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40화 (140/425)
  • < 삼사라연구회와 함께 >

    부우웅.

    태우고 왔던 택시가 떠나자마자 우리를 알아본 미도리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왔구나. 그런데 어느 쪽?"

    "나."

    선희가 손을 슬쩍 들며 말하자 그제야 미도리가 손을 꽉 잡으며 길을 안내한다.

    "자자, 모두 가요."

    선희가 미도리의 손에 이끌려 사람들이 많은 인파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그곳을 뚫고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에 쭉 이어진 가게들.

    쇼윈도가 화려하다.

    황금접시에 들어있는 음식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이게 모두 모형인 모양이다.

    내겐 익숙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절 한국에선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에선이 시절에도 모형음식이 있다니, 확실히 한국과의 격차가 내 생각이상으로 큰 것 같다.

    아무튼 도시의 골목답게 고급음식점이 즐비한 먹자골목을 지나가자 한산한 가게로 들어간다. 그렇게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카페가 나온다.

    생각보다 실내 장식이 좀 특별하다.

    한쪽 벽에 있는 책장에 프라모델들이 장식되어 있고, 비어있는 벽 쪽엔 유명만화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있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바람계곡의 나 우시카, 기동전사 건담 등등…….

    모르긴 해도 카페주인이 오타쿠인 모양이다.

    우리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 창가 쪽으로 가자 그쪽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젊은 남녀가 우리 쪽을 보며 손을 흔든다. 정확히는 미도리를 향한 거겠지만.

    미도리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마자 묻었다.

    "오늘은 빨리 모였네?"

    "당연하지, 그림 천재소녀에 모두 궁금했으니까."

    "옆에, 그 소녀?"

    "어? 그런데 얼굴이 똑같네? 쌍둥이?"

    "어. 그리고 이쪽 분은 오빠래."

    "안녕하세요."

    모두가 나와 쌍둥이들에게 인사를 하자 우리도 같이 인사를 한다.

    그들을 테이블을 한 개 더 붙여서 의자도 몇 개 더 만들어 자리를 만들자 의자를 잡고 앉는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쪽은 어느 쪽? 혹시 둘 다?"

    "아니, 이쪽이 맞아."

    "그림 잘 그리는 천재소녀라더니 아니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라니. 여기 증거를 보고도 그런 소리야?"

    미도리가 자신의 가방에서 그림을 꺼내 내밀며 말한다.

    그런데 원본이 아니라 복사한 거다.

    평소에도 그림을 가지고 다니는 건가?

    그런데 그런 미도리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천재소녀가 아니라 천재미소녀라고."

    그렇게 남자가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뭐야 이 녀석' 하는 표정으로 쏘아본다.

    "기분 나빴다면 내가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쟤가 눈치가 없어서."

    사람들이 하나둘 사과하자 선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괜찮아요."

    "맞아요."

    경회는 가만히 있겠다더니 곧장 선회를 따라 같이 대답한다.

    미소녀라는 말에 제정신이 아닌 거지.

    아무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연구회 이야기로 넘어간다.

    과연 삼사라연구회라더니 삼사라 관련개러지 킷도 몇 개 보인다.

    일단 공식적으로 캐릭터 상품이 나온 적이 없으니 보나마나 개인적으로 만든 개러지 킷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퀄리티가 상당해서 개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힘든 수준이다.

    주인공 켄과 몇 개의 좀비가 생각이상의 완성도다.

    확실히 삼사라연구회다운 분위기는 맞네.

    미도리가 따로 시켜둔 파르페 세 개를 직원이 가져다준다.

    여기에서 가장 맛있는 거란다.

    아무튼 파르페를 보자 쌍둥이들은 그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바라보더니 곧 스푼을 이용해 한 숟갈 입에 넣는다.

    둘 다 조각케이크를 먹었을 때랑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겨울에 시원한 파르페가 또 맛이 일품이지.

    역시 모임 따위에 신경을 끊고 오직 파르페를 먹는데 만 열중한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나는 쌍둥이들을 슬쩍 바라보다 곧 관심을 연구회 사람들의 대화로 옮겼다.

    "그러니까, 이번 이스터 에그엔 비밀이 있다니까?"

    "네 설명도 그럴듯하긴 하지만,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어."

    "그건 그렇지만, 분명 나중에 따로 그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

    무슨 얘기지?

    이번 이스터 에그의 비밀이라니.

    일단 대화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켄의 흔적을 잘 보라고."

    그렇게 말하며 만화를 복사한 종이 몇 장을 모두에게 나눠준다.

    뭐야, 본격적이네?

    그냥 말로만 연구회라고 한건 아니구나.

    "흔적의 모양이 어때?"

    "모르겠는데?"

    "나도."

    "흔적의 모양이 무슨 문자같이 생기지 않았어?"

    "문자? 어떤 문자?"

    "이런 문자가 있어? 무슨 그림 같은데?"

    사람들의 반응을 듣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 뒤집어서 보면 분명 산스크리트어야."

    "힌디어?"

    "정말?"

    "어. 내가 일부러 힌디어 사전까지 따로 찾아봤거든? 약간 지워진 듯한 모양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산스크리트어 맞아."

    "그래서?"

    "무슨 뜻인지 말해줘. 빨리."

    "궁금해, 궁금해."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야차가 깨어날 것이다.'야."

    "뭐? 야차?"

    "그거, 불교에 나오는 귀신 아니야?"

    "맞아."

    모두 놀라는 눈빛이다.

    나도 놀랐다.

    설마 저런 식으로 해석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당연하게도 그 정도까지 계산하고 만든 흔적은 아니다. 애초에 그 흔적에 산스크리트어를 넣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선희가 일부러 넣은 게 아니라면, 그런데 선희 저 녀석…….

    왜 파르페를 먹다말고 날 바라보는 거야?

    어? 설마?

    내가 선희에게 입모양으로 '설마 맞아?' 라고 했더니, 선희가 슬쩍 머리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설정 때문에 지로에게 부탁했던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보내 달라고 한 적이 있긴 했었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인도신화, 산스크리트어 등에서 차용한 것이기는 해도 그 정도까지 세세한 설정을 부여하진 않았는데.

    그때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산스크리트어……. 선희가 몇 번 훑어보던 기억이 난다.

    그땐 단순히 산스크리트어가 예쁘다며 그림처럼 사용하는 줄 알았다. 무기, 보석, 장신구등에 그 문양들을 많이 사용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다 의미를 가지고 넣었던 글자였던 걸까?

    이건 정말 나도 모르는 일이라 선희를 다시 바라본다.

    그런데 남자의 말이 결국 거기까지 번져나간다.

    "산스크리트어가 사용된 곳은 이거 말고도 다크 프린세스에서 여러 번 등장했어. 나도 아직 잘 모르는 글자들이지만 칼파나의 귀걸이엔 '아그네아'라고 적혀있어."

    "아그네아? 그게 뭔데?"

    "내가 알기론 인도 신화에 나오는 초병기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신화속의 표현으로 하자면 뭐 핵폭탄급 무기? 물론 삼사라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된 건지는 모르지만."

    핵폭탄급 무기라고?

    내가 전에 귀걸이는 후반에 중요한 곳에서 딱 한번 사용될 강력한 무기라는 이야기를 선희에게 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힌트를 숨겨놨을 줄이야.

    이스터 에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선희의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저 친구의 예상이 맞았던 건지 살짝 표정이 찌푸려져 있다.

    뭔가 숨겨 논 물건이 들켰을 때의 표정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도 이미 파르페는 다 사라지고 없다.

    내 것도 함께.

    아까 대화에 열중하느라 경희가 뭔가를 물었을 때 그냥 머리만 끄덕였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거 우리 먹어도 돼?'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걸로도 모자랐는지 쌍둥이들은 스푼만 할짝거리고 있다.

    이번엔 내가 직원을 불러 파르페 두 개를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자 경희가 환호 한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모두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설마, 단순히 문양이라고만 생각했는 데, 그런 게 숨어 있을 거라고는 정말 예상 못했어."

    "맞아. 정말 우치다는 대단하다니까,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아낸 거야?"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게 더 많아."

    "와, 무슨 레이더스 내용 같다. 숨겨진 보물찾기잖아."

    "충격이다. 충격."

    솔직히 여기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오히려 나일 거다.

    내가 만든 스토리였고 앞으로 전개를 어느 정도 정해둔 상황이긴 하지만, 설마 만화 속에 이런 것들이 구석구석 숨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물론 물어봤다면 알려는 줬겠지만, 뭘 알아야 물어보든 말든 하지.

    아무튼 삼사라연구회에서 내가 뭔가를 알아내게 되다니.

    뭔가 불편한 묘한 감정이 드는가하면 한편으로는 내가 오빠라서 그런지 선회가 대견하기도 하고, 혼란하다, 혼란해.

    어쨌건 나중에 따로 그 단어들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사용된 건지 정도는 물어봐야겠다.

    내가 더 궁금하니까.

    그 이후로의 대화엔 그리 특별한 건 없었다.

    대부분 세계관에 대한 추측이고, 어느 정도 맞춘 것도 있지만, 상당부분 잘못된 분석도 존재했다.

    가령, 칼파나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다거나 혹은 켄이 원래는 림보 출신이라는 것 등등.

    이런 내용들은 거의 다 그럴듯한 함정으로 만든 이야기에 속은 탓이다.

    물론 여기 회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으로 나뉘는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서 내가 힌트를 좀 주기로 했다.

    내가 몰랐던 사실도 알았으니 그 정도는 내가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켄이 궁술을 익혔다는 건 중요한 실마리가 아닐까요?"

    "네? 궁술요?"

    "아, 맞다. 1권 끝에 궁술을 새로 익혔지. 그런데 그거 그냥 보조 능력으로 익힌 것 같던데."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주 무기는 창이잖아요."

    "그럼요. 창이죠."

    "이번에 등장한 카르나가 가진 무기가 아스트라잖아요."

    "아, 그거. 소환무기 말이죠?"

    "네"

    "어? 설마?"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르나의 활인 아스트라가 얼마나 강한 무기인지, 화실에서도 이 무기를 사기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주인공도 감당하기 힘든 무기니까.

    아무튼 그 얘기에 모두가 발작을 한다.

    "이제까지 켄은 8왕의 무기를 얻은 적이 없어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설마, 켄이 그 아스트라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아, 그러고 보니, 그 궁술을 익힐 때 조건 같은 게 있었잖아."

    "맞다."

    이젠 자기들끼리 왜 내말대로 될 것인지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모두 적어도 삼사라를 수십 번 이상씩 읽은 사람들이라 스쳐 지나는 대사도 놓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넘어 단행본을 꺼내는 사람, 연재분을 찢어 따로 책으로 묶어 가져온 사람도 있다.

    그렇게 대화는 더더욱 빠져들어 가고 모두가 열을 올리는 동안 두 번째 가져왔던 파르페도 완전히 동이 나 있다.

    이 녀석들은 키도의 집에서 그렇게 많이 먹고도 모자란 것일까?

    평소엔 크게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맛있는 음식만큼은 정말 전투적으로 먹어댄다.

    그렇게 모두가 대화에 열을 올리는 사이 선희가 노트와 연필을 꺼내더니 그림을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대화의 내용에 몰입한 사람들은 그런 선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대화에 빠져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덕분에 즐거웠어요. 그런데 이젠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참, 고등학생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저희도 재밌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면서 선희가 미도리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노트는 선희가 일본에 온 후에 심심할 때 그림을 그리던 연습장이다.

    그것을 미도리에게 준 것이다.

    "이게 뭐니?"

    "내가 그린 거."

    "어. 정말? 고마워."

    어지간히도 미도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 잘 가."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나와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도로가로 걸어가며 선희에게 말했다.

    "너에게 물어볼 말이 참 많구나."

    "나 저거 먹고 싶어."

    "뭐?"

    고개를 돌려보니 길거리에 파는 타코야키다.

    "저거 나도 먹을래."

    "에휴. 그래라."

    "앗싸!"

    두 녀석이 서둘러 가게 쪽으로 달려간다.

    그래, 뭐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물어봐도 되겠지.

    ***

    세 사람이 카페를 나서고 난 뒤 미도리가 노트를 펼친다.

    그리고 펼치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

    전에 오무를 그려줬을 때부터 엄청난 실력인 건 알았지만 이번 거 그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노트를 넘기는데, 그곳에 있는 그림들은 죄다 다크 프린세스와 관련된 것들이 칼파나의 각종 복장, 아예 만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파티용 드레스와 장신구들이 멋지게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다.

    캐릭터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 본 작가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미도리 곁에 있던 남자가 그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거, 뭐야? 그림이 똑같네? 아니, 다크 프린세스에 등장하지도 않는 건데, 어째서 익숙하지? 과연 그림천재소녀라더니."

    "어디? 나도 보자."

    "나도 나도."

    사람들이 노트에 관심을 가지며 몰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얼어버렸다.

    "이거, 원작가가 그린 그림이라해도 믿을 것 같은데?"

    "그래. 데생이 너무 능숙하고 놀라울 정도로 그림체가 같아."

    "……설마, 아니겠지?"

    "아, 그러고 보니. 걔 이름이…… 사니였는데."

    "사니? 이름이 똑같네."

    "그러게. 하하"

    "하하하."

    "하하."

    "하…… 어?"

    "어?"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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