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터 에그 (3) >
삼사라에서 이야기가 절묘하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전율이 지로의 등골을 타고 흐른다.
“······.”
이야기는 이어질 수도 있다.
어쨌건 외전이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두 편의 다른 만화가 이어질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이런 건 구상한다고 덥석 만들 수 있는 성질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이어지는데다가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에 과정도 엄청나게 복잡하다.
단순히 두 편을 만드는 것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노력이 들것이 뻔하다.
물론 그것이 끝인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기본은 재미다. 결국 재미가 없다면 이런 노력도 다 부질없는 짓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다크 프린세스의 내용을 살펴보니, 단편보다 이야기가 더 강화되었다.
단편으로 나왔을 때는 아무래도 이야기가 한편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점과 독립적인 이야기라는 특징 때문에 솔직히 연재만화보다는 재미가 떨어진다.
한편짜리 영화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건 분명 연재분으로서의 기대감을 주며 한편이 끝나는 터라 궁금함도 크다. 삼사라의 이야기도 조금 언급되니 삼사라 팬이라면 더 좋아할 것이다.
거기다 이야기를 단순화 시켰다.
삼사라는 꽤나 복잡한 이야기로 만들어져 초반 내용은 가벼운 라이트 성 독자들이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다크 프린세스는 시작부터 가볍고 화끈하다.
이게 만약 큰 성공을 거둔다면 삼사라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더불어 단행본 판매도 더 늘어날 것이다.
제일 놀라운 점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같은 만화를 다른 느낌으로 그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이제까지 많은 만화들을 봐온 그라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물론 삼사라와 파시엔시아도 다른 느낌으로 만들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작품은 장르 자체가 다르다. 이것처럼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이야기로 함께 묶어버렸고, 그게 또 어울린다.
탁.
원고를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
다크 프린세스 원고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라이트 하면서도 재미있고, 삼사라와도 연관성이 있는데다가, 실시간으로 영향까지 주고 있다. 그것은 작품 속에 숨어있는 보물과도 같다.
이 다크 프린세스라는 보물섬.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한 지도는 삼사라에 숨어있다.
물론 이것으로 봐서는 반대의 경우도 예상해볼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윤환은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식의 진행을 독자들이 알게 된다면 이제까지 대충 넘기던 배경도 쉽게 그냥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런 사실 따위 관계없이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그냥 이 만화 하나로 만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이야기에 빠져 들어간다면 분명 달라지 게 될 일이다.
일반 독자들도 이렇게 될지 모르는데, 열혈 팬이라면 어떨까?
자신이 알고 있는 만화연구회나 삼사라 연구모임 같은 곳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두 팔 들고 환영할 것이다.
지금도 이미 광적인 팬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더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이건 반드시 히트를 친다.
하지만 연재를 시작하는 시점에선 담당 편집자인 자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신이야 담당이고 평소에 만화를 여러 번 보아왔으니,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인 독자라면 그것을 끝날 때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광팬들이야 평소에도 연구를 하는 수준이니 당연히 알겠지만, 일반인들은 만화를 연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려야 한다.
어떻게 알릴 것인가?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지로가 그렇게 흥분되었으면서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빅 히어로에서 왔는데요.”
두 명의 여직원이 지로에게 찾아와 인사를 한다.
그러자 지로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어서 오세요.”
“저희는 뭘 하면 될까요?”
여직원 한명이 지로에게 묻자 곧장 네임을 집어 그것을 내밀었다.
“이거 네임인데 대사를 절반씩 나눠 베끼셔서 출력소에 가져다주시고, 그것을 받아와서 식자 작업을 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네.”
두 여직원이 네임의 대사를 필사하는 동안 지로는 곧장 원고를 가지고 복사기 앞으로 갔다.
원고를 복사하고는 곧장 빅 히어로 편집장에게 찾아갔다.
빅 히어로의 편집장의 의아한 표정으로 지로에게 되물었다.
“광고?”
“네.”
“다크 프린세스 광고라면 미쯔다쇼텐의 다른 잡지들은 물론 빅 히어로에서도 이미 충분하게 했다네.”
이미 빅 히어로에 나온다는 광고는 엄청나게 했다.
단편에서의 성과를 봤으니, 미련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지로가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무슨 광고를 더 하라는 건가? 이제 며칠 후면 책이 나올 텐데. 혹시 표지에 하는 광고를 말하는 거면 이미 내가 지시를 해뒀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따로 중간에 페이지를 할애한 일종의 광고성 기사가 좋습니다. 거기다 이벤트도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고.”
“광고성 기사에다 이벤트? 어떤 식으로 말인가?”
편집장은 슬슬 지로의 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빅 히어로에 다크 프린세스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광고는 많이 하고 있었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참이다.
뭔가 임팩트가 있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만큼 다크 프린세스는 지금 빅 히어로에겐 중요한 만화였다.
이 만화로 빅 히어로도 단숨에 소년 히어로처럼 자리를 잡아야 직원들도 잡지가 폐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최근 단편으로 그 가능성을 봤으니 지금은 무조건 다크 프린세스에 집중할 시기다.
이것이 성공해야 월간지가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폐간되더라도 다른 월간지가 새로 생길 것이지만, 이제까지 함께 해오던 동료직원들은 모조리 흩어질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편집장이었으니 지로의 의견이 더 궁금했던 것이다.
“삼사라와 다크 프린세스에 대한 연관성 기사죠.”
“연관성 기사?”
“네. 이번 다크 프린세스에 삼사라와 관련 있는 장면이 하나가 나올 겁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어차피 다크 프린세스 자체가 삼사라와 연관이 있을 테니 지금 지로가 하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편집장이 미묘한 표정으로 변하자 지로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번 주에 소년 히어로에 연재된 삼사라 내용이 이번 연재에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순간 편집장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번 주 삼사라 연재분이 영향을 준다니.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도 괜찮은 건가?”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펴본 결과, 충분히 재밌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을 준다는 사건을 무시해도 될 만큼입니다.”
“······.”
“하지만 역시 일반인들은 쉽게 찾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정에 대해 길지 않더라도 기사 정도는 써 주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그렇겠군. 나도 자네 이야기로만 들어서는 자세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니까.”
“물론 그 기사는 제가 직접 쓰고 싶습니다.”
편집장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아무래도 바쁜 지로가 낸 아이디어인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지만, 역시 담당자이자 아이디어를 떠올린 당사자가 써준다면 가장 좋은 일일 테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고맙지. 하지만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듣고 싶네.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궁금해지는군.”
“알겠습니다.”
곧바로 지로가 다크 프린세스 복사 원고를 꺼내 숨겨진 장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가 스스로 그 장면을 찾아낸 이후 곧바로 이윤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이윤환은 두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했고,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담당으로서 적당히 가려서 설명하는 건 잊지 않았다.
상대가 편집장이라고는 해도 너무 많은 내용을 미리 다 알려주는 건 조심스럽다. 담당으로서 이야기에 대한 보안도 중요한 문제니까.
아무튼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난 편집장이 감탄했다.
“삼사라와 직접적 연계라는 건가? 이거 정말로 효과가 엄청날 것 같은데.”
“네. 저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 작가 선생님은 이것을 이스터 에그라고 하시더군요.”
“이스터 에그? 그게 뭔가?”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인데, 숨은 달걀을 찾는다는 뜻으로 숨겨진 것을 찾는 뜻이랍니다. 게임용어로 출발된 거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저도 이스터 에그란 용어는 처음 듣긴 했습니다만.”
지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스터 에그라······. 어쩐지 있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어. 그리고 이벤트는?”
“이번이 처음이라 숨어있는 이스터 에그를 찾는 게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엔 이스터 에그를 찾는 일종의 이벤트를 여는 거죠. 물론 독자엽서를 통해 의미를 함께 적어 보내는 사람들을 뽑아 선물을 주는 겁니다.”
“오, 그거 괜찮은데. 안 그래도 최근 다크 프린세스 연재 확정 후 프라모델 쪽 스폰서가 붙었거든. 그쪽 물건으로 최대한 많이 빼 보겠네.”
편집장이 의욕적인 모습을 지로의 말을 들으며 메모를 한다. 그리고는 곧장 손바닥을 짝하고 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좋아, 자네에게 기사를 맡겨보도록 하지. 하지만 곧 책을 출판해야하는 상황이라 사흘 이상 시간을 줄 수는 없네. 그러니까 좀 서둘러 주게.”
“네. 알겠습니다.”
***
따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릉.
빅 히어로가 발행된 당일 날 오후부터 빅 히어로의 편집부에 전화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네. 자세한 건, 기사를 참조하세요.”
“선물은 드립니다. 맞아요.”
“네. 잡지에 붙어있는 독자엽서요.”
“숨은그림찾기랑 비슷합니다. 네, 네. 그럼요. 네. 엽서로 보내시면 됩니다.”
직원들은 울려대는 전화를 받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편집부의 일이 마비될 정도의 전화가 울려대는 모습을 보던 편집장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이벤트는 대성공이야. 확실히 아카기 그 친구가 대단한 친구로군.”
그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부편집장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네. 이번 이벤트로 빅 히어로의 인지도가 올라갈 것 같습니다. 요즘 잡지 판매량이 저조해서 이름 있는 만화가 선생님들이 하나둘 말도 없이 연재를 종료하곤 해서 분위기가 엉망이었는데, 이번 일로해서 다시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아마 실력 있는 신인들도 우리 잡지로 찾아오기 시작할걸?”
“그렇겠군요. 제일 중요한 문제죠. 실력 있는 신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니까요. 다크 프린세스 처럼요.”
“맞아. 아, 그리고 자네는 아카기 군을 통해 작화, 스토리작가 선생님들께 보낼 선물을 좀 알아보게.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린다는 편지도 한통 쓰고. 어설픈 거 보내지 말고.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부편집장의 말에 편집장이 만족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 이스터 에그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