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08화 (108/425)

< 다크 프린세스 (4) >

소년히어로 편집부.

직원 한명이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A4용지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앙케이트 결과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내민 결과지를 받아든 지로가 순위를 확인했다.

최근 성적은 1위를 계속 굳건히 지키고 있는 ‘진심의 남자’,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2위가 ‘파시엔시아’, 그리고 3위는 아라이 켄쇼의 ‘빛나는

글러브’ 그리고 4위가 ‘삼사라’였다. 물론 3위와 4위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라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지로는 삼사라가 3위로 올라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삼사라에 등장한 빌런이 이야기의 흥미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번 팬 엽서 투고에선 삼사라 관련 그림, 특히 칼파나 일러스트가 많

아진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 그의 책상 아래엔 다음 한국에 가져다주어야 할 많은 양의 팬레터와 팬들의 일러스트, 그리고 삼사라 팬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선물로 가득했다.

지로가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종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그의 눈이 커졌다.

“2위······?”

놀랍게도 삼사라의 순위가 2위였다.

늘 1위를 위협하던 파시엔시아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이다.

당연히 파시엔시아는 3위로 밀려난 상황.

그 때문에 편집부 직원들도 엄청나게 반응했다.

“와, 삼사라가 2위? 1위인 진심의 남자와 차이도 별로 없네?”

그 말에 자기 일에 몰두하던 직원까지 놀란 얼굴로 앙케이트 결과표를 확인했다.

“진짜네. 삼사라가 드디어 2위가 되었구나. 이거, 진심의 남자가 아슬아슬할 정도잖아.”

“이봐, 테고시. 키도 선생님 또 흥분해서 사라질지 모르니까 잘 감시해!”

팀장의 말에 테고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앙케이트를 보며 말했다.

“그런 말씀마세요. 안 그래도 요즘 키도 선생님 ‘내일의 죠’ 대사를 중얼거리며 작업 중이에요.”

그 말에 직원들이 낄낄거렸다.

그때 신입 직원하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솔직히 삼사라 정도면 단행본 판매로 보면 1위해도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삼사라 주 구매자 연령이 우리 잡지 주 연령층에 비해 높다는 걸 생각해보면 4위도 대단한 거였어. 앙케이트 역시 주로 보

내오는 독자는 어린이나 그 위의 중학생 정도니까. 요즘엔 소년 히어로 판매부수 늘어난 가장 큰 이유가 삼사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

“그 정도에요?”

“당연하지. 그나저나 역시 이번 2위의 가장 큰 공은 칼파나 덕분인가?”

“그럼요. 저도 칼파나 등장하고 나서 삼사라가 더 재미있어졌는데요. 처음엔 주인공을 가장 크게 괴롭히는 강력한 마녀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최근 등

장 편에서 칼파나라는 존재가 다른 빌런과 다르다는 내용이 나왔잖아요. 그 때문에 더 흥미진진해졌어요.”

“나도 그래. 거기다가 점점 이야기가 시원한 액션도 많이 등장하면서 몰입도가 올라갔어.”

“처음엔 좀 무겁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최근엔 독자들도 삼사라 세계관을 이해하면서 더 열광하는 분위기네.”

“그나저나 드디어 철옹성 같던 파시엔시아를 삼사라가 밀어냈구나. 그리고 더 대단한건 그 삼사라와 파시엔시아의 담당이 같은 사람이라는 거지.”

직원 중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부러운 시선이 지로에게 쏠렸다.

그 때문에 지로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순간 그의 앞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순간 반가움에 서둘러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소년 히어로 편집부, 아카기입니다.”

- 아카기 씨, 저 윤환입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전화라 아카기가 피식 웃었다.

***

팀장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단편?”

“네.”

“이번 코미케에서 판매했다던 그 다크 프린세스 말이지?”

“네.”

“주간 히어로에?”

지로가 이번에 대답 없이 머리만 끄덕인다.

팀장이 턱을 긁적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리야.”

“절대로 말입니까?”

지로의 질문에 팀장이 주변을 슬쩍 힐끔거리다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미 두 개의 만화를 연재중이야. 그런데 단편까지 하면 형평성 문제 때문에 안 될 것 같은데. 물론 써니와 텐겐이 같은 작가라는 게 지

금은 비밀이지만 아는 사람도 이젠 출판사에 꽤 되는 모양이니까 분명 그 얘기는 조만간 나오게 되어있어.”

“그래도 지금 이렇게 반응이 좋을 때 밀어붙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렇지.”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 역시 다크 프린세스는 마음에 들어. 따로 단편을 해보겠다는 것도 찬성이고.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간간이 편집부로 독자들 전화로 다크 프린세스

에 대해 문의하는 것도 있고. 이번에 2위도 삼사라에서 칼파나가 등장해서 그런 것 같고. 하지만 역시 편집장님이 반대하실 걸?”

“그렇겠군요.”

지로도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솔직히 팀장의 말 대로였다.

이미 두 개의 작품을 잡지 지면에 연재시키고 있는 와중에 45페이지짜리 단편까지 싣는 건 다른 편집자들의 항의가 아니더라도 이런 전례를 만들지 않

으려고 편집장이 반대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단편을 그냥 묻어두자니 아까울 수밖에 없다.

“뭐, 일단 편집장님에게 말씀은 드려보자. 혹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그때 편집부를 누군가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그 사람을 알아본 직원들이 너도나도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손을 슬쩍 들며 들어오는 마른 체형에 무뚝뚝해 보이는 중년사내.

그를 알아본 팀장도 서둘러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곁에 있던 지로도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야마다 군이군. 그래 이제 팀장이지?”

“네.”

머리를 끄덕인 중년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지금 편집장은 계시나?”

“네. 휴게실에 계실 겁니다.”

“알았어. 고맙네.”

그렇게 말하며 그들을 스쳐지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힐끔 본 지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아, 자네는 모를 거야, 여기 예전에 편집장을 하시다가 월간지인 빅 히어로 쪽 편집장으로 가신 분이야. 그때 부편집장님이 지금 우리 편집장님이시

고.”

“아.”

“그런데 저 분 여기엔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 부서도 별로 멀지 않은데 말이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

두 남자가 다시 그가 걸어간 휴게실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

*

“아, 스도 편집장. 오랜만이야.”

휴게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던 스도 편집장이 휴게실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 상사였던 코지마 편집장이었다.

“아 편집장님.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은? 코앞에 있는데 올수도 있지.”

“그야 그렇지만.”

“뭐, 사실은 이제야 소식을 들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개구쟁이 같은 눈빛으로 웃는다.

“소식이라니요?”

“전무를 개망신 줬다면서?”

“네?”

깜짝 놀란 스도 편집장이 곧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목소리고 말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사장님께서 하신 거죠.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말에 코지마 편집장이 낄낄거렸다.

“그 망할 전무가 그동안 날뛰더니 제대로 임자를 만난거지.”

“임자라니 누굴 모함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더 코지마가 더 크게 웃었다.

“내가 틀린 말을 한건 아니잖아.”

그 모습을 본 스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별로 밖으로 새어나갈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러자 코지마가 손을 슥 꺾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부사장님이랑 어제 저녁에 술자리를 했거든. 술에 잔뜩 취하셔서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

“아, 네.”

평소 말수가 적은 부사장이지만 친분이 있는 두 편집장은 가끔 그와 술자리를 나누었고, 그가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지, 물어볼 게 있는데.”

곧 스도 편집장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저런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찾아올 위인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으니까.

“듣기론 엊그제 코미케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며?”

“벌써 그쪽 편집부에까지 이야기가 퍼졌습니까?”

“그럼. 소년점프랑 매거진, 선데이 같은 거대잡지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는데 당연한 일이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그 쪽에서도 꽤 관심을 보이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겸손은.”

그렇게 말하며 스도 편집장의 어깨를 툭 치더니 자신도 담배를 꺼내 문다. 그러자 서둘러 스도 편집장이 그에게 라이터를 내밀어 불을 켰다.

뻑뻑하며 담배에 불을 붙은 후 힘껏 빨고는 연기를 내 뿜고는 코지마가 말을 이었다.

“삼사라 작가라며?”

“네. 그런 것도 잘 아시는군요.”

“어이, 미쯔다쇼텐 직원 중 삼사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거기다 전무를 그렇게 골탕 먹인 일등공신인데.”

“그 얘기는 그만하시죠. 진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스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자 코지마가 웃었다.

“이 친구 진짜 엄살은. 아무튼 그 삼사라 작자가 파시엔시아 그린 작가랑 같은 사람이라는 건 이제 비밀 아니지?”

“내부야 어쩔 수 없습니다만, 외부 쪽은 통제중입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코지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대부분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니 모를 뿐 알려고만 한다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이미 원고료가 지급되는 순간부터 완벽한 비밀은 사라졌을 테니까.

당연히 그 정보를 쥐고 있는 곳은 재무팀일 것이고.

물론 그쪽 사람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알려질 가능성은 낮지만 관심을 가지고 캐낸다면 알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쨌건 코지마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다크 프린세스, 그거. 혹시 따로 나올 계획은 없나?”

“다크 프린세스요?”

“엊그제 코미케에서 판 단편책 말이야.”

“그건 아는데, 갑자기 무슨 계획요?”

“아니, 그 정도의 인기를 얻었는데 그냥 묻어둘 셈이야?”

“묻어 두다니, 거기다 지금 작가가 이미 두 작품이나 연재중입니다. 둘 다 지금 소년 히어로 간판작품들이구요. 그 만화를 따로 연재하려면 적어도 하나

는 끝내야 할 텐데, 아직 종료를 말할 시점은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데쯔카 오사무 선생이나 나가이고 선생 같은 경우엔 주간지를 한꺼번에 여러 개 연재하신 적이 있다고.”

“나 참, 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 시절 그림이랑 지금이랑 같습니까? 거기다 삼사라나 파시엔시아는 그림의 밀도 자체가 레벨이 다릅니다. 한

편만으로도 어지간한 작가들은 버거워할 퀄리팁니다.”

“요즘에도 주간 여러 편 연재하는 작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자네 선에서 확정하지는 말고 혹시라도 계획이 있으면 우리 쪽에 양보해줘. 알

겠지?”

“그러니까, 아직 그런 계획은······.”

“나 분명히 도장 콱 찍어 뒀어. 나중에 다른 곳에 넘기거나 하는 일 없기야. 그럼 난 일이 있어서 가보겠네.”

코지마가 그렇게 말하며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끄고는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 뒷모습이 어째 즐거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스도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튼 너무 앞서가신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비벼 끄고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는 휴게실을 빠져나가려는데 그때 야마다 팀장과 지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빅 히어로 편집장님 왜 저렇게 즐거워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저 양반 좀 유별나잖아. 그건 그렇고 두 사람 다 표정이 왜 그래? 나한테 할 말 있어?”

“네.”

팀장의 대답에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저기 다크 프린세스 말인데요?”

“뭐야? 또야?”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그게 왜?”

“작가 측에서 단편을 하고 싶다는데요?”

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편집장이 아까 코지마가 나갔던 문 쪽을 바라본다.

“뭐야, 그 인간? 신관으로 전직이라도 한 건가.”

“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팀장과 지로가 편집장을 바라봤지만 그는 더 이상 그 말을 하지 않고 어이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

그 때문에 지로와 팀장,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다크 프린세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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