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38화 (138/425)

<삼사라 OVA (3)>

"삼사라연구회?"

선희가 묻자 미도리가 머리를 끄덕였다.

"응."

"삼사라 좋아해?"

"당연하지. 그러니까 연구회를 만든 거고, 얼마나 재밌는데. 혹시 너도 삼사라 좋아하니?"

미도리가 그렇게 묻자 선희가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입 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답했다.

"좋아해. 엄청."

"그러고 보니, 너 삼사라 만화가랑 이름도 같네? 이거 진짜 인연인가보다. 네 실력이면 가능할 지도 모르고."

"......."

"요즘 삼사라는 정말 최고야. 다크 프린 세스 때문에 요즘 연구회 애들 모였다하면 이스터 에그 이야기로 하루를 보낸다니까. 그 때문에 요즘 모임도 예전보다 더 재밌고, 얼마 전에 열린 코미케에서도 삼사라 동인지 만들어서 엄청 팔았어."

그 말을 듣고 나자 코미케가 8월과 12월에 열린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 팔다 남은 동인지도 몇 권 있는 데, 네가 우리 삼사라연구회에 들어오면 그거 그냥 줄게. 그러니까 어때? 끌리지 않니?"

"......"

순간 선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하기야, 삼사라를 그리는 만화가더러 연구회에 들어오라고 했으니, 당연한 반응인가?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며 웃자, 미도리가 슬쩍 나를 돌아본다.

"크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자 미도리가 다시 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안 들어올래?"

"안 돼."

"왜?"

"나, 멀리 살아."

"멀다고?"

"응."

"혹시 오키나와?"

"비슷해."

비슷하지는 않지.

그런데 미도리는 납득했는지 알만하다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서 그동안 못 봤던 거구나."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그래도 뭐 이렇게 납득해주면 고마운 거고.

"그럼 언제까지 있는데?"

"모레까지."

"그럼, 내일 시간 있니?"

미도리의 질문에 다시 선희가 날 돌아본다.

그래서 내가 대신 대답해 줬다.

"내일 저녁쯤이면 될 것 같은데, 모레면 돌아가야 하니까."

내 말을 들은 미도리가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저녁 7시쯤에 여기서 만날수 있어요?"

미도리가 내게 묻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럼 꼭 만나자. 알겠지? 사니."

"내일 뭐하게?"

"내일 삼사라연구회 모임이 있거든, 거기 한번 들러줘. 예전에 만났던 애들 말고 다른 애들이야. 삼사라 엄청 좋아하는 애들인데, 네가 삼사라 좋아하면 꽤 재미있을 거야. 괜찮지?"

"응."

"그래, 그럼. 내일 만나, 잘 가고."

그렇게 말하며 내게 인사를 살짝 하고는 선희와 경희에게 손을 흔들며 걸어간다.

경희는 멀리 사라지는 미도리를 보며 내게 서둘러 물었다.

"뭐야? 삼사라연구회? 그런 게 있어?"

경희도 이젠 제법 일본어가 많이 늘었구나.

말을 거의 다 알아들은 모양이다.

"몰라,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니까."

"와, 대단하다. 완전 스타네, 스타. 그것도 일본에 팬들을 거느린 미국영화 배우같아."

조용하던 경희가 다시 호들갑을 떨어댄다.

혹시라도 어설픈 일본어를 구사하다가 괜히 한국인인 게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판단했겠지.

사실, 이 부분은 내가 미리 한국을 떠날 때 말해둔 부분이라, 그것을 기억하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도 본명까지 숨기며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시대다.

그런 때에 굳이 한국인임을 밝힐 이유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고, 인터넷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때이니 소문이 쉽게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때문에 괴소문이 넘치던 시대 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 나도 끼워줄 거지?"

"넌 그냥 료칸에 있어."

"에이, 조심 할 테니까."

"......"

"약속!"

다음날 오전,

아침부터 경희의 얼굴이 뽀얗다.

"너, 아침에도 온천에 들어갔었어?"

"어. 이거 중독될 것 같아. 기분 엄청 좋아."

"어제도 쓰러질 정도로 오래 있어놓고."

"온천은 말만 들었지, 직접 들어간 건 처음이고, 전에 선희에게 온천 갔다 온 얘기 듣고 얼마나 부러웠는데."

"그래. 지내는 며칠 동안만이라도 원 없이 온천욕이나 해라."

"당연하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잠시 후 지로가 료칸으로 찾아왔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도쿄도 무사시노에 있는 타츠노코 프로덕션으로 직접 찾아갔다.

워낙 유명한 작품을 많이 만든 곳이었지만 그 명성에 비해서는 평범한 규모의 작은 회사였다.

입구에서 만난 직원하나가 우리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조그만 복도를 통과하는데, 벽에 많은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마하고고', '해치의 모험', '신조인간 캐산', '타임보칸', '이상한 나라의 폴', 그리고 가장 유명한 '과학닌자대 갓챠맨'까지.

이렇게나 유명한 만화영화를 만들어 낸 회사라고 믿기는 너무나도 초라한 느낌의다.

이 시절 일본이 가장 잘나가던 황금기인 것까지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창고 같은 느낌의 회의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눈알을 데굴거리며 신기한 듯 둘러보던 경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개구리 왕눈이 만든 회사구나. 어째 기분이 묘해, 오빠랑 선회가 만든 만화가 이곳에서 만화영화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니까 더."

그렇게 말하며 나와 선희를 번갈아 바라본다.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일단 이번 미팅 이후에나 확실한 걸 알게 될 테니까."

내 말에 경희가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말한다.

"삼사라는 될 거야. 어제 그 삼사라 팬이라는 여자를 만나고 나서 확신이 들었어."

"무당 나셨네."

"큭큭. 내가 좀 용하긴 하지."

그렇게 작은 소리로 떠드는데 그때 문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경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곧 문이 열리자 우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명의 남자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다시 권한 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곧장 그들은 나와 지로에게 명함을 내민다.

감독과 작화감독, 그리고 스토리보드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난 뒤,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삼사라의 1권 부분을 기반으로 단편 OVA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초반 8화까지의 내용과 11화 부분, 그리고 13화 부분을 섞어서 결말을 내려합니다."

대충 어떻게 결론을 내려는 것인지 알만했다.

이야기의 특성상 완벽한 결론보다는 큰 이야기 중, 작은 에피소드를 해결했다는 느낌으로 마무리 하려는 모양이다.

뭐,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은 된다.

"원작을 최대한 살려서 만들려는 건가요?"

"네. 하지만 짧은 이야기의 특성상 캐릭터 몇은 삭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비중이 작은 캐릭터들 중 몇 개를 직접 지정하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좀 더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영상의 시간은요?"

"한 시간짜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스토리보드 담당이 가져온 몇 개의 작업용 책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캐릭터와 대략적인 배경설정, 그리고 스토리의 방향을 써둔 노트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노트를 펼쳐보니, 말대로 만화 속에 등장할 설정들을 스케치 해둔 노트와 스토리보드다.

경희는 설정부분을 열심히 살피고 난 스토리보드 부분을 살펴본다.

일단 스토리의 기본골격은 원작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단편이라는 내용에 맞게 기승전결로 딱 맞춰진 형태다. 물론 단순히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라 완벽하게 결론이 난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도 무난하고, 캐릭터중 비중이 낮은 건 과감하게 삭제한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너무 무난해서 조금 심심하다는 인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희 쪽을 돌아보니 선희는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다.

뭔가 그림에 이상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

곧장 가져온 연습장을 꺼내더니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뭔가 했더니 캐릭터들과, 배경을 다시 그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본 작화감독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곧 그림을 완성하자 작화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거 봐도 될까요?"

그 말에 선희가 노트를 그에게 내밀었고, 그것을 그가 받아 펼쳤다.

그리고는 설정집과 비교하며 살펴보더니 깜짝 놀라고는 머리를 끄덕인다.

"과연, 원작을 그리신 분이라 그런지 다르네요. 안 그래도 저희가 만화책에 나오는 장면만으로는 정확한 것을 알기 힘들어 임의대로 만들었는데, 이쪽이 훨씬 좋군요. 혹시 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선희가 내 표정을 살폈다.

내가 알아서 하라며 머리를 끄덕이자 곧 입을 열었다.

"네"

그 말에 작화감독이 자리를 비우고는 곧장 회의실을 빠져나가 새로운 설정자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엔 감독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 표정이 안 좋으시던데. 뭔가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있긴 합니다만."

"그럼 말씀해 주세요. 원작 스토리작가 님의 의견은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색깔만 밀고나가는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다.

곧바로 스토리보드와 미완성 콘티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 부분은 조금 원작보다 과감하게 표현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원작이 소년지에 연재하고 있어서 표현에 한계가 있지만, OVA 라면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음. 저도 그 부분은 동감입니다. 안 그래도 표현이 너무 과감하면 문제가 생길것 같아서 콘티도 순화시키긴 했죠."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엔 감독이 내게 의견을 물었다.

"마지막 장면은 칼파나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원작과는 좀 다른 식의 전개라 그렇지만, 괜찮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본 겁니다. 어떠십니까?"

"느낌이 좋군요."

내가 수긍하자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몇 시간동안 그렇게 삼사라OVA 단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는 제작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근처 일본라면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경희는 아까 떠들지 못한 한이라도 풀려는 건지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이게 라면이야? 우동 같은데?"

"라면 맞아."

"라면은 쭈굴쭈굴한 면발이지."

"맞아."

"일본 아저씨, 정말 맞아요?"

"네. 라면 맞습니다."

"우동 같은데."

세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나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스토리와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삼사라에서 내가 놓쳤던 부분, 특히 내 의견이었던 몇 장면에 이스터 에그까지 심어 넣기로 약속을 하니 만족스럽다.

이스터 에그의 장면은 다음 연재할 다크 프린세스와 연동을 할 계획이고, 혹시라도 만들지 모를 속편에 대한 포석이기도 했다.

물론 속편제작이 불발된다면 할 수 없는 거고,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느새 그릇을 다 비운 경희가 나를 툭 치며 묻는다.

"나 한 그릇 더 먹어도 돼?"

"나도."

선희까지 나선다.

"너희들은 쪼그만 것들이 밥통도 크다."

"일본아저씨 괜찮죠?"

"그럼요. 얼마든지 더 드세요. 모든 경비는 회사에서 책임질 테니까요."

"아싸. 좋았어!"

결국 두 녀석이 이번엔 또 다른 종류의 라면을 시킨다.

그렇게 다 먹고 나더니 경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빠, 아직 저녁까진 시간도 있는데. 키도 오빠네 놀러 가면 안 될까?"

시간을 보니 아직 오후 2시도 안되었다.

"그러자."

"오우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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