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47화 (147/425)

소년 히어로를 넘어 (7)

니시다의 화실.

- 5주 안으로 마무리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5주라……."

니시다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화기 너머에선 여전히 냉랭한 음성으로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딸깍.

전화가 끊어지자 니시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기댄다.

5주 1위를 해달라는 부탁이, 5주안에 그만뒀으면 한다는 말로 바뀌어 돌아왔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겠다는 담당의 전화였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5주 연속 달성하고 나면 또 적당한 잡지사를 찾아 연재 처를 옮길 생각이었으니까.

다만,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건 짐작하지 못했지만, 다소 황당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오타케가 정리해서 보내준 만화책들을 보고는 자신의 결과를 받아들였으니까.

이런 만화들이라면 자신의 순위가 그것 밖에 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그나저나 언제부터였을까.

만화를 그리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된 것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즐거웠던 적이 있기는 했을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생각 이상의 인기도 얻었고, 돈도 넘칠 만큼 충분히 벌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어떤지, 아무튼 열정을 잃어버렸다.

데뷔한지 12년.

만화라는 걸 제대로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오로지 '에스퍼 존' 단 하나만 그려 왔다.

에스퍼 존은 자신이 중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왔던 세계관이다. 그리고 연구회시절, 그것을 만화로 만들었고, 그것이 주간 파이어의 편집자 눈에 띄어 결국 그대로 데뷔작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경력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자신의 만화 경력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만화가 바로 에스퍼 존인 것이다.

만화는 연재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소년 주인공으로 인해 여성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셀 수 없을 정도의 팬레터와 선물까지 받았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고, 세상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으니, 당연히 완결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인기가 너무 많아서 일까..

그만두려는 그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출판사에서 좀 더 연재를 해야 한다며 그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에피소드를 늘려갔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것이 하나둘 쌓이고, 조금씩 판매부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연재를 끝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출판사에선 그런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연재를 마무리해야할 시기를 두 번이나 놓치고 나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억지로 연장해 나가다보니 스토리 자체도 힘을 잃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연재도 한 번씩 쉬게 되었다.

부정기 연재작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나서부터는 더 쉬는 날이 잣아졌다.

덕분에 어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게 되어 두 명을 빼고는 계속 사람을 바꿔가며 억지로 연재해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인기작이라 돈은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뭔가 자신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곳이라면 1위 따윈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국 이 꼴이 되고 말았다.

"……꼴이 말이 아니네."

헛웃음이 나온다.

"모두 퇴근해요."

어제부터 데생을 받지 못해 계속 대기 하고만 있던 어시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로 가방을 챙겨 인사를 하고는 화실을 나선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니시다가 잠시 혼자 화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흐린 날씨.

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니시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 그 너머에 있는 가게 앞에 서있는 남자.

우산을 쓴 채로 자신을 향해 노려보고 있다.

오오타케다.

담배를 입에 문채 그 모습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런데 오오타케가 자신에게 뭔가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아보는 걸 보면.

드르륵.

창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과 눈발이 화실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창밖을 향해 귀를 기울여 본다. 하지만 거리 때문인지 야외의 소음 때문인지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 화난 얼굴로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한 번도 자신을 향해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던 녀석이니까.

물었던 담배를 빼고는 오오타케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욕을 하려면, 가까이서 하라고!"

"……."

"안 들린다고!"

그러자 오오타케가 도로를 건너온다.

평소엔 거슬릴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놈이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미친 녀석아! 건널목으로 건너!"

그렇게 소리쳤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지, 그냥 도로를 건너온다. 물론 주변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저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라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어느새 2층의 화실 창가까지 다가온 오오타케가 소리쳤다.

"이렇게 끝내실 겁니까?"

"욕하는 거 아니었냐?"

"네? 욕이요?"

오오타케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아니야."

"……."

니시다가 피식 웃어보이자 오오타케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그러자 니시다가 그런 오오타케를 향해 말했다.

"네가 무슨 로미오냐? 주변을 보라고."

오오타케가 주변을 돌아보자, 길 가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다.

그 때문에 오오타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야, 길거리에서 소리치지 말고 올라와. 그리고 욕이든 뭐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 앞에서 해. 나까지 사람들 주목받게 하지 말고."

그 말에 오오타케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크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는 곧장 골목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니시다가 담배를 다시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그래, 어쩌면 네 덕분에 뭔가 길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

"망할, 그 자식 때문에 까먹은 돈이 얼마야? 아, 속 터져!"

전무가 버럭 소리치며 담배를 입에 물자 이사가 그에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진정하세요. 전무님. 그 자가 예상보다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나온 책이 30권이 넘고 총판매부수가 1300만부가 넘었다고 하지 않았어? 혹시 사기 아니야?"

"아닙니다. 정보는 정확합니다."

"그런데 왜 그래? 왜, 이런 삼류 잡지 만화가들도 못 이기냐고."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그것도 만화에선 메인이나 다름없는 소년지를 삼류잡지라고 말하자 이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하지만 곧 표정을 수습하며 웃었다.

"요즘 삼사라를 비롯해서 몇 작품은 꽤 알려진 인기작품이니까요. 아마도 그 정도의 작가도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5위가 뭐냐고, 5위가. 2위라면 어떻게 기대라도 하지, 5위면 완전히 끝난 거잖아."

"하지만, 계약해지와 함께 마무리하라고 하신 건, 좀……."

"자네, 지금 내 결정에 문제 있다고 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래도 혹시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됐어. 그런 놈은 이제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내치면 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던 이사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슬슬 자신이 줄을 잘 못 선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전무가 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사장님의 처남이다.

가제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툭하면 욕을 먹는 전무라도 그에게 붙어 있는 게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하는 짓을 봐서는 자신의 판단에 후회가 되고 있었다.

하는 일마다 회사의 발전과는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폐를 끼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사장 뒤를 이어 회사를 가지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물론 사내정치라는 것이 그렇지만, 지금은 회사가 성장해가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멍청한 결정을 계속 내리게 되면 결과적으로 회사를 위험하게 만든다.

미래를 봐서도 좋은 건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런 전무가 인기 작가인 니시다를 데려왔을 땐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을 보았요즘 같은 시대에 잡지사에서 인기 작가 한명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과도 좋게 나왔다.

소년 히어로의 판매부수가 몇 만부나 상승했으니까.

비록 그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좀 많이 쓰기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회사에도 큰 이익이 되는 일이다.

모처럼 회사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이라, 이젠 전무도 좀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그의 계획대로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어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물론 전무 본인이야, 자신의 사람을 제일 잘 나가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앉혀 세력을 더 크게 만들려는 건 이해하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또라이 같은 멍청이가 그렇게 힘들게 데려온 인기작가와의 계약 해지를 선언하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자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왜 그래?"

"아, 아닙니다. 머리가 좀 아파서."

"두통약 있는데, 먹을 텐가?"

"괜찮습니다. 참을 만합니다."

"그래? 그럼 관두고."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엔 어떤 작가를 데려오지? 혹시 자네, 아는 만화가 있어?"

"제가 만화 쪽엔 아는 게 있어야지요."

"아, 자네, 패션잡지 쪽 출신이지?"

"네."

"이사들 중에 만화 쪽 없어?"

"있긴 합니다만, 다시 인기 만화가를 데려오는 문제는 좀……."

"문제가 있나?"

아무것도 모르는 전무를 보고 있으니 속이 탔지만, 그래도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업계 관행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관행?"

"네. 만화나 소설 쪽에선 작가를 빼가는 게 일종의 금기시 되는 일이라."

"이번엔 가능했잖아."

"아, 이번 경우는 좀 특별한 경우라서요."

"특별해? 뭐가?"

"트러블이 있어서입니다. 쉽게 말해서 미운털이 박힌 케이스라."

"그런 사람을 또 찾으면 되지."

그런 사람이 흔하겠냐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똑똑.

문에서 노크소리가 울렸다.

"뭐야?"

안으로 들어온 여비서가 인사하며 말했다.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뭐?"

전무와 이사가 화들짝 놀라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전무는 자신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서둘러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때 여비서가 문을 열자 곧바로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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