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27화 (127/425)

< 간헐적 천재 (4) >

다음 날.

여자고등학교, 점심시간.

경희와 선희 그리고 단짝 친구들이 모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다.

“와, 진짜?”

“그렇다니까. 그래서 걔,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잡혀서 결국 부모님 모시고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더라.”

“어머, 어머. 웬일이니, 웬일이야. 간땡이 진짜 크다. 학교 근처에서 남학생이랑 데이트라니.”

“그러게. 학교랑 좀 떨어진 곳에서 할 것이지.”

“그나저나 이 기지배들 진짜 운이 좋았다니까. 그 쌩 난리를 떨고도 별일 없이 멀쩡히 살아 돌아왔잖아.”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경희와 선희에게 몰린다.

그런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선희는 별말 없이 반찬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곁에 있던 경희는 실실거리며 웃는다.

“생각보다 엄청 재밌더라.”

그 모습을 보던 친구들이 어이없어하며 다시 떠들었다.

“얘가, 얘가. 완전히 미쳤구나. 누가 얘 좀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는 거 아니니?”

“난 어제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니까, 쟤들 남고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니?”

하지만 다른 친구는 붉게 물든 얼굴로 발그레 웃는다.

“그래도 정말 대단했지. 남자애들 쌍둥이 보던 시선 기억나니? 걔들 완전히 난리였잖아.”

그 말에 곧장 여자애들이 태세를 전환하며 꺅꺅거리며 소리 지르며 웃는다. 그리고는 어제 사건을 떠들며 즐거워했다.

“얘네 들 그래도 한 미모 하잖아.”

“그래, 들어가서 몇이나 홀리고 온 거야? 거기 잘생긴 애는 없디?”

친구의 물음에 경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뭐? 그냥 축구만 보고 왔는데?”

“뭐?”

“야 이, 미친것아. 그게 말이 되니? 니가 축구를 왜 봐? 너 축구광이니? 아니, 그보다 그 많은 남정네들을 놔두고 왜 축구에만 정신을 팔아?”

“맞아. 그 많은 남자애들 사이에서 축구가 눈에 들어오디? 혹시, 축구부에 잘생긴 미남이라도 있었던 거 아니야?”

“아, 그렇구나. 자 빨리 자세히 설명 좀 해봐. 어서!”

“아니라니까, 축구만 봤어. 그러다 선희 손에 이끌려 나온 거고.”

“얘가 진짜. 그 좋은 곳에 가서. 엉뚱한 짓만 하고 왔네. 어이가 없어서.”

“얜 다 좋은데 결정적일 때 맹하단말이야. 니가 뭐 백치 아다다니?”

그렇게 말하며 서로 웃으며 웃고 떠든다.

그때 여자애 한명이 반으로 뛰어 들어온다.

“야! 창밖! 창밖!”

그렇게 말하며 창가로 뛰어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쭉 내민다.

“야! 추워 죽겠는데, 무슨 짓이야! 문 닫아!”

“저거 보라고! 저거!”

“뭘 보라는 거야? 어?!”

여자애들이 창가로 모여들었다. 때문에 밥을 다 먹고 도시락을 챙겨 넣던 쌍둥이와 친구들도 호기심에 서둘러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저기!”

여자애 하나가 손을 뻗어 학교 정문 쪽을 가리킨다.

창가에 있는 애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그거엔 남자애들이 모여 뭔가 써진 커다란 종이를 들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광경이 재미있는지 운동장에서 놀던 여자애들이 정문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모여든 여자애들 중 일부가 소리를 지르며 좋아라하

는 모습도 보인다.

다른 반 여자애들도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이 광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미쳤어! 미쳤어!”

“어머, 어머, 웬일이니!”

“빡빡이 쟤들 어디 애들이야?”

“근처 애들 같은데?”

“와, 정말 용감하다!”

남자애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여자애들이 온통 창가에 모여 수다를 떨어댈 때였다.

건물 중앙에서 갑자기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남자 선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야구방망이나 막대기 한 개씩을 든 채로.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여자애

들이 단번에 우르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과 동시에 남자애들이 서둘러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여자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와, 엄청 재밌다! 재들 정말 뭐래니?”

“우리 학교에 무슨 일로 온 거지?”

“글쎄. 춘향이라도 찾아온 걸까?”

“촌스럽게 춘향이는, 줄리엣이지, 줄리엣.”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그때 교실로 여자애들이 뛰어 들어온다. 그리고는 곧장 참새처럼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걔들 뭐래는 줄 아니?”

“어? 너희들 방금 저기 있었어?”

“당연하지. 아무튼 걔들 들고 있던 종이에 ‘승리의 쌍둥이 여신을 찾습니다.’라고 써 있었어.”

“뭐?!”

반 여자애들이 모조리 놀란 표정으로 경희와 선희를 돌아본다.

이 학교에서 쌍둥이라면 경희와 선희 자매 말고는 없으니까.

“이 앙큼한 계집애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맞아. 남자라고는 오빠밖에 모른다고 하지 않았니?”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고양이야, 고양이.”

“뭐가 됐건!”

“네, 이년들! 빨리 진실을 고하지 못할까!”

모두가 한꺼번에 쌍둥이들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선희는 평소처럼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모두의 시선이 이번엔 경희에게 쏠렸다.

경희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들어온 여자애에게 물었다.

“그래서, 쟤들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오호라! 이제야 제대로 실토하겠다는 거구나!”

“빨리 말해봐.”

경희가 재촉하자 턱을 긁던 여자애가 생각에 잠겼다.

다른 애들도 같이 재촉한다.

“야 이, 바보들아. 방금 듣고 와서는 그새 까먹니?”

“안 까먹었어!”

“나도.”

“그럼 빨리 말해봐.”

“어. 음. 그러니까······. 쟤네들 옆에 있는 남고 애들 인거 같던데. 무슨 운동부라고 하지 않았나?”

“아, 맞다! 축구부랬어, 축구부!”

“맞아. 그리고 음, 내돌인지 내들인지하는 고등학교랑 내일 시합이라고 하더라!”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여자애들이 물었다.

“얘네 들 찾아온 거 아니었어? 갑자기 축구시합은 또 뭐야?”

“아, 김빠져.”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자 그게 아니라며 손을 휘저었다.

“방금 말했잖아. 쟤네들 ‘승리의 여신’이라고 썼던 글.”

“그러니까. 아까 그 빡빡이들 말은 시합에 와달라는 뜻?”

“그래. 내일 하교시간에 시합 있으니까 꼭 좀 와달라고 난리더라.”

“어? 남고에 경기 보러가도 되는 거니?”

“아무나 들어와도 된대.”

“정말? 그럼 우리도 되는 거야?”

그 말에 누군가 나서서 찬물을 끼얹었다.

“쟤네들은 되지만 우리는 된다고 안했어. 아마 거기 구경 가면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가만 있겠니? 죄다 잡아들일걸?”

그 말에 모두 아쉽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 뭐야. 모처럼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에이, 그럼 물 건너 간 거네.”

투덜거리던 여자애들이고 곧장 쌍둥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나저나 너희들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쟤들이 너희들을 알고 있어? 그리고 승리의 여신은 또 뭐야?”

그 때 쌍둥이 친구들 중 한명이 나섰다.

“선희랑 경희가 늘 같이 다니니까, 눈에 띄었던 건 아닐까?”

“맞아. 늘 붙어 다니니까. 거기다 얘네 들이 미모가 좀 되잖아.”

그 말에 모두가 의심스런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지만 쌍둥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쟤네들이 눈에 좀 띄긴 하지.”

“인정.”

그렇게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가 되자 쌍둥이 친구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쌍둥이들은 별로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쨌건 그날은 하나의 즐거운 해프닝이었고, 그것은 여자아이들은 그것을 하루 종일 얘깃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점심시간 이후 5교시를 끝낼 즈음 갑자기 수업을 끝낸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의아해하던 모두에게 각반 반장들이 교무실에 다녀 온 후 돌아와 이야기를 전달했다.

“마치고, 모두 빡빡고에 응원하러간다.”

빡빡고란 인근 남자고등학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튼 이 말에 반 여자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와아아!”

“진짜, 단체로 걔네들한테 응원가는 거야?”

“뭔 일이래, 정말?”

“야, 반장!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결정이 난거야?”

그 말에 교탁 앞에 서 있던 반장이 안경을 고쳐 쓰더니 입을 열었다.

“빡빡이네 축구부 감독님이랑 거기 교감선생님까지 오셔서 부탁하셨다고 하더라.”

“그럼, 진짜 걔네들 여신이네, 뭐네 한 거. 정말이었어?”

“몰라. 듣기론 거기 교감선생님이랑 우리 교장선생님이 친한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이런 결정이 났다는 얘기도 있어. 물론 정확한 건 아니고.”

“와,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우리 학교 좋은 곳이었네.”

그런데 그때였다.

“야, 쌍둥이들!”

반 여자아이 하나가 소리치자 경희와 선희가 돌아본다. 그러자 소리쳤던 여자애가 엄지를 척 내밀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들이야!”

그 말에 다른 애들도 소리치며 동조했다.

“맞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남고 한번 구경해 보겠니.”

“아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꽃단장이라도 하고 올걸, 나 지금 어때? 미모가 좀 살아나니?”

“죽었어. 완전히!”

“이게!”

“괜찮아. 빡빡이 녀석들, 우리들이 단체로 가면 좋아 죽을 거야.”

“그래, 그래. 오늘 그것들에게 여신이 쌍둥이 말고 또 있다는 걸 보여주자!”

“여신? 어디? 그런 게 어딨는데?”

“그러게.”

“이것들이?”

여자애들이 좋다고 낄낄거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때 선희가 경희를 보며 말했다.

“좋은 기회?”

그 말에 경희가 웃었다.

“그래. 좋은 기회야. 정말 운이 좋았어. 안 그래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경희가 주먹을 불끈 쥐자 선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잠시 후, 여고생들이 단체로 운동장에 모여 선생님들의 통솔 하에 인근 학교로 이동해가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여학생 이동에 학교 인근에 있던 상인들이 머리를 빼고 그것을 구경한다.

“오늘 뭔 일 있어?”

“소풍날이야?”

“아닌데?”

사람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곧 이 여자아이들이 인근 남자 고등학교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응? 뭐지?”

“그러게.”

“아, 오늘 여기 내들고 애들이랑 축구시합 한다고 하던데.”

“그랬어? 그럼 얘네 들, 그거 응원하러 왔나?”

“그런가 보네.”

“오오, 요즘 것들은 정말. 쯧쯧.”

나이든 상인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찬다.

그렇게 여자애들이 학교로 들어가자마자 곧 남자아이들의 엄청난 환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경기 응원을 위해 모여 있던 남학생들이 여고생들을 보고 난리가 난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까지 흔들다가 몽둥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선생들의 경고에 모두 찌그러진다.

곧장 여고아이들이 한쪽 편에 자리를 잡자 학교 운동장이 가득 찬다.

한쪽은 남자, 반대쪽은 여자애들이 기묘하게 대치한 상태로.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건너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 있다.

그런 여자애들 사이에서 경희는 머리를 들어 축구부 애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다 창고 뒤편에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는 곧장 무리에서 몰래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때 선희도 그런 경희를 따라 나섰다.

“넌, 그냥 있지.”

“같이 갈래.”

“흐흐, 알았어.”

곧장 쌍둥이들이 창고가 있는 곳으로 몸을 숙인 채로 빠르게 이동해 갔다.

< 간헐적 천재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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