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 프린세스 (6) >
“어? 제목도 다크 프린세스? 다음호에 실린다고? 이거 정말이야?”
“그래. 맞아.”
그 말에 다크 프린세스 한정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가방에 넣었던 한정판 다크 프린세스를 꺼내며 소리쳤다.
“설마? 이 책이 잡지에 실리는 거야? 그것도 빅 히어로에?”
“그건 아닌가보더라. 읽어보니까 완전히 새로 그린 45페이지짜리라고 하더라고.”
그 말에 휴 하며 안도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45페이지짜리라는 말에 기대감이 생긴 표정이다.
“45페이지짜리라니. 역시 칼파나의 인기가 좋아서 단독 주연의 만화가 단편으로 실리는 거구나. 이거 인기 좋으면 연재도 시작하는 거 아닌가?”
“아마 그거 염두에 두었으니까 월간지에 단편을 실은 거겠지.”
“하기야, 한 잡지에 같은 만화 두 개가 실리는 건 무리일 테니까.”
“그 보다 그런 퀄리티의 그림을 주간지 두 개를 넣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퀄리티로만 따지면 아키라에 맞먹는 수준인데.”
“캐릭터와 재미는 훨씬 낫지. 대중성도 있고.”
그 말에 대부분이 머리를 끄덕인다.
“어쨌건 궁금해서라도 다음 빅 히어로는 꼭 사야겠네.”
“당연하지.”
“그나저나, 이거 칼파나 코스프레용 복장, 당장 작업 시작해야겠는 걸? 다음 달에 너희 대학 축제 있지?”
“맞아.”
“그럼, 거기에 만들어 가야겠다.”
그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누가 그 옷을 입을 건데? 우리 모임에서 그 옷을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
“······.”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곳엔 모두 남자만 모여 있지만, 모임엔 여자애들도 몇 있기는 하지만, 역시 미모가 받쳐주는 사람은 없다.
“아, 진짜. 왜 코스프레 하는 애들 중엔 예쁜 애가 없는 거야?”
“언젠가는 모델 같은 여자들이 코스프레 하는 날이 오겠지.”
그 말에 모두가 눈동자를 치켜뜨며 상상에 빠진다. 그리고는 발그레한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곧 대부분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내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은 바로 빅 히어로 편집장인 코지마였다.
“하하하하! 정말 고마워, 스도 편집장. 표지에 다크 프린세스 단편에 대한 소식만 넣었는데, 평소보다 1만부가 더 나갔다고. 출판부장 녀석이랑 한판 벌
려서 1만부 추가증쇄하길 잘했지.”
월간지인 빅 히어로의 경우 보통 5만부가량 판매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단편을 이곳에 싣는다는 결정이 나자마자 코지마 편집장은 후배인 출판부장에
게 찾아가 1만부 증쇄를 요구했고, 여러 번의 실랑이 끝에 총 6만부가 발행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완판이 된 것이다.
추가 증쇄하기엔 미묘한 시점에 완판 된 탓에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건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날 잡아서 술 한번 크게 살 테니까, 시간 비워두라고.”
“네.”
스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참, 아카기”
코지마가 지로를 불렀다.
“네. 편집장님.”
“우리 쪽에선 자네가 여전히 담당이라는 것 때문에 말이 좀 많아. 하지만, 뭐 단편을 싣는 조건이었으니까.”
단편을 싣는다고는 해도 빅 히어로의 직원이 아닌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직원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스도가 묘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써니 선생님의 원고는 잘 되어가고 있나? 폭우 피해가 있었다고 하던데. 걱정이 돼서 말이야.”
“전화통화는 여러 번 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 댁 근처는 괜찮다고 합니다. 어시들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고 하구요.”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이군.”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자신의 시계를 보며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회의를 잊고 있었구만. 그래 두 사람 다 언제 날 잡아서 긴자에 한번 가자고. 그럼, 다음에 또 보세.”
“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두 사람의 인사를 받고서는 고개를 끄덕인 코지마가 곧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자 스도 편집장이 지로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뉴스 보니까 꽤 피해가 큰 모양이던데.”
“네. 꽤 피해는 많았던 모양인데. 화실 쪽에는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구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일이라도 한번 찾아가 봐.”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예 올 생각 하지 말라고 미리 말씀하시더군요.”
“그래?”
“네.”
“그렇다면 뭐.”
만화가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민폐다.
“아무튼 자네가 담당이니까, 늘 신경 써. 이젠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남매는 소년 히어로의 간판 작가들이니까.”
“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던 그때 지로의 선임 팀장이 편집장의 자리로 다가왔다.
“편집장님. 이거 보셨어요?”
그렇게 물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최근 앙케이트 분석표요.”
“앙케이트 분석표?”
편집장이 갸우뚱하며 팀장이 내민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종이를 훑어보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품들의 순위 싸움이 요즘 정말 치열해졌군.”
“네. 1위에서 3위까지는 거의 고정 상태인데, 그 아래 쪽 순위는 그야말로 완전 전국시대에요.”
분석표를 자세히 훑어보던 편집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요즘 소년 히어로 작가들이 세 작품에 자극을 받은 모양입니다. 담당들 말로는 전과 달리 순위권에 오르기 위해 치열해졌다고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거군.”
“네.”
최근 잡지 판매부수가 많이 늘어나면서 소년 히어로가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그 공은 결국 최고 인기 세 작품 때문이라는 것을 만화가들도 잘 알고 있
었다.
그러다보니 나머지 작품들은 그 세작품의 들러리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종종 들렸고, 그 때문에 나머지 만화가들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일먼저 그동안 안전한 아동용 만화를 그리던 작가들이 스토리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난 뒤 새로운 작품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만화를 만들고 있다.
그 덕에 잡지의 주축을 이루던 아동용 만화와 개그만화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런 만화들조차 도중에 스토리의 방향을 바꿔버렸
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제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났다.
기존 독자들이 대거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독자들이 생겨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게 문제였다.
“결국 변화에서 살아남은 만화가들만 남게 되겠군.”
“이거 편집부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되면 독자들만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아니, 만화는 만화가와 편집자가 팀이 돼서 만들어 가는 거야. 어떤 결과가 되건 본인들이 결정하는 거다.”
편집장의 말에 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긁적였다.
“이러다 만화들이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결국 소년 히어로도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닐까요?”
팀장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점이라 지로도 동의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그러나 편집장은 이미 이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소년 히어로도 어차피 변해야 해. 앞으로 만화는 경쟁이 더 치열해 질 거야. 만화가들만 전국시대가 아니야. 우리 잡지들도 마찬가지야.”
“······.”
***
뭐지 이 완성도는?
지금 나는 이번에 빅 히어로에 보낼 단편 ‘다크 프린세스’ 미완성 원고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완성 원고에 그려진 인물 펜선을 보며 충격에 빠져버렸다.
바로 생각을 뛰어넘는 완성도 때문이었다.
그동안 실버는 파시엔시아 작업에만 집중했고, 파시엔시아는 굵직한 남자느낌의 스포츠 만화로 정착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삼사라의 경우는 그런 파시엔시아의 느낌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무래도 인물 펜선을 다루는 정미자의 느낌으로 인해 가늘면서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느낌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버의 펜선으로 작업된 지금 이 다크 프린세스는 이제까지의 삼사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만화가 되어있었다.
기존에 있던 정미자의 섬세함과 파시엔시아의 강렬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소마와 바유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강렬함.
그리고 칼파나는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펜선만으로 캐릭터의 분위기를 완전히 나누어 버린 것이다.
데생에서 보여주지 못한 분위기를 펜선이 만들어 버렸으니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인간, 파시엔시아에서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거 완전히 펜선만큼은 그랜드마스터 급이다.
데생을 작업 중이던 선희도 그런 다크 프린세스의 펜선에 놀랐는지 나와 함께 그림을 살펴볼 정도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단해.”
선희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다니.
괴물은 괴물이구나.
그냥 펜선 하나만 주구장창 파서 이 경지에 오른 것일 테지.
그런데 실버는 그런 우리를 보며 투덜거리듯 말한다.
“너무 자세하게 살피지는 마라. 실수가 많았으니까.”
“실수? 여기에?”
“그래. 어젯밤에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덜 깬 모양이야. 아직도 머리가 멍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퉁퉁 두드린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이상하게 화실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니.
물론 화실에 있는 빈방에 생활하는 덕분에 이곳에서는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 저녁에 인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어쨌건 술이 덜 깼다면서 이런 엄청난 펜선을 보여주다니.
솔직히 나도 만화그림을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한 덕에 굉장한 펜선을 많이 봐왔었는데, 이 인간의 실력은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실버 오빠 펜선이 그렇게 대단해?”
방금까지 박상식이 그리던 콘티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며 참견하던 경희까지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말에 계속 펜선을 살피던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응. 엄청 대단해.”
“너보다?”
“나보다 훨씬 대단해.”
“진짜? 오빠, 정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날 돌아본다.
“그래.”
“와아, 실버오빠 보기보다 실력자였나 보다.”
“네가 보기엔 어떻게 보이는데?”
“어떻긴 술고래 망태기 아저씨지.”
그 말에 화실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실버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곧 선희의 데생에 펜선을 넣는데 열중했다.
“넌 왜 실버 형 뼈를 때리고 그래?”
“뼈를 때려?”
“아, 뭐. 너무 대 놓고 상처를 준다고.”
“미안. 실버 오빠.”
“쳇, 병 주고, 약 주는구만.”
실버가 투덜거린다.
“오빠, 미안. 내가 커피 타다줄게. 삼삼삼이지?”
“삼이이”
“알겠습니닷!”
경희가 실버에게 거수경례를 멋들어지게 척 하고는 서둘러 부엌 쪽으로 달려간다.
그러자 어시 성준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두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도 마실래요?”
“네.”
“저도요.”
“나도 줘.”
그 말에 곧바로 경희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무튼 계속 나랑 원고의 펜선을 보던 선희가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지 굳건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데생작업에 집중한다.
모두의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
그 덕에 만화가 점점 굉장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80년대의 어설픈 만화 수준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내 감각이 80년대 감성에 맞춰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뭐가 되었건 굉장한 단편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려질 정도의 만화가 말이다.
< 다크 프린세스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