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22화 (122/425)

< 이젠 전쟁이다 (3) >

지로는 부탁받은 책 몇 권을 구입한 뒤, 곧장 서점을 빠져나가 인근에 있는 카페로 갔다.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유명 만화, 애니들의 포스터가 많이 붙어있어 일반적인 카페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계단의 벽에도 상황은 마찬가지.

2층으로 올라가자 마치 잠수함이나 군함 속에서나 볼법한 강철 문이 보인다.

“이게 입구인가?”

사람 눈높이쯤에 둥그렇게 뚫려있는 유리창이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만든다.

문을 잡아보니 모양만 쇠처럼 보일뿐, 실재 만들어진 재료는 나무인 모양이다.

하기야, 이런 일반적인 카페에 진짜 강철 문을 달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정말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페답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귀를 시원하게 하는 음성에 저절로 시선이 돌아간다.

귀엽게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핑크색의 옷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지로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은 일반적인 카페에 비해 여종업원들의 복장이 더 튄

다고나할까, 마치 만화 속 캐릭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런 느낌의 종업원 복장이 유행한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다.

하지만 다른 곳과 다른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분위기였다.

어디를 가나 여종업원들은 친절하지만, 이곳은 특히나 더 친근한 느낌이 든다.

지나가는 여자 종업원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과도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부담스럽다.

“아, 편집자님! 이쪽이요!”

창가 쪽 테이블에서 지로를 알아본 안경 낀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지로가 그녀를 확인하고는 곧장 그쪽으로 다가가자 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지로를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편집자님.”

“어서 오세요.”

“응, 모두 잘 있었어?”

“네.”

“저희들이야 뭐 늘 똑같죠.”

삼사라 팬으로 결성된 서클인데, 몇 번 모임에 들러 인사를 나누다보니 이렇게 친근하게 부를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모임의 대부분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아니면 사회초년생 남녀로 이뤄져있다.

지로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 한잔을 시키고는 곧장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 했어?”

“삼사라요.”

하긴, 모임의 목적 자체가 삼사라니 당연한 거다.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지로에게 웃으며 물었다.

“편집자님은 요즘 엄청 바쁘시죠?”

“조금.”

“조금이 아니지. 삼사라랑 파시엔시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텐데.”

“다크 프린세스 연재 결정 났던데 그건 편집자님이 안하세요?”

“너 바보냐? 그쪽은 빅 히어로잖아. 빅 히어로. 당연히 다르겠지.”

“아, 그런가?”

“아니. 그것도 내가 해.”

지로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란다.

“어? 정말요?”

“다른 잡지인데 그게 가능해요?”

“같은 출판사니까 가능한 거겠지.”

“아닐걸? 일단 잡지는 다르잖아.”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건물도 같으니까, 뭐.”

“회사가 같아도 부서가 다르면 일도 다른 거 몰라. 회사 안다녀서 모르는 거냐?”

“네에. 세토 씨는 사회인이라 좋으시겠어요.”

“어흠. 알면 됐어.”

“어쨌건 다른 잡지라는 거군.”

대화를 듣던 지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너희들끼리 결정을 내리는 구나.”

“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야윈 남자 한명이 손을 들었다.

“저기, 편집자님. 전에 말씀하셨던 거 말인데요.”

“아, 그래. 너 단편 원고 완성해서 가져온다고 했었지?”

지로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기억하고 계셨네요.”

“당연하지. 내 일이 그건데. 지금 한번 볼 수 있을까?”

“지금요?”

“왜? 안 했어?”

“아뇨. 지금 가져왔어요.”

“그럼 줘봐. 남들이 신경 쓰이면 따로 볼까?”

“그건 아니에요. 이미 여기 대부분 본 건데요, 뭐.”

“그러면 당장 보자.”

“네.”

그리고는 남자가 가방에서 원고를 꺼내 옆 사람에게 넘겼다. 그러자 그 원고는 손에서 손으로 거쳐 지로에게 전달되었다.

“저희들도 좀 봤는데, 느낌이 상당히 비슷해요.”

누군가 말을 하자 모두 웃으며 머리를 끄덕인다.

“비슷하다고?”

“네. 삼사라 느낌이랑요.”

“아.”

고개를 끄덕인 지로가 원고를 펼쳐본다.

첫 장 제목이 ‘다르마차크라’다.

어째 삼사라와 비슷한 느낌의 단어다.

“산스크리트어고요. 불교에선 법륜이라는 용어로 사용되는 말이에요.”

그림을 그렸던 남자가 말하자 지로가 머리를 끄덕인다.

만화를 천천히 살펴보니 사람들 말대로 정말 삼사라의 분위기가 나는 만화다. 그런데 그건 그림에 대한 분위기일 뿐 내용은 좀비 종류가 아니라 요괴 쪽

이야기에 가깝다.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요괴들이 인간계에 침투해 문제를 일으키자 그것을 처리해가는 일종의 퇴마사이야기다.

주인공은 불교 쪽과 관계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림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인지 지저분하긴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꽤 재밌다.

아직 신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다.

“어떻습니까?”

지로가 원고를 다 보고 내려놓자 남자가 물었다.

지로는 일단 대답을 미루고 한 번 더 차근차근하게 읽은 뒤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림은 삼사라와 많이 닮았네. 특히 캐릭터와 분위기가.”

“네. 삼사라 그림을 많이 공부했거든요.”

“잘했어. 신인은 모방부터 하면서 실력을 키워야지.”

“감사합니다.”

“이야기도 재밌어. 소재는 좀 특별한데 내용은 단순하고 쉬워서 더 좋아.”

지로의 말에 주변에서 잘된 일이라며 남자를 칭찬한다.

“나중에 따로 이 원고랑 네임을 가지고 출판사로 한번 찾아와. 그때 미팅 제대로 해보자. 몇 군데 손을 보면 매달 있는 신인응모에 기재해도 될 것 같다.”

“정말요?”

“그래. 하지만, 딴 데 가지 말고 꼭 내게 가져와야 된다.”

“그럼요.”

남자가 굉장히 기뻐한다.

주변에 동료들이 그를 더욱 축하해주자 분위기는 더욱 시끌벅적 해진다.

그때 여자 한명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자꾸 문 쪽에 시선을 보낸다.

그런 여자를 보며 지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아, 네. 저희 모임에 오실 분이 한명 더 있는데 아직 안 오셔서요.”

“오실 분? 누군데?”

“아, 나이 많은 회사원이신데, 저희처럼 삼사라 팬이시거든요.”

“나이가 많아?”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뭐, 30대 중후반쯤? 너 타무라 씨 나이 알아?”

“모르는데.”

“나도.”

모두 머리를 갸웃거린다. 어쨌건 분위기를 보니 이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아마도 최근 새로 모임에 들어온 사람인 듯하다.

하긴 팬에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무튼 지로는 슬슬 다른 일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난 이제 바빠서 가봐야겠다. 다음에도 시간이 맞으면 한번 들를게.”

“벌써 가시게요?”

“어.”

“일부러 참석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지.”

“맞아.”

“안녕히 가세요. 아카기 씨.”

“담에 또 봬요. 편집자님.”

“어. 그래. 다음에 보자.”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문 쪽을 계속 신경 쓰던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아, 왔다.”

“······?”

그때 지로의 등 뒤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하, 미안, 미안. 일이 좀 바빠서 이제야 왔다네.”

“아, 어서 오세요. 타무라 씨.”

“괜찮아요. 본업에 바쁘신 건데. 그런 건 이해해야죠.”

“타무라 씨. 반갑습니다.”

지로도 곧 시선을 돌려 타무라라고 불리는 남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아카기 지로라고 주간소년 히어로의 편·······. 어?”

“엇?!”

“키, 키······. 읍!”

“아, 이거. 일단 우리 나가서 대화를 해보세나.”

곧바로 타무라가 지로의 입을 묵직한 손으로 콱 틀어막더니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키 뭐라고 하지 않았어?”

“글쎄?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인 모양인데?”

“그냥 아는 사이로는 안 보이는데?”

“그럼 어떻게 보이는데?”

“뭐랄까, 사채 꾼에게 잡혀가는 것처럼 보이던데.”

그 말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늘 타무라 씨 보면서 일반적인 회사원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

“나도 그래. 역시 어두운 세계의 사람인 모양이야.”

“그럼, 아카기 씨가 돈을 빌린 걸까?”

“모르지. 사람마다 다 말하지 못하는 사연 하나쯤은 있을 테니.”

“쯧, 어쩌다가.”

“그래도 지금 히트만화 두 개나 담당하고 있으니까, 곧 벗어나겠지.”

“그렇겠지?”

모두 머리를 끄덕이며 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순간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이 곧 한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란 눈을 한 지로가 타무라에게 말했다.

“키도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타무라, 아니 가명을 쓰던 키도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자네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저야, 삼사라 팬들의 모임이니까 최근 삼사라에 대한 반응이라던가 이런저런 것들을 알기위해서 가끔 찾아오는 건데요. 담당자로서 이런 정보는 알려

드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아, 그런 것이군.”

“그런데 정말 키도 선생님은 어째서?”

“아, 뭐······. 시장 조사라고나 할까?”

“시장 조사를 왜 여기서······? 아, 설마 염탐?”

“크엄! 거 말을 해도. 나도 일단은 삼사라 팬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 말에 지로가 가재미눈을 하며 키도를 바라본다.

그러자 키도가 그런 시선을 슬쩍 피한다.

“그래도 의외네요. 키도 선생님이 이런 모임에 다 나오시고. 제가 알기론 진심의 남자 팬 모임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크흐흐. 자네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키도의 이마에 핏대가 서자, 지로가 슬슬 물러선다.

“아, 뭐. 각자 사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키도가 이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맞아. 각자 사정. 그래도 이해해 주니 고맙군.”

“그럼요. 당연하죠.”

“그런데 말이지, 이왕 이렇게 자네를 만났으니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뭡니까?”

“이번에 나온 신작 말이야.”

“신작요?”

“그래. 중원 요리왕.”

“아. 네. 그게 왜요?”

“그거, 스토리 말이야. 유난과 관계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소문이라도 해봤자, 담당인 테고시가 알려줬을 것이다.

“뭐, 편집부 밖으로는 유출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만, 관계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역시 그렇군!”

“아뇨. 관계가 있다고 했지 이 선생님이 만든 건 아니고요.”

“엉? 그럼······?”

“친분이 있는 분이죠.”

“그러고 보니, 전에 제이슨인가 하는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군.”

“13일의 금요일입니까? 제이슨이라니. 제임스겠죠.”

“아, 그런가? 그렇다면 좀 다행이긴 한데.”

그 말에 지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안심하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뜻인가?”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앞으로 상위권 순위 다툼이 치열해질 거라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확신해 봤자·······.”

“키도 선생님도 다음 주 발행되는 중원 요리왕 보시면 이렇게 여유부릴 수 없으실 지도 모릅니다.”

“하하, 그래도 유난이 아니라면 별로······.”

“그림, 스토리 모두 두 분 선생님들께서 인정하셨습니다.”

그 말에 지로의 눈이 커졌다.

“유난이랑 써니가?”

“네.”

“······.”

키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런 키도를 보던 지로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곧 인사를 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임에 들어가실 거죠?”

“아니, 나도 생각해보니 바쁜 일을 잊고 있었어.”

“아. 그러신가요?”

“그래. 나도 이만 화실로 돌아가 보겠네.”

키도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이젠 전쟁이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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