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68화 (68/425)
  • 룰루랄라 일본을~ (3)

    경찰이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 경찰들에게 ‘어서 서둘러!’ 라는 소리를 치고는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러자 눈물을 글썽이던 여자가 우리에게 서둘러 꾸벅 인사를 하고는 경찰과 함께 달려간다.

    작은 희망을 발견한 탓인지 여자의 표정은 비장해 보인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이 바라보다 곧 멍한 얼굴로 선희를 봤다.

    선희도 날 마주본다.

    이 녀석도 나름 긴장했는지 평소와 달리 얼굴이 약간 붉어져있다.

    그 순간.

    아차.

    서둘러 시간을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아 참. 선희야 시간 없다.”

    “응.”

    우리는 서둘러 다시 체크인 카운터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 동안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인지, 줄이 엄청 더 길어졌다.

    시간을 보니 별로 시간이 많지 않다. 갑작스러운 일로인해 상황이 급박해졌다. 시간도 별로 없는데 줄은 길었으니까.

    그런데 아까 우리랑 같이 줄서있던 중년의 여자 두 명이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빨리 와요! 빨리!”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좀 봐줘요. 아까 봤잖아요.”

    “그래, 그래. 젊은 사람들이 장한 일을 했는데.”

    두 아줌마들의 넉살에 주변사람들도 방금 벌어진 일을 본 탓인지 수긍하며 자리를 비켜준다.

    아줌마들이 얼른 오라며 다시 손짓을 한다.

    선희와 나는 서둘러, 줄 쪽으로 슬쩍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때 근처에 있던 중년의 공항경찰이 우리를 보고 말았다.

    “아, 이런.”

    순간 당황해 주춤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새치기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걸려버렸으니.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모른 척 지나쳐 버린다.

    아무래도 저 양반 역시, 아까 일을 본 모양이다.

    우리가 줄에 끼어들자, 우리를 불렀던 아줌마들도 안도하며 웃는다. 그리고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유, 그나저나 아까 그 새댁, 아이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그런데 아까 새댁에게 뭘 준거에요?”

    “아, 인상착의를 그린 그림요.”

    내 말에 아주머니가 손바닥을 치며 감탄한다.

    “그림 잘 그리시나보다.”

    “와, 화가시구나.”

    “아니, 동생이 그린 거예요.”

    그 말에 두 아줌마가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는 선희를 보며 어깨를 두드린다.

    “어머, 이렇게 예쁜 동생이 그림도 잘 그리는 구나. 아휴 장하고 이뻐라.”

    그렇게 체크인을 한 우리가 이동해 가는데 한쪽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머나, 아까 그 여자 아닌가?”

    “맞네.”

    “저기, 저기. 애를 찾았나 보네. 아유, 다행이야.”

    주변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우리도 지나가면서 사람들 틈 사이에 아이를 안은 채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여자아이도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중이다.

    아까는 그냥 스치듯 봐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겨우 여섯 살 쯤 되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줌마들이 수군거린다.

    “그 왜 있잖아. 제자 납치한 선생.”

    “아, 그 체육선생?”

    “그래. 작년에 사형집행 되었잖아. 그런데도 저런 놈들이 버젓이 설치는걸 보면 한국은 정말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어.”

    “맞아. 암튼 애 납치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사형시켜야 된다니까.”

    작년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이 시절엔 진짜 사형이 집행되었구나.

    뭔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공항에서의 요란한 사건 후,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여객기의 좌석을 확인하고 앉는다.

    나름 어릴 적부터 일본을 여러 번 다녀온 경험도 있고해서 별다른 특별한 감상은 없다.

    그래서 창가 쪽 자리를 선희에게 양보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선희는 비행기가 이륙한 뒤로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계속 창밖만을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구름의 바다.

    그것을 보며 선희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일까.

    어느덧 비행기는 일본 나리타공항에 착륙을 했다.

    오는 내내 길지 않은 시간동안 선희는 먹는 시간 말고는 줄곧 창밖을 볼 뿐이었고, 난 낮잠만 잤을 뿐이다.

    공항 출구로 나가자 담당인 지로가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지로가 우리를 보며 인사하자 선희와 내가 마주 인사했다.

    “오시는 동안 별일은 없으셨나요?”

    별일이 있었지. 아주 요란하게.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하긴 뭐해서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별일 없었습니다.”

    “료칸을 구해볼까 했는데, 빈방이 없어서. 결국 제가 살고 있는 맨션에서 지내셔야할 것 같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저도 료칸보다는 그게 좋아요. 그런데 맨션에 혼자 사세요?”

    “네. 형이 쓰던 맨션인데 지금은 외국에서 공부중이라 저 혼자 쓰고 있습니다. 집은 좁지만 방은 두 개니까, 두 분이서 쓰시면 됩니다.”

    “아카기 씨는 요?”

    “전 두 분이 지내실 동안 회사 동료의 집에서 머무를 겁니다. 그러니까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쓰세요.”

    이거 뜻하지 않은 민폐를 끼치게 되었네.

    지로가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를 타려는데 문이 덜컥 열린다.

    그 때문에 선희가 움찔하고 놀란다.

    버스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 봤어도, 택시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 처음 봐서 그럴 거다.

    뭐, 미래에도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데, 1984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신기할 법도 하다.

    사실, 나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자동문이라는 것이 꼭 손님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란다.

    승객이 택시를 내리고 문들 닫지 않은 채로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운전기사가 일부러 내려 다시 문을 닫는 수고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디어라고 한다.

    오래전이야 택시로 쓰던 승용차들이 워낙 작아서 운전석에서 손을 뻗어 닫을 수도 있었지만 차가 점점 커지다보니 불편하게 돼서 결국 택시운전기사들의 요청에 의해 개발했다고 한다.

    이 기술이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거리의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정말 놀랐다.

    84년의 일본도시 거리는······, 자동차가 구닥다리라는 걸 빼놓고 보면 내가 살던 시절의 한국의 서울풍경과 흡사해 보인다.

    사람들의 복장도 생각보다 촌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세련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지나치게 큰 어깨 뽕이 눈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선희도 나처럼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려있다.

    나이든 운전기사가 도심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하고 찬다.

    “요즘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즐기는 것에 더 치중한다니까요. 뭐라더라? 아, 안마리라고 하더군. 안마리.”

    안마리(unmarried)란 독신을 뜻하는 말이라는 지로의 설명을 들었다.

    진짜, 발음이 참.

    그나저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운전기사 아저씨들은 참 할 말이 많은가보다.

    한참을 궁금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렇게나 한참동안 떠드는 걸 보면.

    그렇게 기사아저씨의 말을 한쪽귀로 흘리며 바깥을 바라본다.

    아저씨도 이젠 지쳤는지 조용해진다.

    때마침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의외로 듣기 좋은 음악이다.

    이거 언젠가 유튜브에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음악에 관심을 보이자 지로가 설명한다.

    “시티팝이라고 하는 음악입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중인 음악이에요.”

    음악과 거리의 풍경이 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이다.

    사실 이시대로 넘어와서 들은 일본 노래라고는 최근 박상식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가끔 ‘긴기라기니······.’ 하며 중얼거리던 노래가 유일했다.

    확실히 이 시절 일본에 대한 문화가 거의 차단되어 있던 시기라 최신유행음악도 거의 대부분 라디오가 아니면, 길보드라 부르던 길거리 리어카에서 들리는 음악이 거의 전부였다.

    물론 TV가요프로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한참 거품이 차오를 시기라 거리 속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내가 예전에 와봤던 그때, 그러니까 미래의 일본 거리풍경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훨씬 생기가 넘친다.

    과연 미국을 위협하던 절정의 시기라더니, 다르긴 하다.

    도시를 지나치다보니 대형사진이 빌딩에 걸려있다.

    아이돌인가?

    가만, 이 시대 아이돌이면······.

    “저 사진 속 여자 마쯔다 세이코인가요?”

    “아, 마츠다 세이코도 아세요?”

    “듣기만 몇 번 해봐서요.”

    “아, 그러시군요. 저 사진 속 아이돌가수는 나카모리 아키나입니다. 마츠다 세이코와는 라이벌이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부릿코라고 해도 세이코짱을 더 좋아합니다만.”

    지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꽤나 즐거워한다.

    이 양반도 아이돌 엄청 좋아하나보다.

    그렇게 지로와 얘기하고 있는데 선희는 갑자기 뭐가 떠올랐는지 연습장을 꺼내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풍경들을 되짚으며 그린 것인지, 상세한 배경이 그려진다.

    아마도 삼사라의 배경 자료로 쓰려나보다.

    사실, 삼사라는 딱히 어떤 지역을 한정적으로 그린 스토리가 아니다. 만화 속 배경은 분명 한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현실적 한계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니까.

    뭐, 하지만 그리는 당사자는 선희니까 결정은 직접 하겠지만.

    나야 뭐 스토리에 집중할 뿐이고.

    모처럼 박상식에게 빌려온 카메라를 꺼내 거리의 모습도 찍어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택시가 한적한 마을로 접어든다.

    복잡하던 도시를 약간 벗어난 것 같은데 그새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에 들어섰다.

    그리고 아담한 빌라 같은 느낌의 건물 앞에 택시가 멈춰 섰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지로의 안내를 받으면서 건물로 다가갔다.

    “제가 머물고 있는 맨션입니다.”

    3층으로 그를 따라 올라간 후, 그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안 풍경이 보인다.

    크지 않은 거실과 책장에 꽂혀있는 많은 만화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책장 위에는 건담, 야마토 같은 유명 프라모델들이 잔뜩 놓여있다.

    “집이 좁아 불편하실 겁니다.”

    “아뇨. 넓어요.”

    사실, 얼마 전까지 코딱지만 한 방에서 가족 전체가 지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궁전이다.

    지로가 나와 선희가 쓸 방을 안내해 주고, 각종 간식거리가 보관되어있는 곳도 알려준다.

    지로가 대략적인 집안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는 서둘러 집을 나간다.

    출판사에 아직 일이 많은 모양이라 바쁘단다.

    거기다 우리 원고 식자 수정문제도 있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지로가 나가자마자 맨션의 베란다로 나가 바깥을 바라본다.

    80년대인데, 어째 2010년대에 왔었던 일본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풍경이다.

    어느덧 늦은 저녁이 되어가고 있어서인지 주변이 석양으로 인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간다.

    석양 노을에 비치는 마을 풍경을 보니 마음이 푸근하다.

    오늘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은 나섰는데, 의외의 황당한 일을 공항에서 겪었다.

    물론 선희 덕분에 다행스럽게 마무리된 건 좋았지만 그래도 룰루랄라 일본으로 여행한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아, 추워.”

    아직은 3월이라 저녁공기가 상당히 차다.

    양팔로 팔꿈치부위를 쓱쓱 비비적거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선희는 거실의 테이블에 원고를 펼쳐 놓은 채로 데생 작업에 여념이 없다.

    “야, 좀 쉬어가면서 해. 쓰러질라.”

    “괜찮아.”

    “괜찮긴.”

    투덜거리며 선희가 그리는 그림을 힐끔 보니, 역시 내 예상대로 오늘 봤던 일본의 거리 풍경을 응용해 삼사라의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 저건 아까 봤던 그 건물이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선희의 그림에 정신을 팔고 있다.

    “쯧, 놀러왔는데 말이지······.”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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