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33화 (133/425)
  • < 이스터 에그 (1) >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땡! 땡! 땡! 땡!

    쌀쌀한 날씨의 휴일 이른 아침.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새마을운동 노래가 흘러나오며, 동시에 환경미화원이 종을 흔들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아니, 지금시대엔 환경미화원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으니, 그냥 청소부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종소리가 울리는 소리가 퍼져나가자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쌀쌀한 이른 아침임에도 길거리엔 쓰레기통을 든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나랑 박상식, 그리고 성준희가 커다란 쓰레기통을 들고 멈춰선 쓰레기차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엄마랑 누나가 주로 담당하던 일이지만, 이젠 화실식구들이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겨울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김이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풍경이다.

    더럽게 춥다는 것만 빼면.

    줄을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반 이상의 쓰레기 연탄재다.

    요즘엔 익숙해져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처음 이 시절로 왔을 땐 가장 당황스러운 것이 공터마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고, 그곳엔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연탄재가 많이 있었다.

    우리도 현재 연탄을 사용하는 상태고 화실의 크기가 있다 보니 하루 사용되는 연탄의 양은 무시 못 할 정도다. 거기다 사람도 많아서 은근히 쓰레기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쓰레기차가 올 때마다 이렇게 버리는 것도 큰일이 된 것이다.

    그나저나.

    “다음!”

    트럭위에서 청소부아저씨가 소리치자 내 차례가 되었다.

    “여기요! 캑! 퉤! 퉤!”

    연탄재를 담은 붉은색 고무 대야를 트럭위에 있는 청소부아저씨에게 올리는 사이 재가루가 얼굴로 쏟아진 것이다.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덕분에 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쓰레기차가 올 때마다 이것도 할 짓이 아니다.

    이런 귀찮은 일을 엄마랑 누나는 그동안 잘도 불평 없이 해왔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진다.

    “요령이 있어야지. 요령이.”

    박상식이 내 머리에 뭍은 먼지를 털어주며 혀를 찬다.

    확실히 쓰레기를 많이 버려본 경험이 있는 탓인지, 박상식은 늘 깔끔하다.

    성준희는 일반쓰레기 담당이라서 먼지를 뒤집어쓰진 않았지만 음식물쓰레기까지 있어서 냄새가 지독할 텐데, 그런 티도 내지 않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능숙하게 쓰레기를 넘겨준다.

    “너도 버리는 거 잘하네.”

    “······그러니?”

    성준희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때 박상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넌 머리 쓰는 거 말고는 다 꽝이야. 가끔 보면 다른 세상에 살다 온 사람 같다니까.”

    움찔.

    “······.”

    “농담이니까, 너무 그렇게 정색하지 마라.”

    박상식은 농담일지 모르지만 난 아니지.

    그나저나 저 쓰레기들은 모두 난지도로 들어간단다.

    내가 알고 있는 난지도는 월드컵공원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이 시대엔 쓰레기 매립지인 모양이다.

    아무튼 가지고 나갔던 모든 쓰레기를 처리한 뒤 화실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내 꼴을 본 엄마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물 데워 놨으니까 씻어.”

    “네.”

    요즘엔 가족 모두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화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엄마도 아예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며 새벽 일찍 이곳에 나오고 있고, 누나도 별일 없으면 화실의 위층에 올라가 공부를 하기도 한다.

    대학은 내년부터 노린다고 하는데, 요즘엔 열심히 학원을 들락거리며 열공 중이다.

    그런데 화실 옆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방문을 열어보니, 선희가 외국 축구경기 비디오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일본에서 보내온 녹화테이프와 각종 사진책자, 그리고 축구만화책까지 그것들을 모두 살펴보느라 선희도 요즘 바쁘다.

    나 역시도 기본적인 스페인 축구에 대한 자료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이것저것 살피며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보았던 많은 스포츠 만화들을 기반으로 기본적인 이야기와 극적인 장면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젠 슬슬 가지고 있던 만화 지식의 한계를 느껴서다.

    처음 시작할 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사실이지만, 연재가 거듭될수록 대충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언제부턴가 다시 덕후로서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덕분에 공부를 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잠시 후 어시들이 화실에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휴일이긴 하지만, 월간지 연재물 하나가 추가된 덕분에 격주 일요일도 출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 아침을 화실에서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출근시간이 이르게 되었다.

    뭐,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하루도 길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져서 좋긴 하지만.

    오늘은 원고마감이 코앞인 다크 프린세스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단편의 반응이 좋아서 독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빅 히어로 편집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크 프린세스의 배경의 세계관은 이미 만들어둔 상태이지만, 아직 스토리가 확정된 것은 없다.

    물론 오늘 완성되는 부분은 이미 네임으로 담당인 지로에게 알려준 상황이고, 앞으로 대략적인 스토리의 방향정도는 만들어 두었다.

    2화부터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전부터 해오고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방향은 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다크 프린세스의 이야기는 삼사라의 외전 격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외전이라는 특징 말고는 그냥 두 개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 때문에 그냥 단순한 외전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외전의 이야기에 아주 특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특별한 고리는 바로, 숨은 떡밥. 즉, 이스터 에그다.

    두 개의 만화가 따로 연재가 되지만 실제로는 같은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먼저 4주간의 삼사라 이야기에서 그달 월간지에 나올 다크 프린세스에 대한 이야기 깜짝 등장하는 이스터에그가 숨어있는 것이다.

    가령 삼사라에서 지나가듯 나왔던 장면과 다크 프린세스의 어떤 장면이 절묘하게 이어진다거나, 혹은 다크 프린세스에서 나온 의미 없던 대사가 사실은 삼사라에선 중요한 사건의 힌트가 되는 방식이다.

    물론 너무 직접적이면 곤란하다.

    그들은 어쨌건 자체적으로는 완벽하게 독립된 이야기처럼 진행되어야 하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이스터 에그를 양쪽 만화에다 구석구석 숨겨두는 것이다.

    스토리를 짜는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만한 이야기겠지만, 일단 이것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 매력은 상당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삼사라와 다크 프린세스의 팬들이라면 이것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굉장히 오타쿠적인 만화인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삼사라 자체가 이시대의 오타쿠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성공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으니 이런 방식의 진행이라면 충분히 먹힐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작정 내 생각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보다는 화실식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그들에게 내 생각을 알려주었다.

    “할 수 있겠어? 전혀 다른 속도로 연재되는 만화를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맞추려면 까다로울 텐데. 거기다 양쪽에 실마리까지 숨겨두려면 머리 엄청 아프지 않을까?”

    역시 스토리작가인 박상식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부분이 아닐 테니까.

    “그래도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굉장히 재밌을 거예요. 특히나 팬들의 입장에는 주간지에 월간지까지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관에서 진행된다는 건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 될 테니까요. 거기다가 별 뜻이 없이 등장한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생각은 정말 놀라워요. 만화를 볼 때마다 보물찾기 하듯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아마 배경 어느 것도 소홀

    하게 지나치지는 못할 거예요.”

    박소미가 열변을 토하며 내 생각을 찬성해 준다.

    그러자 구자희와 김기철도 박소미의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요. 저희들처럼 배경을 그리는 입장에서는 정말 환영이에요. 보통 독자들은 배경까지 자세히 살펴보진 않으니까요.”

    “저도 정말 그런 만화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식 씨 말대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진행 시간까지 맞춘다는 건 스토리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제가 생각해도 어려울 것 같아요.”

    정미자가 걱정스러운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여러 의견을 오가는 사이 실버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마스모토 레이지가 자신이 만든 만화의 세계관을 모조리 묶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만든 사례도 있으니까. 물론 이쪽이 훨씬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실버가 말하는 건 레이지버스(마스모토 레이지 유니버스)다.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하록선장’이 하나의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내가 있던 시대에도 계속 관련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만화들이다.

    어떤 이는 ‘우주전함 야마토’도 레이지버스에 들어간다는 모양이지만, 잠시잠깐 카메오로 나왔을 뿐 공식적으로는 레이지버스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뭐, 야마토 자체가 마스모토 레이지의 창작품이 아니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아무튼 대부분의 의견은 걱정은 되지만, 그만큼 기대도 된다, 이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선희 넌 어때?”

    “재미있을 것 같아. 나 숨은그림찾기도 좋아해.”

    너한테는 의미 없는 게임 아니었냐?

    안 그래도 잡지나 신문에 나오는 숨은 그림은 진짜 순식간에 다 찾아버리는 주제에.

    아무튼 선희는 만족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계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따로 진행되는 두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고, 거기서 다시 서로에게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을 따로 분류한다.

    그 다음엔 어디에 어떤 이스터 에그를 숨기느냐하는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무작정 숨은 그림 식으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이스터 에그도 등장할 땐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납득할 테고 그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을 테니까.

    뭔가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제까지 단순히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 왔는데, 이젠 새로운 방식에 흥분한 것이다.

    먼저 이번 다크 프린세스 연재분부터 시작해 볼까?

    간단한 이스터 에그 정도라면 완성된 원고 몇 장면을 수정해 넣으면 될 테니 큰 작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장면 한 장면 정도 추가하는 것도 괜찮을 거고.

    잠깐.

    그렇다면.

    나는 서둘러 책꽂이로 다가가 최근 몇 주간 분의 소년 히어로를 뽑아 삼사라 부분만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이번 다크 프린세스에 써먹을 수 있는 장면 같은 게 없을까하고.

    그리고 한참을 뒤적거리다 괜찮은 장면하나를 발견했다.

    켄이 8왕과의 싸움에서 날렸던 일격.

    차원너머 날려버리는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는 곧장 지금 완성중인 다크 프린세스 원고를 살펴봤다.

    그리고 적당한 장면을 하나 발견했다.

    이미 완성된 페이지기는 하지만, 수정정도라면 손이 많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페이지를 들고 선희에게 다가갔다.

    “여기 이 장면, 주먹의 흔적을 넣으면 어때? 결국 이 충격으로 인해 칼파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깨어나게 할 생각이거든.”

    그러자 선희가 곧장 대답을 했다.

    “재밌겠다.”

    선희는 내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했는지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 이스터 에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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