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을 노려라! (3) >
“그래. 이 소식 나오자마자 키도 선생님 담당이 서둘러 화실로 갔으니까, 뭐.”
그 말을 들은 무카이가 곧장 소년 히어로를 펼쳤다. 그리고는 파시엔시아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어서 진심의 남자를 읽고는 바로 책을 내려놓았다.
“2표차이라고 했지?”
“응.”
“이번엔 정말 위험하네. 켄토가 있는 3부 리그 팀과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팀과의 연습경기라는 대 이벤트가 나올 시점이니까. 이정도면 진심의 남자도 버티기 힘들지 몰라.”
“그렇지?”
야지마가 웃으며 되묻자 무카이가 인상을 팍 썼다.
“그런데 당신 말이야. 이거 남 얘기 아니거든. 우리도 순위권 싸움중이잖아.”
“아니, 아직은 남 얘기야.”
그 말에 무카이가 한숨을 쉬었다.
“하긴.”
갑자기 초반에 3위까지 한번 해보기는 했지만, 초반의 성적이 쭉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건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지금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작품은 소년히어로의 삼왕이 아닌가.
“어쨌거나 지금 키도 선생님 화실은 전쟁터겠지?”
“아마도.”
무카이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
“재밌어, 너무 재밌어! 화가 날 정도로 재밌어!”
키도가 흥분하며 소년 히어로의 만화를 보며 소리쳤다.
어시들도 지금 키도가 무엇을 보며 저렇게 흥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파시엔시아.
한동안 스페인 유소년으로서의 성장과 적응이라는 이야기로 진행해가던 파시엔시아가 1권분 량이 끝나가는 시점에 갑자기 초강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제 겨우 3부 리그로 승급한 팀이었는데, 최강팀인 레알 마드리드의 연습상대로 결정이 된 것이다.
이번 경기는 전통의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간의 경기 전, 일종의 이벤트전의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이것이 결정되자마자 주인공이 소속된 팀 ‘아스코’는 마치 괴물의 제물이라도 된 양 경기 전 이미 의욕상실 상태였다.
지역에선 가장 큰 이벤트이긴 하지만, 누구도 아스코가 잘 싸워줄 거라고 기대하는 이가 없는 상황. 그런 와중에 주인공만이 강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지옥훈련에 돌입한다.
팀원들은 켄토가 하는 것을 보며 바보짓이라 외면하지만, 어느 순간 그에게 동화 되어 모두 같이 지옥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이야기로 인해 이야기의 흥미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그리고 앞전에 연재된 경기 당일 날 라커룸에서의 대화로 분위기를 띄운 상황에서 무려 앙케이트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번 주에 나온 이야기는 바로 경기장에 들어서며 강팀의 아우라를 보며 기가 죽고 경기 시작, 거의 대부분이 후보 선수로 구성된 마드리드의 팀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며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놀라운 실력으로 상대팀의 수비를 뚫고 가는 와중에 끝이 나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절묘한 장면에서 이야기를 잘라버린 것이다.
“우옷! 영리한 전개야! 기대감을 이렇게나 끌어올리고 끝나다니! 이러면 다음 주는 곤란하잖아!”
흥분되고 재미있는 만화라 즐겁기는 하지만, 문제는 라이벌 만화라는 사실이다.
키도는 흥분한 상태로 곧장 선임어시를 불렀다.
“이보게, 난바!”
“네! 선생님!”
“우리말이야, 필살기 몇 개 남았지?”
“아, 그게. 이젠 다 썼는데요.”
곤란하다는 표정의 난바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어시들을 바라보자, 그들 모두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지금 키도가 말하는 필살기는 이미 다 사용한지 오래다.
“야쿠자에게 묶인 채로 바다에 빠져 살아나오던 이야기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말에 키도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그게 마지막이었지.”
사실, 그 이야기는 초반 이야기를 짜던 시절부터 중반 이상이 흘렀을 때 사용하기 위해 남겨둔 필살기였다. 그동안 틈틈이 힘들게 만들어두었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폐기처분되었고, 가장 강한 이야기만 따로 남겨둔 것이 필살기였는데, 모두 세 개였다.
그러나 그것도 삼사라와 파시엔시아와의 무리한 싸움으로 인해 모두 소진해버린 상황이었다.
키도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이야기의 전개자체가 열혈물로써 최고수준을 달리고 있으니, 극약처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키도가 이를 악 물었다.
“그럼, 결국 치바 료를 죽여야 한다는 건가?”
키도의 중얼거림에 모두 경악했다.
“네?! 료를 죽여서 어쩌시려고요?! 절대 안 됩니다.”
“맞아요! 지금 진심의 남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턴데.”
“저도 반대입니다! 료의 등장으로 여성독자들이 많이 유입되었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치바 료를 죽인다니. 말도 안 됩니다!”
어시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진심의 남자가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하면 누구라도 악역인 치바 료의 존재다.
현재 그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엄청난 여자 팬을 거느린 최고의 인기캐릭터였다.
그런데 그를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어시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치바 료를 죽이면 여성독자들이 선생님의 목숨을 노릴지도 몰라요.”
“전에도 료가 죽을 뻔 했을 때, 전에도 ‘한번만 우리 료에게 그런 고통을 준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써진 팬레터까지 받았잖아요. 저 그때 정말 화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고요! 그런데. 치바 료를 죽여 봐요. 아마 우리 중 몇은 쥐도 새도 모르 게 피살될걸요!”
그 말에 키도가 인상을 구기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항상 대작을 만들 땐 그만한 위험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런 위협쯤은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대범함이 있어야지!”
“아니, 저는 목숨까지 걸고 만화를 그리는 건 좀······.”
“우리는 독자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인생. 그 정도라면 당연히 웃으면서 넘길 정도의 배짱도 필요한 법이다!”
“······.”
어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키도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그런 어시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키도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극약처방도 필요한 법이다! 치바 료가 사망하는 이야기는 분명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야.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에피소드를······.”
쨍그랑!
갑자기 접시와 컵에 깨지는 소리에 놀란 키도가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화실에 들어오던 부인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그녀의 얼굴이 굳어있다.
키도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부인?”
“······.”
“그거 위험하니까 내가 직접 치워드리리다.”
그런데 입을 다물고 있던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 그거 정말인가요?”
“그거라니? 뭐가 말이오?”
“그를 정말로 죽일 셈인가요?”
“······?”
갑자기 부인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라니.
“설마, 치바 료를 말하는 거······.”
“실망했어요.”
그렇게 조용히 말하고는 몸을 홱 돌려 화실을 나가버렸다.
순간 키도가 입을 떡 벌린 채로 얼어버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설마, 부인의 입에서 치바 료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아니, 그보다 지금 자신에게 치미는 이 질투심은 뭐라는 말인가?
“크윽!”
순간 키도는 이를 악물었다.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의 부인도 그렇게나 좋아했다니.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질투를 느끼고 있을 틈이 없다.
서둘러 그녀를 따라 나가야 한다.
미소가 사라진 그녀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어쨌건 지금은 그녀를 무조건 달래야만 한다.
언젠가 치바 료의 인기가 떨어지는 그날, 그때 가서 처단해도 늦지 않으리라.
“여보!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화실을 빠져나간다.
그때 어시들이 소리를 질렀다.
“서, 선생님! 위험합니다!”
“크악!”
바닥에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미쳐 신경 쓰지 않은 탓에 그것들 중 하나를 밟고 만 것이다.
키도가 바닥을 뒹굴자 선인 어시인 난바가 소리쳤다.
“야! 약상자, 약상자 가져와!”
“네.”
키도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 어시들이 우왕좌왕하며 약상자를 찾아 화실을 뛰어다녔다.
***
“네? 선생님이 부상을 당하셨다고요?”
키도의 담당 테고시가 버럭 소리치자 편집부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렸다.
부상이라니.
지금 현재 소년 히어로의 간판 만화이자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키도가 아닌가.
그런 그가 부상을 당했다니 직원 모두가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경악하던 테고시의 표정이 평온을 되찾는다.
“아,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군요. 네, 네. 알겠습니다.”
곧 테고시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고 나자 동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키도 선생님이 부상 당하셨어요? 큰일이네, 그래 어느 정도래요?”
“아, 네. 큰 건 아니고요. 유리를 밟으셨대요.”
“유리요?”
“네. 다행히 뒤꿈치가 약간 까진 정도의 상처라.”
“휴, 그럼 다행이네. 난 또.”
“그러게요. 부상이라는 소리 듣고 나도 놀랐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더니 곧장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때 다가온 팀장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는 곧장 테고시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런 시기에 부상이라니.”
“그러게요.”
“그나저나 테고시, 이번 파시엔시아 봤어?”
팀장의 질문에 테고시가 복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네. 솔직히 분하긴 한데, 너무 재밌었어요.”
“맞아. 파시엔시아 쪽은 완전히 불붙었던데. 이번 편 보니까 다음화가 너무 궁금하더라니까.”
“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키도 선생님도 요즘 고심하고 계시던데. 아마도 오늘 사건도 그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키도 선생님이라면······, 납득이 되기도 하네.”
테고시가 지로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아카기 씨는 요즘 얼굴보기도 힘드네요?”
“담당하는 게 세 개나 되잖아. 거기다 요즘엔 파시엔시아에서 특별 주문이 들어온 모양이고.”
“특별 주문요?”
“어. 스페인 축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특히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명문 팀의 비디오 자료 같은 거. 이번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앞으로 주인공이 명문 팀과의 경기가 자주 나올 모양이더라.”
“오. 그래요? 그리고요?”
테고시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자, 팀장이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
“라이벌 사전조사 하겠다는 거야? 그런 곤란해.”
“에이, 조금만 알려 주세요.”
“안된다니까.”
그때 편집부에 지로가 가방을 잔뜩 챙겨든 채로 허겁지겁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팀장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다 뭐야?”
“아, 자료에요. 자료. 파시엔시아랑 삼사라 자료요. 그보다 지금 바쁩니다.”
“아 참, 아까 소포는 받아뒀는데. 그거 원고지?”
“네.”
그렇게 말하더니 박스를 뜯어 원고를 꺼내 훑어보기 시작한다. 그러자 테고시와 팀장이 슬쩍 원고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원고를 살피던 지로가 낌새를 느끼고는 머리를 홱 돌리자 두 사람은 금방 딴청을 피웠다.
지로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곧장 테고시가 손뼉을 탁 치더니 가방을 챙겨들었다.
“아 참, 선생님 부상. 문병이나 가야겠다.”
그렇게 말하더니 서둘러 편집부를 빠져나갔다.
그런 테고시의 뒷모습을 보던 지로가 놀란 표정으로 팀장에게 물었다.
“키도 선생님 부상당하셨어요?”
“아, 뭐 별건 아니야. 뒤꿈치가 까졌데.”
“네?”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짓던 지로가 다시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그때 팀장이 은근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지금 그거 파시엔시아지?”
“그런데요?”
“그거 식자작업 하기 전에 좀 보면 안 돼?”
“저번에 복사네임은 보셨잖아요.”
“그 내용 그대로야?”
“조금 바뀌긴 했지만, 주 내용은 그대로에요.”
“그래? 그럼 내가 좀 봐줄게. 혹시 설정오류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건 제가 하면 되는데요.”
“아니, 네가 놓치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
“그러니까, 꼭 뭐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
< 톱을 노려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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