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53화 (53/425)
  • 뭐, 한국인? (5)

    “어때요, 팀장님?”

    “어때고 뭐고, 이거 대단하잖아.”

    그렇게 말한 팀장이 이번엔 야지마 곁에 있던 지로를 보고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이, 이 사람이 이 만화를 그린······?”

    그 말에 야지마가 손을 내저었다.

    “아뇨. 얜 제 대학 후배에요.”

    “아, 그래?”

    조금은 김이 샌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곧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데생원고를 내려다본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괜찮은데? 데생의 디테일도 그렇지만 연출이 엄청 좋아. 펜선만 입히면 완벽하겠어. 그리고 뒤편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것도 한번 봐요.”

    야지마가 봉투에서 삐져나온 노트를 가리키자 팀장이 그것을 꺼내며 물었다.

    “이거?”

    “그거 네임이니까.”

    “그래?”

    팀장이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노트를 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책장을 넘기더니 곧 다 읽었는지 머리를 번쩍 들어올린다.

    팀장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야지마, 이거 도대체 뭐야?”

    “어때요?”

    “어떠냐고? 몰라서 물어? 이정도면 진짜 히트감이잖아. 좀비물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건 처음이야. 뭐 좀비물 자체가 흔한 게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보는 내내 막 떨렸을 정도야.”

    “그렇죠?”

    “도대체 누구야. 이런 신인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데?”

    “그거, 다른 출판사에서 까인 거래요.”

    야지마의 말에 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이게 까였다고? 그 미친 출판사가 어딘데?”

    “그거 한국인이 쓴 작품이라고 그랬답니다.”

    “아, 역시 그랬군. 어쩐지 한국글자랑 같이 있더라싶더니 번역된 거구만. 그나저나 한국인이라서 깠다니, 어이가 없네. 그럼 이거 우리 출판사에서 잡아도 되는 거 맞지?”

    팀장의 말에 야지마가 피식 웃더니 지로를 돌아본다.

    “라는데? 괜찮은 거야?”

    그 말에 팀장이 놀란 눈으로 지로를 바라본다.

    “대학교 후배라며.”

    “네. 이친구가 발굴한 신인이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까이는 바람에 가지고 온 거에요.”

    “그랬어?”

    지로가 팀장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이 작품을 이곳에서 실었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젠장, 잠시만 있어 봐요. 잠시만.”

    그렇게 말하더니 서둘러 노트와 데생원고를 챙겨들고는 창가 쪽 자리에 있는 자리로 달려간다.

    “편집장님 자리.”

    “아.”

    아무래도 빨리 결정을 내려야할 문제다보니 편집장에게 바로 달려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편집장이 데생원고와 함께 네임을 살펴본다. 그러더니 곧 야지마와 지로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그쪽분이 이 원고 담당자였다고요?”

    “출판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담당이라고 하긴 어렵죠.”

    지로의 말을 들은 편집장이 곧 시선을 야지마에게 돌린다.

    “일단 그쪽을 담당으로 고정시킬 테니까 우리편집부로 오세요. 알겠죠.”

    “······네?”

    지로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편집장이 주변에 소리쳤다.

    “어이, 팀장급 이상, 긴급회의다! 하던 거 멈추고 회의실로 모여!”

    그 말에 몇몇 팀장들이 반발했다.

    “네? 지금 저 니시마 선생님 댁에 가서 연재회의 해야 되는데요.”

    “저도 지금 바쁜데.”

    “닥치고 모여!”

    편집장의 호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쪽으로 가더니 곧 문이 닫혔다. 그런데 다시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팀장이 지로와 야지마가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야지마! 너도 들어와! 아, 그리고 저기 누구시라고 했죠?”

    “네. 아카기입니다.”

    “아, 네. 아카기 씨. 죄송한데, 잠시만 거기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이, 나카노!”

    그러자 여직원 한명이 대답한다.

    “네.”

    “아카기 씨께 커피랑 간식 갖다드려.”

    “알겠어요.”

    대답을 들은 편집장이 안으로 들어가고 곧 야지마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는 지로의 마음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

    이야기는 좀비가 나타나는 시점부터 이어진다.

    좀비라는 것은 알다시피 전염병과 같아서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미친 듯이 번져나가는 좀비의 행렬.

    그리고 아비규환.

    이야기를 그렇게 지구전체가 멸망으로 가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좀비에게 덮쳐지고 그로 인해 절망적인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뜨게 되고.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처음의 다시 평범한 일상을 시작하고, 오후가 넘어가며 좀비가 창궐하게 된다.

    그 좀비라는 존재에게 다시 죽임을 당하면서 다시 눈을 뜬다.

    두 번을 죽고 나서야 공포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그저 멀리 달아나려고만 할뿐이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동차 사고, 혹은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가 폭발.

    어떤 방법으로든 그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조금씩 초췌해져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좀비를 맨손으로 처단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해져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반복되는 일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좀비를 막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자, 모두 어때?”

    팀장 네 명이 작품에 대한 것들을 살피고 나자 곧바로 편집장이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편에 앉아 팔짱을 낀 채 턱을 긁적이는 턱수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림이 대단한 것도 대단한 거지만, 무엇보다 이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특히 2화 이후로는 엄청 빠져들어요.”

    그 말에 곁에 있는 마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네. 좀비라는 희귀한 장르를 선택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의 반복이라는 획기적인 내용이 첨가되어서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굉장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아, 이거 참. 이런 실력자가 한국에서 있다는 게 좀 아쉽습니다.”

    “나도 솔직히 굳이 한국인, 그것도 신인일 뿐인데 우리가 모여야 하나 싶기는 했는데, 그림과 스토리를 보면······, 다른 곳에 뺏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래요. 이정도 실력이면 출판사에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그렇게까지 어리다면야.”

    이미 남매에 대한 대략적인 것을 야지마 설명한 뒤였다.

    “요즘은 히트작 작가한명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클 때입니다.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에 저희가 먼저 선점을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전, 솔직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여자애도 그렇지만, 스토리를 쓴 오빠 쪽이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런 스토리작가와 인연을 쌓아두면 언젠가 출판사의 막강한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남매콤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처음 원고와 스토리를 다 살피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신인 한명 때문에 이런 회의를 한다는 사실에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데생원고를 보고는 절반정도가 납득했고, 스토리까지 모두 확인하자 모두가 찬성하는 분위기로 돌아서버린 것이다.

    그런 팀장들의 의견을 들으며 머리를 계속 끄덕이던 편집장이 한쪽 구석자리에 앉아있던 야지마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중요한 결정이 남은거군.”

    그 말에 모든 팀장들의 시선이 야지마 쪽으로 쏠렸다.

    그 시각 편집부 밖에선 회의실 쪽을 힐끔거리며 직원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팀장급들 모여서 저렇게 회의하는 거래?”

    “뭐, 얼핏 듣기론 신인 때문이라는 것 같던데.”

    “신인? 신인 때문에 왜 저 사람들이 회의를 해? 그 정도면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 아닌가?”

    “모르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대형 천재급 신인이라도 있는가보지.”

    “천재라면 뭐 한 달에도 몇 번이나 출판사를 찾아오는데요. 나름 그래도 천재소리 들었다면서. 물론 말은 안하지만, 얼굴에 자부심이 왕창 쓰여 있던데.”

    “그 사이엔 간혹 진짜 제법 실력 있는 애들도 섞여있긴 하잖아.”

    “에이, 그 속에서 진짜 보석은 몇 안 돼요. 조금만 힘들어지면 징징거리면서 포기해버리니까. 솔직히 원고 몇 번 고쳐오라고 보내면 다시 오지 않는 애들이 다수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 소년점프의 ‘닥터슬럼프’ 같은 초대작을 툭 들고 나타날지.”

    “그게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줄 아세요? 그 담당이 1년 넘는 기간 동안 500장 이상의 원고를 눈앞에서 파기시켰을 정도로 독하게 굴었다잖아요. 그리고 그걸 작가가 다 견디고 만들어낸 작품이 그건데.”

    “하긴, 천재에다 독종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은 좀처럼 없긴 하지.”

    “맞아요. 그런 인간은 거의 없을걸요.”

    “맞아. 동시대라면 더 그럴 테지.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고.”

    “첫 작품으로 단행본 기록을 갈아치우는 천재는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죠.”

    “모르지, 또 다른 미친 천재가 나타날지도.”

    “에이, 그건 아니다.”

    “어? 끝났나보다.”

    “그러네요.”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편집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직원들을 그곳에서 일제히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척 한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 야지마와 그의 팀장은 곧바로 지로가 앉아있던 자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편집부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역시 야지마 선배랑 관계있는 신인인가보네.”

    “저기 앉아있는 사람이 그 신인인가?”

    “글쎄, 아까 슬쩍 듣기론 아닌가보던데.”

    “그럼 누구래?”

    “모르지.”

    직원들의 그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지로에게 다가온 팀장과 야지마는 곧바로 회의에 대한 결과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를 데리고 조용한 휴게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휴게실에 자리를 잡자마자 야지마가 입을 열었다.

    “아카기.”

    “네.”

    “일단. 이번 일은 네가 결단을 내려야할 것 같다.”

    “결단······요?”

    “그래. 네가 여전히 토부 소속인 이상 이 만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편집장님도 네가 결단을 내리면 곧바로 이쪽에서 준비를 하겠다고 하셨으니까.”

    사실, 회의에서는 지로를 데려오기보다는 그 권리를 사고, 이쪽에서 직접 남매와 접촉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편집장과 팀장, 그리고 야지마는 지로를 영입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어찌되었건 지로가 한국에서 직접 접촉한 만큼 그가 담당이 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로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자 야지마가 배웅한다.

    “잘 생각해. 남매는 너를 믿고 기다릴 거야.”

    미쯔다쇼텐의 건물을 나선 지로는 인근 공원의 벤치로 가서 타코야키를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로가 토부의 편집실로 돌아오자 그를 본 팀장이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우에다 선생님한테 전화가 몇 번 온줄 알아?”

    그 때문에 지로가 머리를 숙인다.

    “그 일은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편집장이 혀를 차고 있다.

    “죄송하다면 다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 무슨 일 때문에 그래? 이제 일 그만 할 거야?”

    팀장의 호통에 지로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뭐?”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 장난하는 거야?”

    “장난 아닙니다.”

    “······.”

    “이제 제 길을 찾아가겠습니다.”

    그 말에 팀장은 말문이 막히는지 멍한 모습을 하다고 곧 더듬거리며 말한다.

    “이, 이봐. 그,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내 내밀었다.

    “야, 이 친구야!”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