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69화 (69/425)
  • 시끌국(國) 녀석들 (1)

    다음날 우리는 도쿄시내에 위치한 미쯔다쇼텐 빌딩으로 갔다. 그곳 5층에 주간소년 히어로의 편집부가 자리 잡고 있다.

    편집부로 들어서자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분주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 크기에 비해 책상의 숫자도 많은데다가 책상마다 정신없이 쌓여있는 노란색 서류봉투들, 그리고 직원들은 정신없이 왔다갔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쪽 파티션 너머엔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곳엔 만화가와 직원들이 원고를 펼쳐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무래도 아날로그의 시대다보니 각종 서류나 원고, 혹은 만화책으로 인해 그야말로 만화출판사 내부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 와중에도 벽에 붙어있는 대형 그라비아 미소녀 브로마이드가 시선을 잡아끈다.

    사진빨은 좀 떨어지지만······, 여자가 참······, 참하네. 몸매가 완전······.

    그런 나를 선희가 빤히 쳐다본다.

    “크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시선을 돌리자 다른 한쪽에서는 책상위에 양말까지 벗은 채로 잠든 직원의 모습도 보인다. 그 몰골은······, 저 사람 일주일정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나?

    바로 옆자리엔 마치 만화방에 온 사람마냥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있다.

    뭐야? 일하는 시간 아닌가? 하다가, 여기가 만화 출판사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납득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저것도 일이겠지.

    그나저나 이 사람들.

    이런 분위기에서 잘도 일을 하는구나. 진심 존경스럽다.

    그런데 그 와중에 누군가 사람들에게 A4 용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있다.

    그러자 종이를 받은 사람이 화들짝 놀란다.

    “아, 지금 순위 나온 거야?”

    “야호. 이번에도 3위!”

    “뭐야? 왜 10위 밖으로 밀려난 거야?”

    “휴우. 다행이네.”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분위기를 보니 앙케이트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하기야 매주 있는 살 떨리는 시험이 바로 앙케이트다.

    이 시절에야 내가 살던 때처럼 인터넷이 없으니 철저히 엽서를 통한 순위일 것이다.

    직원 몇 명의 표정을 보니, 조만간 몇 명의 만화가는 연재가 중단될지도 모르겠네.

    주변을 힐끔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신인?”

    “네?”

    “원고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아뇨······.”

    그런데 그때 누군가 서류박스를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소리친다.

    “아, 오셨군요.”

    지로다.

    “아, 네.”

    “아카기 씨 손님?”

    “네.”

    “아.”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던 직원이 다시 돌아간다.

    “절 따라오세요.”

    그렇게 말한 지로가 여전히 박스를 든 채로 우리를 한쪽 복도 끝으로 안내한다.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선희와 내가 문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서둘러 박스를 든 채로 다시 아까 있던 장소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실내에 들어온 우리는 커다란 테이블 한쪽 편에 나란히 앉았다.

    선희는 심심한지 가방에서 연습장 하나를 꺼낸다.

    출판사 건물로 보이는 빌딩을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바로 옆엔 이곳, 편집부 사무실 실내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나는 정신없다는 기억만 있는데, 이 아이는 실내의 구석구석 생김새를 다 그려가고 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까지.

    그 찰나의 순간을 정말 사진처럼 기억해서 그리는 능력이라니.

    늘 보면서도 신기한건 여전하다.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온다.

    지로와 중년의 사내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희를 툭 건드리자 그리던 동작을 멈추고는 나를 따라 일어난다.

    “아, 써니 선생님?”

    40대 초반 정도의 중년의 사내가 묻길래 내가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이윤환이고, 이쪽은 이선희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편집장 스도 싱고라고 합니다.”

    그가 나와 선희에게 인사하며 대답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맞은편에 앉자 같이 들어온 지로도 그의 곁에 같이 앉는다. 그리고 곧 노크소리가 들리고는 문이 열리더니 말끔한 차림의 여자가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각자의 자리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는 곧바로 나가자, 곧 그가 입을 열었다.

    “아카기에게 전해 듣긴 했습니다만, 확실히 일본어에 능통하시군요.”

    “전에 따로 공부를 좀 했었거든요.”

    “오빠분이 일본어를 잘 하시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 선희도 일본어는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편집장이 지로를 돌아본다. 그런데 지로도 몰랐던 사실이라 눈만 멀뚱거릴 뿐이다. 하기야, 일본어를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거기다 선희가 입이 무겁기도 하고.

    물론 알아듣는 거랑 글자를 읽는 건 가능한 것 같기는 한데, 발음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다.

    “오시는 동안 불편은 없으셨습니까?”

    “괜찮았습니다.”

    “모처럼 오셨으니 이곳저곳 들러보시고 돌아가시죠. 일본은 온천이 유명하니까, 몇 곳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편집장과 대화가 오갔지만, 특별히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누지 않았다. 아마도 만화에 대한 부분은 담당편집자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지로에게도 이 부분은 미리 들었었다.

    그냥, 편집부가 어떻게 생겼고, 직계 직원의 얼굴정도 보자는 게 큰 이유였으니까. 더불어 겸사겸사 일본도쿄 구경도 좀 하는 거고.

    그때 다시 노크소리와 함께 직원이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본 지로가 말했다.

    “팀장님.”

    “아, 미안.”

    “왜 이렇게 늦었어?”

    “아, 편집장님 죄송합니다. 그게······.”

    그때 회의실 문이 쾅쾅 울리더니 곧바로 활짝 열리더니 30대로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육중한 몸집의 사내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편집장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이럴 수 있는 거야? 편집장이면 다냐고?”

    그때 젊은 사람들이 같이 뛰어 들어온다.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해요.”

    “이거 놔, 인기 없다고 이렇게 쓰레기 버리듯 내팽개치면 난 어쩌라는 거야?”

    젊은 두 사람이 중년의 사내를 붙들었지만 덩치 때문인지 저지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편집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놔 드리게.”

    “네? 하지만.”

    “괜찮으니까 놔 드리라고.”

    그 말에 두 남자들이 중년의 사내에서 떨어진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가 콧김을 씩씩 뿜으며 편집장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남자가 실내에 들어온 뒤 술 냄새가 사방으로 퍼진다.

    윽,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너무 하는 거 아뇨? 그래도 한때나마 이곳에서 최고의 인기작가중 한명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우해도 괜찮은 거냐고!”

    남자가 편집장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편집장이 그를 바라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미우라 선생님.”

    “왜 그러쇼?”

    “이곳은 냉정한 세계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조용한 말투였지만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 때문에 미우라라고 불린 남자는 흠칫한다.

    “그, 그걸 누가 몰라? 하지만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뇨.”

    “오래전 미우라 선생님도 아라이 선생님이 밀려나가 생긴 자리에 들어오셔서 연재를 시작하신 걸 기억하십니까?”

    “······그, 그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아라이 선생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셨고요. 지금 아라이 선생님은 그때이후로 절치부심 하셔서 다시 복귀해 잡지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인데도 말이죠.”

    “······.”

    어느새 미우라가 편집장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만화 잡지는 철저하게 인기위주로 연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뭐요? 그럼 내가 아마추어란 말이요?”

    “지금 하시는 행동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

    “받아들이시기 힘들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잡지에 실을 수 있는 만화는 한정적이고, 만화가는 많으니까요.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

    그 말을 들은 미우라가 잠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그리고는 우리 쪽을 바라본다.

    표정이 묘하다.

    어쩌면 새로운 젊은 경쟁자의 출현이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따라온 담당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미우라에게 다가갔다.

    “자자, 선생님.”

    그렇게 말하며 그를 이끌고 회의실 밖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던 편집장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 쪽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더니 씁쓸하게 웃는다.

    “보셨다시피 치열한 세계입니다. 여기 만화계는.”

    “그렇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출판사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어디 갈 거야?”

    “도쿄 시내.”

    내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나는 곧이어 택시를 잡았다.

    “도쿄 시내를 좀 돌아주세요.”

    “아, 외지에서 오셨나보군요.”

    “네.”

    그 외지가 좀 멀어서 그렇지.

    그렇게 도쿄 시내를 이리저리 돌며 구경하다 원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저기 앞에 세워주세요.”

    “네.”

    택시에서 내린 후 눈앞에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에 걸려있는 커다란 극장 간판.

    그 속에 있는 그림을 보며 내가 감탄하며 웃었다.

    “와, 이걸 실시간으로 다 보게 될 줄이야.”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간판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여자아이와 조그마한 비행체, 그리고 거대한 벌레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내가 감격했다는 듯 간판을 올려다보자, 곁에 있던 선희가 묘한 표정으로 나와 같이 바라본다.

    “자, 들어갈까?”

    내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극장 앞에 줄서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나우시카가 크게 대박 난 작품이 아님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행렬이 있다는 건, 개봉관수가 적어서이거나, 아니면 오늘 유독 오타쿠들이 많이 모여들어서겠지.

    어찌되었건, 느긋한 마음으로 근처에 가서 햄버거를 사와 선희와 한 개씩 먹으며 줄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극장은 겉보기와 달리 실내는 조금 엉성해 보인다.

    아무래도 멀티플렉스 극장에 익숙해 있던 내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한국에 비하면 월등한 시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햄버거 하나를 뚝딱 먹어치웠음에도 선희는 아직 아쉬운지 입맛을 다신다. 어쩔 수 없이 극장 안 매점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더 산 후 실내로 들어가 좌석을 확인하고 앉았다.

    아직 영화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선희는 자리에 앉아 팝콘을 오물거리며 잘도 먹는다.

    “극장엔 자주 가 봤냐?”

    “처음.”

    “뭐? 학교에서 단체 관람 같은 거 했을 거 아냐.”

    실제로 학생들이 우르르 극장을 가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물어본 거였다.

    “아니, 한 번도 안 가봤어. 돈 때문에.”

    “······.”

    이놈의 주둥이.

    하지만 선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계속 광고화면을 보며 오물거리더니, 곧 내 손에 쥐어진 팝콘을 힐끔거린다.

    그새 다 먹었구나.

    “먹어.”

    내 팝콘을 내밀자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냉큼 받아 다시 입에 부지런히 던져 넣는다.

    잠시 후 화면이 어두워지고 광고영상이 지난 후에 곧 만화영화가 시작된다.

    광활한 배경이 보이고 그곳 하늘을 날고 있는 글라이더 같은 비행물체.

    그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선희는 영상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대형 화면에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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