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사라, 바람을 타다 (4) >
다음날 늦은 밤.
도쿄외곽지대 한산한 곳에 위치한 공장.
그곳의 실내엔 후끈한 열기와 인쇄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과 일반복장을 한 사람들이 한데 섞여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기계들 사이에서 귀를 휴지로 막은 지로가 이마에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공장장에게 다가가 소리치며 인사한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장장님!”
한참 표지 컬러 색이 균일한지 살피던 공장장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하하 뭘요. 책이 잘 팔리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잖습니까. 그나저나 힘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땀범벅이 된 주제에 팔까지 걷어붙이며 큰소리친다.
그 모습을 본 공장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좋아, 좋아. 젊은 사람이 이정도 근성은 있어야지!”
“하하.”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단행본의 인쇄 량이 도중에 갑자기 늘어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말이죠.”
“아, 네. 팬들이 단행본 출시에 대한 문의 전화를 많이 하셔서요.”
“아, 그래요?”
공장장은 자세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의 반응만 할 뿐이었다.
현재 철야작업에 들어가는 인원은 지로를 포함해 야지마와 팀장 그렇게 모두 셋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출판부에서도 두 명이 지원을 나왔다. 그들은 평소에도 편집부 직원인 동시에 삼사라의 팬이었던 사람들이다.
늘 ‘삼사라 같은 만화가 왜 성적이 낮은지 모르겠다.’며 늘 불만을 가지던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담당 선생들로부터 ‘자신에게 그만큼 관심을 좀 가져
보라’며 한소리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쇄소에선 공장장이 자정까지 도와줄 예정이고, 나머지는 베테랑 직원을 포함해 네 명이 철야작업을 하기로 했다.
“어이, 거기 재단기 조심해요! 잘못하면 손이 통째로 잘려나가니까, 그건 저 친구에게 맡기고 재단되어 모인 종이들 잘 정리해서 저쪽으로 옮기는 거
나 도와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네!”
사실, 인쇄소 직원들에겐 주간보다 지금 야간일이 몇 배는 힘들 것이다.
야간일 자체도 피로가 많은데다가 생초짜 인력들이 다섯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문제없이 지휘해야 하니까.
그래도 출판사 직원들은 대부분 단순노동에 투입되어 있는 상태다. 물론 출판사 직원들 역시도 생소한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긴 마찬가지지만.
팀장이 베테랑 직원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초짜를 데리고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그로서는 이들이 지금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쇄소 직원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희도 오랜만에 하는 철야라 괜찮아요. 요즘 잔업이 줄어들고 있어서 신경 쓰이던 참이라 반갑기도 하고.”
한참 출판물 경기가 좋은 호황기라고는 하지만, 그거야 잘나가는 출판사들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미쯔다쇼텐이 결코 작은 출판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은 만화가 주력이 아니다보니, 이쪽 매출은 저조한 편이다.
아무튼 모처럼 갑자기 일거리가 생긴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쪽 책들은 차곡차곡 파렛트에 쌓아주세요. 옆에 직원들 쌓는 거 보고 그대로 따라하시면 됩니다.”
“네. 맡겨주세요.”
출판사 직원들은 어설픈 주제에 큰소리는 잘도 친다.
아무튼 그런 모습을 보니 인쇄소 직원들도 웃음이 나온다.
“자자 정신 차리고 일합시다!”
*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으아아. 끝!”
“아이고, 죽겠다.”
“헉, 헉.”
트럭에 책들을 싣자마자 출판사 직원들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새벽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바닥에 널브러지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팀장이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추가로 2만부인가······.”
“그래도 이걸로 어느 정도는 커버 되지 않을까요?”
지로의 말에 그 옆에 엎어져있던 야지마가 끼어든다.
“아마 충분하지 않겠어? 그래도 초동 5만부면 적은양도 아니고.”
“맞아. 충분할 거야.”
“그렇겠죠?”
지로가 대답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몸이 피곤하니, 이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이게 모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인쇄소 직원들이 인사를 하자 출판사 직원들은 누운 채로 헐떡거리며 수고했다고 답한다.
“저희는 샤워실로 먼저 가볼게요.”
“좀 쉬다가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트럭들이 공장을 빠져나간다.
그중 한 트럭에 타고 있던 기사와 보조기사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힐끔 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저 사람들, 뭐야? 여기 직원 아닌 것 같은데?”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출판사에서 온 모양이에요.”
“출판사에서 왜?”
“책 때문인가 보죠. 급하게 더 인쇄를 한 것 같아요.”
“패션잡지?”
“만화책 같던데.”
“만화책?”
“네. 다른 책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어서 지게차로 실었는데, 만화책만 손으로 실었거든요.”
“아하.”
기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그것에 흥미를 잃었는지 보조기사에게 물었다.
“오늘은 먼저 갈 곳이 ‘빅클럽 서점’인가?”
“네. 그곳에 먼저 들렀다가, 미라이 쪽에 가면 됩니다.”
“흐음. 그래도 오늘은 코스가 좋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벽의 한산한 도로를 달려 곧 시내에 있는 빅클럽 서점 근처에 다다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운전기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저 사람들 뭐야?”
“어?”
서점 앞 인도에 새벽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지만, 사이사이 젊은 여자들도 끼어있는 모습이다.
이런 새벽에 공판장이 아닌 곳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건 참 드문 일이다.
“무슨 일이지? 오늘 서점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나? 자네 뭐 아는 거 있어?”
“글쎄요?”
“오늘 서점에 아이돌가수라도 오는 건가?”
“이런 대형서점엔 아이돌 가수보다는 유명 소설가가 오겠죠. 사인회 같은 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열정이 좋은 것 같아. 저렇게까지 몰두하는 걸 보면.”
그렇게 웃던 기사가 서둘러 핸들을 돌리며 서점 옆 창고 쪽에 주차시킨다. 그러자 새벽근무중인 서점 직원들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트럭에서 내린 기사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서점 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는데.”
“글쎄요. 저희도 그걸 모르겠어요.”
“네?”
기사가 보조기사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줄 쪽을 다시 본다.
그런데 그때 모여 있던 사람들이 트럭 쪽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어? 저 사람들 지금 우리를 보는 것 같은데?”
“설마요. 그냥 새벽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심심해서겠죠.”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기사가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곧 트럭에서 책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
“와, 책이 도착했나보다.”
“그러게.”
긴 줄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어째, 두근두근 거린다.”
그 중 한명이 하품을 쩍 하며 눈물을 닦았다.
“저녁까지 자고 왔는데, 또 졸리네.”
“그래도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을 줄 어떻게 알았겠냐.”
“그러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어.”
“책은 충분할까요?”
“모르지. 그냥 서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지.”
누군가 줄에 선 채로 머리를 쭉 빼며 줄의 뒤쪽을 살핀다. 그리고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 아까보다 줄이 더 늘어났다.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거야?”
“저기도 사람들이 오잖아.”
남자가 가리킨 방향에서 다가오던 사람들이 긴 줄을 보며 기겁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기야 이런 긴 줄을 보니 기가 질리기도 할 것이다.
“와, 생각보다 삼사라 인기가 대단하구나.”
“정신 바짝 차려. 오늘 재수 없으면 책 한권도 못 건질 수 있으니까.”
“알고 있어. 오늘 전투준비 완료!”
누군가 소리치자 곁에 있던 남자가 뒷짐을 지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으음,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의 내일에 희망을 이어주는 것뿐이야.”
“이 많은 젊은이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대한 조금이나마 속죄군요.”
“목숨이 있는 한 싸워라. 알겠지, 코다이.”
“네. 함장님!”
두 사람이 우주전함 야마토의 대사를 읊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비장한 표정으로 변한다.
*
아침 해가 떠오르고 서점 앞으로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아침 인사를 하며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들어오다 바깥에 인파의 줄이 길게 이어진 모습을 보며 모두 기겁했다.
“어머, 이 많은 사람들은 다 뭐죠?”
“글쎄. 오늘 서점에 행사 없는데?”
“다나카 씨 오늘 혹시 예정에 없던 행사 같은 거 있어요?”
“아니.”
“혹시 밤사이 새로 잡힌 게 있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람들을 보니 혹시나 싶다.
“일단 들어가서 확인해봐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직원 통로로 서둘러 들어간다.
다른 직원들도 사람들의 인파를 보며 힐끔 거리다 급한 발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서점이 오픈을 하자, 줄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곧장 서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자 서점 안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
“하아암!”
지로가 맨션을 나서며 하품을 쩍 한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버렸지만 밤새 인쇄소에서 잠도 못자고 일한 여파 때문에 아직 온몸이 욱신거리고 있다.
평소 몸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갑작스런 중노동에 온몸이 다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편집장은 오늘까지 그냥 쉬라고 했지만, 그래도 궁금증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밤사이 그 난리를 치며 2만부의 추가 책을 더 찍어냈지만, 혹시라도 그것이 착각이었다면 큰일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책
판매가 순조롭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만 잡념이 빠진 상태로 이동하다 어느새 편집부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 출근이라 왠지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활기차게.
그렇게 생각하며 편집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려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평소와 달리 엄청 분주하다.
그때 선배 중 한명이 지로를 보며 소리친다.
“야! 아카기, 너 거기 있는 전화 좀 받아.”
“아, 네!”
서둘러 대답하고는 그가 가리킨 전화기로 다가가 수화기를 번쩍 들었다.
“편집부, 아카기······. 네. 네. 책이 다 소진됐다고요? 잠시 만요. 저기······.”
곧바로 수화기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주변에 뭔가를 물어보려다 멈칫하며 둘러봤다.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모두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네? 다 팔려요? 지금 그쪽 서점에만 1만권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모자라다니요. 네? 여러 권을 사가는 손님들이 많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재고요? 출판부 쪽으로 전화해보세요. 전화번호요? 잠시 만요. 야, 쿠보! 출판부 전화번호가 어떻게 돼?”
“몰라! 나 바빠!”
“출판부에 전화가 연결 안 된다고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지금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걸 물어보셔도······.”
그 광경을 보던 지로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뭔가 편집부 전체가 혼란에 빠진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 삼사라, 바람을 타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