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06화 (106/425)
  • < 다크 프린세스 (2) >

    견본책자를 훑어보던 남자가 서둘러 앞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삼사라 맞죠?”

    “네? 삼사라요?”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은 지금 쌓여있는 책들이 무엇인지 읽지 않아 몰랐던 탓이다.

    직원은 곧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근처에서 선임과 대화중이던 지로를 찾았다.

    “선배님!”

    그가 소리치자 두 사람이 돌아본다.

    “아카기 선배. 죄송한데, 여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신입의 말에 지로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네. 이분들께서 이 책에 대해 물으셔서.”

    “아, 그래?”

    그렇게 말한 지로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이거, 삼사라 맞죠? 삼사라에 나오는 칼파나.”

    “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용케 알아봤다는 생각에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와, 이거 따로 만화가 나오는 거예요? 칼파나 주인공으로?”

    “아뇨. 그건 아니고요. 써니 작가님께서 이번 코미케를 위해 따로 만든 외전만화랑 설정을 묶어 만든 책자입니다.”

    코미케를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적당히 포장해서 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써니 작가님께서 코미케만을 위해서요?”

    “아,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만.”

    “야, 이분 말씀 들었지?”

    “엄청나다. 써니 선생님이 코미케를 위해 따로 만든 만화라니.”

    “······.”

    책을 서로 돌려보던 젊은 사람들이 서로 수다를 떨다 곧 그중 한명이 지로에게 물었다.

    “그럼, 이거 따로 출간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거 얼마에요?”

    “네?”

    “이거요. 얼마죠?”

    “그······ 그게.”

    사실은 이 특별판 책자에 가격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애초에 써니 측의 요청에 의해 시작한 일이다보니 원고료를 따로 준 것이 아니라 출판사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출판사도 특별히 가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담당이 받아온 일이고, 인쇄는 홍보차원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 덕분에 책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써니 쪽에 있었다.

    그래서 책을 무료로 뿌리든 아니면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든 결정은 써니가 결정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윤환이 담당인 지로에게 완전히 일임한 상황이다.

    결국 지로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윤환이 ‘다른 동인지처럼 판매하고 싶다.’라고 했던 말만 기억하고 있으니 그 정도에서 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동인지 가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곁에 있던 직원들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코미케 동인지, 보통 얼마하지?’

    ‘글쎄요. 가격은 천차만별이라. 하지만 주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주류라 500엔 이하인 걸로 아는데요.’

    ‘500엔이라.’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다.

    직원의 말대로 참가자의 주류가 학생들이라 그들의 용돈 수준을 생각해보면 500엔 이하가 가장 합당한 가격이었다.

    물론 지금 찾아온 사람들의 나이는 20대 이상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500엔은 조금 비싸니까 300엔 정도가 적당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였다.

    “이거, 2,000엔 맞죠?”

    “네?”

    “여기 뒤에 가격표 붙었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견본 뒷장을 보여준다.

    정말 그의 말대로 견본 뒤엔 2,000엔짜리 자그마한 스티커가 붙어있다.

    저게 뭐지?

    자세히 보니 2,000엔이라고 스티커가 붙어있긴 했지만 그건 이쪽에서 붙인 게 아니었다.

    “아, 그건······.”

    인쇄소에서 포장을 하는 동안 그곳에 견본만 따로 빼 두었는데, 그곳 어딘가에서 스티커가 달라붙은 모양이다.

    인쇄소에서 스티커 관련 인쇄도 같이 겸하고 있었으니 그 스티커 중 하나가 붙었을 것이 틀림없다.

    서둘러 지로가 설명하려는데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좀 비싼 거 아닌가?”

    “무슨 소리야? 아까 얘기 들었잖아. 써니가 코미케를 위해서만 만든 거라잖아.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게 전부라는 소리야.”

    “그렇구나.”

    “저기, 아저씨. 이거, 한사람이 여러 권 사도 돼요?”

    아저씨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보다 젊다는 것을 말하려다 반짝거리는 그들의 눈을 보고 멈칫했다.

    순간 판매가 아닌 홍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뇨, 그건 안 됩니다. 아니, 그보다 가격에 대해서 말씀······.”

    “아, 아쉽네. 그럼 우리 다 한권씩 사자.”

    “오케이.”

    “자 여기요.”

    그렇게 말하더니 우르르 돈을 지불하고는 한권씩 사들고 자리를 뜬다.

    “······?”

    지폐를 손에 쥔 채로 지로가 멍하게 있었다.

    가격을 대충 400엔 정도로 부르려했는데 정신없는 사이 그냥 2,000엔으로 결정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아무런 가격에 대한 저항감도

    없이 구입하고는 그곳을 떠나버렸다.

    “와, 이 책 가격이 2,000엔이에요? 어마어마하다.”

    “저도 가격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도. 아까 보니까 오히려 싸다는 느낌으로 사가는 모양이던데.”

    “그, 그러게요.”

    신입들도 신기한지 동인지에 기웃거리고 있다.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였다.

    삼사라 단행본이 300엔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사이즈가 좀 더 크기로서니 단편과 설정그림 포함 총 40페이지 안팎인 책자 하나의 가격

    이 2,000엔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그때 그들 대화에 선임이 끼어들었다.

    “출판사에 입사한 녀석들이 무슨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대량으로 찍어내는 단행본과 이 행사를 위해 단 500권만 찍어낸 책의 가격이 같

    을 수 있겠어?”

    “아.”

    “그렇겠군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그 대화를 들은 지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사실, 처음부터 싼 가격으로 뿌린다는 생각에 찍어낸 책일 뿐이었으니 대량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목적 자체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책을 뿌리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짜로 뿌리면 가치가 없으니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아무튼 덕분에 골치가 아파지고 말았다.

    극성팬들 덕분에 얼떨결에 몇 권을 팔기는 했지만 이미 2,000엔이라는 거금을 받아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싼 가격을 판매할 수는 없는 일이니 저 많은 책들을 판매하는 것도 더 어렵게 돼 버린 것이다.

    “아, 골치 아프게 됐네. 이 가격으로 3일 만에 어떻게 다 팔지?”

    지로의 혼잣말에 곁에 있던 신입 한명이 놀라 되물었다.

    “네? 3일요?”

    “왜?”

    “코미케 행사는 하루인데요.”

    “뭐?”

    “모르셨어요? 이제까지 쭉 하루짜리 행사였는데.”

    지로가 서둘러 부스 안에 있는 코미케 카탈로그를 본다.

    표지에도 당일 하루라고만 되어있다.

    “마, 망했다.”

    윤환이 3일이라고 말해서, 스스로 그냥 3일이겠거니 하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윤환이 3일이라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고.

    결국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어쨌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눈앞에 있는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오늘 중으로 다 팔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처음부터 싼 가격으로 정했다면 모를까 2,000엔이라는 거금으로 결정이 나버렸으니······.

    “이걸 도대체 하루 동안 어떻게 다 팔지?”

    “어려울 걸요.”

    “역시 그렇겠지?”

    “그럼요. 제가 좀 관심이 많아서 알아봤는데요. 여기 작년기준으로 참가한 클럽이 2,000개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800권 이상 판 곳이 딱 10

    곳이었데요. 물론 가격은 100엔에서 400엔 정도고요. 당연히 클럽 중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었고. 뭐, 올해는 2,400개정도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그

    래도·······.”

    “아······.”

    지로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루만에 500권을 꼭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담당에게 처음 부탁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멍청한 짓으로 물거품이 되

    고 말았다.

    그런 지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입들은 그를 곁에 두고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2,000엔이면 진짜 엄청난 가격이긴 하다. 96페이지짜리 코미케 카탈로그가 200엔인데.”

    “그러게. 저 많은 걸 팔 수 있을까?”

    “아까, 그 사람들은 그냥 막 사갔잖아.”

    “딱 보면 알잖아. 아마, 삼사라 광팬이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런 사람이 이곳에 많이 있을지.”

    “그런 팬들이 이곳에 많다고 확정하긴 어려워. 그리고 솔직히 2,000엔은 너무 비싸. 여기 부스 한곳에서 500권을 파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재고가 좀 많이 남겠네.”

    신입들은 남의 타는 속도 모르고 수군대고 있었지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30분 가까이 이곳 부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찾아온 사람들도 2,000엔이라는 가격 때문에 기겁하며 돌아가기

    일쑤였다.

    “으악! 너무 비싸!”

    “뭐야? 2,000엔?”

    “컥!”

    사람들의 반응을 보던 지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당연하지.

    저게 보통의 반응이니까.

    어쩌자고 그때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지로가 그렇게 자신을 머리를 다시 쥐어뜯던 그때, 그들의 한산한 부스로 기괴한 복장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좀비 분장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좀비 외에 지로가 익숙하게 느끼는 분장도 있었다. 바로 삼사라에 등장하는 하급보스들의 복장들이다.

    “······?”

    그런데 그들이 자신이 있는 부스로 소란스럽게 떠들며 다가오더니 곧바로 지로에게 좀비로 분장한 남자가 물었다.

    “저기, 여기 써니 작가님 단편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아, 이거다!”

    지로가 대답도 하기 전에 견본품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좀비복장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정말?”

    “이거 좀 봐도 되죠?”

    “아, 네. 견본품이니까요.”

    지로의 대답에 조심스럽게 펼친다.

    “제목이 다크 프린세스네.”

    “나도 같이 좀 봐.”

    “전 그냥 됐고요. 얼마에요?”

    “아, 그게. 2천······.”

    “2천 엔요?”

    “아, 네.”

    “확실히 조금 비싸긴 하네.”

    “비싸긴, 아까 걔들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써니 선생님이 코미케에서만 공개한 작품이야. 그걸 생각하면 싼 거야.”

    “맞아. 비싸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양심이 없지. 저 한권 주세요.”

    “저도요.”

    “나, 800엔이 부족해 조금 빌려줘.”

    갑자기 부스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서둘러 선임직원이 달려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죄송하지만 줄을 서 주세요.”

    “한 사람이 여러 권 구입해도 돼요?”

    누군가 큰소리로 질문하자 선임직원이 지로를 돌아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로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만화가 선생님께서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따로 제작하신 만큼 한분에 한권씩만 판매하겠습니다.”

    “아, 역시.”

    “아, 여기 못 온 녀석들 오늘 탄식하겠네.”

    “자자 줄을 서세요.”

    소란스럽던 사람들이 금방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대략 7-80명가량이다.

    이 사람들이 가격을 밝혔는데도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반 정도는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얇은 책은 그렇게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직원 몇 명이 붙어 책 판매를 돕는 동안 지로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살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판매된 책의 양이 분명 적지 않았는데, 아직 줄을 선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

    < 다크 프린세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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