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52화 (152/425)
  • 이제부터 경쟁자 (1)

    키도의 화실.

    한참 작업 중일 때 어시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혹시 소년점프 후기 보셨어요?"

    그 질문에 키도가 머리를 들지도 않고 대답했다.

    "무슨 일인데?"

    "토리야마 선생님이 텐겐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올리셨어요."

    그 말에 빠르게 움직이던 키도의 연필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곧장 머리를 들었다.

    "토리야마 선생을 도와줬다고?"

    "네. 후기에……."

    "소년점프 여기 있어?"

    "네."

    "줘 보게."

    "네."

    어시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책상위에 있던 소년점프를 키도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키도가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더니 그것을 읽는다. 그리고는 곧장 피식 웃었다.

    지금 자신은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늘 위태롭다는 생각 때문에 여유가 없는데, 두 작품씩이나 하는 녀석이 저렇게 타 잡지의 만화가, 그것도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를 돕다니.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지, 제정신이 아닌 건지.

    "나도 힘내서 단숨에 1위를 탈환해야지."

    그때 어시 한명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3윈데요?"

    "맞아요. 2위는 에스퍼 존이잖아요."

    그 말에 키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방심한 거야. 방심! 그딴 녀석 쯤 금방 따라잡을 거니까."

    그 말에 어시들이 입을 가리며 풋 하고 웃었다.

    그러자 키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모두를 둘러본다.

    "쿨럭!"

    "크음."

    모두 키도의 시선을 외면하며 다시 작업에 몰두하자 그제야 키도가 날카롭던 시선을 거두었다.

    사실은 어시들 말 대로였다.

    이미 2주째 3위에 머물러 있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얼마 전 니시다의 담당인 닛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오오타케라는 전 담당이 소년 히어로에 입사하면서 다시 니시다의 담당이 되었다고 들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담당으로서 책임감이 강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그가 담당이 되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오타케가 니시다의 담당이 되기 전 5위에 계속 머물러 있던 에스퍼 존이 단번에 3위까지 치고 올라가더니 다시 2위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2주째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진심의 남자가 재미없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2권이 발매된 진심의 남자는 이전보다 더 많이 책이 팔리고 있었다. 결국 인기자체는 오히려 예전에 비해 더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잡지 내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만 있으니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최근 잡지 판매량이 예전에 비해 월등히 올랐으니 유입된 많은 독자들이 진심의 남자가 아닌 에스퍼 존을 선택했다는 뜻이 된다.

    잡지의 인지도가 오르고 객관적으로도 더 많이 팔리고 있다면 결국 에스퍼 존이 더 재미있어 진 것이다.

    솔직히 그 부분은 키도도 인정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에스퍼 존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신선하고 재밌었으니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인기작가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키도와 달리 어시들은 곧장 이 문제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삼사라와는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요. 잘못하면 파시엔시아한테도 잡힐것 같고."

    "중원요리왕은 또 어떻고, 지금 2위부터 5위까지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차이에요."

    "이무기 이야기 끝나고 나니까, 금방 시들해지는 거 아닐까요? 제 친구들도 이무기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무기는 한국 설화에 나오는 괴물이라는 것도 신선하고."

    "맞아, 내 동생도 그렇게 말하더라. 이무기이야기는 너무 재밌었다고, 특히 여주인이 마지막에 용으로 변해 날아가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나도 그 이야기 끝나니까 어째 여운이 너무 남더라고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배경 그리다가 눈물을 흘릴 뻔 했다니까."

    몇 명은 아쉬움의 한숨까지 조용히 내 쉴 정도다.

    그런 어시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키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나 잠시 갔다 올 테니까, 일들 하고 있어."

    "네."

    키도가 화실을 나서자 눈치를 보던 어시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쓸데없는 얘기를 한 거 아니에요? 선생님 지금 좀 기운 없어 보이시던데."

    "네가 쓸데없이 삼사라와 격차 더 벌어진다는 얘길 하니까 그런 거잖아."

    "선배도 맞장구 치셨잖아요."

    "그거야……. 에이, 나도 잘못했네. 반성해야겠다."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하자 모두 표정이 좋지 않다.

    "저도요."

    "그나저나 오늘 키도 선생님 심기를 어지럽혀서 밥맛이 이상해지는 건 아닐까요?"

    진정한 화실의 권력자인 키도 부인을 떠올리며 말한 것이다.

    평소 늘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여자니까.

    "그 정도면 요즘은 그래도 괜찮은 거야. 예전엔 독을 탔다는 얘기도 예전 선배에게 들었으니까."

    그 말에 몇 명이 화들짝 놀랐다.

    "네? 독이요?"

    "에이, 그게 말이 돼요?"

    그렇게 말하자 선임인 난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솔직히 확인된 건 아닌데……. 예전에 화실에서 민폐를 끼친 어시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화실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피똥을 싸며 화장실에서 쓰러졌진 탓이래."

    "피, 피똥요?"

    "도대체 뭘 먹었기에 피똥을 싸요!"

    "나도 들은 거지만, 사모님의 간식을 먹은 다음날 벌어졌다고 하더라."

    "……."

    "……."

    그렇게 어시들이 수군거리며 떠드는 사이 키도는 거실에 나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부인이 키도에게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생각한 대로 하세요. 고민은 길게 하지 마시고요."

    "아, 그게 좋겠구려."

    부인의 말을 수긍한 키도가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

    "아우, 머리야!"

    화실과 이어진 방에서 경희가 공부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시험 때문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이젠 2학년이라 슬슬 바빠지겠어요."

    어시 여자막내인 차미정의 말에 경희가 미리 와서 작업 중인 선희를 보며 투덜거렸다.

    "저만 그래요, 저만, 선희 쟤는 딴 세상 사람이라니까. 딴 짓을 해도 선생님에게는 최고 인기 학생이에요."

    당연히 성적이 좋으니까 그렇겠지.

    선생들이야 공부 잘하는 학생을 예뻐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니까.

    그런데 경희의 말에도 선희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자세히 보니 선희는 귀에 헤드폰을 끼운 채 음악을 들으며 그림에 빠져있다.

    요즘엔 마돈나의 'Like A Virgin'에 빠져 있다.

    몇 달 전 TV에서 뮤직비디오를 보고는 완전히 빠져서 그 이후 마돈나 테이프를 사서는 매일같이 듣고 있다.

    "작은 선생님이 특별한 거예요. 너무 비교하지 마세요."

    "저도 이젠 그러려고요. 평생을 본 건데, 이젠 뭐 특별한 것도 아니고."

    "아, 2학년이면 곧 수학여행 가겠군요."

    그 말에 우울하던 경희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네. 이번 수학여행 경주 간대요. 중학교 때도 경주였는데, 그땐 집 사정 때문에 못가서 이번엔 기대하고 있어요."

    "어? 나도 경주 갔다 왔는데."

    "저도요."

    "전 설악산요."

    "설악산, 경주가 대부분이네요."

    "일본 학생들도 경주에 수학여행 온데요."

    "나도 그 얘기는 들었어요. 일본은 한국으로 온다고."

    "어떤 책 보니까, 2000년이 넘으면 수학여행으로 달에 간다는 얘기도 있던데."

    "와, 그럼 진짜 재밌겠다. 그럼, 할머니 돼서는 화성으로 가는 거 아닐까요?"

    "요즘 미국에서 그렇게 우주왕복선이 지구 밖을 들락거리니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분위기 깨면 욕이나 먹겠지.

    어쨌건 여행이야기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떠는 수다에 모두 즐거워 보인다.

    그러다 경희가 뭔가 생각났는지 박수를 짝 하고 친다.

    "아, 맞다. 집 앞에 누가 연탄재를 잔뜩 흘려놨던데, 내가 청소하고 올게."

    "내가 할게."

    성준희가 나서자 경희가 말린다.

    "아니야, 내가 할게."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그 와중에 나는 아침에 지로가 보내온 소포를 확인하고 있다.

    요즘 들어 팬레터가 많이 오고 있는지 모이면 수시로 보내오고 있다.

    오늘 온 것들은 일러스트 종류가 많은데, 특히 삼사라 그림이 많다.

    분명 팬들이 보내온 그림인데,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기엔 상당한 수준의 그림들도 제법 보인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고 있는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몇 개 있다.

    특히 2장은 원래의 삼사라를 그대로 베낀 그림이 아니라 삼사라의 배경으로 새롭게 그린 일러스트다.

    한명은 배경이 디테일하고, 한명은 인물을 능숙하게 그렸다.

    "와, 이정도면 당장 만화가를 해도 되겠는데?"

    곁에서 같이 보던 박상식의 말에 내 머리가 절로 끄덕여진다.

    "맞아. 이정도면,"

    그렇게 말하다가 그림 밑에 적힌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어?"

    익숙한 이름이다.

    미우라 켄타로,

    순간 머리가 띵하다.

    아직 만화가로 데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이름을 보게 되다니.

    미우라 켄타로는 죽을 때까지 아마 다 끝내지 못할 명작이라 불리는 '베르세르크'의 만화가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올해에 데뷔작을 내게 된다.

    소년매거진에서 '또다시 REPEAT'라는 만화로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

    플래시매거진에서 'NOA'라는 단편까지 싣는다.

    이 사람도 삼사라의 팬이었구나.

    뭔가 알게 모르게 거물급 만화가들과 이렇게 인연이 생기는 모양이다.

    물론, 아직은 인연이라 하기엔 애매하긴 하지만,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

    그나저나 이 그림도 액자에 넣어서 잘보관해 둬야지.

    올해는 시작하면서 뭔가 건지는 게 많네.

    며칠 전에 월간캡틴 창간호(2월18일)도 구했는데.

    여기에 중요한 만화가 연재를 시작하는 데, 바로 '강식장갑 가이버'다.

    가면라이더 같은 만화를 그려달라는 청에 의해 6화정도 짧은 연재를 예상하고 시작 했는데 인기가 높아 계속 연재를 하게 되지만, 결국 네버 엔딩 만화가 되어버린다.

    실시간으로 전설적 연재 초기 만화를 접하는 건 덕후로서 최고의 행복이지.

    그때 밖에서 빗질을 하던 경희가 들어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커다란 신문지로 뭔가를 싸들고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말한다.

    "자, 모두 모이세요오. 다 같이 먹자고요."

    "뭔데?"

    "떡이야, 떡. 요 옆에 사는 집에서 이사왔다고 떡을 주길래 받아왔어."

    그렇게 말하며 신문지를 펼치자 팥 시루떡이 먹음직스럽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와, 맛있겠다!"

    "선희도 떡을 보자마자 잽싸게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자자, 드세요."

    마치 자신이 준비한 음식인양 경희가 으스대며 말하는 데, 그때 전화가 왔다.

    "네, 화실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네."

    전화를 받았던 박수미가 말했다.

    "키도 선생님이세요."

    그 말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수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선생님이 아니라, 경희 양."

    그 말에 놀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경희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러자 경희도 한참 떡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날 바라본다.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경희가 떡을 빨리 씹어 삼키고는 박수미가 건넨 수화기를 받았다.

    박수미가 건네는 수화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어설픈 일본어로 말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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