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99화 (99/425)

< 해적 외다리 실버 (5) >

지로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추가 10만부 증쇄요?”

- 네. 일단 10만부로 결정되었습니다.

정말 앗, 하는 사이에 삼사라가 벌써 15만부나 팔려버렸다.

한참 연재 중일 때는 인기가 중위권 정도를 유지하던 만화가 너무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수가 팔려나가다 보니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첫 5만부야 오타쿠들 덕분이라고 치더라도, 이번엔 10만부는 정말 뭐지? 성인 독자층에게 제대로 어필이 된 것일까?

어쨌건 이쯤 되면 삼사라의 인기도 어마어마한 모양이긴 한데.

- 다른 만화출판사에 저와 아는 사람이 몇 있는데요. 그쪽에서도 삼사라가 꽤나 주목을 받는 모양입니다. 최근엔 신인들 중엔 삼사라처럼 좀비 만화를

그려오는 사람도 좀 있는 모양이더군요. 거기다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만화도 가끔 있다고 하고. 어쨌건 삼사라가 신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는 통에

요즘 이런 류의 만화들이 좀 나오는 모양입니다.

인기작이 나오면 아류작이 쏟아진다.

삼사라와 비슷한 만화가 등장한다는 건 역시 인기 만화가 되었다는 뜻일까.

뭔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단순한 타인의 만화를 좋아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만든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오히려 영향을 주고 있다니까.

할리우드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가 일본의 애니 ‘아키라’와 ‘공각기동대’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다시 할리우드의 ‘매트릭스’에 영향을 주었듯이 그렇

게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 덕분에 이번에 사장님께 금일봉도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사장님까지 이런 반응을 보였을 정도면 엄청난 겁니다.

“그래요?”

- 네.

그렇게 말하며 웃던 지로가 아차 하더니 다른 질문을 던졌다.

- 원고는 언제쯤 될까요?

“삼사라와 파시엔시아 둘 다 내일 중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고 나자 화실 식구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어서, 자세한 얘기를 해봐.’

딱 그런 눈빛들이다.

“10만부가 다 팔려서, 다시 10만부를 추가 증쇄한다고 하네요.”

“그럼 벌써 15만부가 팔린 건가요?”

박소미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네. 그리고······.”

지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대충 전달해주자 모두 뿌듯해 한다.

“와, 선생님의 만화가 드디어 일본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군요. 뭐랄까,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느낌에요.”

“맞아. 얼마 전에 올림픽이 끝나서 좀 아쉬웠는데, 이번엔 우리 화실에서 금메달을 딴 기분이야.”

“그런데, 저 책상은 뭐예요? 계속 신경 쓰이네.”

정미자가 화실 한쪽에 놓인 책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처음엔 내가 쓸 책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었

다.

“곧 새로운 화실 식구가 생길 거예요. 파시엔시아 때문에.”

“어? 그럼 설마, 추양구 씨?”

“아니요. 추양구 씨는 전 선생님이랑 계속 일해야 해서 새로운 인물 펜선을 맡아주실 분을 찾았거든요.”

“정말요? 추양구 씨 펜선을 대신 할 만큼 실력자에요?”

“아, 그게······.”

내가 뭔가를 이야기하려는데 그때 화실 문이 열리며 이대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오랜마안~. 잘 지냈어요?”

그러자 화실 사람들이 모두 이대봉을 반갑게 맞이한다.

“대봉 씨, 아니 제임스.”

“오랜만이에요.”

선희와 나야 엊그제 만났으니 뭐 특별할 것이 없지만, 화실 식구들은 오랜만에 그를 보자 정말 반가워한다. 하기야, 이 인간 친화력이 워낙 높아야 말

이지. 얼핏 보면 무슨 광신도들이 교주를 만나는 분위기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나 봐요.”

“우리 화실 식구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화실 식구들의 말에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며 넉살좋게 웃는다.

그런데 이대봉 뒤에 같이 들어온 사람이 있다.

며칠 전 만났던 외다리 존 실버, 조심봉이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우고 느긋하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표정은 처음 이곳에 온 사람답지 않게 편안하기만 하다.

그 순간 화실 식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실버에게 향했다.

“아, 이쪽은 외다리 실버. 직업은 해적.”

그 말에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이대봉은 가끔 사람을 당황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도 밑도 끝도 없이 외다리 실버라고 소개해 버리니 모두에게 혼란이 온 것이다.

“저기, 설마 진짜 해적이라고요? 이름이 실버고?”

화실에서 가장 순진한 박소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머리를 숙인 채 작업 중이던 선희가 중얼거리듯 노래를 부른다.

“가자, 가자. 어서가자. 꿈에······.”

당황스러운 상황의 연속.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이대봉 대신 실버를 소개했다.

“아, 앞으로 파시엔시아 인물 펜터치를 맡게 될 분이에요. 이름은 조심봉.”

내 설명에 실버가 머리를 숙여 인사한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윤환이 말대로 조심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인사에 모두가 같이 인사를 한다.

그리고 곧 박수미가 박수를 짝하고 치더니 입을 열었다.

“아, 이름이 존 실버랑 비슷해서 그런 거구나.”

그 말에 이대봉이 맞장구를 쳤다.

“수미 씨도 딱 그렇지?”

“외다리는 뭐 다리를 다쳐서 그렇게 부르신 것 같긴 한데, 왜 해적이에요? 설마 정말로 바다에서 해적생활을 하신 거예요?”

“무슨,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당연히 해적만화를 그리다 왔으니까.”

이대봉이 단번에 망설임도 없이 대답해버리자 실버가 얼굴을 찌푸린다.

“너는 정말······.”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제야 모두가 이해를 했는지 ‘아’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실버 형, 자리는 저쪽.”

“어? 아. 고맙다.”

실버가 목발을 짚고 새롭게 마련한 책상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그때 이대봉이 뾰족한 음성으로 말했다.

“윤환이 너는, 절대로 내게는 제임스라고 부르지 않더니. 쟨 왜 실버라고 단번에 불러? 그리고 넌 또 왜 쟤가 실버라 부르면 가만히 있는 건데?”

“쟨 이제 월급 주는 물주잖아. 그러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너처럼 느끼하지도 않고.”

“뭐라는 거야?”

이대봉이 양손을 허리에 턱하니 얹으며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고는 다시 날 바라본다. 나에게도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럼 형도 짐 호킨스로 개명해. 그럼 앞으로 짐이라고 불러줄게.”

“그렇게 촌스러운 이름은 싫어.”

“그럼 이대봉이지, 뭐.”

“······.”

우리 둘의 말다툼이 재밌는지 박상식이 소파에 앉아 낄낄거린다. 그러자 이대봉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딸꾹!”

화들짝 놀란 박상식이 딸꾹질을 한다.

그러는 사이 실버는 한참 데생에 빠져 있는 선희에게 다가가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선희는 여전히 그림에만 몰두

하고 있다.

실버는 처음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내 동생이라는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거기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여자아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선희를 보고서야 진짜 실감하는지 눈을 부릅뜬 채로 놀라고 있다.

“얘, 그런 얼굴로 무섭게 노려보면 우리 써니가 놀라잖니.”

“······.”

그제야 선희도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머리를 들어 올려다본다.

“한번 봐도 될까?”

실버가 조심스럽게 묻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그리고 있던 데생원고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실버가 놀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얼핏 보니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데생원고를 보고 감동을 한 것일까.

덩치가 커다란 사람이 그러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웃거나하지 않는다. 선희의 데생은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충격과 감동을 줄 정

도라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탓이다.

아무튼 그렇게 요란한 듯 평범한 실버의 소개가 끝나고 곧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일단 전상길의 화실에도 추양구는 앞으로 작업에서 빠져도 된다고는

했지만, 아직은 파시엔시아의 뒤처리는 맡겨둔 상황이다.

조만간 화실의 규모를 더 늘리면 앞으론 파시엔시아, 삼사라 모두 우리화실에서 작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파시엔시아의 데생원고를 가장 먼저 실버에게 넘겼더니 그가 감격한 표정으로 원고를 바라본다.

한참동안을 그렇게 바라보다 자신의 도구들을 꺼내 옆에 깔아놓는다. 잉크도 자신이 직접 가져온 잉크를 꺼냈다. 전에 들은 얘기지만, 잉크에 물을 일

정비율 섞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너무 많이 섞으면 색이 옅어지긴 하지만 잘 조절하면 훨씬 부드럽고 강렬한 펜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펜을 들어 잉크를 연습용 원고용지에 긋기 시작했다.

슥슥슥

직선, 곡선, 사선 등등 대략 5분가량이나 그렇게 선을 긋고 나더니 원고를 노려보고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손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일체의 망설임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거침이 없다.

작업 중이던 어시들의 시선이 자동적으로 그에게 쏠린다. 지우개질을 하던 성준희도 작업을 멈추고 그의 모습을 힐끔 거리며 바라본다.

얼핏 보면 정말 낙서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정도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펜선이 정확하면서도 강렬하다.

특히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장면에서의 펜선은 더욱 강렬하다.

정미자도 어느새 작업을 멈추고 그런 그의 펜선작업에 정신을 팔고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집에서 잠시 잠깐 보았지만, 실제 파시엔시아의 원고에 그의

펜선이 입혀지니 그 느낌이 두 배 이상 강하게 다가왔다.

이 화실에선 오직 이대봉만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적 속에서 펜선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다 어느 순간 한 페이지가 끝이 났다. 사람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라고 해도 큰 그림이 많

아서 어려운 펜선장면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가 된 것이다.

가장 가까이 앉은 정미자가 가장 크게 반응했다.

“펜선이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이런 느낌이.”

아마도 자신과 같은 일이라 다른 사람보다 그 느낌이 강했으리라.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실버가 조금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묘하게 여자에겐 약한 것일까.

그때 이대봉의 장난스런 음성이 들렸다.

“쟤, 미자 씨 무시했는데.”

“네?”

“저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 너 웃긴다. 전에 삼사라는 펜선이 만화를 다 죽인다고 얼마나 욕했니?”

“······!”

순간 실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저런 이야기를 이대봉이 까발렸으니 얼마나 충격적일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미자는 싱긋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뭐, 사실인데요, 뭘.”

“네?”

“제가 부족하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실력자 분이 들어오셨으니 앞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 네. 뭐.”

이젠 꼼짝없이 실버는 정미자에게 모든 밑천을 탈탈 털릴 것이다.

정미자의 재능은 노력이니까.

이미 파시엔시아의 펜선 능력도 스스로의 눈대중 노력만으로 상당히 받아들인 탓에 최근 삼사라를 그리는 정미자의 펜선능력이 상당히 늘어있었다.

< 해적 외다리 실버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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