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17화 (117/425)

< 중원 요리왕 (3) >

지로의 선배인 야지마가 열심히 네임에 열중해 있었다.

한 장씩 넘겨가며 열중해가는 모습이 완전히 만화에 빠진 듯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긴 후 곧장 머리를 번쩍 들었다.

야지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오, 이거 참신하다.”

조금은 긴장하고 있던 지로가 곧 야지마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죠? 확실히 재밌죠?”

“어. 복수물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지만, 뭔가 모험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뭐랄까······, 미래소년 코난의 고대중국판 같은 느낌?”

그 말에 납득한 지로가 웃었다.

“하하, 라나를 납치해 갔다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러고 보니 또 코난이 보고 싶네. 진짜 명작인데.”

“하하. 요리를 잘하는 코난이 고대 중국에서 활약하는 느낌이라. 그런데 왜 코난은 할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았을까요?”

“예쁜 라나가 납치를 당했잖아.”

그 말에 지로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째, 할아버지가 불쌍하네. 코난 녀석. 할아버지가 그렇게 잘 키웠는데.”

“야, 할아버지가 복수하라고 유언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아. 그건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며 지로가 웃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거······, 일본어가 약간 서툰 느낌이네? 혹시 텐겐?”

야지마의 말에 지로가 손을 휘적거렸다.

“에이, 아니에요. 일본어가 얼마나 능숙한데. 물론 이 네임의 주인이 한국인은 맞지만.”

그 말에 야지마가 호기심을 보인다.

“그럼 누구?”

“써니, 텐겐, 그쪽이랑 친분이 있는 분이긴 한데, 재능도 많고요. 그런데 저에게 이걸 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밌기도 하고 그냥 두면 분명 다른 출

판사로 가져갈 테니까. 일단 무조건 가져왔죠.”

“잘했어. 이런 걸 다른 곳에 빼앗기면 안 되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괜찮아? 이미 담당하는 게 여러 개잖아. 다크 프린세스까지 만약 연재 들어가면 세 개라고.”

“그야 그렇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이런 건 무조건 가져와야하니까.”

“하긴.”

감당 못하는 한이 있어도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일 따윈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특히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팀장님이랑 편집장님은 뭐라 셔?”

야지마의 질문에 지로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직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가장 먼저 본거네.”

“그런 거죠.”

“오, 이거 영광이구만.”

“이유가 있으니까요.”

지로의 말에 야지마가 눈을 크게 떴다.

“이유?”

“일단 선배가 보긴 어때요? 이거.”

“내 의견 물어보는 거냐?”

“네.”

“흐음.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어, 이런 작품을 담당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들고. 요즘 네 녀석이 너무 잘나가니까 배도 아프고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린다.

“선배, 지금 담당하시는 분은 준비 중이시죠?”

“어. 얼마 전에 연재가 끝났으니까.”

“신작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흐음. 뭐. 단편 두어 달 정도 후에 단편으로 테스트를 해보고 결과가 나오면 그 때 결정이 되겠지. 그동안 팀장님이 맡겨본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이거, 선배가 한번 담당해 보실래요?”

그 말에 야지마가 화들짝 놀랐다.

“이걸, 내가?”

“네.”

“······진짜, 이거 내가 맡아도 돼?”

“어째 빈말이라도 거절을 안 하세요?”

“뭐? 내가 거절해야 하는 거였어?”

“하하, 그건 아니지만요.”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따지게 됐냐고. 거기다 이만한 네임이라면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하지.”

하기야 저런 야지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지로가 아니었다.

어쨌건 편집자도 월급쟁이 일 뿐이다.

담당인 만화가가 어떤 작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월급, 성과급, 그리고 진급의 정도가 달라지니까.

그런데 야지마는 열정적인 편집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만화가들의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실, 지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재능이 넘치는 남매를 만나 승승장구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중요한건 작화를 맡아주실 분이 필요한데, 그건 선배가 책임······.”

지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야지마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내게 맡겨!”

“오, 아는 분이 있군요.”

“야, 내가 그래도 경력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제 팀장님이랑 같이 이야기 해봐요.”

“그래. 우리끼리 정한다고 다 끝날 일은 아니니까.”

곧바로 야지마와 지로가 팀장을 찾아갔다.

“야지마가 담당?”

“네. 그 전에 팀장님께서 한번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그거야?”

“네.”

야지마가 팀장에게 복사된 네임을 건넸다.

“중원 요리왕?”

“네. 배경이 고대 중국입니다.”

“삼국지 같은 이야기야?”

“아뇨. 판타지에요.”

“고대 중국배경의 판타지라······.”

그것을 받은 팀장이 펼쳐 읽는다. 그리고는 금방 표정이 밝아진다.

“이거 재밌잖아! 도술에 요괴, 무사들까지 재밌는 요소도 많고.”

“그렇죠?”

“그래. 네임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성의가 없어서 좀 그랬는데, 이거 완전 물건이네.”

“성의가 없는 게 아니라 그쪽으론 완전히 재능이 꽝이래요.”

“그래, 내가 봐도 그래 보여. 아무래도 그림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나보다.”

“그건 아니라던데.”

지로가 끼어들어 말하자 팀장의 화들짝 놀란다.

“엑, 아니라고? 와, 그럼 심각하네.”

“스토리작가잖아요.”

“아, 참. 그렇지.”

그때 야지마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정도면 어떨까요?”

“흐음. 내가 보기엔 좋아. 굉장히. 그런데 뭐, 연재는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일단 편집장님과 부편집장님 두 분에게 회의에 대한

요청을 건의 해볼게.”

“네. 고맙습니다.”

“일단 기다리고 있어.”

“네.”

팀장이 곧장 네임을 가지고 부편집장이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잠시 후, 팀장이상이 회의실에 모여 긴급 연재회의에 들어갔다.

보통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에 나온 네임이 생각이상으로 괜찮다는 편집장의 결정 때문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편집장들이 네임을 돌아가며 읽어보고는 각자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요리라는 소재로 이런 재미를 끌어내다니 놀라운데요.”

“제목도 나쁘지 않아요. 중원 요리왕. 소년지 다운 느낌이고.”

“약간 어색한 대사 몇 곳만 고친다면 꽤 괜찮아 보입니다.”

“뭐, 이정도 어색한 대사 정도는 담당의 재량으로 충분히 커버가 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엄청 몰입감이 있어. 그림으로 묘사만 잘된다면 꽤 상위권의 재미야.”

“그래도 이 그림은 좀 심했어요. 누가 보면 유치원아이가 그린 그림 같아서.”

“하하, 맞아.”

“그런데도 이만한 재미라니, 그게 더 놀라워.”

“하지만 일단 작화로 완성을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다는 느낌도 있어요. 네임을 잘 만들어놓고 작화에서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맞아. 만화가가 직접 그린 네임이 아니니까.”

“그래도 재밌다 는 건 확실하네요.”

팀장들 저마다 의견이 쏟아진다.

일단 재미가 있다는 건 공통된 의견이다.

부편집장이 모두의 대화를 듣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보인다고 모두 생각하는 건가?”

그 말에 팀장들이 머리를 끄덕인다.

“반대 의견은?”

“반대 의견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결국 작화와 스토리가 합쳐져 봐야 확실한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대부분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건 공통된 의견이군.”

그렇게 말한 부편집장이 네임을 들고 온 팀장에게 말했다.

“야지마 들어오라고 해.”

“네.”

야지마가 속한 팀의 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

“야지마!”

그의 외침에 야지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들어와.”

야지마가 지로를 한번 슬쩍 돌아보고는 서둘러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모든 시선이 야지마에게 쏠린다.

꿀꺽.

팀장급 이상의 회의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 야지마가 긴장된 표정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얼어있는 그 표정을 보며 직속상관 인 팀장이 싱글거린다.

야지마가 그런 그를 힐끔거리자 팀장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팀장의 표정에서 결과가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때 부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야지마, 너 작화를 맡을 사람은 정해뒀어?”

“네?”

“뭐야, 딴 생각하고 있었어? 집중해, 집중. 경력도 짧지 않은 녀석이.”

“아, 죄송합니다!”

야지마가 잠시 당황했다가 곧 표정을 굳히며 머리를 끄덕였다.

“저기······, 생각해 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부편집장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중앙에 앉은 편집장을 슬쩍 바라본다.

그러자 이번엔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한번 진행해 보도록 해. 일단 작화가 들어간 네임 3화 분량을 가져오면 그때 봐서 결론을 내리도록 하지.”

“네임 3회 분량입니까?” ”

“그래. 그걸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

“아, 감사합니다!”

야지마가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부편집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가봐.”

“네!”

그렇게 대답한 야지마가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곧장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고 나온 야지마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도 긴장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편집부 경력이 제법 되지만, 역시 저런 자리는 익숙하지 않다.

그때 지로가 야지마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요?”

지로의 질문에 야지마가 피식 웃으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응, 일단은 작화 네임 3화분을 보고 결정할거래.”

“우왓, 그 정도면 잘된 거군요!”

“그렇지.”

이 정도면 좋은 결과다.

사실, 어지간한 신인 스토리작가의 작품이라면 이렇게 단번에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무려 삼사라의 작가와 관련된 사람에게

받아온 스토리다.

어찌 보면 낙하산 같은 단계였지만, 들어보니 삼사라 작가가 인정한 사람이라는 모양이었다.

그쪽에서 이미 괜찮다는 판단에 넘어왔고, 지로, 야지마, 팀장이 거친 상태다.

어느 정도는 검증이 된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그렇게 회의까지 열리게 되었고 결과는 좋게 나왔다.

물론 회의에서 다른 팀장들과 부편집장이 반대했다면 연재는 불가능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결론이 나온걸 보면 스토리는 확실히 잘 뽑혀 나온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나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다.”

“어디요?”

“작화.”

“아.”

야지마가 가방에 이것저것 넣다 멈칫하더니 지로를 빤히 쳐다본다.

“왜요?”

“고맙다. 나, 이번에 최선을 다 해 볼 거야.”

“안 그러면 제 입장이 곤란해요.”

“그렇겠지?”

“당연하죠.”

“그래.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야지마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편집부를 빠져나간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지로의 팀장이 나가는 야지마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로 곁으로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그 친구에게 갔겠네.”

그 말에 지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 친구요?”

“어. 담당을 맡은 지······, 음. 보자.”

손가락을 대충 뭔가를 헤아리더니 다시 말한다.

“벌써, 6년이 넘었나. 시간도 참.”

“6년요?”

“어. 6년 된 중고 신인.”

“······.”

< 중원 요리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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