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상가상 천원돌파 (3) >
삼사라 2화가 연재된 후 치러진 엽서투표 결과는 11위였다.
처음부터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던 와중이라 이 결과에 대한 편집부의 충격은 큰 편이었다.
삼사라 연재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임원들도 이 결과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덕분에 주요 임원회의에 주간소년 히어로의 편집장이 불려갔다.
“천재 작가나 나왔다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더니, 반응이 너무 나쁘지 않은가?”
“천재 신인 하나가 출판사를 먹여 살리네 어쩌네 하더니, 겨우 결과가 이거라니. 나 참.”
“그리 넉넉하지도 않은 출판사 사정인데 굳이 한 달에 몇 번씩이나 한국을 들락거릴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군.”
“솔직히 이정도 공을 들일 거면 차라리 다른 잡지사 A급 만화가를 데려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임원들이 반발한다.
“그건 아니죠. 다른 잡지사들이 바보도 아닌데. 간판급 작가들을 그냥 놔준답니까? 그리고 만화잡지사들끼리도 상도덕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작정 자
기네들 작가 뺏어 가는데 가만있을 리도 없고, 그럼 결국 서로 돈으로 싸우게 될 테지요. 그런 공멸할 짓을 누가 시작하겠습니까?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죠.”
“뭔 소리를 하는 거요. 이미 주간소년 히어로뿐만 아니라 월간파워 히어로의 A급 작가 두 명이 이미 소년먼데이로 넘어간 상황 아니오.”
“그건 그쪽이 뺏어간 게 아니라 만화가가 연재를 끝내고 신작을 써서 옮겨간 거죠.”
“뒷거래가 있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확인도 안 된 추측은 관두시죠.”
“뭐요?”
“솔직히 소년먼데이면 우리와 급이 다른데, 만화가들도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욕심으로 간 거 아니겠습니까.”
“자자, 주제와 다른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갑자기 이야기가 옆으로 흐르는데다 분위기까지 험악해지자 오카다 전무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임원들이 자신들에게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있는 편집장 스고 싱고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보시오. 편집장.”
오카다 전무가 불렀다.
“네.”
“편집장도 한마디 하시오.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자네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게 아닌가.”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없다고 말할 상황이 아니지. 뭔가 책임 있게 말해보게.”
“책임을 회피하겠다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전무의 한쪽 눈이 치켜떠진다.
“스도 편집장. 그럼 책임을 지겠다는 말인가?”
“이제 겨우 2화가 진행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편집자들 대부분이 작가의 재능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회의는 좀 더 지켜본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
각합니다.”
그 말에 전무 측 임원들이 곧바로 편집장을 추궁했다.
“지켜본다? 지금까지 그 작가 한명을 위해 출판사에서 사용된 돈이 적지 않잖소. 재능이 있다고 해도 무작정 기다릴 상황이 아니지 않나?”
“재능이 있다면서, 인기가 왜 없는 거지? 당신들은 전문가라면서, 그런 것도 몰라요?”
“굳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을 무리하게 넣은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신인들 세 명 정도를 키울 막대한 돈을 뿌리면서까지. 이제
까지 담당이 사용한 항공료와 각종 경비가 제법 되지 않습니까?”
편집장이 그들의 말에 반발했다.
“재능 있는 만화가 한명의 가치는 엄청납니다. 단순히 평범한 신인 몇 명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능? 가치? 또 그 얘기 뜬 구름 같은 얘기를 하는 거요?”
“지금 소년점프를 이끌어가는 작가들을 보십시오. 특히 북두의 권이나 닥터슬럼프 같은 경우엔 주간지 판매부수를 이끌고 있는 만화들입니다. 물론
단행본도 마찬가지고요.”
“비교대상이 너무 엄청난 거 아니요? 지금 한국인 신인을 그런 대작가들과 비교하다니 가당치도 않지.”
“아닙니다. 충분히 그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재능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만개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니오.”
“우리 잡지에서도 그런 작가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작가들도 이미 뺏겼잖아요.”
“제가 편집장을 맡고 부터는 아직 없었습니다만.”
“어쨌건!”
그러면서 헛기침을 하며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시선을 회피한다.
그때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부사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편집장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편집장은 그 작가가 그런 거물급 작가가 될 재목이라는 거요?”
“그렇습니다. 스토리의 감각도 훌륭하고, 그림 또한 출중합니다. 거기다 둘 다 나이도 젊습니다.”
“그럼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오?”
“일단 잡지의 고정 독자들과 성향이 다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류가 아닌 장르라는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그 말에 부사장이 호기심을 보인다.
“더 설명해보세요.”
“현재 저희 주간소년 히어로는 명랑과 개그, 그리고 스포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SF, 그것도 호러라는 마이너 한 소재를 섞어 사용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재라는 게 다른 곳에서는 먹힌다고 생각합니까?”
“SF는 요즘 인기 있는 장르가 맞습니다만, 호러 쪽은 다른 곳에서도 마이너 하긴 합니다. 그러나 멸망이라거나 세기말적 분위기의 작품 중 아까 말씀
하신 북두의 권 같은 경우엔 소년점프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죠.”
“그러니까, 편집장의 말인 즉 슨, 어떤 작품이 돌풍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는 거요?”
“네. 아직은 성향문제도 있고 하니, 자리를 잡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만. 충분히 뛰어난 재미를 가진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편집자들 중 다수도 재
미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편집장의 말에 부사장 스즈키 노부히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던 전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바로 편집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에 깍지를 끼며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편집장은 무조건 성공을 자신한다는 거요?”
“무조건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아니라는 거요? 확실하게 합시다.”
“가능성이 높다는 건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전무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네?”
“그래도 마냥 기다려 줄 수는 없는 일 아니오? 겨우 신인만화가 한명 키우자고 회사차원에서 무작정 지원하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고. 거기다 대상인
한국인이라면 다른 만화가들의 사기에도 좋지 않으니까 말이지.”
“말씀해 보시죠.”
“1권 단행본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걸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말하시는 건지.”
“글쎄, 우리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만큼 팔리면 되는 거지.”
“정확한 수치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일단 그 부분을 나중에 따로 계산해 보고 따져봅시다. 내가 재무담당도 아니니 이 자리에서 확답을 하긴 어려우니까. 그리고······, 만약 그 기준에 미
치지 못할 경우엔.”
“······?”
“그 책임은 편집장 자네가 지는 걸로. 어떻소?”
그 말에 부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편집장과 부사장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절친한 관계지만, 회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마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전무와 부사장이 견원지간이라는 건 회사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제야 부사장이 겨우 신인작가 한명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임원회의를 주최한 전무의 저의를 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 제안을 편집장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부사장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
[6년 전 실종됐던 최은희, 신상옥 씨가 북한괴뢰에 강제 납치되어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북한괴뢰는 최근······.]
화실 TV를 시청하던 어시들이 모두 놀란 표정이 되어 ‘어머머’를 연발한다.
“최은희 실종되었다더니, 결국 북한에 있었다는 거네?”
“어머나, 설마, 설마 했는데. 혹시 북한에서 고문이라도 당한 건 아닐까요?”
“진짜, 공산당들 무섭다.”
여자들이 TV를 보며 호들갑을 떤다.
그때 박상식이 화실에 들어오며 한마디 거든다.
“아오지 탄광에 끌려간 건 아닐까요?”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거기가 어딘데?”
“너 아오지 몰라?”
“알아야 하는 거야?”
“보통 땐 참 똑똑한데, 어떨 땐 이상할 정도로 상식이 부족하고. 아휴, 아니다. 아니야. 너야 워낙 특이한 녀석이니까.”
금방 납득했는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 인간 지금 나 지금 무시하는 거 맞지?
“아참, 내 정신 좀 봐. 뉴스 땜에 까먹을 뻔 했네.”
“뭔데?”
내 질문에 박상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큰일이 생겼다.”
“큰일?”
“평발 스트라이커 말이야.”
“그게 왜?”
“그거 이제 더 이상 스토리 쓸 수 없게 됐다. 만화가 중단 돼 버렸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지?
그렇게 잘 나가는 만화가 왜 갑자기 중단 돼?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
내 추궁에 박상식이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엊그제 어린이날 지났잖아.”
“그래서?”
“이번에도 학부모연합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규모 만화책들을 모아 화형식을 했던 모양이야.”
“······.”
그 순간 머리가 지끈해져왔다.
이 시절 어린이날만 되면 만화책을 무슨 마녀사냥 하듯 불태웠다는 것은 책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바빠서 그런 사실을 잊고 지내고 왔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그거랑 평발 스트라이크 중단은 무슨 관계지?
설마, 찍혔나?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박상식이 곧바로 설명했다.
“평발 스트라이크도 그 화형식 책들 사이에 있었던 모양이야.”
“······.”
“그런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야. 평발 스트라이커가 불량 만화리스트에 가장 우선순위에 올라간 모양이야.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진 탓
에 애들이 너무 열중한다고 학부모들의 불만이 폭발한 모양이더라고.”
“인기 만화라서 그런 거야?”
“그래. 인기 만화라서. 지옥의 외인구단도 스포츠 물이긴 하지만, 독자 대상이 아무래도 청년층이 주 독자 대상이라 문제가 적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우리 ‘평발 스트라이커’는 주 대상이 아무래도 초중고 아이들이라 이거지.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만화에 빠지게 만들었으니 완전히 찍힌 모양이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인기가 있어서 표적이 된 거라니.
내가 살던 시절에도 학부모들도 만만히 않았지만, 이 시절은 진짜······.
그럼 재미있는 드라마는 왜 그냥 놔두는 거지?
자신들이 재밌게 보고 있으니 그런 건가?
아이들이 재밌는 건 공부에 방해가 돼서 안 되는 거고, 드라마가 재밌는 건 살아가는 활력소쯤으로 여기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그거보다 더 큰 문제도 있어?”
이미 만화가 중단된 것도 황당한데. 더 큰 문제라니 어쩐지 듣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기, 전 선생님 화실 사람들 문제.”
“전 선생님 화실 문제? 거기에 또 무슨 일 있어?”
“데생맨을 중심으로 핵심 멤버 여러 명이 한꺼번에 화실을 그만둔 모양이야.”
“뭐?”
갈수록 태산이다.
아까 들은 얘기도 감당이 안 되고 있는데.
< 설상가상 천원돌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