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전쟁이다 (4) >
주간소년 히어로에서 드디어 ‘중원 요리왕’이 연재를 시작했다.
대충 이 만화가 나오게 된 과정을 아는 편집부 직원들은 연재가 시작되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사정과는 달리 독자들의 반응은 조금 조
용한 편이었다.
그림이 수려하고 멋지긴 하지만 첫 화에서 특별한 스토리를 보인 건 없었기 때문이다.
멋진 중국의 자연풍경이 그려져 있고, 일본과 다른 이국적 객잔의 모습, 그리고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지려하는 조짐 정도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다른 만화였다.
“어? 삼사라 느낌이 달라졌는데?”
“그러게? 그런데 정작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달라졌다고? 어디가?”
“나도. 특별히 뭐가 달라진 건가?”
일반 독자들의 반응은 달라진 것 같다는 것과 별로 그렇지 않다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지만, 열혈 독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럴 수가, 그림이 단순화 되었어. 어떻게 이렇게 단번에 변화를 줄 수 있지?”
“놀라운 건 그럼에도 퀄리티가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아니, 오히려 더 세련된 느낌인데.”
“연재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성장을 해?”
“써니의 성장이라니.”
“개인적으로 단순화는 별로 환영하지는 않지만, 이건 다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더 좋은 느낌이야.”
뒤늦게 편집부에서도 이런 변화를 눈치 채고는 많은 직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들 중 팀장이 지로에게 물었다.
“아카기, 혹시 화실에서 무슨 일 있었나?”
“네? 별일은 없다고 들었는데. 왜요?”
“그림에 변화가 생겼잖아. 보통은 이렇게 단번에 변하지 않지.”
그 말에 지로가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거요. 써니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그림을 약간 단순화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지로의 말에 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도적으로?”
“네.”
“야. 그게 말이 돼? 의도적으로 단순화 시킨다는 게 말이 쉽지. 잘못하면 그림이 이상해져.”
“그래도 잘 나온 것 같은데요.”
지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황당하다는 거지. 그게 말처럼 쉽냐고.”
“애초에 세 곳에, 그것도 현역 고등학생이 연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그야, 그렇지.”
팀장이 대번에 납득해버렸다.
써니를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하는 건 역시 무리니까.
“어쨌건 정말 이번의 변화는 대단해. 단순화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더 세련되고 보기도 좋아. 전에도 대단한 작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의 변화로 인해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아.”
“그렇긴 하죠. 솔직히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요.”
“그렇지?”
둘 다 피식 웃는다.
그때 외근을 나갔던 야지마가 편집부로 들어오더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을 열어 무카이의 원고를 꺼내더니 팀장에게 내밀었다.
“이거 중원 요리왕 2화인데, 한 번 읽어보세요.”
“왜? 전에 네임 봤잖아.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그건 아니고요. 그냥 읽어보세요.”
“······?”
그렇게 대답한 팀장이 중원 요리왕 2화를 펼쳤다.
그리고는 금방 표정이 변한다.
“······어?”
화들짝 놀라는 팀장의 반응에 지로가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 같이 머리를 쭉 내밀며 원고를 살펴봤다.
“······!”
그런데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갑자기 등장한 무사들.
그런 그들 주변에 흐르는 날선 공기를 수많은 선으로 묘사한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객잔에서 곧 벌어지게 될 혈투의 전조를 그림으로 묘사한 장면이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림을 넘겨가자마자 곧바로 진행되는 엄청난 전투씬.
마치 작은 태풍이 여러 개가 동시에 객잔 내에서 생겨난 것 같은 상황.
결국 객잔이 모두 파괴되고 주인공의 부모가 그 혈투에 희생되며 마무리되는 장면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원래의 네임에선 짧게 표현된 내용을 그림으로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무카이 선생, 어시 구했나?”
팀장의 물음에 야지마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직.”
“그럼 이걸 죄다 혼자 그렸다고?”
“네.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손이 빠르니까 세 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지, 보통 작가였으면 어시가 도와줘도 거의 잠 못 잘 수준인데, 이건.”
“뭐, 손이 빠른 건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더 빨라진 것 같은데.”
팀장이 여전히 감탄스런 표정으로 혀를 내두른다.
“맞아요.”
“그나저나 진짜 대단한 그림이다. 이만하면 삼사라 부럽지 않은데? 이번 2화는 정말 작정하고 덤벼들었네.”
“안 그래도 모든 것을 불태우며 그린대요. 미친 거지. 적당히 하라고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들어먹질 않으니. 지가 야부키 죠라도 된다는 건지.”
야지마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러자 지로가 곧 입을 열었다.
“아 참, 삼사라 팬 모임에 만화 그리는 애들 몇 명 있는데 그쪽에 연락해 볼까요? 전에 어시자리 찾는 애 있다는 얘길 들은 것 같은데.”
“실력은 괜찮고?”
그렇게 말한 야지마가 곧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다, 아니야. 지금은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야 할 입장이야. 뒤처리든 톤 작업이든 무조건 어시가 필요하니까.”
“일단 연락해볼게요.”
“고맙다.”
그때 팀장도 나섰다.
“얼마 전에 연재 끝난 만화가들에게도 연락해 볼게. 몇 명은 지금 일 없을 테니까, 어시일이라면 도와줄지도 몰라.”
“그럼 부탁드릴게요. 식비는 편집부에서 조금 지원해 주세요.”
“알았어. 그건 내게 맡겨. 지금 분위기 좋을 때라 편집장님도 오케이 하실 거다.”
“고마워요.”
“아, 일단 만화가들에게 전화부터.”
그렇게 말하고는 팀장도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방금 외근을 다녀온 키도의 담당 테고시의 눈빛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마자 원고를 꺼내 복사를 한 뒤 원고 한 장씩 넘겨가며 마지막 페이지에 넣을 글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테고시에게 전화를 대충 마무리한 팀장이 다가가 물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키도 선생님이 또 문제 일으켰어?”
팀장의 질문에 테고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복사원고를 살피며 대답했다.
“슬슬 폭주를 시작하셨어요.”
“뭐? 또?”
“이거 보세요.”
테고시가 팀장에게 원고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네. 이 인간 어시들을 잡아먹으려고 작정했나? 그림의 밀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말도마세요. 저번 파시엔시아와 삼사라를 보시고는 완벽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얼마나 폭주하셨는데요.”
“하긴, 그건 알 것 같다. 다른 선생들도 요즘 삼사라나 파시엔시아 때문에 모두 한 단계 각성하는 분위기니까.”
“그런데 이번에 실린 걸 보고는 더 완전 눈에 광기가 어렸다니까요.”
그 말에 팀장이 움찔거리더니 놀란 표정을 물었다.
“설마, 키도 선생님이 그림을 단순화 시키려고 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긴요. 그것 때문에 어시들이 선생님을 말리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갑자기 큰 변화를 주면 이질감 때문에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해도
듣지를 않으시더라니까요.”
“그럼 큰일이잖아.”
“뭐, 이번엔 사모님이 나서는 바람에 어떻게든 진정이 되긴 했지만요.”
“뭐라셨는데?”
“그냥 뭐 ‘적당히 하세요.’ 이렇게.”
그 말에 팀장이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키도 선생님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사모님밖에 없군.”
“써니, 텐겐 선생님도 계시죠.”
“아,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머리를 들어 편집부 내를 한번 쭉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말이지. 요즘엔 뭔가 편집부 전체가 들썩거리는 느낌이야. 얼마 전까진 세 작품이 선두다툼을 벌였는데, 이젠 중원 요리왕까지 끼어들고 나니
까 소속 작가들 전체에게 이 경쟁의 불씨가 옮겨 붙은 기분이야.”
그 말에 야지마, 지로, 테고시 모두 머리를 들어 편집부를 둘러본다. 그리고 확실히 전과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들이 전에 비해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엔 점심시간 직후에도 한가하게 낮잠이나 잘 정도의 여유를 부리는 직원도 없었다. 휴게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담배를 입에 문채로 하루 종
일 일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편집부 실내는 온통 담배연기로 가득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었지만 소용없을 정도다.
“놀랍네. 설마 아카기 네가 가지고 온 작품 하나로 인해 편집부 전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다니 말이야.”
“그러니까 ‘바람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 뭐 그거군요.”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시선을 편집장 쪽으로 옮겼다.
편집장은 지금 전화기를 붙들고 머리를 꾸벅 숙여가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아마도 임원에게서 온 전화인 모양이다.
그런데 편집장은 그렇게 머리를 꾸벅 숙이면서도 입 꼬리는 계속 올라가 있다. 뭔가 기분 좋은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편집장님이 제일 신나셨네.”
“네?”
“아니야.”
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묻었다.
***
그림은 생각보다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었다.
사실, 단순히 변화를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얼마나 자연스럽나 하는 점이다. 원래 그림의 변화가 심한 만화가들은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다보니 연재를 따라가는 독자는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그저 세월이 지나고 나서 과거의 단행본을 꺼내 비교하면서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선희 변화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있다.
그림자체가 변한 것이 아닌 단순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생략하고, 그 자리에 단순한 작업을 채워 넣어 더 효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잡았다.
그런데 선희가 놀라운 센스로 이전보다 더 나은 완성도를 만들어 버렸다.
말로는 쉽지만, 그걸 실제로 해내는 걸 보니 단순히 타고난 것 이상의 뭔가를 가졌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화실 내에선 이런 놀라운 사실을 제대로 눈치 챈 인물은 나와 실버가 유일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성공적인 단순화 정도로 파악하는 모양이지만.
가끔씩 선희의 변화하는 그림을 봐주며 스토리 구상에 바쁜 그때, 이대봉이 양손에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화실을 찾아왔다.
“자자, 원고는 나중에 하고, 모두 이거 먹어요.”
이대봉이 소리치자 모두 작업을 멈추고 머리를 들었다.
곧장 내가 물었다.
“그게 뭔데?”
“삼겹살. 오늘 마당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 밥은 있지?”
그 말에 구자희가 벌떡 일어났다.
“밥 많아요!”
“오케이! 그럼 시작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마당에 준비를 시작한다.
안 그래도 저 인간 얼마 전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숯이랑 커다란 쇠 통을 가지고 왔었다.
결국 이런 날을 노리고 있었던 거군.
하지만, 뭐.
가끔 이런 것도 괜찮지.
잔디마당에서의 삼겹살 파티라.
이것도 참 오랜만이네.
아무튼 집에 전화를 해서 가족들도 불렀다.
“와! 야외 고기파티야?”
경희가 소리를 지르며 고기 굽는 일에 손수 나선다.
그런 경희 뒤에 자리를 잡은 선희가 젓가락을 입에 넣은 채 입맛을 다시고 있다.
마당에 돗자리를 까는 건 우리 남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창고엔 예전 집주인이 쓰던 것인지 멍석이 몇 개 있다.
그것을 꺼내 마당에 깔고 자리를 잡고 모두 앉았다.
“자 여기 밥솥 받아.”
“으악, 뜨거!”
박상식이 비명을 지르자 모두 웃는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저녁.
모처럼 삼겹살파티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 이젠 전쟁이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