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67화 (67/425)
  • 룰루랄라 일본을~ (2)

    이미 일본의 지로의 도움으로 여권까지 만들어 두었다. 개인적으로 저런 것들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심했을 텐데도 별다른 티를 내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이다.

    “준비가 되는 대로 일본에 한번 방문해 주세요. 출판사에도 들러 주시고, 오시는 김에 이곳저곳 구경도 해보시고요. 아, 티켓 비용은 여기.”

    “아, 고맙습니다.”

    잠깐, 지금이 2월이지.

    이것저것 준비하면 3월이 될 테고.

    1984년 3월이라, 뭐가 있었지?

    그러고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3월에 개봉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아직 생겨나기 전이다. 덕분에 나우시카의 제작사는 ‘톱 크래프트’가 맡는다. 이 톱 크래프트는 영화개봉 이후에 스튜디오 지브리로 변하게 된다.

    이 극장판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덕분에 지브리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 것이다.

    아, 이런 역사적인 순간이라니.

    가슴이 막 두근거리네.

    역시 난 덕후야.

    그런데 내 모습을 보던 지로가 묘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린다.

    “아하하, 서둘러 준비해야겠어요.”

    “네.”

    지로가 웃으며 대답했다.

    *

    해외를 가는 건 정말 이래저래 귀찮은 일 천지였다.

    지로가 일본에서 초청을 해줬음에도 이쪽은 이래저래 여권을 받는 게 복잡했다. 아직은 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전. 그래서인지 이래저래 절차가 복잡하다.

    박상식이 결국 나서서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쥐어주자 그제야 처리가 원활해진다.

    젠장, 비리천국도 아니고.

    그런데 제일 웃긴 건 반공교육이었다.

    장충동 자유센터에 가서 반공교육을 받는 것도 해외에 나가기 전에 받아야 하는 필수과정이라니. 이제야 80년대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미래에서 온 내 입장에서는 뭔 반공교육? 싶기도 한데.

    뭐 법이 그렇다니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아니, 솔직히 일본 가는데 무슨 놈의 반공교육이야, 진짜.

    하기야, TV보면 늘 미국, 소련의 갈등에 대한 뉴스가 많다.

    툭하면 핵무기가 어쩌고, 우주전쟁이 어쩌고.

    핵무기가 지구를 몇 번이나 부술 수 있다는 둥, 핵무기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몇 배라는 둥. 온통 그런 뉴스가 많으니.

    직접 경험해 보니 내가 들었던 80년대보다 훨씬 살벌한 느낌이다.

    어느덧 3월이 되고 쌍둥이들의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선희의 생활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물론 학교수업시간이 길어져 조금 늦게 마치고 오긴 하지만.

    그래도 저녁에 미리 데생을 모두 해두고, 지시 사항까지 원고에 연필로 꼼꼼하게 적어둬서 어시들이 작업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아니,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이것저것 그림을 더 그릴 정도니까 뭐.

    속도가 빨라 여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뭐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으니까.

    이 때문에 새로운 작품 하나를 더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은 삼사라에만 집중하는 게 좋지 싶다.

    그러는 동안 일본에 갈 여유가 생겼다.

    선희의 경우엔 내가 직접 학교를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만나 개인사정으로 인해 일본을 잠시 다녀온다는 얘기를 하고 학교를 며칠 쉬기로 허락을 받아두었다. 그리고 더불어 미리 데생원고를 어시들에게 맡겨두었으니까 문제될 건 없다.

    아침 일찍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왜놈들은 항상 조심해야해. 그 놈들이 얼마나 간악한 놈들인데. 물론 아카기 씨처럼 좋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엄마는? 지금이 일제시댄줄 알아? 왜놈이 뭐야, 왜놈이.”

    누나의 말에 엄마는 그게 아니라며 손을 흔든다.

    “얘는? 너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일본 놈들 땜에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러니?”

    “아휴, 이젠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그러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 일본은 그래도 선진국이잖아.”

    “선진국이면 뭐, 본질이 변한다니?”

    “아유, 정말 엄마는······?”

    “아무튼,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 알겠지? 그래도 윤환이 네가 있으니까, 큰일이야 있겠냐마는.”

    내 팔을 툭툭 두드리며 엄마가 웃었다.

    “그래. 날 믿고 그냥 편안하게 있으시라니까, 며칠만 지내다 금방 돌아올 거니까.”

    “그래, 그래. 알았다.”

    “오빠, 올 때 선물사오는 거 잊지 마.”

    경희도 한마디 하는 건 잊지 않는다.

    “알았다, 알았어.”

    인천공항은 몇 번 가본 적 있지만, 김포공항은 처음이다. 그것도 1984년의 김포공항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내가 살던 시절의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문이지만, 이 시절엔 인천공항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국제선이 존재한다.

    그래도 공항이 좀 작긴 하네.

    아무튼, 공항 주변이라 그런지 스텔라나 레코드 로열 같은 고급차들이 택시로 돌아다닌다.

    아무래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탓인지 외국관광객에 대한 편의를 생각한 정부, 혹은 시의 정책이려나.

    선희와 나는 김포공항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느낌이 물신 풍기는 내부라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그래도 선희에겐 이것도 신기한 경험인지 이리저리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다.

    거기다 간간히 보이는 외국인들 때문에 더 신기해하는 것 같다.

    “오빠 곁에 딱 붙어있어, 어리바리 하게 있다가 길 잃어버리지 말고.”

    “응, 알았어.”

    선희가 내 점퍼 끝을 살짝 잡고는 다시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툭 소리와 선희가 휘청거린다.

    “앞 좀 보고 걸어요. 젊은 사람이.”

    어떤 아줌마가 선희와 부딪친 모양인지 짜증을 부린다.

    선희가 미안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살짝 숙이자 본체만체하며 밀치고는 걸어간다.

    뭐야, 저 여자는.

    어이가 없어 돌아보는데, 여자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여자애는 울상인 채로 징징거리고 있다.

    “넌, 울지 말랬지? 그럼 또 맞는다!”

    “······.”

    여자아이가 입을 꾹 다물었고, 그 상태로 다시 여자에게 이끌려 사라진다.

    엄마인가?

    그래도 그렇지 왜 저렇게 험하게 아이를 다루는 건지.

    두 모녀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아이가 불쌍하네.”

    하지만 남의 집 사정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는 일.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수속을 밟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줄서 있는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웅성거리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뭐지? 무슨 일 생겼나?”

    “······?”

    돌아서서 보니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고, 여자의 처절하게 울부짖는 음성이 들려온다.

    “아이를 찾고 있어요! 누구 이 여자아이를 보신 분 없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사람들도 호기심에 그 모습을 웅성거리며 바라본다.

    “어머나, 아이를 잃어버렸나봐.”

    “딱하긴, 이런 곳에서 어쩌다가······.”

    “아유. 저런.”

    “쯧쯧.”

    사람들이 여자의 음성이 들리는 곳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누구도 나서는 사람은 없다.

    여자가 계속 소리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뒤 쪽엔 경찰 몇 명이 따라붙어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다. 하지만 이 넓은 공간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곧이어 방송에서도 아이를 찾은 소리가 나온다.

    [알려드립니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으며 검은 줄무늬 치마, 붉은색 점퍼를 착용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아이를 혹시 보호하고 계신 분은 지금 즉시 방송실이나, 미아보호소로 아이를 데려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그 소리를 들은 내가 쯧 하며 혀를 찼다.

    내가 살던 시절에도 그렇지만 이렇게 아이를 잃어버리고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나오는 방송을 볼 때면 나도 마음이 덩달아 무거워졌었는데.

    직접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그러네.

    그래서일까 갑자기 2018년에 남겨두고 온 엄마가 떠오른다.

    아, 엄마 보고 싶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다는 건 기억하는데, 내가 살던 동네가 어디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

    그러고 보니 도착하고 나서 줄곧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당황스럽네.

    나 치매인가?

    아니면, 새로운 몸을 얻고 나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 선희가 나를 툭툭 건드린다.

    “왜?”

    “아까······, 걔.”

    “걔라니, 누구?”

    “아까, 여자아이.”

    그제야 선희가 말하는 아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하도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던 터라,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거의 없다.

    “걔가 왜?”

    “양 갈래 머리, 체크무늬 치마, 빨간 점퍼.”

    “뭐?”

    순간 선희의 능력에 대해 떠올리고는 곧 수긍했다. 하지만, 너무 과한 상상이 아닐까?

    “설마······, 똑같은 머리스타일과 복장인 아이가 아닐까?”

    그러자 선희가 곧바로 노트와 연필을 꺼내더니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크로키를 그려가듯, 선희의 손이 빠르게 노트 위를 움직인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게 그림을 보여준다.

    아까 여자의 손에 이끌려가던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으니, 아까 있었던 상황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른다.

    전체적인 그림은 크로키 식으로 슥슥 그린 느낌이지만, 얼굴부위는 짧은 시간임에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표현해, 어른 여자와 여자아이의 얼굴은 명확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

    “아, 그래. 이 얼굴 맞아. 그거 이리 줘봐.”

    선희가 그린 그림을 받아 서둘러 서있던 줄에서 벗어나 여자가 소리치는 곳까지 빠르게 달려갔다.

    혹시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을 텐데.

    근처까지 다가가자 경찰 몇 명이 주변을 수소문하고, 여자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도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난 곧바로 여자 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저기요! 혹시 찾으시는 아이가 이렇게 생긴 여자아이입니까?”

    “······네?”

    갑자기 던진 질문에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그리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가 내민 노트 속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바라보더니 깜짝 놀란다.

    “······아.”

    놀란 여자가 노트를 받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더니 나를 보며 소리쳤다.

    “마, 맞아요! 우리 선미에요! 이 여자 누구죠? 얘, 지금 어디 있어요?”

    여자가 날 붙들고 늘어지며 울부짖는다. 그 때문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선희가 여자를 툭툭 건드리고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쪽이에요.”

    “저쪽?”

    내가 묻자 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 쪽 길로 가서 저기 모퉁이를 돌아 들어갔어.”

    그러자 놀란 여자가 내게 물었다.

    “언제요?”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음, 20분 쯤 되었나?”

    “28분.”

    선희의 대답에 여자가 이번엔 선희에게 물었다.

    “여자가 입고 있던 옷 색은요?”

    “연한 갈색. 저런 색이요.”

    그렇게 말한 선희가 주변에 있던 남자 옷을 가리켰다.

    그러자 선희에게 손가락질을 당한 남자가 화들짝 놀란다.

    경찰이 남자의 옷을 유심히 보자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말에 곁에 있던 경찰이 다가와서는 물었다.

    “혹시, 이 그림 가져가도 될까요?”

    “네.”

    내가 노트를 찢어 그림을 건네주자 경찰이 서둘러 무전기를 들어 소리쳤다.

    “출국심사장으로 향한 것 같다. 통과한 시각은 28분 전. 신원미상의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 같다. 여자는 어깨까지 오는 파마머리에 긴 롱 코트를 입었으며 색은 연한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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