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92화 (92/425)
  • < 삼사라, 바람을 타다 (3) >

    출판부장은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편집장을 쳐다봤다.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이 난리를 떤 거야? 진짜 할 말이 없다.”

    “시끄럽고, 빨리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정확히 언제야?”

    자꾸만 다그치는 편집장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다 곧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위로 치켜뜨며 미간에 힘을 주며 생각

    에 잠겼다.

    “음······.”

    “빨리 생각해봐.”

    “재촉하지 마. 생각하고 있잖아.”

    “······.”

    편집장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출판부장을 노려본다.

    그런 눈빛을 외면한 출판부장이 턱을 긁적이다 시계를 보며 머리를 갸웃거린다.

    “오늘이 보자······, 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출판부장이 그제야 떠올랐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래 모레네. 모레 아침에 출고될 거야.”

    “모레?”

    “어. 내일 중으로 인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할거야.”

    “내일 언제까지 인쇄기가 돌아가는데?”

    자꾸만 재촉하는 편집장을 잠시 째려보던 출판부장이 귀찮은지 툭 던지듯 말했다.

    “오후 6시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인쇄그거, 다음날까지 연장 시킬 수 없겠냐?”

    “누가? 내가?”

    “그래.”

    “뭔 헛소리야? 인쇄소 일정이 다 잡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내 맘대로 바꿔?”

    “너, 공장장이랑 친하잖아. 한번 씩 술도 마신다며?”

    “출판부장이니까 당연하지. 난 너랑 달라서 적은 안 키워. 너도 좀 사회생활 유들유들하게 해라. 그러니까 저런 임원들한테도 찍히지.”

    출판부장이 팔짱을 낀 채로 가르치듯 이야기한다. 평소라면 그런 출판부장에게 크게 쏘아붙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삼사라 출판부수 좀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

    “뭐?”

    편집장의 말에 출판부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버럭 했다.

    “야, 3만부나 늘렸는데, 그게 모자란다고? 너 정말 왜 그래? 정말 나 회사에서 쫓겨나는 꼴 보려고 그러냐? 이번에도 너무 늘린 것 같아서 내 밑에 애

    들이 얼마나 구시렁거리는 줄 알아?”

    처음엔 2만부로 얘기가 되었지만, 최근 성적이 좋다는 것을 편집장이 계속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3만권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갑작스런 순위상승에 이유가 있다는 건 출판부장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만부가 모자란다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전화가 걸려온데.”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야? 전화가 걸려오다니.”

    “삼사라 출판 언제 하냐고 묻는 전화가 편집부에 계속 걸려오고 있어.”

    “뭐?”

    출판부장이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서둘러 이번엔 지로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지로가 화들짝 놀랐다.

    “아, 네. 그렇습니다. 지금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어요.”

    “들었지?”

    “······.”

    “나 이거 예전에 신입 때 경험한 적 있어. 이거 징조가 그때랑 비슷해. 너도 알지? 그때.”

    편집장의 다그침에 출판부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도 오래전의 일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렸다.

    “······그때?”

    “그래. ‘문답무용 일기토!’ 무카이 선생님의 사극액션물이었잖아. 기억나지?”

    “······.”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그 시절.

    그때 분명 그런 일이 있었다.

    6-7년 전 쯤의 일이었다.

    편집장이 격주간 소년지인 스피릿 히어로에서 팀장을 하고 있던 시절, 그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평소 앙케이트에서도 늘 순위 밖에서 맴돌아 주목을 받지 못하던 작품인 사극액션활극만화인 ‘문답무용’이 첫 번째 단행본이 발매되려 하던 시점

    이었다.

    갑자기 문답무용에 대한 문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스도는 당시 출판부 과장이었던 사이토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 했었다.

    그때 사이토는.

    “뭐, 소수의 팬이겠지. 특별한 일은 아닐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5천부의 책이 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완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편집부는 완전히 발칵 뒤집혔다.

    전혀 출판 계획을 잡지 않았고, 다른 책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완판과 함께 서점들에서 오는 연락으로 편집부와 출판부는 완전히 패닉상

    태에 빠진 것이다.

    부랴부랴 추가 증쇄에 들어갔고, 결국 책은 최종 6만부를 찍고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제대로 팬층에 대한 조사가 되었다면 10만부는 거뜬히 판매했

    을 거라는 것이 당시 결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연재 때 순위가 너무 좋지 않아 2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달라고 당시 편집장의 명령을 문답무용의 만화가 무카이에게 전달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무카이는 인기작이었음에도 2권으로 마무리했고, 그 때문에 팬들의 항의 전화와 편지까지 받아야 했다. 더불어 무카이도 다른 잡지사로 떠

    나버렸다.

    아무튼 그런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 출판부장은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때 너, 무카이 선생님 다른 잡지로 떠난 거 때문에 시말서 썼었지?”

    “야,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편집장의 다그침에 정신이 번쩍 든 출판부장이 비상계단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야, 어디가?”

    하지만 이미 그의 의도를 알았는지 피식거리며 투덜거렸다.

    “저 자식, 갑자기 말도 없이.”

    그러고는 곧장 출판부장을 따라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 뒤를 지로가 따라나선다.

    곧 출판부에 다다른 출판부장이 자신의 자리로 가 수화기를 들고는 다이얼을 급하게 돌렸다.

    “공장장님, 사이톱니다. 네. 내일 삼사라 단행본 일정 확인됩니까? 네. 네. 맞습니다. 그거 인쇄시간을 좀 늘릴 수 있겠습니까?”

    - ······.

    “네. 야간에요.”

    - ······.

    그 순간 출판부장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든다.

    “야간작업도 계획이 되어 있다고요? 아, 네. 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출판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초판을 더 늘리는 건 어렵겠는데? 저녁 10시까지 다른 잡지 찍느라 바쁘다고 그러네.”

    그 소리에 편집장이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곧바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책은 어디에 가장 먼저 들어가지?”

    “도쿄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 세 곳 정도?”

    “나머진?”

    “뭐, 영업부에서 하는 일이라 정확히 몰라도 그 이외엔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 출고 되겠지. 아무래도 출판부수가 적으니까 그렇게 많은 서점이

    나 편의점에는 한꺼번에 뿌리지 못해.”

    소년 히어로의 인지도 낮은 탓에 출판되는 단행본들도 전국 구석구석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도쿄 인근에서 소진될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편집장이 다시 물었다.

    “그럼 인쇄소 말이야, 거기 아까 밤10시까지 작업이 있다고 했지?”

    “그런데, 왜?”

    “그 이후엔 일정이 없다는 거군.”

    “당연히 없지······.”

    그렇게 대답하던 출판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너?”

    “거기 공장장에게 다시 연락해 줘봐.”

    “얌마, 너 진짜로······?”

    그 말에 편집장이 피식 웃더니 지로 쪽으로 돌아본다.

    “······?”

    그 모습을 본 출판부장이 묘한 표정으로 웃더니 낄낄거린다.

    “너, 진짜 나쁜 놈이네. 부하를 잡을 셈이냐?”

    순간 둘의 대화를 이해 못한 지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멀뚱거리기만 했다. 그런 그에게 편집장이 물었다.

    “너, 내일 철야 좀 해라.”

    “네?”

    “인쇄소에서 철야 할 수 있겠지?”

    그제야 지로가 편집장의 말을 이해하고는 놀랐다가 곧 입을 굳게 다문채로 머리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내일 몇 명 직원 더 붙여 줄 테니까,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나도 조금 도와줄게. 대신 내일은 오후에 출근하도록 해. 오전까지 푹 쉬고.”

    “알겠습니다.”

    “너도 하게?”

    하지만 편집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래는 못하지. 요즘엔 몸이 예전 같지 않거든.”

    “너, 진짜 악독한 상사구만.”

    그렇게 말하며 출판부장이 다시 한 번 낄낄거리더니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지로를 힐끔 돌아보았다.

    “······.”

    ***

    도쿄시내의 한 넓은 카페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오늘은 특히나 인근 극장에서 개봉한 마크로스 극장판 때문에 평소보다 더 손님이 많았다.

    창가 쪽 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모이는 젊은 사람들이 오늘 본 애니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크로스 극장판 너무 좋았어. 감독 말대로 TV판이랑은 완전히 달랐는데, 뭐랄까 이쪽이 훨씬 재밌더라. 분위기가 밝아서 일지도 모르겠어.”

    “민메이랑 히카루의 러브라인이 좋았지. 두 사람의 아기자기한 이야기.”

    “난 우주전투신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그리고 민메이 노래 ‘샤오파이롱(小白 ?)’이 좋던데.”

    “나 솔직히 TV판 민메이는 별로였는데, 이번 극장판에선 팬이 돼 버렸어.”

    “성우가 누구랬지?”

    “이지마 마리.”

    “앨범 나왔나?”

    “출시한다고 했으니까 곧 나오겠지.”

    “난 나오면 바로 살 거야.”

    “그나저나 이번 극장판은 뭐, TV판이랑은 상관없는 내용이지? 감독도 뭐 극중극이라고 얘기했고.”

    “그 양반 TV시리즈도 모두 극중극이라고 했어.”

    “뭐야? 그럼 마크로스 시리즈가 죄다 우주군의 홍보영화라는 거냐?”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는다.

    “참나, 감독들은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한다니까, 작년에 나온 우르세이 야츠라 극장판도 그렇게 모두 극찬했잖아. 그리고 루미코 선생님도 최고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고. 그런데 정작 극장판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는 스스로 최악의 영화였다고 하고 말이지.”

    “그건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중간에 들어와서 개고생하면서 겨우 완성시켰으니까. 나름 고통이 컸던 모양이지.”

    “그 인간은 늘 불만투성이라니까.”

    “불만이 많은 사람이 명작을 만드는 법이지.”

    한참을 떠들던 그들 중 한명이 모두에게 소리쳤다.

    “저기 온다!”

    카페 안 젊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 남자 한명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앉아있던 이들이 서둘러 그에게 물었다.

    “뭐래? 아직 모른데?”

    “계속 똑같은 대답이야?”

    그러자 다가온 남자가 그들에게 말했다.

    “모레 아침에 책들이 출고된다더라.”

    “정말이야? 확실해?”

    “어, 방금 결정이 났다고 하더라.”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졌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계속 편집부에 전화를 넣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소년 히어로에선 삼사라 단행본을 출시한다는

    홍보가 며칠 전부터 있었고, 이런 광고가 있고나선 며칠 만에 단행본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드디어 정확한 날짜가 나온 것이다.

    “와, 다행이다.”

    “그럼, 일찌감치, 준비해야겠는데.”

    “그래. 내일은 저녁에 미리 잠 좀 자 둬야겠어.”

    “나도.”

    “그런데 미공개 일러스트가 초판에만 나오는 건 확실하겠지?”

    그 말에 누군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주간소년 히어로 한권을 꺼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더니 테이블 중앙에 척 펼친다.

    “자, 봐. 써니 선생님이 작가후기에 분명 ‘초판에만 아홉 장의 일러스트가 들어간다니 아쉽다.’라고 쓰셨잖아.”

    “초판에만 나온다는 말이지? 흐흐. 이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아이템이군.”

    “그나저나 시내에 있는 ‘빅클럽 서점’에 미쯔다쇼텐 책이 가장 먼저 들어가는 거 맞지?”

    “어. 알아봤는데, 그동안 특히 소년 히어로의 경우엔 늘 도쿄시내 큰 세 곳의 서점, 그중에서도 ‘빅클럽 서점’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더라. 소년 히어로

    가 아직은 인지도가 떨어져서 도쿄 시내를 벗어나면 어느 서점에 들어갈지 알 수가 없어.”

    “역시 삼사라 같은 대작이 있기엔 너무 미약한 출판사라니까. 유통망이 이렇게 시원찮아서야 원.”

    “아니, 나는 차라리 이게 더 좋아. 초판의 가치가 더 올라갈 테니까.”

    “안 그래도 난 소장용까지해서 두 권을 구입할 예정이야.”

    “나도. 한권은 비닐에 싸서 따로 보관할 거야.”

    “난 세권.”

    각자 몇 권씩 살 것인지 떠들다 한명이 다시 말한다.

    “초동 인쇄 량은 얼마나 될까?”

    “보나마나 얼마 안 되겠지. 소년 히어로 분위기도 요즘엔 온통 파시엔시아랑 진심의 남자 얘기뿐이던데.”

    그러자 몇몇이 팔짱을 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 다 괜찮은 만화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 정도는 소년점프나 소년매거진으로 치면 평범한 수준의 만화잖아. 그런 만화들 때문에 삼사라가 묻힌다니.”

    “그래도 소년 히어로에서 그만하면 대단한 만화들이긴 하지.”

    “그런데 다른 만화연구회 애들은 어때?”

    “아마 그쪽도 우리처럼 이미 출간일 날짜정보를 입수했을 거야.”

    “아, 이번 구입은 좀 치열하겠다.”

    < 삼사라, 바람을 타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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