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30화 (130/425)
  • < 톱을 노려라! (2) >

    일본에서 소포가 왔는데, 담당인 지로가 보낸 게 아니다.

    무려······, 토리야마 아키라가 보낸 것이다.

    “흐엇!”

    순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미래에서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물론 나름 일본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입장이라 축전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뭔가를 내게 보내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탓이다.

    [써니 선생님, 일러스트 너무 감사합니다. 요즘 신작 반응이 없어서 풀 죽어 있었는데, 덕분에 힘이 납니다. 삼사라 늘 열심히 보고 있으니까, 선생님도 힘내 주세요. 아, 그리고 축전 일러스트는 소년점프에 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장도 지웠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오너캐에 달린 말풍선.

    그런데 소년점프에 우리 일러스트를 넣었다고?

    대충 우리 사정에 대해 설명하긴 했는데, 설마 일러스트가 소년점프에 실리게 될지는 몰랐다.

    “아.”

    나도 모르게 감동의 한숨이 밀려나온다.

    앞으로 이런 일러스트를 개인적으로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뭔가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화실 식구들도 이 사건으로 꽤나 시끄러웠다.

    사실 화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대부분 닥터슬럼프가 뭔지, 토리야마 아키라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엔 일본 고액세금납세자 10위안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선지 그를 더 대단하게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 연재중인 드래곤볼인데.

    아무튼 받은 일러스트는 곧장 완전히 밀봉한 뒤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다.

    그런 그림을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경희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대단하지. 지금도 대단하지만, 앞으로는 더 대단해질 양반이야.”

    “치. 그림은 선희가 더 잘 그리는 것 같은데.”

    주둥이를 쭉 내밀며 말하는 경희를 향해 머리를 홱 돌렸다.

    갑작스런 내 행동 때문인지 경희가 움찔하고 놀란다.

    그런 경희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너, 앞으로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그림만은 반드시 지켜라.”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갑자기 이곳으로 온 이상, 언제 다시 떠나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어려움이 언제든 닥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내 말에 경희가 인상을 팍 쓴다.

    “뭐야? 기분 나쁘게. 그런 거 생각하기 싫어!”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아무튼 저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라, 알겠지?”

    “지키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만약 집이 어렵게 되더라도 저 그림으로 집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지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저게 그렇게 대단해?”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말이야. 한 3-40년 후면 엄청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에이, 설마.”

    얘가 뭘 모르네.

    저건 토리야마 아키라의 미공개 일러스트라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치는 계속 올라갈 거다.

    그것도 엄청나게.

    전에 평범한 일러스트 사인도 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그저 평범한 일러스트가 아니다.

    그나저나 어느새 12월도 중순이 넘어가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겨울답지 않게 수시로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진눈깨비가 날린다.

    그 덕분에 오늘은 딱 겨울이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거기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도 되고.

    이 동네에서야 사실 크게 느낄 수 없지만, 시내에 나가면 연말 분위기가 제법 물씬 풍긴다.

    내가 살던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길거리에서 성탄절 음악도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트리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서 가끔 쌍둥이들이랑 외출 겸 해서 나가기도 한다.

    라디오에서는 연말대목을 노린 대형백화점들의 광고가 줄기차게 나온다.

    그래도 더불어 나오는 성탄음악 때문에 특유의 연말 분위기가 돌아 듣기 나쁜 건 아니지만.

    모처럼 눈 오는 바깥을 배경삼아 마룻바닥에서 신문을 펼쳤다.

    나 같은 만화덕후야 뭐 읽을게 있겠냐만은 오늘은 그래도 눈에 띄는 것이 조금 있다.

    바로 영화 광고들이다.

    “어? 터미네이터가 개봉하네?”

    내게도 익숙한 영화다.

    물론 터미네이터 말고도 몇 개더 있다.

    ‘E.T’라든가 ‘고스트 바스터즈’ 아, 신문광고엔 ‘고스트 바스타’라고 적혀 있지만.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낄낄거렸다.

    신문들을 살피다 보면 이런 의외의 것에 가끔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그렇게 혼자 낄낄거리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박상식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너는 가끔 뜬금없이 웃더라. 이번엔 또 뭐가 그렇게 웃겨?”

    “아니, 그냥. 영화광고 보니까.”

    “이주일 영화 새로 나온 거 있어?”

    솔직히 이주일은 나랑 개그코드가 안 맞아서 어디서 웃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건 아니고. 아, 그보다 이거 나중에 보러갈까?”

    내가 손가락으로 영화광고 하나를 가리키자 박상식이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쳐다본다.

    “터미······네이······ 터? 애널드 슈바제네거 주연? 뭔데? 액션영화야?”

    애널드?

    뭔가 설명하기는 힘든 느낌이 밀려온다.

    “크윽!”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뭐? 액션도 나오지.”

    “그런데 또 이번엔 뭐가 웃긴데?”

    “큭! 안 웃겨!”

    “눈이 초승달이야, 초승달.”

    “······.”

    그런데 그때 진눈깨비를 뚫고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이대봉이 보인다.

    소년 히어로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론 이전보다 자주 화실을 찾아오고 있다.

    그런데 뭔가 양손에 커다란 보자기와 비닐을 쥐고 들어온다.

    “어우, 오려면 눈이나 확실히 오지.”

    이대봉이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서서 머리를 털며 투덜거렸다.

    “어서와, 형. 그런데 그건 뭐야?”

    “후후. 오늘 같이 날씨도 우중충할 땐 고구마가 최고지.”

    그 말에 화실식구들이 환호했다.

    “갑자기 웬 고구마? 사온거야?”

    “사오긴, 일 좀 도와드리고 얻어온 거지.”

    “어디서?”

    “응. 시골. 요즘도 요리 관련된 거 공부하고 있잖니. 요리라는 게 공부해보니까, 중국요리든 한국요리든 원리는 같더라고. 아무튼 이곳저곳 다니면서 일도 돕고, 공부도 하고.”

    중원요리왕이 연재를 시작한 뒤론 전상길 화실도 거의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그러다 또 우리 화실에 들리고.

    아직은 여행자유화가 되지 않은 시기라 외국까지는 나가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면 한국에 붙어있지도 않을 위인이다.

    “저쪽 뒤에 빈 아궁이 좀 빌릴게. 장작도 좀 있지?”

    “어.”

    “고구마는 내가 구울게.”

    경희가 좋아라하며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저도 같이 해요.”

    박소미도 작업을 멈추고 경희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고구마를 챙겨들고는 부엌 뒤로 연결된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

    그쪽엔 조그마한 창고크기의 옛날식 방이 하나 따로 만들어져있다.

    예전 집주인이 다른 곳은 다 현대식으로 개조했지만, 그곳만 옛날식으로 남겨두어서 아직 아궁이가 남아있다.

    “이것도 가져왔지.”

    이대봉이 다른 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잔뜩 꺼낸다.

    그것을 구경하던 정미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크리스마스 장식이네?”

    “화실에 트리도 없는데.”

    “뭔 상관이야. 마루 복도 창문에 장식하며 되지. 나 어릴 때부터 이런 거 엄청 해보고 싶었걸랑.”

    이대봉이 설렌다는 표정으로 그것들을 꺼내 창문에 테이프로 붙이며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어시들도 그를 도와 같이 장식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모두가 학창시절로 돌아간 표정으로 즐거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실버랑 선희는 여전히 그림에만 열중해 있다.

    어시들이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전구들도 연결해 창에 고정한다. 그리고 전기코드를 연결하자 전구가 반짝거린다.

    “와, 예뻐요!”

    “분위기 좋다.”

    “이제 성탄절 분위기 나네.”

    사람들이 반짝거리는 전구를 보며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림에만 빠져 있던 선희도 반짝거리는 전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잠시 후 경희와 박소미가 시커멓게 변한 군고구마를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자자, 맛나는 군고구마 드세요!”

    그런데 경희의 입가가 시커멓다.

    아마도 하나를 먼저 시식한 모양이다.

    “와, 군고구마는 오랜만이네.”

    “시골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나.”

    “저도요.”

    “어머, 설기도 먹고 싶니?”

    냐아앙

    며칠 전부터 화실에서 다시 지내고 있는 백설기도 선희 곁에 앉아 주변 사람들이 껍질을 벗겨준 군고구마를 먹고 있다.

    이 녀석은 정말 못 먹는 게 뭐야?

    원래 고양이들이 이렇게 아무거나 다 먹나?

    그때 마당으로 우산을 쓰고 들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성준희의 어머니가 준모를 업고 들어오고 있다.

    성준희가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서는 준모를 대신 업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뭔가 대화를 하더니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를 향해 머리를 살짝 숙이고는 돌아간다.

    화실식구들과 내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사이 성준희가 잠들어 있는 준모를 업고 들어왔다.

    “왜? 어머니, 안에 들어오셔서 같이 드시라고 하지.”

    “아니. 엄마는 이런 자리 불편하시데. 준모가 자꾸 누나를 찾아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오긴 했는데, 민폐 끼치는 것 같다고. 미안하다는 말 전해 달래.”

    “무슨 소리야, 민폐라니.”

    성준희와 내가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경희가 담요를 가져와 바닥에 깔자 그 위에 준모를 뉘었다. 그러자 고구마를 열심히 먹던 백설기가 준모에게 딱 붙어 몸을 웅크린다.

    백설기 저 녀석은 준모가 그렇게 좋은가?

    어느새 잠들어 있는 준모 곁에서 같이 자고 있다.

    “백설기는 준모가 좋은가봐요.”

    박수미가 그 모습을 보며 말하자 성준희가 웃었다.

    “그러게요. 준모도 백설기를 너무 좋아하고.”

    “단짝이네. 단짝.”

    모두가 잠든 두 녀석들을 보며 웃었다.

    ***

    “무카이 선생. 나왔어.”

    야지마가 무카이의 화실에 들어서며 말하자, 같이 작업 중이던 어시들이 그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간식.”

    야지마가 어시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사온 타코야키가 포장된 작은 종이박스를 각자 책상에 하나씩 올려준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네.”

    이번엔 무카이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거, 신간.”

    소년 히어로를 내밀자 무카이가 그것을 받으며 이리저리 훑어보며 물었다.

    “내건 왜 없어?”

    “너 타코야키 안 좋아하잖아.”

    “뭔 소리야? 나 좋아해.”

    “아, 그랬나?”

    “뭐야, 당신 정말 담당 맞아?”

    “흥분하지마라,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숨겨둔 종이상자 하나를 내밀자 그제야 무카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원고 작업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야지마가 낄낄거리자 무카이가 무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앙케이트는?”

    “아, 그거? 음······.”

    잠시 머뭇거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그런 야지마를 힐끔거리던 무카이가 시선을 거두며 다시 원고작업에 몰두하며 입을 열었다.

    “4위로군.”

    “······그래. 잘 아네.”

    “당신 표정 보면 단번에 알게 되지.”

    “아, 그런가?”

    야지마가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던 무카이가 물었다.

    “여전히 진심의 남자가 1위인가?”

    “왜? 순위가 변했을 것 같아?”

    “뭐, 워낙 견고해서 뚫기는 어렵겠지.”

    “하하, 맞아. 아직은 진심의 남자가 1위야.”

    그 말에 열심히 움직이던 펜이 멈췄다.

    “뭐? 아직은?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야?”

    “2위가 파시엔시아인데, 진심의 남자랑 딱 2표차이야.”

    그 말에 눈이 커진 무카이가 야지마를 돌아봤다.

    “정말?”

    < 톱을 노려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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