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헐적 천재 (1) >
야지마가 A4 용지를 팀장에게 들이밀며 소리쳤다.
“중원 요리왕, 2화 앙케이트 순위 3윕니다!”
“뭐? 진짜야!”
놀란 팀장이 야지마가 내민 종이를 받아 얼굴에 바짝 당겨 확인한다.
“·······진짜네!”
“하하.”
야지마가 양손을 허리에 올린 자세로 거만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지로가 있는 곳을 슬쩍 곁눈질 했다.
지로도 앙케이트 순위표를 보고 있는데, 예상대로 꽤나 놀란 표정이다.
그리고는 야지마의 시선을 느꼈는지 홱 돌아본다. 그리고는 야지마를 향해 피식 웃는다.
뭐 이 정도에 놀랄 일은 아니라는 그런 표정으로.
그 모습에 야지마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건방진 후배 놈.”
“뭐?”
“아니에요.”
“그나저나 파시엔시아를 밀어내고 3위라니 놀랐다, 정말.”
“삼사라와도 20표 차이밖에 나지 않아요. 이 정도면 거의 2위죠.”“1화 땐 순위가 9위였는데. 2화에서 갑자기 이렇게 순위가 올라가다니. 역시 그 압도
적인 연출이 독자들에게 통했나보다.”
팀장의 말에 야지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 무카이 선생이 그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거든요. 거기다 제임스 선생님의 스토리도 보강되어 온 탓에 더 재
미있어졌고요.”
“아, 맞다. 그거 텐겐 선생님이 수정했다고 했지?”
“네. 연재가 벌써 세 개라 바쁘실 텐데 중원 요리왕도 꼭 한번 훑어주시는 모양이에요. 덕분에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매번 놀라고 있어요.”
“그래도 파시엔시아를 깨고 올라서다니 대단해.”
“이제 2화인데요 뭐. 앞으로 계속 이 자리를 지킨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도 담당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아, 그렇군요.”
야지마가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그나저나 최근 팬들이 보낸 그림엽서들 봤어?”
“그림엽서요?”
“어. 요즘 삼사라 일러스트가 부쩍 늘었잖아. 그런데 주인공 켄보다 여자악당인 칼파나 그림이 더 많아. 독자들 사이에서도 칼파나의 인기가 장난이 아
니야.”
“저도 그건 느꼈어요. 써니 작가님이 칼파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게 느껴지던데.”
“그래. 거기다 이번에 변화된 그림 때문에 긍정적 반응도 많은 모양이고. 뭐, 일부는 예전이 더 좋았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일단 그림이 더 친숙해진 데
다가 눈에 잘 들어오니까. 만화를 보기도 훨씬 편해졌고.”
팀장의 말에 야지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삼사라가 모든 변화의 핵심이네요.”
“그래.”
그때 키도의 담당, 테고시가 편집부로 들어온다. 그런데 얼굴이 흥분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올라있다.
“저거, 왜 저래?”
“글쎄요.”
“테고시, 무슨 일 있어?”
“아, 팀장님.”
테고시가 여전히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진심의 남자 단행본요.”
얼마 전에 드디어 진심의 남자가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첫 출간문제로 출판부와 마찰이 좀 있었는데 결국 10만부로 결정이 났었다.
물론 삼사라의 성적이 생각이상으로 많이 나온 탓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아, 그거. 그런데 그게 왜?”
“10만권 완판이래요.”
“뭐? 진짜?”
“네. 방금 키도 선생님께도 연락드렸어요. 정말 이런 날이 또 오는군요.”
테고시의 눈에 눈물이 조금 고인다. 나름 그동안 했던 고생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던 것이다.
“와, 10만권 그거, 어려울 거라며 출판부에서 쌩 난리 쳤었잖아.”
“네. 그런데 역시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에요.”
“거봐, 출판부 그 자식들이 분석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정확하다니까. 아무튼 너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그 말에 곁에 있던 야지마가 슬쩍 끼어들었다.
“팀장님도 참, 지금도 고생하고 있잖아요. 진행형이라고요, 진행형.”
“아참, 그렇지. 지금도 키도 선생님의 폭주에 고생하고 있는데.”
“전 괜찮아요. 이런 날이 계속된다면야.”
그렇게 말하던 테고시가 이번에는 지로 쪽으로 다가가더니 그에게 인사를 한다.
“아카기 씨. 정말 고맙습니다.”
테고시의 느닷없는 인사에 지로가 깜짝 놀랐다.
“아, 저. 제가 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죠. 삼사라 작가님 덕분에 키도 선생님이 각성을 하셨는데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뭐,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담당으로서 뿌듯하네요.”
“하지만 1등은 양보 못해드립니다.”
“하하, 글쎄요. 언제까지나 그렇게 왕좌에 계속 계시기는 힘들 겁니다.”
“그건 모르죠. 키도 선생님께서 다른 건 몰라도 열정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시니까.”
“그래도 두 천재 콤비에겐 무리가 아니실까요?”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이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던 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표정으로 서로에게 잘도 비수를 들이대는구만.”
“그러게요.”
***
- 하하핫. 10만부 완판이다! 완판!
키도가 자랑 전화를 걸어왔다.
나도 담당인 지로에게 간단한 얘기는 들어 알고 있다.
듣기론, 10만부가 완판 되면서 추가로 3만부를 더 증쇄하는 모양이다.
“축하해. 형. 역시 소년 히어로 간판 만화답네.”
축하를 해주자 키도의 음성이 더 기고만장해진다.
- 하하. 당연하지 않느냐. 1위라면 당연한 거지. 이대로 백 만권, 아니 2백만 권을 넘겨서 닥터 뭐시긴가 하는 개그만화는 단숨에 꺾어 버······.
“그건 무리지.”
- ······그렇지. 그건 무리지. 하하.
이 인간 제대로 들떠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구만.
하기야, 듣기론 그동안 소년 히어로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초창기 괜찮은 작품을 낸 이후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최근 잡지의 판매부수가 점점 상승하고 있으니 이대로 성적을 잘 끌고 간다면 2권, 3권 넘어가면 더욱 판매가 늘지도 모를 일이다.
나로서도 지금 그가 1위를 지켜주는 것이 오히려 더 의지가 된다.
만약 내 작품이 모두 1, 2위를 모두 차지한 채로 계속 이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결국 용두사미의 스토리를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니
까.
- 아, 그런데 파시엔시아 이번에 4위 더구나. 쯧쯧. 어쩌다가 신인에게 밟혔는지.
젠장, 의지가 된다는 생각은 취소다.
그래도 솔직히 이번에 나온 중원 요리왕은 정말 대단한건 인정해야했다.
이대봉의 유치한 콘티를 그 정도로 멋지게 묘사할 줄을 정말 몰랐으니까.
- 어쨌건 그 중원 요리왕도 제법이더구나. 스토리도 괜찮은 모양이고. 일단은 제대로 된 이야기가 아직 나온 건 아닌데 멋진 그림만으로 단번에 3위까
지 끌어올리다니. 강적이야. 너도 긴장해야겠어.
“내가 긴장할 게 뭐있어. 난 그림쟁이도 아닌데.”
- 젠장, 이런 꽉 막힌 놈. 그래도 만화는 너의 자존심 이잖느냐!
“난 형처럼 순위에 목숨 걸지는 않아. 그냥 나 스스로 납득할 만큼의 재미가 있느냐 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런데 전화기 너머 조용하다.
왜 이러지?
- 너, 제법 멋진 소리도 할 줄 아는군. 그래, 그래야 내 동생이지.
젠장, 전신이 오그라드네. 이 인간의 뇌는 진짜 뭐로 만들어 진걸까.
- 아, 그리고 모처럼 인데, 써니 좀 바꿔 주겠느냐?
“선희? 갑자기 왜?”
- 자랑 좀 하게.
“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선희를 불렀다.
“선희야, 키도 형이 너랑 통화하고 싶대.”
내가 부르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선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수화기를 받았다.
“네.”
- ······.
키도가 선희에게 신나게 자랑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만화 재미없어.”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수화기를 내게 넘겨주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
순간 주변이 조용해진다.
모두 놀랐는지 모두 선희를 힐끔거린다.
나도 선희의 이런 모습이 처음이라 황당해 하다 곧 다시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댔다.
그런데 어째 상대편에서 아무런 소리가 없다.
“어? 아니키! 아니키!”
그때서야 거친 숨소리가 들리더니 곧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는 키도가 입을 열었다.
- 써니가 어, 어째서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냐?
“나도 모르지.”
- 나 미운털이 박힌 것이냐?
당황한 키도에게 내가 낄낄 거리며 농담을 했다.
“뭐, 형이 1위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니까 그런 건 아닐까?”
- 역시 그렇구나. 과연 너와 달리 써니는 야수의 본능을 가지고 있었어.
뭐라는 거야?
- 하핫, 알겠다. 써니에게 전해주거라. 1위 자리는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겠다고.
“별로 그런 뜻이 아닌 것······.”
-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자꾸나. 잘 있거라.
딸깍.
이 인간이 진짜!
에휴, 정말 못 말리겠다.
뭐가 호락호락이냐고.
곧 전화기를 내려놓고 머리를 들어 선희 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선희가 눈을 부릅뜬 채로 내 쪽을 노려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전화기 쪽을.
저 눈빛.
설마, 키도 말대로 정말 1위를 노리고 있는 거냐?
별로 티를 안내서 몰랐는데, 쟤도 은근히 야망이 있는 타입이었구나.
그때 경희가 화실에 들어왔다.
“나 왔어요오!”
그렇게 말하며 들어오다 화실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선희 쪽을 바라보자 선희가 여전히 내 쪽을 노려보고 있자 곧
장 나를 돌아본다.
“오빠, 무슨 일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
“······?”
경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선희 쪽을 번갈아 본다.
그런 묘한 시선이 오가자 화실이 조용해지고 화실 한쪽 편에 있던 라디오 소리가 커진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58.8%의 표를 얻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로 재선되었습니다. 상대후보였던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후
보는······.]
“역시 레이거노믹스가 계속 이어지는구만.”
실버의 중얼거림에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본다. 나 역시 방금 실버가 말한 내용을 이해 못하긴 마찬가지였고.
그때 다시 실버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그냥 잠자코 볼 참이야?”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들어 날 바라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의 눈빛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무슨 소리야?”
“지금 파시엔시아 4위라며.”
그때 거실마루에서 책을 읽던 경희가 화실 쪽으로 머리를 쭉 내민다.
그리고는 ‘뭐 4위?’라고 중얼거린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정말 가만히 지켜만 볼 거냐고.”
“엥? 갑자기 왜 그래?”
“나 지금 파시엔시아 파트야. 신인에게 내 자존심이 무너졌는데 나더러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실버의 눈이 이글거린다.
내 입장에서야 삼사라, 파시엔시아가 모두 내 새끼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작업 중인 사람들의 입장은 좀 다른 모양이다. 어시들이 실버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뭐지 이 분위기?
나 지금 엄청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거 같은데.
“요즘 파시엔시아 내용에 힘이 빠졌어. 그거 알고 있어?”
“······그거야. 알고 있지만.”
“그럼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안 그래?”
그때 거실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던 경희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빽하고 소리친다.
“맞아! 우리 파시엔시아가 4위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넌 또 왜 그래?”
“오빠,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내가 빠지면 안 되지.”
아이고, 또 얘가 불붙었네.
이럴 땐 좀 참아주지.
“안 그래도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 있는데, 한번 들어 봐줘.”
“아니, 괜찮은데.”
“저기 상식이 오빠. 전에 그거 어땠어?”
“응. 난 괜찮았어.”
“앗싸! 역시!”
갑자기 박상식이 머리를 끄덕이며 나서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경희의 아이디어라니.
그리고 그게 괜찮았다고?
그때 실버가 소리쳤다.
“그거 한번 보자.”
“옛써!”
어?
< 간헐적 천재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