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46화 (146/425)
  • 소년 히어로를 넘어 (6)

    무카이의 화실.

    야지마가 자그마한 화실로 들어오며 어시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곧장 작업 중이던 무카이에게 책을 내민다.

    "이거, 이번 주 나올 책."

    "본 책은 내일 발행이지?"

    "어. 그래."

    샘플로 하루 일찍 나온 주간소년 히어로다.

    이렇게 미리 샘플로 찍어낸 잡지는 먼저 편집자들에게 들어가고, 각 직원들은 담당하고 있는 만화가에게 가져다주거나, 혹은 먼저 책에서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는 용으로 사용된다.

    샘플로 나온 잡지를 받은 무카이가 느긋하게 표지를 살핀다.

    표지에 나온 그림은 저번에 이어 다시 에스퍼 존이다.

    편집부에서 대놓고 밀어주고 있다는 인상이 강한 탓에 표정이 썩 좋지 못하다.

    "너무하네. 또 권두컬러냐?"

    "날 왜 노려봐?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편집부가 너무 노골적으로 밀어주는거 아니야?"

    "너무 그러지마. 편집장님도 이거 반대하셨는데, 전무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정이니까."

    "그래서 2주 연속 권두컬러야?"

    "……2주는 아니고."

    "그럼?"

    "3주……."

    그 말에 무카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곧 잡지를 펼쳤다.

    컬러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공을 들인 만화가 처음부터 시선을 끌어간다.

    놀라울 정도의 퀄리티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종이를 넘겨가던 무카이가 곧 신중한 얼굴로 천천히 읽어나간다.

    그런 무카이를 어시들이 힐끔거렸다.

    그들도 이번 주에 나오는 소년 히어로 가 너무 궁금했던 탓이다.

    요즘 소년 히어로는 어시들에게도 굉장한 관심거리였다.

    이전에도 몇 개의 작품이 선두다툼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만큼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 에스퍼 존이 연재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땐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에스퍼 존이 연재하던 주간 파이어와 소년 히어로와의 격차는 그만큼 큰 것도 이유였지만, 일단 에스퍼 존이라는 만화가 굳이 이런 하급 잡지에 연재를 시작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정말로 연재가 결정 나자, 만화 쪽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소년 히어로에서 에스퍼존의 독주를 예상했다.

    그런데 엊그제 나온 앙케이트 순위에서 3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앙케이트는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지만, 만화의 연재순서만 보면 대략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 나올 잡지에서도 권두 컬러인 이상 독자들로서는 순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방금 담당의 말을 들어보니 다음 주까지 권두 컬러라면 그때도 일반인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화실에서 일하는 그들이야 내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순위를 들을 수 있지만, 아무튼 에스퍼 존이 3위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충격이었다.

    당연히 1위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림의 퀄리티도 상당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그래서 이번 주에 나올 잡지가 너무 궁금했다.

    샘플이 하루 일찍 나오는 탓에 미리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지금 눈앞에 작업보다 잡지가 더 신경 쓰이고 있었다.

    그때 에스퍼 존을 읽고 있던 무카이가 잡지를 덮는다.

    다 읽은 모양이다.

    "다 읽었어?"

    "어."

    "어때?"

    "어떻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컬러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면 완전 반칙이지. 그림은 정말 엄청나네."

    약간은 허탈해하는 표정이다.

    그런 무카이를 보고 있으니 야지마는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때 어시 한명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거 좀 읽어도 될까요?"

    "아, 그래."

    그렇게 대답한 무카이가 어시에게 책을 건넨다.

    그러자 어시들이 모두 일손을 멈추고 책을 받은 이에게 몰려들었다.

    "같이 좀 봐요."

    "나도 같이 봐."

    잡지 하나를 두고 달려드는 어시들의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무카이에게 물었다.

    "내용은 어때?"

    그 말에 무카이가 눈빛을 빛냈다.

    "솔직히 화려한 그림은 대단하지만, 내용은 그다지……. 확신은 없지만, 이번 편에선 내가 이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던데. 이번 중원요리왕은 진짜 재밌었으니까. 특히 요리가 게임처럼 아이템 역할을 하니까,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갑자기 왜 그래? 안하던 칭찬을 다하고."

    "칭찬한 건 스토리야. 착각하지마라."

    "쳇, 냉정하긴."

    그렇게 말하더니 무카이가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건 사실이지. 서유기나 봉신 연의와는 또 다른 스타일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아무튼 이번 편부터는 순위도 좀 끌어올려야지. 에스퍼 존은 생각보다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인기는 무시 못해. 그러니까 방심하면 안 돼."

    "방심은……. 내가 그럴 입장이라도 돼? 지금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그나저나 오래전에 키도 선생님 화실에서 일할 때, 어쩌다 선생님 술을 잔뜩 마시면 꼭 에스퍼 존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 예전에 같은 만화연구회에서 활동했다는 얘기 들었어. 그런데 키도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그런 얘기했다고?"

    야지마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도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같은 사람이야기를 계속 했다는 것이 언뜻 상상이 가지 않아서였다.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 있었다고 하든?"

    "그건 나도 몰라. 그냥, 늘 '그 자식은 만화를 우습게 본단 말이지, 그게 마음에 안들어.' 이렇게만 말씀하셨으니까."

    그제야 뭔가 알 것 같다는 느낌에 머리를 끄덕였다.

    "뭔가, 키도 선생님다운 말이네. 하긴, 연구회 시절에 그렸던 동인지 만화가가 곧바로 연재까지 이어졌으니, 거기다 니시다 선생님의 평소 태도로 보면 키도 선생님이 열 받을 만도 했고."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싫어한 느낌이야."

    "그건 그러네."

    그때, 어시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와, 에스퍼 존, 그림은 정말 죽인다."

    "그림만 대단하면 뭐해, 내용이 없잖아, 내용이."

    "맞아.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도 뭔가 확 와 닿는 게 없네. 차라리 우리 중원요리왕이 더 재밌는 것 같다."

    "그림도 밀리지는 않지."

    "그나저나, 이번 파시엔시아도 엄청 재밌네. 2부 리그로 승격하는 내용도 그렇지만, 다른 1부 리그 팀들이 이젠 강팀으로 인정해 버리는 장면 보니까 짜릿한 맛도 있고,"

    "난 진심의 남자가 심상치 않아. 솔직히 메기 장면이 나올 때만 해도 뜬금없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것도 진행되면서 엄청 흥미진진해."

    "삼사라는 어떻고요. 이야기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니까, 엄청 재밌던데."

    "아, 며칠 있으면 삼사라 2권 나온다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일 재미있는 건 삼사라야."

    "그건 동감."

    그때 어시들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무카이와 야지마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란 그들은 서둘러 책을 내려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머리를 처박고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

    가정부 아줌마가 종이 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오자 니시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뭡니까?"

    "소포에요. 보낸 사람은…… 오오타케씨에요."

    "거기 테이블에 놔두세요."

    "네."

    가정부가 박스를 내려놓고 거실을 빠져져 나가자, 담배를 피우던 니시다가 표정을 찌푸렸다.

    다음 스토리를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또 뭘 쓸데없이 보낸 걸까.

    그냥 버려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박스를 열어보니, 단행본 책 몇 권과 잡지에서 잘라 붙인 책들이 몇 권 있다.

    꺼내서 확인해보니, 소년 히어로에 연재중인 삼사라, 파시엔시아, 진심의 남자 그리고 중원요리왕이다.

    분량이 많을까봐 일일이 책을 잘라 종류별로 묶어 만들어 한 번에 다 읽어볼 수 있게 정리가 되어 있다.

    그리고 박스에 동봉된 메모지가 보인다.

    [지금 선생님과 경쟁중인 작품들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꼭,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끈질기네, 이 녀석."

    혀를 한번 쯧 하며 차고는 박스를 한참 내려다보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푹쉬더니 가장 먼저 보이는 삼사라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평소 다른 작가들의 만화를 별로 보는 편이 아닌 그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은 어쩐지 오오타케의 말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금만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읽어보겠다는 그의 생각은 곧 금방 바뀌고 말았다.

    "……."

    읽다보니 이건 자신이 생각하던 수준의 만화가 아니었다.

    다른 만화에 관심이 없던 그도 삼사라에 대해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래서 제법 그림에 재능을 가진 신인이 등장했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림도 대단했다.

    마치 동몽이나, 아키라가 처음 나왔을 때의 충격과 맞먹을 정도로 혁신적인 연출에다. 퀄리티도 상당했다. 그런 만화가 연재를 거듭할수록 보기 좋게 단순화시킨 것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놀랍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아키라처럼 연출에만 기댄 지루한 이야기가 아닌 흥미로운 소재와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 거기다 얼마 전에 연재를 시작한 다크 프린세스와 연계하며 진행하는 방법이 충격적일 정도로 대단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흥미진진해서 중간에 끊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두 권 정도의 분량을 다 읽고 나자, 저도 모르게 아쉬운 한숨이 나온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삼사라가 놀라운 만화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았하지만, 다른 만화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연재를 시작했다는 중원요리 왕 같은 건 특히 더.

    물론 키도가 그린 진심의 남자 따위는 한물간 전형적인 열혈만화라고 생각했고, 그래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생각들도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모두 각자 완성도가 출중했다.

    자신이 전에 연재하던 주간 파이어 경쟁작들 보다 더 재밌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저 삼류 쓰레기잡지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이만한 완성도의 만화가 이렇게 많이 연재를 하고 있다는 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

    한 작품도 자신이 만만하게 볼 만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

    "앙케이트 결과입니다."

    직원이 종이를 들고 나타나자 소년 히어로 편집부 직원 모두가 그에게 우르르몰려들었다.

    "나 먼저 줘."

    "나부터 줘."

    "나."

    직원이 얼떨결에 다가온 직원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곧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이번엔 5위?"

    "뭐?"

    다른 직원들도 서둘러 종이를 살펴본다.

    "와, 정말 5위네. 어쩌냐? 닛타 씨."

    "그러게."

    "그나저나 천하의 에스퍼 존이 5위라니 정말 충격이네."

    "에스퍼 존이 망한 건지. 아니면 다른 작품들이 대단한 건지……."

    "요즘 잡지 엄청나게 팔리잖아. 이젠 판매부수만으로 따지면 중견잡지야."

    "오호, 뭔가 뿌듯한데?"

    그때 지로도 서둘러 종이를 받아 순위를 살폈다.

    그리고 순위를 확인하고는 주먹을 불끈쥐었다.

    아싸!

    삼사라가 이번에도 1위, 그리고 파시엔시아가 이번엔 3위다.

    그때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오던 닛타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다.

    "이봐, 나도 줘!"

    그러자 종이를 나눠주던 직원이 닛타에게도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든 닛타의 표정이 곧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젠장, 망했다."

    아마도 다시 전무실에 불려갈 것이다.

    좋은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5위라는 순위가 나온 이상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이다.

    일그러진 얼굴로 가방을 챙겨 든 후 곧장 편집부를 나섰다.

    오늘 같은 날 편집부에 있어봐야, 좋은 꼴을 볼 리는 없을 테니, 일단 니시다의 화실이라도 찾아가 뭔가 대책을 세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가방을 챙겨 나서는데, 그때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닛타 팀장님."

    "……."

    놀란 닛타가 머리를 돌렸다.

    익숙한 여자의 얼굴이다.

    예쁜 얼굴, 상냥한 미소까지 짓고 있지만, 닛타에겐 결코 반가운 얼굴이 아니다.

    "전무님이 찾으시는데요."

    전무의 여비서.

    그녀는 그 말만 하고선 곧바로 몸을 돌려 편집부를 나간다.

    순간 닛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바닥에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