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라 OVA (1)>
"충격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한 거지?"
"그러게. 설마 이렇게 만화 속에 숨겨둘 생각을 다했다니."
"이게 끝이 아니지. 앞으로 나올 만화에서 뭐가 등장할지 모르니까. 지금 보는 장면들에도 뭔가 숨어 있을 수 있어."
"이거, 이젠 어떤 장면도 대충 넘길 수 없을 것 같네."
"자신감이 넘치니까. 이런 방법도 생각하는 구나, 진짜 대단하다."
낡은 2층 아파트에 오랜만에 삼사라연구회가 다시 모였다.
본래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모임이었지만, 빅 히어로에 실린 이벤트 기사 때문에 10일 만에 급하게 다시 모인 것이다.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이런 기사가 좀 아쉽네. 이런 거 없어도 결국 알아냈을 텐데."
"야, 우리야 원래 연구회니까 당연하지만, 일반 독자들은 다르지. 알려주지 않으면 평생 모를걸?"
"하긴."
"그나저나 앞으론 이거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될 것 같은데?"
"맞아. 여기 기사에서도 나왔잖아. 앞으론 만화 내에서 엄청난 양의 이스터 에그가 등장할 거라고, 혹시 알아? 내년 연말쯤에 이스터 에그를 많이 찾은 사람에게 주는 상이 따로 있을지?"
그 말에 모임 동료들이 반응했다.
"맞아. 그러니까 한 달에 한번 모일 때마다 누가 얼마나 찾았는지 내기하는 건 어때?"
"오. 그거 좋다."
"내기라면 뭘 걸어야 하잖아."
"그게 중요하냐? 우리가 노름꾼도 아닌데."
"그러네."
몇 사람이 낄낄거린다.
"만약 그런 이벤트가 진짜 열린다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의견으로 보내면 어때? 삼사라 담당이랑 다크 프린세스의 담당이 같다고 했지?"
"어. 형 친구가 미쯔다쇼텐에서 일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
"오, 역시 인맥."
"전엔 소년점프가 아니라고 불만이더니."
"아, 내가 그랬나? 미안, 미안."
그때 몇 사람의 시선이 구석자리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에게 쏠렸다.
"쟤는 왜 저렇게 바빠?"
"아, 며칠 후에 원더 뭐라는 행사가 열리나봐."
그 말에 구석에서 열중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원더페스티벌."
"아 맞다. 원더페스티벌."
"그게 뭔데?"
"올해부터 열리는 행사인 모양이야. 프라모델이랑 개러지 킷 같은 걸 전시하는 동인 행사."
"못 들어 봤는데, 그런 행사가 있었어?"
"어. 코미케처럼 동인 중심인 행사인데, 반다이 같은 업체들도 참가하는 모양이더라. 아마 건담이 주류겠지만, 고지라 모형도 나올 모양이고."
"건담에 고지라까지, 재밌겠다."
"그럼 이츠키도 참가하는 거야?"
그 말에 이츠키라 불린 남자가 만들던 모형 마징가Z를 들고 흔들었다.
"당연하지."
"그래도 마징가Z가 뭐냐, 이왕이면 건담으로 할 것이지."
"맞아. 한물 간 거잖아. 그건."
그 말에 이츠키가 버럭 했다.
"리얼 로봇은 뭔가 너무 진짜 같아서 낭만이 없다고!"
"뭔 소리야? 지금은 리얼 로봇이 대세인데, 보톰즈도 그렇고."
"맞아. 이젠 마징가나 게타로보 같은 건 저물어가는 태양이야."
"시끄럽다! 낭만을 모르는 바보 녀석들!"
"누구더러 바보래!"
***
월간 빅 히어로 발행이후 일본에서의 반응이 생각이상으로 후끈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특히 이번 이스터 에그에 대한 기사가 나간 후 빅 히어로의 편집부에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는 걸 보면 이번 계획은 정말 성공적이다.
솔직히 담당인 지로의 홍보기사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지금 세상은 미래와 달라 이런 이벤트를 알리지 않고 진행될 경우 연재가 끝날때까지 일반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으니까.
아무튼 경품까지 걸고 하는 이벤트라 그런지 많은 이가 응모하는 모양이다. 이 참에 이스터 에그를 파시엔시아까지 늘려 볼까?
그나저나 어느덧 1984년도 끝나가고 있다.
26일이었던 어제는 눈도 오고해서 좀 운치도 있더니, 그나저나 쌍둥이들은 겨울방학이라 이젠 거의 화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선희는 여전히 원고에 매달려 있고, 경희는......
"오빠아!"
또 소리를 지르며 날 찾는다.
내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왜, 또?"
"이건 어때?"
경희가 복사한 콘티를 들고 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화실에 드디어 복사기를 들여왔다.
이시대 한국에서 복사기는 그리 희귀한 물건은 아니지만 일반인이 집에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물건도 아니다. 대부분 관공서 같은 곳에서나 사용하던 물건이니까.
뭐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요즘 대학생들이 동급생들의 노트를 베끼는데 복사기를 사용한다며 '복사인생' 운운하는 얘기까지 나오는걸 보면 이 시대엔 복사기로 인한 사회문제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마치 내가 살던 미래에서 스마트폰이 가져온 사회문제를 비판하던 그런 기사들처럼.
아무튼 그렇게 들여온 복사기는 화실에서 가장 바쁜 물건이 되었다.
각종 원고 복사부터, 자료복사까지 두루두루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니까.
그렇게 경희가 내민 복사콘티엔 자잘하게 연필로 뭔가 잔뜩 써져있다.
앞으로 이스터 에그로 사용될 장면들인데, 그것에 연필로 표시 해 뭔가 잔뜩 글자를 써 놓았다.
뭔가 해서 읽어보니 다음 이스터 에그로 등장할 바위그림에 동그라미를 치고 '보석이 더 좋음'이라고 적혀있다.
"그냥 바위보다는 보석종류가 좋다고? 왜?"
"흐응, 역시 오빠는 원작자면서도 놓치고 있는 게 있어."
"놓치다니. 내가 뭘?"
"자자, 삼사라 초반을 떠올려봐. 그때 붉은색 광석과 푸른색 광석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었잖아. 그거 기억나지?"
삼사라 초반부에 나왔던 설정인데, 그 땐 중요하지 않은 배경이야기로 지나가듯 나오는 장면이 있긴 했다. 물론 방금 경희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뻔했다.
"그런데 그게 왜?"
"으그, 참. 그걸 그냥 버리는 설정을 사용하지 말고, 여기서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그제서야 경희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어?"
사실, 내가 설정덕후는 아니라서 이런 세세한 것까지 디테일하게 짜지는 못한다.
선희도 그림을 그리며 도와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림 전문이라 한계가 있고.
아무튼 삼사라 초기에 등장했던 그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있어 보이려 등장했던 소소한 설정이었는데, 경희는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활용처도.
그 설정을 사용한다면 경희 말대로 보석이 가장 타당하다.
내가 놀랐다는 표정을 짓자 경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내 생각이?"
이건 진짜 인정안할 수가 없네.
경희가 아니었다면 의도하지 않은 설정구멍을 스스로 만들 뻔했다.
"괜찮네. 인정."
"하하하."
역시 간헐적 천재.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는 게 함정.
"아,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이지."
"또?"
만족하고 있던 내 표정이 순식간에 찌그러진다.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삼사라의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존재들, 가령 외계인 이라든가, 아무튼 그렇게 새로운 옷을 선물 받는 거지. 그걸 입은 주인공은 강력한 힘을 얻어서……."
"그거, 날으는 슈퍼맨이랑 똑같아."
선희가 머리를 숙인 채 원고 작업을 하면서 중얼거린다.
그나저나 날으는 슈퍼맨은 또 뭐야? 미드 인가?
그런데 다른 어시들도 선희의 말을 거 든다.
"아, 그러고 보니까 똑같네. 그나저나 그거 엄청 재밌었는데."
"나도 그 외화 봤어요. 특히 첫 비행 장면이랑 야구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전, 오토맨이 제일 재밌었어요."
그때 화실 막내인 김기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오토맨 좋아했어요. 특히 '커서!'라고 외치면 빛이 삭삭삭 하면서 그림을 그려 자동차나 헬리콥터 만들어내는 장면이 너무 신기하던데."
"나도, 특히 자동차가 달리다가 90도로 꺾는 장면이 대단했어."
그러자 이내 화실이 미드이야기로 왁자지껄 해진다.
"외화 중에선 그래도 두 얼굴의 사나이가 최고지."
"역시 실버 씨 답네요."
듣고만 있던 실버도 대화에 뛰어들자 이야기의 스케일이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대화다보니 그저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데 대화가 끝나갈 무렵 외출했던 박상식이 화실로 돌아왔다.
아침에 마지막 경영의 왕 스토리를 넘기기 위해 간 것이다.
사실, 그동안 경영의 왕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최근 대본소에서 경영물이 넘치다보니 인기도 시들해진 탓에 적당히 마무리를 한 것이다.
중간에 전상길에게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중간에 중단 되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뭐래?"
"많이 아쉽다고 하더라. 그래도 아직은 평발 스트라이커가 인기가 좋아서, 큰 타격은 아니래. 그리고 최근 새로운 스토리 맨도 받아서 신작도 준비하는 모양이고."
"다행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은 만화스토리를 만들고 있던 중이라, 그나마 부담이 줄었다는 게 가장 좋은 일이다.
솔직히 연재만화에 비해 대본소용 만화는 속도가 생명인 곳이라 일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예전 같으면야, 돈이 되는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일본에서 들어오는 돈이 대본소 쪽에 비해 월등히 늘었으니까.
효율로만 따져도 월등하고,
이제 더 이상 화실운영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굳이 대본소용 만화에 매달릴 이유가 없는 상태라 더 그렇다.
지금 평발스트라이커의 경우도 스토리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상태다.
이미 대본소용 만화로 80권 이상이 나온 상태이고, 이야기도 한국 대표선수가 되어 월드컵에 나가 독일을 격파한 내용까지 나와 버렸다.
그것도 2대0으로.
이 시대에서야 만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2018년 월드컵에서 나온 결과였고, 내용도 살짝 비슷하게 만들었다.
물론 예선에서 떨어진다는 사실까지.
미래에서 보게 된다면 경악할 예언서에 가까울 테지만, 뭐. 워낙 먼 훗날의 이야기니까.
아무튼 마지막도 월드컵 4강이라는 2002년 같은 이야기로 끝낼 작정이다.
물론 외국인 감독은 이 시대엔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 한국인 감독으로 해야겠지만, 아무튼 마무리는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진행 중이다.
몇 년 후의 이야기지만 이미 피지컬로나 선수로서도 가장 전성기 상황이라 이제는 진짜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긴 하다.
우리나라는 프로축구보다는 국가대표경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 만화에서도 주인공이 성장한 뒤부터는 프로팀소속이긴 하지만, 프로경기보다는 A매치에만 집중하는 식이었다.
철저히 한국인의 취향에 맞춘 만화였지만, 인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니까.
아무튼 그 때문에 전상길 화실에서도 후속작에 대해 물어오고 있지만, 아직은 정확히 생각해 둔 것이 없다.
일단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생각해볼 문제니까 그건 그때 가서 정해도 된다.
그래도 막상 조만간 엔딩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좀 섭섭하긴 하네.
오후 늦게 지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가 의외의 소식을 전했다.
- 혹시 타츠노코 프로덕션이라고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다.
한국에선 '이겨라 승리호'라는 애니로 알려진 '타임보칸 시리즈'에다 '독수리5형제인 '갓챠맨'을 만든 회사다.
물론 그 외에도 '개구리 왕눈이', '신조인간 캐산' 등도 만들어서 한국인에게는 좀 익숙한 제작사다.
아무튼 그 회사가 왜?
"네. 알고는 있는데, 갑자기 거기서 왜요?"
- 네. 이번에 그곳에서 삼사라를 단편 이 VA로 제작하고 싶다는 의뢰가 와서요.
OVA?
드디어 우리 만화가 애니메이션화가 된다는 얘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