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18화 (118/425)
  • < 중원 요리왕 (4) >

    좁은 골목의 식당 뒷문이 있는 곳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멍청아, 그걸 헷갈리면 어떡해? 어이구, 넌 그냥 그 쓰레기나 버리고 와!”

    문이 털컥 열리며 젊은 남자가 하얀 식당 종업원 복장을 입은 채,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있는 커다란 스텐냄비를 들고 나와서는 바닥에 턱 내려놓는다.

    “쳇, 저 자식은 나 괴롭히는 맛에 사나?”

    그렇게 투덜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남자의 머리 앞에 손을 불쑥 내민다.

    “······!”

    딸깍.

    눈앞에서 라이터가 켜진다.

    젊은 남자 종업원이 시선을 돌렸다.

    자신에게 손을 뻗은 사람의 정체를 알고는 눈이 커졌다.

    “야······ 지마 씨?”

    “팔 아프다. 얼른.”

    “아.”

    뻑뻑.

    담뱃불을 붙이고는 곧장 담배를 입에서 떼고는 입을 열었다.

    “······여긴, 어쩐 일로.”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자 야지마가 그런 종업원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무카이. 예전보다 살이 좀 쪘네. 이젠 좀 살만 한가봐.”

    그 말에 무카이라 불린 식당종업원의 표정이 구겨진다.

    “살은 개뿔. 놀리러 온 거요?”

    “하하. 설마.”

    “그나저나 전에는 무카이 선생이라더니, 이젠 그냥 무카이야?”

    “요즘은 활동을 안 하니까 당연한 거지.”

    “역시 정이 안가는 양반이야.”

    “하하.”

    무카이가 웃는 야지마를 찡그리며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자 야지마도 그의 곁에 같이 주저앉는다.

    “어? 왜 이래요? 할 일 없어?”

    “나도 담배 한 개비만 줘라.”

    “뭐야? 불 한번 붙여주고는 담배를 달라고? 완전 사기 장사네.”

    “그럼 물고 있는 그거라도 주던가.”

    야지마가 그렇게 말하며 무카이가 물고 있던 담배를 뺏으려 하자 몸을 쭉 빼며 코끝을 찡그린다.

    “어어? 이런 젠장.”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담뱃갑을 내밀고는 툭 치자 한 개가 쏙 튀어나온다.

    “먹고 떨어져!”

    “땡큐.”

    그것을 뽑아 든 야지마가 입에 물고는 담뱃불을 붙인다.

    “뭐야? 정말로 요즘 일 없어요?”

    “담당하는 선생의 연재가 끝났거든.”

    “하하, 그런가? 요즘 소년 히어로도 좀 잘나가는 것 같더니, 역시 다른 담당 얘기겠군.”

    무카이의 말에 야지마가 은근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그래도, 소년 히어로를 보고는 있었나보네. 하하. 어때? 재미있는 만화가 많이 늘었지? 네 취향은 역시 삼사라? 역시 단행본도 샀으려나?”

    “콜록! 콜록!”

    “역시 그랬군.”

    “남이야!”

    그 말을 들은 야지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무카이를 툭 치며 물었다.

    “요즘도 쭉 원고 쉬고 있어?”

    “이젠 상관없잖아.”

    “아까워서 그러지.”

    “흥, 관심 끊으쇼. 운도, 재능도 없는 인간이니까.”

    “운이 없긴 했지만, 재능까지야.”

    “이야기 재능이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진짜 이 인간이. 놀리려고 온 거 맞네.”

    “하하. 아니라니까.”

    “맞구만, 뭐.”

    그 말에 야지마가 다시 크게 웃더니 은근한 음성으로 조용하게 물었다.

    “스토리 하나 있는데. 한번 볼래?”

    그 말에 무카이가 코웃음을 친다.

    “또? 그동안 당신이 가져다 준 스토리 세 개다 꽝이었어. 그런데 나더러 또 그 짓을 하라고?”

    “뭐, 어때? 세 번이나 네 번이나.”

    “뭐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그래도 처음엔 너도 굉장히 좋아했었잖아. 짧게나마 인기도 있었고.”

    “그러면 뭘 해. 금방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면서 망해버렸는데.”

    “하하, 그랬지.”

    “당신이 이 타이밍에 웃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도 지난 일이니까,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하라고.”

    그런 야지마를 무카이가 노려봤다. 그러더니 다시 투덜거렸다.

    “쳇, 너무하네. 그래도 담당이었으면서.”

    “뭐, 지금도 담당이야.”

    “웃기시네. 담당은 무슨.”

    “어때 한번 읽어볼래?”

    “나, 지금 바쁘거든요.”

    “담배 피는 시간동안 만이라도 한번 읽어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이라는 말에 무카이가 움찔거렸다.

    “전에도 마지막이라며.”

    “아, 그랬나? 하하.”

    “웃지 마! 진짜.”

    “그럼, 가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서류봉투를 툭 던지듯 넘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장 골목을 빠져나간다.

    “어? 뭐야? 그냥 가는 거요?”

    “아참, 그거 삼사라 스토리작가가 인정한 얘기라고 하더라.”

    “뭐?”

    놀란 무카이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봉투를 내려다본다.

    삼사라는 지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다.

    가장 자신 있는 그림에서도 삼사라만큼은 인정하고 있었고, 이야기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런데 그런 작품의 스토리작가가 인정한 거라고?

    그보다.

    “삼사라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었던 거요?”

    “아, 이거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네.”

    “확실하게 말해 봐.”

    “자자, 그런 건 나중에 하고, 난 이만 가볼게.”

    “야지마 씨. 말은 해주고 가요!”

    “또 보자고.”

    “젠장, 다음 좋아하네.”

    “하하.”

    웃으며 멀어지는 야지마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던 무카이가 곧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서류봉투를 내려다본다.

    “삼사라 작가가 인정한 스토리?”

    순간 묘한 느낌이 생겨난다.

    그리고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무카이 하지메.

    고등학교 시절, 초짜 편집자였던 야지마의 눈에 띄어 단편으로 데뷔한 나름 이 바닥에선 천재라는 소리 좀 들으며 입문한 만화가였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딱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부분의 신인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 그림 좀 그린다는 소리 들으며 오로지 그림 한길만 파 왔던 그였다. 그래서 그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

    신이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만화라는 작품을 잡지에 연재해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것만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만화였지만, 결국 기본이 되는 건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재미없는 만화는 그림에 아무리 재능을 보여도 독

    자가 지지해주지 않는다.

    한 장면, 한 장면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름 야지마가 네임작업을 도와줘서 세 번의 단편을 잡지에 실어봤지만, 번번이 독자들의 외면만을 받아왔을 뿐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은 편집부에서도 모두 인정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그에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야지마도 포기하지 않았다.

    스토리에 재능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면 된다.

    그래서 야지마는 잡지사에서 주최한 스토리 공모전에 입상한 신인 작가들과 연결해 주며 새로운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연재했던 만화는 나름 앙케이트에서도 꽤나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는 가 싶었다. 그런데 신인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결국 금

    방 한계를 드러내며 이야기가 산을 타 버렸고. 두 권으로 빠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생겼다는 생각에 다시 스토리를 더 받아 연재를 했지만, 결국 그것도 실패. 세 번째엔 아예 한권도 채 마무리 내지도 못하고

    연재를 끝내야 할 정도로 엉망으로 끝이나버렸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단편을 만들기도 했고, 담당인 야지마도 괜찮은 스토리작가와 연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인지도가 이미 바닥을

    친 상황이라, 스토리작가들이 오히려 꺼려하는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만화가로 데뷔를 했지만 생활비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 무카이는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다, 만화를 접고는 이렇게 식당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카이의 손에 여전히 쥐어져 있는 서류봉투를 내려다본다.

    “삼사라 작가가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인정한 거라면 뭐. 결국 신인이라는 거잖아. 괜히 기대할 일도 아니구만.”

    그렇게 투덜거린 무카이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봉투를 열어 종이들을 꺼냈다.

    그리고 첫 장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중원 요리왕? 제목도 참.”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소년만화다운 제목이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금방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그런데 첫 장부터 그를 당황시켰다.

    “엑, 그림이 왜 이래?”

    너무나도 성의 없다는 느낌의 그림이 인상을 찌푸린다.

    최소한 그림으로 어느 정도는 표현해야지, 이건 뭐 그냥 성냥 같은 느낌의 그림이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었다.

    말풍선에 적혀있는 글도 뭔가 묘하게 어눌한 느낌이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속았다’였다.

    “야지마, 이 인간이 진짜······.”

    짜증이 밀려온다.

    아무리 자신이 한물간 신인이라고, 이런 걸 자신에게 가져왔나싶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다. 그래서 순간 쓰레기통에 쳐 넣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뭐가, 삼사라 작가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거야!”

    종이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야지마가 일부러 가져온 것이니 한번은 읽어보고 버리는 게 그래도 예의라는 생각에 꾹 참고,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어 가면 읽어갈수록 뭔가 이상하다.

    “······!”

    분명 거지같은 그림에 어눌한 글의 향연인데, 어째서 자신이 내용에 이렇게 몰두하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설정부분부터 천천히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배경은 일단 고대 중국.

    각종 요괴가 등장하거나, 중국답게 무술 고수들이 다수 등장하는 이야기다.

    마치, 무사들의 이야기와 서유기를 뒤섞어놓은 듯한 세상이라 흥미를 부른다. 거기다 주인공은 요리 실력을 타고난 천재라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분명 부모가 죽고, 그것을 복수한다고 하는 이야기임에도 비장하다는 느낌보다는 서유기처럼 모험을 떠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모험은 소년들의 로망이 아닌가.

    말도 안 될 정도의 엉망인 그림이지만, 자신의 머릿속에선 이야기 속 캐릭터들이 제대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이건 신세계였다.

    근래 삼사라 이후로 이렇게까지 몰두할 정도의 이야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아까까진 아니었지만, 삼사라의 작가가 인정했다는 말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재밌다.

    뭔가 찌릿한 기분이 등뼈를 타고 올라와 뒤통수를 때린다.

    움찔

    그동안 절망 속에서 살던 그가 드디어 빛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무카이! 밖에서 죽치고 뭐하는 거야! 일 안 할 거야?!”

    “······.”

    “야!”

    곧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날카로운 눈매를 한 키 작은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양아치 새끼야! 일 안 할 거냐고!”

    그럼에도 무카이는 여전히 그림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야! 내말 안 들려! 선배가 우습냐?! 일 그만 둘 거야?!”

    그 말에 바닥에 앉아있던 무카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열고 나온 남자를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해! 안 한다고, 새끼야! 콱, 이걸 그냥. 나이도 어린 녀석이 선배랍시고 진짜!”

    “······!”

    남자가 무카이의 그런 행동에 움찔 놀라더니 멍한 표정으로 얼어버린다. 평소 온순하기만 했던 무카이가 이렇게 무섭게 나오자 몸이 경직된 것이다.

    “야, 야. 나 그동안 많이 참은 거 알지? 옛날 성질 같았으면 그냥 콱!”

    무카이가 손을 들어 올려 한번 위협하자 움찔 놀란다.

    그런 그를 보더니 피식 웃고는 입고 있던 앞치마와 직원용 옷을 훌훌 벗어 그의 몸에 걸어주었다.

    “나, 이제 갈 테니까. 잘 살아.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얼어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곧장 원고를 가지고 골목길을 빠져 나가버렸다.

    그런 그의 뒤 모습을 보던 남자가 그대로 멍하게 서 있자 부엌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요시모토! 넌 또 왜 안 오는 거야?!”

    “······.”

    “야! 뭐하냐고!”

    “······.”

    < 중원 요리왕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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