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12화 (112/425)

< 뉴타입 (2) >

“이 집으로 계약할게요.”

새롭게 화실로 사용할 공간으로 집과 가까운 단독주택을 계약했다.

이번엔 저번처럼 전세가 아닌 구입으로.

이제까지 번 돈을 최대한 긁어모아 그럭저럭 괜찮은 2층 주택으로 구입했다.

작지만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도 있고, 1층엔 넓은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다. 확 트인 옆방의 미닫이문을 제거하면 열서너 명은 충분히 작업할 공간

이 나올 정도로 크기가 크다.

2층엔 여러 용도나 잠자는 방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듣기론 이 집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적산가옥이란다.

밖에서 볼 땐 이래저래 손을 많이 댄 덕분인지 일본건물이라는 느낌이 없던데, 실내를 들어갔을 땐 구조가 어째 일본식이라 했더니.

방과 방 사이도 미닫이문으로 만들어진 구조라 넓게 사용하긴 안성맞춤의 주택이다.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만들어둬서 사용하는 데는 불편이 없을 것 같고.

40년 넘은 집이라 해도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관리를 잘 한 탓에 꽤 괜찮아 보인다.

뭐, 허술한 부분은 살면서 리모델링하면 될 것 같고.

빈집의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이 시대로 넘어온 지 이제 겨우 1년.

그새 이만큼이나 자리를 잡았다니, 나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 슬슬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 계절.

커다란 거실 창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따사롭다.

눈을 감고 따듯함을 느끼다 눈을 떠보니 담 위에 보이는 하얀 물체.

“저 녀석······.”

백설기다.

어떻게 새집을 알고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이 녀석의 행동 반경 안에 있던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녀석이 담 위에서 잠시 날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 참, 고양이 생각을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냐고.

피식 웃고 말았다.

*

다음날.

“와아, 이게 새로운 화실?”

“······.”

쌍둥이들이 놀란 눈으로 갈색의 대문을 올려다본다.

“야, 대문만 보고 놀라면 어떡해?”

“아, 그런가?”

경희가 어색하게 웃는다.

“자자, 호들갑은 그만 떨고 안으로 들어가자.”

“옛썰!”

두 녀석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더니 역시 경희가 제일 방방 뛴다.

“와, 우리 집보다 훨씬 좋다. 마당 잔디도 너무 좋고.”

“호들갑 그만 떨고 안으로 들어가자.”

“응.”

경희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선희는 멍한 얼굴로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보고만 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펼쳐지는 크고 긴 마루.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여러 개의 방은 미닫이문으로 이어져 있다.

“와, 집이 엄청 특이해. 외국 집 같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살던 집이라고 하더라.”

내 말에 경희가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정말? 그럼 여기 일본 사람이 살던 곳이야?”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얼마 전까지 살던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고. 대충 이리저리 수리했던 모양이야.”

“와, 그래도 집 엄청 넓다. 2층에 올라가 봐도 돼?”

“그래.”

“선희야 같이 올라가자.”

한쪽 벽에 붙어있는 나무계단으로 두 녀석이 신나게 뛰어 올라간다.

그리고 곧 2층이 쿵쿵거리기 울리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여러 개의 이어진 방을 뛰어다니고 있겠지.

고등학생 녀석들이 저렇게 어린애들 같아서야.

뭐, 애들이 맞긴 하지만.

나도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엔 한쪽에 길게 이어진 마루와 오른쪽엔 미닫이로 이어진 방이 세 개, 왼쪽은 빨래를 널 만한 베란다가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마루 끝엔 커다란 방

까지.

이정도면 이곳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지내도 될 만큼 넓다.

“집 너무 좋다! 대궐 같아.”

경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그럼 우리 집 팔고, 여기로 이사 올까?”

그 말에 달리던 경희가 우뚝 멈추더니 나를 홱 돌아본다. 그리고 동시에 선희도 나를 바라본다.

“싫어!”

“싫어!”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봐 동시에 대답한다.

“방금 집 좋다며?”

“그래도 지금 우리 집이 더 좋아. 오빠가 처음으로 사준 집이잖아. 엄마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 하루 종일 걸레로 닦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그런 일이 있었나?

“그리고 나도 그 집이 제일 좋아.”

“나도.”

두 녀석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는 말했다.

“여기 좋다며?”

“좋아. 하지만 우리 집이 더 좋아.”

“여기도 우리 집이야. 화실로 사용할 뿐이지.”

“우리 가족만 지내기엔 너무 넓으니까.”

“그야 그렇지.”

집이 좋긴 하지만, 솔직히 구조도 익숙하지 않아서 이런 곳에서 가족이 사는 건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도 화실이라면 공간 활용은 괜찮아 보이니

까 나쁘지 않고.

물론 만화 공장 같은 걸 만들고 싶은 생각은 아니지만.

내가 날 뛰는 두 녀석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이곳에서 쓸 전자제품이랑 가구 사러 갈래?”

“좋아. 갈래, 갈래.”

“나도.”

또 방방 날뛰기 시작한다.

*

화실 식구들이 새롭게 단장된 화실용 주택에 들어왔다.

각자 자신의 물건을 챙겨 화실로 처음 오고 나서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깔끔한 잔디마당에다, 오래되긴 했지만 일본식 고급주택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거기다 빛이 잘 드는 거실과 따뜻한 느낌의 실내구조가 모두 마음에 드는 눈치다.

“와, 정말 이게 새 화실이에요?”

“너무 좋아요.”

“궁전 같아요. 여기서 살아버릴까?”

“나도 그 생각했는데.”

여자들이 모여 웃는다.

일요일 사이에 사람들을 불러 책상까지 모두 옮겨와 새롭게 배치된 1층의 화실을 모두가 둘러보며 마음에 들어 한다.

무뚝뚝한 실버도 새 화실의 모습을 보고 놀랄 정도이니 뭐.

엄마랑 누나도 어제 주문해둔 떡을 주변에 돌린다고 정신이 없다.

오후 늦게 놀러온 이대봉도 집을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와, 정말 이걸 구입한 거니? 너 정말 떼돈을 벌었구나.”

“이제 개털이야. 몽땅 털어서 산거니까.”

“그래도 정말 대단하다. 그나저나 이런 집을 용케 화실로 만들 생각을 했네?”

“뭐,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런 집이 화실이 된 것뿐이야.”

“어쨌건 마음에 든다. 좋았어. 이젠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자리는 넉넉하겠네.”

“그래. 아무 때나 데리고 와.”

“알겠어.”

잠시 후, 미령이 엄마도 미령이를 데리고 집에 선물을 가지고 놀러왔다.

“화실 옮기셨군요.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오빠, 축하해.”

“어. 그래. 고맙다.”

이젠 얼굴이 익숙해졌다고 제법 내게도 친한 척을 한다.

그때 경희가 미령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와, 우리 예쁜 미령이 왔구나. 어서와.”

“언니!”

미령이가 경희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그리고는 곧 선희에게도 달려가자 선희가 자리에 다가온 미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잠시 후, 미령이는 성준희가 데려온 준모랑 마당에서 논다.

박상식과 함께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대화를 하는 사이 여자들끼리 부엌에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

집에 여자들이 북적거리니 소란스럽다. 하지만, 이 넓은 집에 사람이 어느 정도 있으니 그래도 사람 사는 느낌이 든다.

어느새 집 전체에 음식냄새로 가득 찰 즈음, 지로가 박스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집안으로 들어온 지로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다른 의미로 꽤나 놀라고 있다.

“이거, 일본식 구조군요.”

“적산가옥이에요. 예전에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네요.”

일제 강점기란 말에 좀 걸리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역사부분이 대화에 들어가면 껄끄럽기 마련이지.

특히 일본과 한국은.

껄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곧바로 대화를 바꿨다.

“그런데 이 박스들은 다 뭡니까?”

“아, 이건 팬레터랑, 전에 코미케에서 받은 동인지, 그리고 그동안 나온 주간 히어로와 이번에 나온 신간인 월간 빅 히어로입니다.”

“이 많은 걸 다 가져왔어요? 힘들었겠네.”

“아뇨. 택시타고 집 앞까지 타고 왔는데요, 뭐.”

그때 안쪽에서 경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식사준비 됐어! 빨리 와! 일본 아저씨도 오세요!”

“아카기 씨 같이 가요.”

“네. 알겠습니다.”

*

요란스러운 화실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좀 조용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실이 넓다보니 전과 달리 널찍한 공간에서 쾌적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실버는 한동안 계단 옆에 있는 1층 방에 머물기로 했고, 2층은 휴식이나 잠을 청하는 공간으로 잠시 사용될 예정이다.

경희는 이제 학교 마치면 총알같이 이곳에 찾아온다.

말로는 우리 집이 더 좋니 어떠니 하더니, 공부는 여기가 더 잘된다나?

아무튼 이곳에서 계속 있다 보니 엄마도 별일 없으면 이곳에서 지내신다.

누나도 공부 때문에 늘 도서관에 들락거리다보니 비어있는 집에 있는 것보다 이곳이 더 편한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나도 이곳에서 점심과 저녁식사 어떨 땐 잠도 해결한다.

박상식도 얼마 전에 옮긴 아파트는 거의 비워둔 채로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고.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생기는 부작용(?)인 듯하다.

그렇게 화실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 거실 쪽에선 박상식과 경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굉장히 진지하게 숙덕거리고 있다.

최근 들어 경희가 콘티에 관심을 가진 탓에 그런 모양인데, 뭐 본인이 궁금해 하는 걸 말릴 생각은 없지만, 설마 이쪽으로 재능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오빠아!”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리자 경희가 씩씩 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까 그렇지.”

“날 불렀다고?”

“가끔 오빠는 멍하니 뭘 생각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자 근처에 있던 박상식이 끼어들었다.

“스토리겠지.”

“아.”

“아는 무슨. 그런데 왜 부른 거야?”

“아 참, 이거 좀 봐주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노트하나를 내민다.

“이게 뭔데?”

“상식이 오빠처럼 콘티를 만들어 봤지.”

그렇게 말하며 턱을 치켜세운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니가 콘티를?”

“응. 그런데 상식이 오빠는 내용이 이상하대.”

“그럼 이상한가보네.”

“아니,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오빠가 한번 봐줘.”

“너 전엔 소설가가 되고 싶다며?”

“맞아. 그런데 여기 자꾸 놀러오다 보니까, 관심이 생겨서. 나중에 소설 쓸 때 경험도 될 것 같고.”

“뭐, 콘티도 결국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이랑은 좀 다를 텐데.”

“빨리!”

“알았다, 알았어.”

선희가 채근하자 노트를 펼치며 박상식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박상식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어디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웃어? 이거 개그물이야?”

“그런 것 같던데. 난 좀 당황스러워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냥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때 경희가 버럭 한다.

“이거 개그물 아니라니까.”

“아, 미안.”

“흥.”

그렇게 말하며 날 툭 쏘아본다.

제대로 평가하라는 뜻이다.

뭐야?

본인은 개그물이 아니라는데, 박상식은 개그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뭔가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의아하지만 뭐, 읽어보면 알겠지.

“자자, 확실하게 읽어봐.”

“알았다.

제대로 씹어 줄 테니까, 울지나 마라.

곧장 첫 번째 페이지를 확인했다.

제목은 ‘안드로메다로 가자’다.

이거, 이거 제목 봐라.

진짜 안드로메다 급이네.

썩소를 날리며 첫 페이지를 펼쳤다.

첫 장면부터 대사가 상당히 이상하다.

[영원히 살고 싶어? 그럼 저길 가면 돼.]

주인공인지 모르겠지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첫 대사부터 뭔가 불안하다.

아마 은하철도999의 안드로메다 라메탈 행성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별다른 설명도 없으니 일반 독자가 보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째 콘티를 읽으면 읽을수록 당황스러운 전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계속 읽다보니······.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식의 개그방식이네.

“······?”

멋지다 마사루가 떠오르는 당황스러운 전개방식, 일명 병맛 개그 이야기였다.

< 뉴타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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