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55화 (155/425)
  • 적통은 아니지만 (1)

    아침 바쁜 시간, 지하철 가판대에서 소년 히어로를 산 남자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혀를 찬다.

    "응? 뭐야? 이건 왜 붙어있어? 제본불량인가? 요즘 좀 볼만 하다 했더니, 쯧."

    평소 아침 출근시간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만화책을 즐겨보는 그가 최근 사는 잡지에 소년 히어로가 포함되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파시엔시아다.

    그리고 진심의 남자. 그 다음이 삼사라다.

    평소 점프에 연재중인 캡틴 츠바사의 광팬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리얼리티가 강점인 파시엔시아도 즐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 히어로를 보다보니 덩달아 좋아하게 된 만화가 진심의 남자랑 삼사라다.

    그런 그가 모처럼 잡지를 들고 펼치는데 갑자기 종이 몇 장이 붙어있는 게 보이자 짜증이 생긴 것이다.

    일단 가장 좋아하는 만화인 파시엔시아부터 읽었다.

    스페인 유소년 리그에서 착실히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 그가 곧바로 진심의 남자를 펼쳤다.

    아까 붙어있던 종이가 진심의 남자 가운데 있다.

    얼핏 슥 훑어보니 이야기는 그냥 이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럼 붙어있는 페이지는 뭐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전체를 쭉 읽어봤다.

    뭐, 그럭저럭 재미있는 내용이다.

    바로 앞전에 있었던 이무기파트 만큼 혁신적인 건 없지만, 뭐 늘 재밌을 수만은 없으니까.

    다음 삼사라를 읽으려는데 마침 자신이 서있던 곳에 자리가 비었다.

    운이 좋다.

    자리에 앉고 나자 붙어있는 종이가 궁금해졌다.

    붙어 있는 페이지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니, 진심의 남자 그림체다.

    단순한 불량인가 싶다가 생각해보니 진심의 남자가 좀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순서가 잘못된 불량인가?"

    분명히 이야기는 별 무리 없이 진행이 되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곧장 가방에서 평소 쓰던 쇠자를 꺼내 붙어있는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찌익.

    "아 씨."

    깨끗하게 찢어지지 않아서 살짝 미간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그 뿐이다.

    어차피 다 읽고 나면 버리는 책이니까.

    그렇게 너덜너덜한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읽다보니, 이상하다.

    "……."

    일단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뭔가 자신이 놓친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붙어있던 페이지까지 읽고 마지막까지 도달하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뭐야? 왜 이렇게 재밌어?"

    전혀 생각도 못한 이야기가 중앙에 끼어 든 덕분에 이야기의 전체 느낌이 확 달라진 것이다. 거기다. 이야기도 최근 며칠간 김빠진 맥주마냥 심심했던 것을 단번에 날려줄 정도다.

    특히, 팬티차림의 두 남자가 바닷가에서 싸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코믹하면서도 진심의 남자 특유의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좀 바보 같은 느낌인데, 만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그게 또 어울린다.

    요즘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남자가 모처럼 그 장면을 보며 킥킥거렸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보통 때라면 주변을 의식해서 조심했을 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 장면으로 그간 쌓였던 기분을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파시엔시아보다 이쪽이 훨씬 재미가 있다.

    어쩌면 오늘부터 진심의 남자가 더 좋아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이거 한방 먹었는데? 키도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구상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무카이가 야지마가 가져온 소년 히어로에서 진심의 남자 편을 보면서 놀랍다는 듯 말했다.

    "얼핏 들은 얘기론 저번 이무기 파트 때 도와줬던 곳에서 참여했다고 하던데."

    "어? 그럼 한국 쪽……. 결국 그런가?"

    무카이의 말에 야지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예상하는 그곳."

    "그럼, 텐겐 선생님인거요?"

    그 말에 야지마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제임스 선생은 아실 것 같은데, 그런 얘기는 잘 안하시니까."

    스토리 때문에 평소에도 이대봉과 자주 통화하는 야지마였는데, 호기심에 넌지시 질문을 던졌더니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대답을 회피 했었다.

    그 걸로 뭔가를 알고 있다는 정도의 느낌은 받은 것이다.

    "아무튼, 키도 선생님도 강력한 조력자를 얻었으니 앞으론 더 상대하기 버겁겠네."

    "그렇겠지. 가뜩이나 순위가 높은 양반인데, 거기다. 날개까지 달아줘 버렸으니."

    "이거야 원, 중원 요리왕이 이만큼 괜찮은 이야기인데도, 다른 만화들은 점점 멀리 달아나 버리는 것 같고."

    "너무 조급해 하지 마,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아참, 깜빡할 뻔 했네."

    그렇게 말한 야지마가 서둘러 가방을 열어 잡지 하나를 꺼내더니 무카이에게 보여준다.

    "이게 뭐요?"

    "요리책."

    "나도 요리책인건 알겠는데, 갑자기 이걸 왜 보여 주냐고."

    "이거 봐."

    그렇게 말하며 요리책을 뒤적거리더니 원하는 페이지를 찾았는지 그것을 펼쳐 무카이에게 보여준다.

    "만화의 요리라는 특집 기산데, 여기에 우리 중원 요리왕이 소개되었어, 그리고 이거 봐. 만화에 등장하는 요리를 직접 시연 한 장면도 있어."

    "어? 진짜네."

    길지 않은 기사와 함께 여자요리 전문가가 요리를 시연하며, 나중에 일반인에게 맛보게 하는 사진이 같이 실려 있다.

    "전에 맛의 달인 편도 했었는데, 그때 호응이 좋아서 이번엔 중원요리왕 편을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에 전번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더라. 이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우리 만화에 등장하는 요리 프로를 해보고 싶다는 연락도 왔고."

    "정말?"

    "그래. 아마 이 프로 나가면 만화의 인기도 더 오를 거야. 물론 방송 대상자가 주부라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소년지에 연재중인 만화다보니 주부대상 프로에 나온다고 해도 잡지 내 인기는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관없어, 단행본은 그래도 좀 더 팔리겠지?"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방송에서 홍보를 해주니까."

    "그럼 됐어. 만화가는 결국 단행본 싸움 아니겠어?"

    그 말에 야지마가 크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직원들끼리 이번에 나온 소년 히어로 진심의 남자 편을 펼친 상태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와, 이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니. 상상도 못했다."

    "나도 처음엔 왜 진심의 남자 쪽 제본이 저렇게 나왔나 했더니, 이거 처음부터 계산된 전략이 있었던 거군."

    "어쩐지, 며칠 후에 권두컬러 하기로 되던 걸 취소까지 하길래, 테고시 저 친구가 미친 줄 알았어. 권두컬러를 포기하는 담당이 있을 리 없잖아. 그런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니."

    "그나저나 내용이 너무 좋아. 웃기면서도 비장하다는 묘한 느낌이 섞여있어서 그런지 독특한 느낌도 있고."

    "맞아요. 기존의 키도 선생님 느낌에 색다른 개그가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난 이번 개그가 좀 미묘하던데."

    "전 괜찮았어요."

    "어쨌거나 이번엔 좀 임팩트가 있겠는데? 순위에 변동이 생기는 거 아니야?"

    "이번 건 좀 크네요. 그나저나 평소의 키도 선생님답지 않은 전략인데? 설마 테고시의 아이디어인가?"

    그렇게 말하며 비어있는 테고시의 자리에 시선을 돌린다.

    같이 그곳을 바라보던 다른 직원이 말했다.

    "글쎄요. 이게 단순히 아이디어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중간에 숨겨둔 이야기가 빛을 발한다는 건 키도 선생님이너 테고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테고시 씨는 뭐래요?"

    "비밀이래."

    "역시 뭔가 있나보네요."

    "그러니까."

    그때 부편집장이 손바닥을 짝짝 친다.

    "이봐, 쉬는 시간도 끝났는데 일하라고, 일. 다른 담당의 일에만 관심 가지지 말고 자신 담당 선생에게 관심을 좀 가지란 말이야."

    그 말에 직원들이 오만 인상을 쓰며 흩어진다.

    본인들도 그러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작품이라는 건 까딱 잘못 손을 대면 그대로 무너지는 게 다반사가 아닌가. 어설프게 아이디어랍시고 막 나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건 부편집장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만으로 잡지의 위상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고, 그렇게 잡념에 빠져 있던 부편집장에게 편집장이 다가왔다.

    "그래도 이번 건 대단해. 겨우 몇 장 붙이는 것만으로 이만한 효과를 주니까."

    "그러게요. 잡지들 가끔 이런 거 하지만, 특별한 건 아니었는 데, 이걸 이렇게 쓰니까 또 괜찮은 방법이더군요."

    "이번 일을 계기로 흉내 내는 곳이 좀 생기겠는걸."

    "흉내야 낼 수 있겠지만 이런 효과는 무리죠. 당장 봐도 이벤트성 방법이라."

    "그야 그렇지. 이번 건 정말 절묘할 정도로 이야기를 잘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편집부 내부를 돌아보는데, 아까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하는 직원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새롭게 이곳 편집부로 이직한 오오타케다.

    예전 주간 파이어 편집부 소속이었지만, 에스퍼 존의 니시다.

    가 이곳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자 기존 담당인 닛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시점에 이곳으로 들어왔다.

    니시다가 자신의 담당으로 강력하게 추천해서 그렇게 조치했는데, 결국 그 결정은 옳았다.

    담당이 바뀌자마자 에스퍼 존의 인기가 다시 급상승을 하게 되었다.

    5위까지 떨어졌던 에스퍼 존이 2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3위까지 밀려나게 된 진심의 남자도 이번처럼 새로운 방식의 연재까지 시도한 게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동반 성장을 하고 있으니까.

    처음에 삼사라 하나에서 부터 출발했던 게 어느새 간판 만화가 5개로로 늘어나 버렸다.

    이 덕분에 미쯔다쇼텐이 창립된 이후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인지도에서 부족한 상황.

    착실히 인기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 최고인 소년점프, 매게진, 선데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이만큼 성장해 준 덕분에 회사에서도 편집부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다.

    직원도 늘고, 급여, 거기다. 최근 같은 층인 다른 부서를 옮기 면서까지 편집부를 확장시키고 있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도 이젠 직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부서가 바로 소년 히어로 편집부가 되었을 정도다.

    물론 가장 부러워하는 직책은 다섯 명의 만화가를 담당하는 편집자들이고, 특히 빅 히어로에 연재중인 다크 프린세스까지 총 3작품을 담당하는 지로는 그야말로 회사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사람이다.

    아예 관련도 없는 타 부서 사람들까지 지로를 알 정도니까.

    듣기론 그런 지로에게 눈독을 들이는 편집장들이 제법 된다는데.

    자신이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어림없는 일이다.

    편집장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때마침 지로가 편집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박스를 잔뜩 짊어지고 낑낑대며 들어오고 있다.

    보나마나 팬들이 보낸 팬레터나 선물일 것이다.

    방금까지 그의 머릿속에서 엘리트 모습을 하고 있던 그가 동데 공사판에서 일하는 잡일꾼으로 변해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편집장이 혀를 찼다.

    "저거, 편집자야, 아니면 짐꾼이야?"

    "최고 인기 만화를 셋이나 담당하니, 당연한 일이죠."

    부편집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편집부 입구 쪽 부스에 있던 야지마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편집장님, 이거 좀 보시겠습니까?"

    노란 봉투를 내밀자 그것을 본 편집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자네가 방금 만났던 신인원고 아니야?"

    "네. 일단 한번 보세요."

    보통이라면 편집자 선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인데, 굳이 편집장에게 가져왔다는 건 뭔가 특별하다는 뜻이다.

    편집장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봉투 속 원고를 꺼내 살폈다.

    그리고 곧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이거 그림이……. 삼사라랑 비슷하네?"

    "내용도 삼사라에요."

    "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