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26화 (126/425)

< 간헐적 천재 (3) >

와아아아!

마치 쓰레기에 몰려든 파리 떼처럼 공을 향해 달려드는 축구부원들 때문에 연습경기는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크억!”

“으악!”

공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격해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누구도 말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운동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격투축구장의 형태로 변해가자 하교를 하던 아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축구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

다.

“와! 오늘 축구부 경기 정말 재밌네.”

“쟤, 수비수 아니었어? 그런데 뭐야? 최전방에 있네.”

“와, 공격수보다 더 잘해. 진작 쟤 앞세우지.”

“오늘 화끈하다! 평소보다 백배는 재밌어!”

“진작 좀 저렇게 하지. 그랬으면 내들고 새끼들한테 5대 떡으로 지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때 최전방의 축구부 선수가 슛을 날렸다.

그런데 골키퍼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날라 그것을 펀칭해 막는다.

“와! 아까비!”

“쟤 진짜, 뭐야?! 완전 물 찬 제비다, 제비.”

“오늘 왜 이래? 축구부 단체로 뽄드라도 한 거냐?! 너무 재밌잖아!”

“달려라, 달려!”

와아아아!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축구부들을 보며 아이들이 열광했다.

그런 소란스러운 소리에 졸고 있던 축구부 감독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운동장 상황을 보고는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짓다가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런데도 아이들은 운동장을 미친 듯 달려가며 상대편 진영을 폭격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

자기 포지션을 잊은 군대식 축구의 느낌임에도 경기가 활기를 띄고 있으니 나름 재미도 있다. 미친 공격과 미친 수비.

이내 골이 터지자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그렇지! 그래!”

같은 팀원끼리의 축구였지만, 모처럼 시원한 공격이라 아이들을 지시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축구에 열중했다.

그리고 운동장 주변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교 건물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 달려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 몇 명이 소리쳤다.

“어! 학생주임 샘이다!”

그런 모습을 보던 선희가 경희의 옷자락을 슬쩍 끌었다.

그 순간 멍하게 경기를 바라보던 경희가 돌아보았다.

“응?”

“이제 나가자.”

그제야 경희는 자신이 남자고등학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는 곧장 선희의 손을 꽉 붙잡고는 남자 아이들 사이를 통과

해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다녀왔습니다.”

선희가 화실에 들어오며 인사하자 화실 식구들이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이제 오니?”

“어서와.”

쌍둥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각자 다른 곳으로 향한다.

경희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데, 선희는 일단 화실부터 찾아오는 것이다.

선희의 경우, 딱히 시간적 효율을 위해 그러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냥 집보다 이곳이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것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그냥 여기 전체가 자신의 방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저 왔어요!”

그런데 곧바로 경희가 화실에 들어오며 인사했다.

“어? 같이 들어오네. 집엔 안 갔어?”

내 질문에 경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응. 오빠가 내어준 숙제 때문에.”

“아, 그거? 마무리 하려고?”

“그래야하는데······.”

뭔가 표정이 좀 난감해 보인다.

“왜? 막혔어?”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

이 녀석 계속 고민 중인가 보구나.

그렇겠지.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음에도 이야기에 제대로 감정을 싣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여자이야기라면 모를까 남자, 그것도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니까.

내가 넌지시 물었다.

“도와줄까?”

“아니. 이번엔 내가 어떻게든 알아볼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많이 없어. 알고 있지?”

“응. 알아.”

그렇게 말하며 콘티에 뭔가를 메모해 나간다.

고민 중인 부분을 쓰고 있겠지.

그래도 평소와 달리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오빠로써 뿌듯하다.

사실, 평소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름 고민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일찌감치 미래를 결정한 선희가 벌써 자리까지 잡아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쌍둥이로서 응원은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나름 박상식에게 스토리에 대한 부분도 물어가며 공부하는 걸 보면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긴 한 모양이고.

나 역시도 나름 응원은 하고 있다.

경희가 하고 싶다면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때 일본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나가서 집배원에게 종이 박스를 받고 들어왔다. 보낸 사람은 지로다.

아마도 내가 부탁한 물건이겠지.

콘티노트를 보던 경희가 머리를 벅벅 긁다가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 그거 뭐야?”

“일본만화잡지.”

“소년 히어로? 그건 일본아저씨가 올 때 가져오는 거 아니야?”

“아니, 딴 거.”

“아.”

경희가 이내 관심을 끊는다.

평소라면 이것저것 더 캐물었을 텐데 지금은 콘티문제로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다.

그런 경희를 보고 피식 웃은 뒤 곧장 종이박스를 뜯었다.

두 권의 똑같은 잡지, 바로 11월 20일에 발행된 소년점프 51호였다.

여기엔 중요한 만화가 새롭게 연재를 했다.

그것 때문에 지로에게 부탁했는데, 그는 의아해 하긴 했지만 별달리 이유를 묻지는 않았었다.

“뭐야? 소년점프네. 왜 같은 걸 두 권이나 주문했어?”

박상식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어온다.

“하나는 보관하려고.”

“보관? 왜?”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이 실린 잡지니까.”

“아, 전에 네가 말했던 그 작가 말이지? 닥터슬럼프였나? 그거 그린사람?”

“어.”

그 말에 갑자기 실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토리야마 선생의 신작이 실렸어?”

“어.”

“그거 나도 좀 보자.”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자 내가 그에게 잡지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다른 책은 기념으로 다시 포장해 화실에 있는 철제 캐비닛에 일단 넣어두었다.

실버가 책을 받아 표지를 바라본다.

표지엔 근두운을 탄 손오공과 바이크를 탄 부르마가 있다.

그것을 보던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로군. 신작. ‘드래곤볼’이라······.”

그렇게 말하며 책을 펼쳤다.

권두컬러다.

소년점프도 이번 드래곤볼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간다.

실버도 평소에 닥터슬럼프를 꽤나 좋아했던 모양인지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에 꽤나 크게 반응한다.

한참을 읽던 그가 곧 책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실버의 얼굴이 처음과 많이 다르다.

“뭔가 밋밋한 느낌이군.”

약간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책을 다시 테이블에 놓아두고는 돌아간다.

다른 어시들과 박상식도 궁금했던 모양인지 우르르 모여들어 잡지를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상황이라 날 돌아본다.

그래서 연필로 빠르게 번역해 돌려주자 모두 돌아가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실버와 달리 다른 이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캐릭터가 너무 예뻐요.”

“자동차랑 오토바이를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어.”

“어머 손오공이 너무 귀엽다.”

그림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반대였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확 땡기는 맛도 없어.”

박상식의 평가였다.

“저도 좀 그래요. 닥터슬럼프라는 만화가 일본에서 단행본 판매 1위였다면 서요?”

박소미가 묻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치고는 첫 편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네요.”

“아직은 1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정미자가 대답하자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주간연재만화는 1화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아무래도 1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런데도 너무 평범한 느낌이에요.”

“난, 뭐 이건 이거대로 괜찮은 거 같은데. 아기자기 하잖아.”

“그건 그런데. 뭔가 좀 아쉽다는 느낌이야. 너무 기대를 크게 한 걸까?”

내가 전부터 기대하고 있다는 듯이 가끔 말했던 탓에 화실 식구들도 기대감을 많이 가졌던 모양이다.

하기야 뭐, 지금의 드래곤볼은 포지션이 좀 묘하긴 하지.

모험 개그물 정도랄까.

특히나 개그물의 경우엔 일본의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다르다보니 더 와 닿는 게 없을 수도 있고. 나 역시 초반의 드래곤볼은 그저 평범했다고 생각한

다.

실제 드래곤볼 연재 앙케이트도 한동안 15위권을 맴돌았다고 하니, 정말 애니메이션 화를 미리 결정해두지 않았다면 진작 연재중단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연재를 이어가다 천하제일무도회 때부터가 진짜 인기가 폭발하며 전설을 쓰게 된다.

아무튼 지금의 드래곤볼은 그저 아기자기한 그림일 뿐인 그냥 그런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이런 반응도 당연하다.

모두들 이내 관심을 끊고는 금방 자기자리로 돌아가 원고작업에 열중한다.

“상식이형, 지금 카메라 가지고 있어?”

“응. 그런데 왜? 쓰게?”

“어. 필름은 들어있어?”

“서너 장정도 남았을 거야. 새 거줄까?”

“아니, 그거면 돼.”

박상식이 자신의 책상에서 카메라를 가져와 내게 내밀자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곧장 드래곤볼 페이지를 펼치고는 권두컬러 첫 페이지를 찍었다.

“그걸 왜 찍어?”

“축전 보낼 때 같이 붙이려고.”

“축전?”

“어.”

난 곧장 남은 필름을 화실 식구들 사진 찍는데 사용하고 곧바로 선희에게 말했다.

“선희야, 오빠 부탁 좀 들어줘라.”

작업 중이던 선희가 연필을 멈추더니 머리를 들어 날 보며 물었다.

“알았어.”

“뭔 줄 알고 묻는 거냐?”

“몰라.”

무조건 OK인거냐?

“······.”

잠시 머뭇거렸던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러스트 한 장만 그려줘.”

“일러스트? 어떤 거?”

“방금 내가 보던 드래곤볼. 축전으로 쓸 건데.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거든. 이번에 신작 냈으니까 사진이랑 같이 보내려고.”

내 말을 들은 선희가 별다른 고민도 없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곧장 소년점프를 다시 펼쳐 그림을 쭉 훑어보더니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그림을 그린다.

부르마가 제일처음 등장할 때 타고 온 자동차 앞에서 손오공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는 듯한 모습을 멋지게 그려준다. 원판의 손오공과 부르마보다 인물

의 균형이나 느낌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다.

연필 데생이 끝나자 이번엔······, 어? 붓?

황당하게도 펜이 아닌 붓으로 연필그림 위에 그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김기철의 붓 사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선희가 사용하는 걸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제법 능숙하다.

언제 이걸 연습했던 걸까?

“잘 사용하네. 연습 많이 했나보다.”

“아니, 처음.”

“뭐?”

이 자식이 중요한 축전으로 사용할 일러스트를 가지고 장난을······, 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쓰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붓으로 완성하고 나니 펜과는 다른 동양화의 느낌도 좀 나는 게, 꽤 괜찮네.

곧 마무리 되자마자 내게 내민다.

“사인해야지. 날짜도 좀 써주고.”

내 말에 다시 날짜와 사인을 적어 넣더니 다시 내민다.

“도장도 좀 찍어줘.”

“알았어.”

얼마 전에 앞으로 선희가 그릴 일러스트에 사용할 도장을 따로 만들어 주었었다.

나름 큼직한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도장으로 한글로 ‘써니그림’이라는 글자를 새겨둔 것이다.

그것을 꺼내더니 사인 옆에 도장을 쾅 찍는다.

거기다 내가 일본어로 ‘신작 축하드립니다!’ 라고 쓰고는 곧장 서류봉투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카메라 필름을 빼서 인근에 있는 사진 현상소로 향했다.

< 간헐적 천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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