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얹기 (1)
선희와 함께 삼사라의 새로운 파트의 배경으로 사용할 곳을 알아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광화문 쪽을 돌고 있었다.
중앙청이 보이는 주변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그곳에서 내렸다.
"여기?"
"응."
선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동안 나는 광화문을 둘러본다.
전에도 온 적이 있어서 익숙하긴 한데, 역시 저 중앙청 건물은 영 어색하다.
듣기론 저게 조선총독부 청사라고 하던데.
아무튼 내가 있던 시절엔 없던 건물이라 그런지, 아니면 경복궁 뒤편에 시야를 막고 있어서 인지 아직 낯설기만 하다.
시선을 도로 쪽으로 돌렸다.
비슷한 모양, 크기의 차량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살았던 시대가 이젠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내가 살던 시절이나 이때나 늘 바쁜 모습이다.
문득 왜 저렇게 모두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멍하게 도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데 선희가 내 점퍼를 슥 잡아당긴다.
"……?"
"저쪽."
선희가 길 건너편을 가리키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 그쪽도 가보자."
그렇게 광화문 주변을 돌고 있는데 전파사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TV에 뉴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1월 24일 한국시간으로 25일인 오늘 새벽 4시 50분에 플로리다 주 케이프카내베랄공군기지에서 발사되었습니다. 이번 비행은…….]
잠시 쇼윈도 쪽을 힐끔거리는데 선희가 내 소매를 당긴다.
"빨리."
"어. 미안."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선희를 따라 나섰다.
선희는 이곳저곳 골목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뭔가 중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있던 연습장으로 간단하게 스케치를 하고는 이동한다.
머리에 새겨진 그림에 자신의 상상을 더한 그림을 합쳐놓은 그림을 메모처럼 그리고 다니는 거다.
삼사라의 등장하는 도시는 여러 곳이지만 특정한 지역은 아니다.
그리고 거의 다 파괴된 곳이다 보니 생각이상으로 배경이 복잡하다.
마치 오토모가 그린 아키라처럼 상상의 세계 속 도시가 그것도 복잡하게 부서진 곳을 일일이 정확하게 그리는 건 내 상식으로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엄청난 일이다.
그런 것을 저렇게 간단한 스케치만으로 그려나가는 선희가 새삼 놀랍기는 한데.
역시 이렇게 따라 다니는 건 좀 귀찮다.
그러나 선회가 혼자서는 딱히 이런 조사를 하지 않으려 하니 뭐,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참을 돌아다니다 선희가 나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어?"
햄버거 가게 앞이다.
예전에 지로를 처음 만났던 그곳.
"햄버거 먹고 싶어?"
"응. 두 개."
"알았다."
그렇게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근처에 익숙한 녀석이 보인다.
백설기다.
저놈 요 며칠 동안 화실에 안 오더니 여기서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 랑도 같이 있다.
냐앙.
녀석이 우리를 보며 울었다.
그러자 선희가 나에게 말했다.
"안에서 잠시 기다려."
"응? 왜?"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선희가 어디론가 간다.
그러자 곧장 고양이 두 마리가 선희를 졸졸 따라간다.
어디 가는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바로 햄버거가게로 들어갔다.
미리 선희가 먹을 거랑 내거 이렇게 미리 주문해두었다. 그리고 주문했던 햄버거세트를 받는데, 선희가 들어왔다.
"어디 갔었어?"
"…… 배고프다고 해서."
"아."
아마도 근처에 슈퍼나 포장마차에서 뭔가를 사 먹인 모양이다.
아무튼 그 녀석들은 어디 가서 배곯을 일은 없겠네. 그나저나 그 검은 고양이는 수컷인가?
혹시 남자친구?
에이, 알게 뭐야. 그저 두 마리 다 엉겨붙지만 마라.
그렇게 우리는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햄버거로 해결하고 화실로 돌아왔다.
화실로 들어오니,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나 왔다. 오랜만이다."
강용철이다.
요즘 계속 뜸했던 이유는 바빠서였다.
그동안 그렇게 할까 말까 고민만 하던 보물성에서 결국 '스페이스 제너럴' 이라는 SF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탓이다.
예전엔 월간지 한 개도 빠듯하다고 우는 소리를 하더니, 전에 선희가 하는 작업을 몇 번 보고는 나름 느낀바가 있었던 건지 최근엔 좀 빨라졌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그런데 오늘 얼굴을 보니 제법 여유가 있어 보인다.
확실히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화실에 들어오자마자 선희가 그 작은 얼굴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코를 벌름벌름 거린다.
뭐하는 거야?
어? 그러고 보니 무슨 냄새가 나긴 하는 것 같은데…….
"……통닭."
선희의 중얼거림에 강용철이 깜짝 놀란다.
"와, 선희는 정말 개코구나."
나도 놀랐다.
쌍둥이들의 공통 스킬인 개코 능력이다.
그때 부엌에서 성준회가 접시에 뭔가를 담아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선희의 말대로 통닭이다.
"두 사람 거 남겨뒀어."
성준희의 말에 내가 손을 휘적거렸다.
"난 됐어. 선희 너 다 먹어라."
아직 뱃속의 햄버거가 소화도 안 되었으니까.
선희는 이미 두 개나 먹었으니…….
"내가 다 먹어도 돼?"
선희의 말에 멈칫했다.
그리고는 얼떨결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먹을 것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오빠대신 내가 먹을래!"
경희가 통닭으로 뛰어든다. 그러자 선희가 잽싸게 접시를 가로채고는 서둘러 부엌 쪽으로 사라진다.
"야, 비겁하게. 같이 좀 먹자."
"싫어."
"너, 돼지 된다."
"괜찮아."
"진짜야!"
"……."
"아니, 그러지 말고 닭다리 조금만."
"……."
그 모습을 보던 강용철이 대단하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늘 다섯 마리 사왔는데, 그게 모자라네."
"쟤들 1인 1닭도 모자라."
"뭐?"
놀라는 강용철을 보며 피식 웃고는 물었다.
"신작은 반응이 좀 어때?"
"뭐, 네가 도와준 스토리긴 한데, 역시 이야기를 만드는 게 꽝인지 순위는 그냥 저냥 중간쯤."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는 푸른색 표지의 코믹스 한권을 꺼내더니 내게 내민다.
"이거, 이번에 소년경양에서 나온 단행본 1권."
"아, 고마워."
월간지다보니 1권이 나오는데도 한참 이 걸린다.
나도 곧장 삼사라 두 권과 파시엔시아한권을 강용철에게 내밀었다. 삼사라 2권은 출판되기 전에 엊그제 미리 받은 거다.
"와, 주간지에 두 개나 연재하니까, 벌써 책이 세권이나 나왔구나. 표지 엄청 고급스럽네. 정말 부럽다. 아니, 그보다 일본이니까 더 부러워."
"형도 도전하면 되지."
"악담하지마라. 한국에서 자리 잡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 다 너랑 선희 같은 줄 아냐?"
그렇게 말하며 삼사라 단행본을 펼쳐 몇 장을 뒤적거리더니 곧장 내게 손을 뻗었다.
"방금 내가 줬던 내 단행본 돌려줘."
"갑자기 왜?"
"너무 비교가 되니까, 부끄러워서 그러지."
"부끄럽긴, 일본에 연재하니까 퀄리티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만든 건데."
"또 헛소리를, 누군 퀄리티 더 좋게 안만들고 싶은 줄 아냐? 능력이 돼야 만들지. 그냥 무작정 복잡하게만 그린다고 퀄리티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건 맞는 말이다.
그리고 만화에 대한 초보일수록 소소한 테크닉에만 신경 쓸 뿐, 오히려 능숙한 만화가들은 전체적인 데생이 더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지금 보물성에 연재되는 인기 만화만 해도 버겁다고."
지금 보물성 가장 인기 만화는 그래도 '아기공룡 두리'일 거다.
물론 '고교외인군단'이나 '그라운드의 치타'도 인기가 있었고.
"아, 지금 보물성에 '요정 핑클' 이랑 '달려라 하뉘'도 연재 시작했지?"
"어. 1월부터. 그나저나 이 바쁜 와중에도 보물성 꼬박꼬박 챙겨보는구나. 기특하게."
요즘엔 솔직히 본 적이 없다.
그냥 오래전에 본 걸 떠올렸을 뿐이지.
물론 그땐 강용철이라는 만화가는 알지도 못했고, 보물성에 연재한 적도 없지만.
아, 그리고 새 연재 중 중요한 게 또 있다.
허경만 만화가의 '제 8구단'
나중에 '미스터 고'라는 영화가 제작된다.
물론 영화랑 만화는 스토리가 전혀 다르긴 하지만,
"두 만화 어때?"
"뭐, 순정만화잖아. 그런데 왜?"
"둘 다 느낌이 좋아. 아마 크게 히트 칠거야."
하지만 TV로 만들어진 만화영화에서 명암이 완전히 엇갈리게 된다.
'요정 핑클'은 망작이 되고, '달려라 하뉘'는 후속 작이 나올 정도의 히트를 치니까.
"오, 그래? 하긴 초반이지만 재미도 있더라. 특히 하뉘는 갑자기 애가 막 달리는 장면 보니까. 뭔가 대단한 육상선수가 될 거라는 분위기도 있고."
"그래. 그런 만화들은 잘 지켜보고, 배울 만 한건 배워."
"알았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관심이 가네. 그리고 오늘도 온 김에 선희그림 그리는 거 좀 보고 가려고, 선희 작업하는 거 보면, 배우는 것도 많거든."
"그렇게 해. 아마 꽤 자극이 될 거야. 실력이 더 늘었거든."
"거기서 또 늘 실력이 있냐? 징그럽다.진짜."
강용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곧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돌린다.
"요즘 일본은 어때?"
"뭐가?"
"만화 말이야, 만화. 지금 일본은 어떤 만화가 유행이냐고."
"지금?"
"어. 좀 알려줘라. 뭐 일본에 대한 건 늘 궁금한데, 정보가 있어야지."
"이쪽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긴데."
"길면 더 좋지."
뭐, 분위기 봐서는 오늘 하루는 완전히 휴식을 취할 모양이니까. 나도 바쁜 건 없고.
"알았어."
현재 1985년 1월이 끝나갈 무렵니다.
그러니까. 연도를 잘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냥 80년대를 뭉뚱그려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일단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가장 인기 만화는……."
하나하나, 머나먼 이 세계 이야기를 하듯 천천히 시작했다.
제일처음엔 명견실버부터 캡틴 츠바사나 아키라, 미유키, 터치, 북두의권, 메종일각, 우르세이 야츠라, 우주해적 코브라, 에어리어88 등등.
지금 드래곤볼이 연재를 시작하긴 했지만, 현재 소년점프에서의 순위는 10밖에 있는 관계로 제외시켰다.
곧 전설이 시작될 테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고 났더니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본에 원고를 가져다주고는 있지만, 일본의 사정에 대해 그나마 박식한 건 실버가 유일하다. 그러나 실버조차 나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그도 원고 작업하면서 슬쩍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아무튼 한참을 떠들다보니 어째 내가 변사라도 된 기분이다.
그때 이대봉이 화실에 들어오더니 '뭔데? 뭔데?'하며 같이 군중무리에 섞인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일본 최신의 정보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나중엔 날 잡아서 애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볼까?
그런데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박소미가 깜짝 놀라더니, 곁에 있던 실버에게 전화기를 건넨다.
"누군데?"
"일본사람 같은데, 알아듣질 못하겠어요."
"키도 선생?"
"아니요. 다른 분 같아요. 그리고 키도 선생님은 전화 걸면 한국어로 어설프게 인사는 해요."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난 실버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러던 중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변 인간들이 계속 재촉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곧 실버가 깜짝 놀라며 나를 부른다.
"왜?"
"토리야마 선생이다."
"토리야마……아키라?"
"어. 닥터 슬럼프 만화가."
그 때 화실이 조용해졌다.
곧바로 전화기로 달려가 수화기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