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2)
그런데 그때 편집부 한 쪽이 소란스럽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리시면 어떡합니까? 편집부 입장도 좀 고려해 주셨어야죠.”
편집자 한명이 전화기를 들고 당황한 음성으로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
“네. 그건 맞습니다. 엔딩이야 작가님 재량에 맡기는 게 맞는데. 그래도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말도 안 되는······.”
“······.”
“서, 선생님!”
전화가 끊겼는지 잠시 수화기를 들고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옷과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그 모습을 본 야지마가 혀를 차더니 팀장에게 물었다.
“저 친구, 키도 선생님 담당 아니에요?”
“맞아.”
“그런데 엔딩이라니. 결국 끝난 거예요?”
“그래. 두 권으로 마무리 해달라고 이야기를 전했더니, 대책 없이 엔딩을 내버려서 우리도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엔딩을 했는데요?”
“갑자기 주인공이 적들과 함께 자폭······, 아니다 관두자. 키도 선생님 기괴한 진행이야 뭐,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후우.”
야지마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는 신입인 지로도 토부에서 그나마 좀 있었던 관계로 키도 죠타로의 기행에 대한 소문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만화가 키도 죠타로.
열혈, 근성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생각하는 만화가로, 데뷔작인 야구만화 ‘불타라 마구’가 생각이상의 성공을 한 덕분에 자리를 잡은 경우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가 낸 작품들은 두 권을 넘지 못하고 계속 조기연재종료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이유는 대책 없는 황당한 진행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이야기가 산을 타기 일쑤.
이번에도 결국 그 고질병이 터진 모양이었다.
“새로운 스토리 작가도 붙여봤는데, 이번에도 결국 스토리대로 진행안하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진행해버리면서 스토리 작가가 안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저렇게 된 거지.”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래. 두 번째지. 그래도 한 번 더 스토리 작가와 이어볼 생각인데······.”
“뭐, 문제 있어요?”
“문제는 스토리 작가들이 키도 선생이랑 일 안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라.”
“하긴, 스토리 작가도 많지 않은데. 소문이야 쫙 퍼졌겠죠.”
야지마의 말에 팀장이 한숨을 쉬며 끄덕인다.
“그래. 그게 문제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걱정이다. 다음 작품도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말이지.”
아마도 이곳 잡지사와는 인연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주간소년 히어로 출판부수가 얼마지?”
팀장의 갑작스런 물음에 지로가 잠시 생각하던 지로가 대답했다.
“11만부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소년점프는 지금 근육맨이랑 북두의 권을 중심으로 300만부를 넘어버렸다던데.”
야지마가 부럽다는 듯 혀를 차며 말한다. 그러자 지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닥터슬럼프가 가장 인기 있지 않습니까?”
“인기는 있는데, 이상하게 애니 방송한 뒤로 책 판매부수는 떨어졌다네. 보통은 반대인데 말이지.”
“그래도 다른 작품들도 워낙 잘나가니까요. 뭐, 덕분에 지금 단독 1위잖습니까, 어쩔 수 없죠."
“우리도 그런 괴물 같은 만화가 하나쯤은 나와 줘야 하는데 말이지.”
“그러게요.”
세 사람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
“캐릭터 계약요?”
내가 놀라 물었다. 그러자 전상길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놀이상자’라는 회사인데, 문방구에 들어가는 공책이랑, 스케치북에 넣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 생산, 판매에 따라 주겠다는데 알아보니까 최근 제법 잘 나가는 회사라고 하더라고.”
“일단 첫 계약으로 500을 받았어. 너희들 30프로니까 150만원이지?”
그렇게 말하며 현금다발을 툭 내밀었다.
박상식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이거 받아도 되는 돈이야?’하는 눈빛이다.
나 역시 이정도 현금다발이야 이제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의외의 수입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이런 캐릭터 관련 수익이 벌써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특히, 1984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의외이긴 하지만, 전상길 이사람, 어쩌면 만화가보다는 영업사원으로서의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 한다. 하지만 면전에 대고 웃을 수는 없지.
“왜 그런 눈을 하고 봐?”
“네?”
“눈이 웃고 있는데······.”
“설마요. 아닙니다.”
“그래?”
눈치는 빨라가지고.
“의외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움찔.
이 인간 귀신이구나.
“네. 사실, 어떻게 이런 계약이 될 수 있었나싶어서요.”
“너 이런 거 기대한 거 아니었냐?”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요.”
내 말에 전상길이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팔짱을 낀다.
“사실, 안 그래도 그동안 몇 번 우리 캐릭터를 마음대로 사용했던 문구들이 좀 있었어.”
뭔가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표정이다.
이럴 때는 추임새를 조금 넣어주는 게 예의다.
“그래서요?”
궁금하긴 하지만 약간의 MSG를 친 과도한 표정연출까지.
때문에 전상길의 표정은 더 신나 보인다.
“바로 회사로 직접 연락해서 따졌지. 예전에 네가 가끔 했던 이야기 있잖아. 그 뭐시냐······.”
턱을 긁적이더니 손바닥을 짝하고 친다.
“그래, 앞으로는 2차 판권인가 뭔가가 중요해 진다며, 그래서 꼬장 좀 부려봤지. 아는 변호사에게 몇 가지 들었던 얘기도 있고. 아무튼 아 씨, 계약서를 쓰고도 이렇게 기억이 안나니. 거 참.”
이 양반, 변호사와도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해봤다는 건가?
이것도 의외다.
어쨌건 덕분에 결국 괜찮은 회사와 연결되었다는 모양이다.
“아, 그리고 얼마 전부터 축구 관련된 회사에서 자기 회사 상표를 사용해 줄 수 없냐고 연락도 왔어. 만화에 등장만 시켜주면 광고료를 지불하겠다는데, 뭐 아직 제대로 만난 건 아니고.”
와, PPL까지?
이 양반 만화가가 아니라 캐릭터 사업가로 대성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네 말대로 이런 형태로 돈을 벌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까, 새삼 자네가 대단하게 느껴지더란 말이지.”
“제가 보기엔 선생님이 더 대단하신데요. 만화가시면서 사업가 같이 보일 정도니까.”
“아하하, 자네들이 써준 경영의 왕에서 배운 것도 있어. 내가 만화를 그리면서 배우는 일이 생길 줄이야.”
스스로도 웃긴지 한참을 그렇게 웃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박상식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뭐 나도 비슷한 표정으로 웃고 있지만.
아무튼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올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 그리고 말이지. 평발 스트라이커 말인데.”
“네.”
“여기서 나오는 캐릭터 중에 매력 있는 녀석이 하나 있잖아. 후방에서 귀신같은 패스 보내주는 녀석.”
“아, 미드필더 구석천 말이죠?”
“어. 듣기론 이 녀석, 의외로 중고등학생들한테 엄청 인기 있다고 하더라고.”
“······?”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하지?
캐릭터 판권이야기는 마무리 된 거 아닌가?
“이걸로 따로 만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갑자기 그건 왜요?”
“아, 그게 월간지에서 연재 요청이 들어왔거든.”
“연재 요청요?”
“그래. 요즘 평발 스트라이커 인기가 좋아서 그런지, 보물성과 소년중간, 그리고 얼마 전에 창간된 소년경양에서도 연락이 왔어.”
“정말요?”
“그래. 요즘 인기가 올라간다는 걸 체감하고 있을 정도야. 길가다가 하루에 한번은 평발 스트라이커 관련 그림을 본다니까. 물론 대부분, 문방구나 운동관련 물품을 파는 곳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이다.
“아무튼 연재 때문에 그러는데 혹시 스토리 여유가 좀 있을까? 구체적인 콘티는 필요 없고 글로만 써 줘도 되고. 그렇게 장편도 필요 없는데.”
문제는 없다.
어차피 외전격 이야기니까.
초점을 주인공이 아닌 구석천이라는 천재 미드필더의 이야기라······.
사실, 일본만화인 ‘캡틴 츠바사’ 의 주인공 츠바사 역시도 미드필더다. 덕분에 인기폭발 후 미드필더가 넘쳐나게 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미드필더의 매력은 크다.
그래서 구석천의 인기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상식을 제외하고 작업해야 한다는 건 신경 쓰인다.
그런데 박상식도 그 문제는 동의하는지 머리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저 요즘 여유가 도통 없어요.”
생각해보니 박상식이 요즘 제일 바쁘다.
월간지지만, 강용철의 오리온의 표범에다, 전상길의 경영의 왕, 평발 스트라이커. 그리고 선희가 그리는 삼사라의 기본 콘티까지.
그래도 식사는 화실이나 우리 집에서 하니까, 그나마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야 뭐, 늘 주둥이만 나불거릴 뿐이니.
물론 스토리의 부분은······, 좀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잘 정돈 되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그 정도라면 해보죠. 월간지니까.”
“아, 그래. 고맙다.”
나는 소파에 기댄 채로 커피를 마시며 시선을 돌렸다.
이대봉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까닥거리고 있다.
[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Sunny! you smiled at me and really eased the pain~]
예전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것 같은데, 여기서 들으니까 또 새롭네.
그런데 음악에 심취해 있는 이대봉을 힐끔거리는 화실사람들의 눈이 별로 곱지는 않아 보인다.
이 형도 참 넉살은 좋아.
여전히 머리를 끄덕이며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이대봉을 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새끼는 요즘 저 노래에 꽂혔는지 만날 저 음악만 들어. 암튼 미친놈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전상길이 피식 거린다.
“저 녀석, 요즘 이상한 스토리를 자꾸 써와서 골치가 아파.”
“네? 무슨 스토리요?”
“전에 학교가 배경인 스토리를 가져왔더라고. 내용을 보니까 애들이 의리니 뭐니 하며 싸워대는 이야기더군. 그런데 저 자식 하는 말이 앞으로는 이런 만화가 유행할거라니 지껄이더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아휴, 정말. 안 그래도 만화 심의위원회니 하는 집단이랑, 학부모 뭐시기 하는 것들이 허구한 날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는데. 그런 걸 그려서 어쩌자는 거야? 누구 죽일 일 있냐고 단념시켰지. 뭐, 읽어보니까, 재밌기는 하더라만.”
“와, 대봉이 형 그런 스토리 만들고 있었어요?”
박상식도 의외라는 듯 놀란 눈으로 이대봉 쪽을 돌아본다.
하기야,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의외긴 하다.
그나저나 학원 폭력물?
이대봉의 예상대로 앞으로 인기를 끌 장르이긴 하지. 90년대를 넘어가면서 주간만화잡지를 중심으로 꽤나 많이 나오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상길의 말대로 학교가 스토리의 대상이 되고, 거기다 폭력이 주류가 이룬다면 보나마나 그 만화책들은 공개 화형감이다. 물론 만화가도 힘들어 질 거고.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일본이라면······.
기우치 가즈히로의 만화 ‘비밥 하이스쿨’이 영매거진에 한참 연재중일 텐데.
이 만화는 일본에서 4,000만부이상 팔릴 정도로 엄청난 대히트를 치게 된다. 일본에선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테고.
이대봉이 가끔 일본만화잡지를 이태원골목에서 산다고는 들었는데, 아마도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런데 이 자식이 이젠 또 다른 이야기로 괴롭히고 있어.”
이제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게 뭔데요?”
“음식 만화래. 웃기지 않냐? 만화에서 주인공이 음식을 주구장창 먹기만 하는 얘기가 뭔 재미가 있겠냐고.”
전상길의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암튼 저 미친놈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니까.”
하지만, 난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나야 이미 앞으로 벌어질 만화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으니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하다니.
물론 일본에서 현재 ‘맛의 달인’이 연재중이긴 하다.
그래도 앞으로 한 시대 주류가 될 만화들을 저렇게 콕 짚어내는 능력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와, 그러고 보면 진짜 스토리 천재는 따로 있었구나.
내가 놀란 얼굴로 이대봉 쪽을 돌아보니 아직도 머리를 끄덕이며 음악에 리듬을 타고 있다. 그리고는 내 시선과 딱 마주친다.
피식.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손을 흔든다.
저 짓만 좀 안하면 저 잘생긴 얼굴도 좀 더 돋보일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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