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 히어로를 넘어 (4) >
저번 주는 이제까지와 달리 정말 작품간의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삼사라, 진심의 남자, 파시엔시아 이렇게 3파전 이었던 선두다툼에 괴물같은 작품이 하나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에스퍼 존,
인기잡지인 주간 파이어 존에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고 있던 만화로, 곧 애니화 발표까지 된 만화다.
연재는 10년이지만, 만화 속 세계관에서는 이미 수백 년이 흘렀고, 스케일도 전 우주적이라 어마어마하다.
덕분에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마다 두 번씩 열리는 코미케에선 빠짐없이 관련 동인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더불어 코스프레 역시 꾸준히 나올 정도였으니 그런 만화가 소년 히어로에 연재를 시작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팬들은 '왜 하필 소년 히어로냐?'며 불만 섞인 항의 전화를 걸어올 정도로 편집부가 시끄럽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럼 인기 만화가 연재를 시작했으니 앙케이트 순위에 지각변동이 생길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하던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주 역시 삼사라가 1위를 지켜내고 말았다.
1위 삼사라.
2위 진심의 남자.
3위 에스퍼 존.
4위 파시엔시아.
5위 중원요리왕.
6위…….
그런데 충격적인 건 에스퍼 존이 삼사라뿐만 아니라 진심의 남자에게까지 밀려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편집부에서는 이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와, 이건 정말 의외인데요? 에스퍼 존이 연재하면 백프로 단번에 1위를 차지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그런데 결과를 보니까 놀랍네."
"앙케이트를 다 까면 결과가 다르지 않올까요?"
"글쎄, 어쩌면 그럴지도."
앙케이트 순위라는 게 모든 표를 다 확인하고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2,000장의 엽서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탓에 정확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이다.
일일이 손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보니 여기에 무작정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많은 출판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앙케이트 순위를 결정한다.
아무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외의 결과라는 건 변함이 없다.
앙케이트 순위표를 확인하던 야지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진심의 남자랑 겨우 2표차이야. 아무리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3위라니."
"독자 팬레터도 엄청나요. 저길 보세요."
지로가 한쪽을 향해 턱짓했다.
니시다의 담당인 닛타 팀장이 커다란 박스를 앞에 두고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네,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위와도 표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어요. 거기다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는 게 독자들에게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네. 그럼요. 사실, 홍보가 부족했으니까요. 저희가 미리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네, 네. 아, 팬레터는 지금 제가 받아 두었거든요. 지금 당장 화실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요?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닛타가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끝내고는 곧장 팬레터 박스를 들고 서둘러 편집부를 빠져나간다.
그런 닛타 팀장을 바라보는 편집부 직원들의 눈빛이 곱지 않다.
그가 이번에 새로운 잡지의 편집장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그런 분위기에도 닛타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생활하고 있다. 확실한 출세라인을 잡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늘 실실 웃고 다니는 분위기였다.
그런 닛타를 보는 부편집장의 표정도 살벌하다.
부편집장이 편집장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며 불만을 내뱉지만, 편집장은 그런 그의 어깨만 툭툭 치며 피식 웃을 뿐이다.
"편집장님, 지금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거다."
"왜 안 그러겠어요. 저라면 정말 짜증나서 돌아버렸을 걸요. 그나저나 전무님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편집장님이 부사장님 쪽이라도 그렇지. 너무하는 거 아닌가?"
"사내정치가 다 그렇지. 외부에서 보면 다 미친 짓이니까. 그리고 요즘 미쯔다쇼텐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잖아. 이럴 때 반대파 세력들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그 말에 지로가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의자를 위로 젖히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전, 모르겠어요. 사내정치라는 거."
"당연하지. 우리 같은 말단 직원들한테는 먼 세계의 이야기니까."
"그래도 대단하네요. 닛타 팀장님은, 이런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출세를 하려는 의지가 말이에요."
"뭐, 애초에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야. 그리고 저런 사람 부러워 하지 마. 너 답지 않아."
"부러워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는 거지."
"아."
고개를 야지마가 닛타가 나갔던 문 쪽을 바라보았다.
***
니시다의 자택.
"정말 3위아는 겁니까?"
"네. 아까. 전화 받은 어시 분께 말씀드렸는데."
"듣긴 했어요. 하지만 좀 놀라서."
니시다의 표정이 좋지 않자 닛타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도 단번에 3위가 되셨으니까. 나쁘지 않은 결과입니다."
"나쁘지 않다고요?"
니시다가 더 사나운 눈빛으로 묻자 닛타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러나 자신은 담당으로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삼사라는 소년 히어로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거기다 최근 다크 프린세스와 연계한 이벤트 때문에……."
"삼사라에 대해선 대충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어요. 요즘 굉장히 잘 나간다는 것도. 하지만, 진심의 남자까지 내가 따라잡지 못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
"진심의 남자……. 말인가요?"
닛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니시다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건 됐어요."
"저기, 왜 진심의 남자만 유독……."
니시다가 손을 들어 그런 닛타의 말을 끊었다.
"됐으니까, 그 말은 그만하죠.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닛타가 서둘러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괜히 심기를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럼 바쁘니까."
니시다의 말에 움찔 놀라더니 서둘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닛타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거실을 빠져나간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닛타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는데, 가정부가 문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죄송해요. 선생님께서 오오타케 씨는 들이지 말라고 하셔서."
"괜찮습니다. 이것만 선생님께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몇 장의 종이를 가정부에게 건넨다.
"저기, 곤란한데……."
"부탁드릴게요."
"……?"
스쳐지나가던 닛타가 힐끔거리다 가정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서둘러 그녀에게 인사했다.
"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조심히 가세요."
"네."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닛타는 계속 남자 쪽을 힐끔거린다.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저 종이는?
그러다 곧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거 두었다.
뭐 니시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려는 출판사의 직원이겠지.
지금이야 잡지사에선 조금이라도 인지도 있는 만화가를 데려가려고 전쟁을 벌이는 건 일상 같은 일이니까.
아니면, 이전 잡지사거나,
이전 잡지사?
곧장 다시 시선을 돌린다.
이미 대문은 닫혔고, 사정하던 남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서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그런가?
거물급 만화가를 빼앗긴 잡지사는 지금쯤 완전히 비상사태일 것이다.
아무리 주간 파이어 같은 중견급 잡지라도 니시다 정도의 만화가가 빠진 건 타격이 클 테니까.
힘없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닛타가 피식하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
"이거, 오오타게 씨가 드리라고……."
"이건 또 왜……."
불만 섞인 음성으로 말하려던 니시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어쨌건 그녀가 오오타케가 내민 종이를 뿌리칠 정도로 매몰찬 여자는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큰일도 아니고.
"됐으니까, 이리 줘요."
가정부가 오오타케에게 받은 종이를 다시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자 곧장 그녀는 거실을 빠져나간다.
종이를 펼쳐본다.
손으로 적은 글이다.
편지인가? 싶어 읽어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조금 더 읽어가다 보니, 에스퍼 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적혀있다.
[……갑작스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파비안의 설정 상 두 단계는 아래로 예상되는 노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밸런스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필트 아이언 프리즌에서 석방된 모리츠와 연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추가하는 겁니다. 모리츠는 누가 뭐래도 머리가 비상하고, 파비안의 허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읽어나가던 니시다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사실, 그도 최근 전개에 무리수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정확히 집어내고,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으니 어쩐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제법이네."
주간 파이어에 있을 때, 오오타케가 니시다의 담당으로 바뀐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기존의 담당이 출판사 내의 다른 잡지 편집장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신입인 오오타케가 니시다의 담당이 된 것이다.
처음 일 년간은 그야말로 욕받이로서의 역할만 했다.
초짜를 자신에게 붙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니시다는 허구한 날 오오타케를 들들 볶아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오타케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뭐가 부족한지를 잘 알고는 더 열심히 에스퍼 존을 공부하며 의견을 말해왔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자료라면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다 찾아다닐 정도로 열심히였다.
그래서 조금씩 오오타케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가끔이지만 오오타케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새로운 신작들에게 조금씩 밀리며 떨어지기 시작한 인기를 단번에 뒤집을 수는 없었다. 더불어 주간 파이어의 새로운 편집장이 "인기도 예전 같지 않으신데." 라는 말을 한 덕분에 결국 떠나기로 결심이 선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옮겨오고 보니 마음이 더 휑하게만 느껴진다.
담당이라는 작자는 비위맞추기에만 급급할 뿐 담당으로서의 능력은 제로에 가깝고, 출판사도 그저 5주 연속 1위만 해주면 그 이후는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글을 읽어나가는데 마지막에 적혀있는 글이 그의 눈에 크게 들어온다.
[……삼사라의 경우엔, 지금의 에스퍼존으로도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상대일겁니다. 스토리 그림 그 어떤 것도 만만하게 생각하셔서는 곤란합니다. 만약 지금처럼 방심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시면 결코 단 한번도 1위는 차지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해서…….]
순간 니시다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 자식. 뭐라는 거야!"
곧바로 손에 쥐어졌던 종이를 확 구겨버렸다.
그동안 만화에 대해 좀 눈이 떠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나 보다.
겨우 이런 삼류잡지에 연재중인 만화 따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