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을 노려라! (1) >
소년 히어로 편집부.
직원 한명이 만화잡지를 들고 지로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잡지를 내밀며 물었다.
“이거 보셨어요?”
“그게 뭔데요?”
“소년점프요.”
그 말에 지로가 호기심을 보인다.
“소년점프? 갑자기 그게 왜요? 뭐 재미난 거라도 실렸어요?”
“일단 이걸 보세요.”
직원이 만화잡지를 펼쳐보이자, 잡다한 글과 함께 재미난 캐릭터 그림과 중앙에 멋들어진 드래곤볼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축전이네요?”
그런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의 그림이다.
“여기요. 여기. 축전을 그린 사람요.”
“······!”
그림아래에 싸인. 그리고 누가 보냈는지 친절하게 적혀있다.
[‘삼사라’의 작가 ‘써니’의 축전 일러스트]
순간 지로가 깜짝 놀랐다.
설마 했는데 진짜 써니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이런 축전을 보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터라 아닐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특별
히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축전 정도는 만화가들 끼리 서로 보낼 수도 있는 문제니까.
그런 지로를 힐끔거린 직원이 말했다.
“담당인데 몰랐나 보네요.”
“네. 뭐 개인적으로 보낸 모양이니까요.”
“뭐. 개인적으로 보냈다면야. 그런데 정말 대단하네요. 천하의 소년점프에 축전그림까지 실릴 정도라니······. 써니 작가님의 이름이 이젠 제법 많이 알
려진 모양이에요.”
그렇게 말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담당자로서 만화가 관리에 더 신경 쓰셔야겠어요.”
“왜요?”
“이거, 소년점프나 소년매거진 같은 곳에서 선생님을 채가려고 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는다.
그 때문에 지로의 표정이 조금 굳어가자, 그가 서둘러 말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더니 곧장 일러스트가 그려진 잡지 페이지를 툭툭 치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토리야마 선생님도 꽤나 팬인 모양이시던데. 저는 바빠서 이만.”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쓴웃음을 짓고는 곧장 펼쳐진 페이지를 다시 내려다봤다.
중앙에 그려진 부르마와 손오공의 일러스트는 그야말로 그림천재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멋진 그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토리야마 선생의 오너캐(만화가 자신을 표현한 캐릭터)인 ‘토리봇’이 일러스트를 받고 즐거워 방방 뛰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림만
봐도 토리야마 선생이 얼마나 기뻐하는 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 삼사라 만화를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작가선생님이 축전을 보내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이 그림을 담당인 토리시마 씨에게 전해
받고 그날은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잤답니다. 드래곤볼의 인기가 아직 부족하지만, 써니 선생님의 축전을 받고 힘이 솟았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연재하겠
습니다. 아차, 그리고 저도 선생님께 일러스트를 보내드렸습니다. 좋아하셨으면 좋겠군요.]
이것을 읽은 지로가 곧 뭔가를 떠올리고 깜짝 놀랐다.
“어? 일러스트를 그려 보내드렸다고?”
그냥 단순히 만화가들의 교류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잡지사에서 써니나 텐겐의 정체에 대해 비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서둘러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사인에는 문제가 없다.
사인은 영어로 적혀있으니 이것만으로는 일반 독자가 알리는 없을 것이다.
혹시, 다른 것이 있나 생각해서 찾아봤지만 일단 축전이 실린 페이지 어느 곳에도 써니가 한국인 일거라는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기위해 소년점프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소년 히어로의 삼사라 담당인 아카기 지로라고 하는데요, 토리시마 씨 계신가요?”
토리시마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담당 편집자다.
상대방이 잠시만 기다려보라더니 곧 바꿔주겠단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상대편에 목소리가 바뀐다.
- ······.
“아, 안녕하세요. 토리시마 씨. 전 소년 히어로에서 삼사라를 담당하고 있는 아카기 지로라고 합니다.
- ······.
상대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자 지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도 지로가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네, 네.”
- ······.
“아, 그러셨군요. 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배려 해주셨다니 감사하다는 말씀 꼭 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네.”
- ······.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통화를 끝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담당인 토리시마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안심한 것이다.
사실, 일러스트에도 한글로 된 도장이 찍혀있었다고 한다.
일러스트를 보내온 써니 작가 측에서 간단한 편지도 함께 보냈다고 하는데, 거기에 자신이 한국인 작가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되도록 이 문제는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함께 전했단다. 그리고 일러스트는 외부로 공개해도 되지만 도장만 가려달라는 부탁도 함께.
그 말을 듣고 다시 잡지를 살펴보니, 일러스트엔 사인 말고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인쇄를 하기 전에 한글도장은 그쪽에서 일부러 가렸던 모
양이었다.
일단 이것이 외부로 알려지지만 않았다면 문제는 없다.
소년점프 내에서도 담당인 토리시마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니 그것도 안심이고.
그나저나 방금은 정말 자신도 영광이었다.
소년점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토리시마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어이, 뭐가 그렇게 좋아 싱글벙글 이야?”
다가온 사람은 야지마였다.
“이거요.”
소년점프를 내밀어 보이자 그가 눈을 크게 뜬다.
“뭐야? 소년점프? 너 말이야, 너무 노골적으로 타 잡지를 당당하게 보는 거 아니냐? 아무리 잘나간다고 이렇게 막 나가냐?”
“나 참, 그게 아니고요. 이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며 축전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보였다.
그것을 본 야지마가 페이지를 쭉 살펴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어? 이거 뭐야? 이거 써니 선생이 보낸 축전이야?”
“네. 저도 몰랐는데 타츠다 씨가 이걸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그래? 담당인 너도 몰랐다고?”
“네.”
“혹시 이거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
야지마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물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담당인 토리시마 씨랑 통화했어요. 그쪽에서도 그 문제를 잘 해결한 모양이더라고요.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야지마가 찌푸렸던 이마의 주름을 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단하다.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자랑 통화도 다하고. 내가 전화했으면 바꿔주지도 않았을 텐데.”
“설마요.”
“진짜야.”
“그 정도에요?”
“그렇다니까. 네가 삼사라 담당이니까 통화가 된 거라고. 거기다 이거 읽어보니까 토리야마 선생, 삼사라 완전 광팬이구만. 조만간 삼사라 인젝션 키트
도 나온다면 꼭 사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야. 그런데 정말 인젝션 키트, 계약은 된 거야?”
“일단 접촉 중이에요. 일단 2차 판권이 선생님께 되어있는 상태라 저희는 중계수수료 정도 받는 거겠지만요.”
“오, 그거 계약되면 써니 선생도 엄청 거금을 손에 쥘지도 모르겠는데? 요즘 삼사라 캐릭터들 인기가 좋으니까. 혹시 건프라처럼 인기 폭발하는 거 아
니야?”
야지마의 말에 지로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에이. 너무 앞서가지는 마세요.”
“아무튼 부럽다, 부러워. 우리 무카이 선생은 언제쯤 그런 대단한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날이 올까?”
“무카이 선생님 요즘 성적 좋잖아요.”
“뭐, 4위니까, 나쁘지는 않지. 저번 주에 딱 한번 3위를 하긴 했지만.”
야지마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중원요리왕이 2화에서 깜짝 3위를 한 건, 편집부에서도 일대사건이었다.
소년 히어로 삼왕이라 불리는 파시엔시아를 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런 인기는 팬들이 보내온 중원요리왕의 무사 일러스트가 굉장히 늘어날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 다음 주엔 곧바로 4위로 내려앉아버렸지만, 이 사건 이후로 소년 히어로에선 중원요리왕까지 해서 ‘히어로 4천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튼 야지마의 표정을 보며 지로가 웃었다.
“4위라도 엄청 대단한 거죠.”
“그야, 그렇지. 어쨌건 요즘 우리 무카이 선생 완전 물이 올랐다니까.”
“어시 부분은 어때요?”
“어. 일단 네 명. 프로 어시는 두 명이고, 한명은 네가 연결해준 삼사라 팬. 그리고 다른 한명은 임시로 일하는 만화가 선생.”
“그래도 다행이네요. 잠도 거의 못자며 일만 하신다더니.”
“뭐. 그래도 중요한 작업은 아직 거의 다 하는 편이라, 여전히 바쁘지.”
“아, 참. 듣기론 무카이 선생님, 키도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라면서요?”
“어. 오래전에 키도 선생님 어시 생활을 좀 했었거든. 그때는 뭐, 키도 선생님도 거의 무명시절 때였고.”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그러게. 나도 히어로 4천왕에 두 사람이 들어가 있으니 좀 신기하긴 하다.”
그렇게 말하며 야지마가 웃었다.
그때 여직원이 박스를 들고 지로에게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고마워.”
“네.”
신입 여직원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돌아간다.
박스를 보던 야지마가 지로에게 물었다.
“원고?”
“네.”
그렇게 대답한 지로가 곧장 칼로 조심스럽게 박스테이프를 제거한 뒤 열고는 원고들을 꺼낸다.
그리고 가장 위에 있던 원고를 꺼냈다.
파시엔시아다.
한번이긴 했지만 중원요리왕에게 밀려, 무려 4위까지 추락해 모두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후로 파시엔시아가 이젠 힘을 잃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
고 있었다.
물론 다음 주에 곧장 3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중원요리왕이 바짝 뒤를 추격하는 상황이라 안심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잘못하면 조만간 발행될 단행본 판매에도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무튼 약간은 복잡한 심정으로 파시엔시아의 원고를 살폈다.
여전히 멋진 그림에 독특한 배경까지, 그야말로 그림만큼은 현 최고 수준의 만화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어째 한 장씩 넘겨갈수록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의 리얼함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캐릭터의 생동감이 예전에 비해 더 좋아졌다.
표정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다.
그림만으로도 캐릭터들의 심리상태가 단번에 전해질 정도로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지로가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어? 왜 그래?”
“······이거. 이번 편 뭔가 전과 달라졌어요.”
그 말에 야지마가 파시엔시아 원고를 슬쩍 바라보고는 물었다.
“라커룸 장면 같은데?”
“네. 그런데 재밌어요. 경기 이상의 느낌이 전해져 와요.”
그림을 보던 야지마도 예전에 비해 생동감이 느껴진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와, 라커룸 같은 공간에서 저런 느낌의 그림을 그리다니. 진짜 작화 능력만큼은 알아줘야겠네.”
“내용도 조금 달라졌어요. 제가 전에 네임을 봤었는데. 이거 분명 네임에는 없던 내용인데.”
“오. 그렇다면 스토리를 수정했다는 거군.”
“수정이라기보다는 추가된 내용 같은데, 내용이 너무 좋아요.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 숨 쉬는 기분도 들고.”
그렇게 말한 지로가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야지마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눈이 빛났다.
“······왜?”
“이번엔 키도 선생님도 긴장하셔야 겠는데요?”
“뭐?”
< 톱을 노려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