은 저도 처음엔 착각했었어요. 너무 비슷해서, 하지만 자세히 보니까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던 거고."

    야지마가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이번에 결에 있던 부편집장이 원고를 살핀다. 그리고는 편집장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 그냥 써니가 그렸다고 해도 대다수 사람들이 믿을 것 같네. 만화를 비슷하게 그리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렇게 스토리에 진행 느낌까지 비슷하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안 그래도 물어보니까. 삼사라 연구회 소속이라고 하더군요. 직장인인데, 평소 삼사라의 광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삼사라 관련 된 물건은 죄다 모은다고 했어요. 아. 이 원고는 완성하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이정도 디테일을 한사람이 하는 건 쉽지 않지. 그나마 회사를 다닌다면서 두 달 만에 이만한 퀄리티를 만들어 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해야겠어."

    "맞습니다. 솔직히 삼사라가 아무리 그림이 초반보다 단순화가 되었다고 해도 디테일이 대단하잖아요."

    "하. 그런데 정말 이런 사람이 정말 있긴 있구나."

    편집장이 계속 놀라며 원고를 다시 들여다본다.

    옆에 있던 부편집장이 야지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림 스타일이나 느낌을 흉내 내는 신인들은 많으니까. 이정도의 실력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계획은 있대? 이정도 데생력이면 가끔씩 단편을 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괜찮고, 그리고 데뷔가 성사되면 우리 쪽에서 어시들을 모아서 붙여주면 되니까."

    하지만 야지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그게……. 이 원고 가져온 사람 말이…… 삼사라 말고는 관심이 없답니다."

    그 말에 원고를 계속 들여다보던 편집장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뭐 하러 온 거야? 만화가가 되려고 찾아온 거 아니었다?"

    "삼사라 이외에 다른 만화는 그리고 싶지 않답니다. 하지만 잡지에 꼭 자신의 단편을 실어보고 싶답니다. 지금은 그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부편집장이 화들짝 놀랐다.

    "……삼사라 만화를?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원작이 있고, 이미 연재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 또 같은 원작의 만화를 그린다니. 거기다 써니 측도 그냥 가만히 있을 리 없고."

    "그래서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해보고 싶답니다. 단편이라도 좋으니까. 꼭 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원고료는 상관없대요. 원작에서 꼭 나왔으면 했던 이야기를 만들었던 거라고, 그래서 일단 원고는 받아뒀는데……."

    야지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고민을 하다. 결국 편집장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도 그건 무리야 이런 경우가……."

    "써니 측에서 허락을 한다면 문제는 없는 거지."

    편집장이 끼어들자 부편집장의 눈이 커졌다.

    "펴, 편집장님!"

    "이런 경우가 이제까지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면 해봐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원작자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이유가 없는 거고."

    "괜찮을까요? 거기다 한 잡지에 이런 걸 넣으면……."

    "뭐, 어때. 연재도 아니고 단편인데, 그리고 만약 호응이 좋다면, 다른 작가들 작품도 해보면 되잖아. 거기다. 우리 잡지는 신인들이 잘 찾지 않아. 이런 이벤트가 동인지 활동 중인 신인들을 끌어들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고."

    그 말에 부편집장이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끄덕인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편집장님 말씀대로 일단 삼사라 쪽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먼저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아직 박스를 정리중인 지로 쪽을 쳐다본다.

    "어? 아까는 없더니 언제 왔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친구 보내기 전에 한번 보게 할 걸."

    그제야 지로를 발견한 야지마가 중얼거렸다.

    곧바로 부편집장이 지로를 불렀다.

    "이봐. 지로."

    그 말에 멈칫하던 지로가 돌아보았다.

    "네?"

    "이리 좀 와 보게."

    부편집장이 손짓하자 지로가 박스들을 대충 치워두고 곧장 세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 한국 언제 들어가?"

    "내일 갑니다만."

    "아. 그래?"

    "이거 한번 봐 볼래?"

    "……?"

    ***

    "어?"

    복사된 원고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얼핏 보면 정말 선희가 그린 그림처럼 보일정도로 그림체가 완벽히 닮아있다.

    물론 디테일 부분에서는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별로 크게 실경 쓸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내용이다.

    삼사라의 세계관은 분명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내용이니까.

    시간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영향, 이런 복합적인 것들을 사용 하면서 생긴 허점을 아직 제대로 찾지 못했는데, 이건 그것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세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거다.

    "이걸 누가 그렸다고요?"

    "편집부에 찾아온 사람이랍니다. 회사원 이라고 들었습니다."

    "만화가 지망생인가요?"

    내 말에 지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미묘합니다."

    "미묘? 뭣 때문에요?"

    "그게, 오리지널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는 모양이더군요. 그냥 삼사라만 그리고 싶다고."

    "네?"

    이게 뭔 소리야?

    그럼 그냥 동인지에 그리는 원고라는 건가?

    내가 살던 시절의 동인지 작가들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동인지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이만한 퀄리티의 그림을 그린다는 게 좀 아깝기는 하다.

    거기다. 구멍 난 설정까지 보완해 주지 않았나.

    여기에 들인 노력은 아마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봐야 이대로는 팬픽에 불과할 뿐이기는 하지만, 그럼, 왜 굳이 소년 히어로에 찾아간 것일까.

    "이 단편을 꼭 싣고 싶다는 모양입니다. 삼사라에서 꼭 나왔으면 하는 이야기를 본인이 직접 만든 이유가 그거랍니다."

    "……."

    아, 역시.

    이정도면 단순한 팬픽이라고 하기에 과분하지.

    그런데 내가 움찔하자 지로가 내 눈치를 본다.

    "편집부에선 이걸 단편으로 올리면 어떨까하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두 분이 허락을 하셔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아무래도 내 반응을 잘못 이해했는지 굉장히 조심스럽다.

    원작을 침범해 내가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난 오히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팬이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뿌듯하다.

    내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설정부분을 이런 식으로 해결해 주는 것도 모자라 직접 원고까지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가 이런 요구를 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개인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다.

    거기다 이야기 자체도 훌륭하다.

    연출도 괜찮고, 상당히 재밌기도 하니까.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삼사라라는 만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테니 나야 싫어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선희가 반대한다면 일단 생각해 볼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지로와 대화하는 동안 선희는 내 곁에서 계속 원고의 선 하나하나 까지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지로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날 쳐다본다.

    "왜?"

    "난 이 만화 마음에 들어."

    "그래? 그럼 네 생각은 어떤데?"

    "……오빠가 결정하면 따를게."

    그래도 표정은 허락을 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 나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이런 만화가 많은 게 오히려 팬을 늘리는 것에도 도움이 될 거고, 거기다가 원작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세계관을 넓히는 것에도 좋은 것 같으니까."

    사실은 내가 살던 시절의 일본만화계에선 자주 있던 방식이다.

    어떤 만화가 대박을 치면, 그 만화의 외전을 원작자의 감수를 받아 다른 만화가가 그린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카이지 시리즈 같은 경우도 그렇고, 드래곤볼도 다른 이가 그린 외전 격 만화가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시절이야 그냥 해적 만화 아니면 동인지 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게 이런 것을 편집부에서 생각해 내다니, 의외다.

    아무튼 내 설명을 들은 선희가 머리를 크게 덕이며 말했다.

    "그럼, 난 찬성할게."

    "나도 찬성!"

    진심의 남자 새로운 에피소드의 아이디어를 메모하던 경희까지 손들며 나선다.

    "뭔 줄 알고 찬성이래?"

    "뭔지는 모르지만 선희가 찬성하면 나도 찬성."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나저나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증을 잘 했네요. 만화에선 솔직히 설명을 잘 하지 않았었는데."

    "저 역시도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한 만화라 상당히 놀랐습니다. 처음에 선생님들과 따로 친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착각을 할 정도였거든요."

    정말 이정도면 삼사라 오타쿠 모임 출신이라는 말에 수긍이 갈정도다.

    오타쿠들이야 모였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대화가 오가는 게 일상이니. 오히려 원작자도 알지 못하는 영역까지 디테일하게 파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쨌거나 이 단편이 어떤 반응이 올지 나도 궁금해졌다.

    ***

    "정말인가요?"

    "네. 작가님이 직접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제목 앞에 삼사라를 붙여도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지로의 말에 모리 켄지가 머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함을 표했그는 한국에서 이윤환의 허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삼사라의 외전을 그린 모리와 만났다. 처음 만났던 야지마는 삼사라의 담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로가 인수인계를 받은 것이다.

    아무튼 모리는 작가가 직접 허락했다는 말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이 원고는 2주후에 단편으로 올라갈 겁니다. 원고료는 페이지 당 7천 엔, 총 20페이지니까 14만 엔이 될 겁니다. 책이 나온 뒤 그 다음 주에 드릴 겁니다. 아, 그리고 모리 씨가 삼사라 연구회 출신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써니 선생님이 직접 이것도 주셨습니다."

    지로가 그렇게 말하며 삼사라 속 장면을 묘사한 일러스트와 영어로 써니라는 사인이 적혀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아. 저, 정말 고맙습니다!"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2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작은 키와 동안의 얼굴을 가진 덕분인지 더욱 감성적인 느낌의 사람이었다.

    *

    2주 후.

    모리는 회사 점심시간에 인근의 대형 서점으로 찾아갔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자신의 만화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년 히어로의 편집자가 건네주었던 작가 써니의 일러스트는 집에 액자로 넣어 걸어두었다. 덕분에 매일 그것을 보는 게 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연구회 동료들이 집에 놀러 와서 그것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짜릿하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의 만화가 오늘 소년 히어로에 실려 출판이 된다.

    제복은 '삼사라, 암흑왕' 이다.

    비록 단편이고 앞으로 이런 기회는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원작자가 허락을 해준 상황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이야기가 단편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만화를 그리는 목적은 오로지 삼사라 라는 작품을 자신의 손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랫동안 만화를 좋아해 왔고, 그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작품에 빠져 들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완성했고,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무작정 원고를 들고 소년 히어로로 찾아갔었다.

    거기서 담당은 아니지만 편집자를 만났고, 뭔가를 실컷 떠들었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났더니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긴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단편이 실린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이런 저런 잡념에 빠져있던 모리가 곧 대형서점 앞에 도착했다.

    "……!"

    순간 모리가 멈칫했다.

    서점 앞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 탓이다.

    "어? 모리 씨. 안녕하세요."

    같은 삼사라 연구회의 일원인 대학생 어린 친구들이다.

    "그래, 안녕,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저희 여기 근처에 살잖아요."

    "아. 그렇구나."

    "아참, 이번 소년 히어로에 삼사라 단편 실렸다고 하셨죠? 제가 전에 모임에 빠졌지만,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그 말에 모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한명이 책을 사들고 나오다가 그들과 부딪쳤다.

    "아. 모리 씨."

    "어? 너도 왔네."

    "네. 아, 이거 모리 씨가 그린 거 맞죠?"

    "아. 뭐. 그렇지."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여자애의 말에 모리가 당황했다.

    "뭐? 사인?"

    "이거 기념으로 갖고 있을 거니까."

    "아, 나도 모리 씨한테 사인 받아야지. 어디가지 말고 여기 계셔야 해요!"

    "같이 가."

    몇 명이 그렇게 서점으로 뛰어 들어가는 동안 삐죽거리며 모리가 여자애의 소년 히어로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모습이 서점을 나오던 젊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어? 뭐지? 만화가인가?"

    "그러게."

    "저거, 이번에 나온 삼사라 외전이네."

    "정말이네."

    그들의 손에도 소년 히어로가 들려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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