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1화 (31/425)
  • 세상이 호락호락하진 않지 (1)

    “칭찬받아서 기분이 좋기는 한데, 이거 진짜 다 감당할 수 있냐?”

    A팀 화실을 나오며 박상식이 나에게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형에게는 좀 부담스럽기는 할 거야. 그건 좀 미안해.”

    “내가 문제가 아니지. 진짜 문제는 너야, 너.”

    “나야 형에게 떠드는 게 전부인데.”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스토리가 그렇게 뭐 쑥쑥 가래떡처럼 뽑혀 나온다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빤히 보더니 한숨을 푹 쉰다.

    “하기야, 이제까지 네가 한 걸 보면, 지금 내가 한 말을 부정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걱정하지 마, 경영의 왕보다는 이게 더 쉬우니까. 어차피 새로운 이야기라고 해봐야 한동안은 강적들을 등장시키면서 이어가면 되니까.”

    “말이야 쉽지. 그게 그냥 생각만 한다고 툭툭······, 뭔가 스스로 말하다가도 부정하게 되니, 나 참. 그래 넌 좀 특별하긴 하지.”

    “자자, 일이라는 건 이렇게 빡세게 해야 실력도 늘고 그러는 거지.”

    “······.”

    잠시 어이없어 하다 피식 웃고 만다. 그래도 걱정은 되는 모양인지 작게 중얼거리듯 말한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다작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겠냐?”

    “A팀 스토리작가 들인다잖아. 그때까지만 이렇게 하면 되지.”

    뭐, 그렇지 않더라도 별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에휴, 너 덕분에 요즘 돈을 무지 벌어서 좋긴 한데. 좀 걱정되기는 한다.”

    “형이나 몸조리 잘해. 콘티 무리하게 작업한다고 밤새지 말고.”

    “그러게. 나도 좀 걱정이다. 이거 너무 재밌어서.”

    그렇게 말하며 혼자 낄낄거린다.

    그런데 그때였다.

    계단이 있는 곳 앞으로 왔을 때 누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야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상대방이 박상식을 보더니 아는 체를 한다.

    “어? 이게 누구야? 박상식이 아니야?”

    “······아.”

    박상식도 꽤나 놀란 눈치다.

    아는 사람인가 보네.

    그런데 첫마디부터 영 느낌이 좋지 않다.

    “아는 무슨, 오랜만에 선배를 보고도 제대로 인사도 안하냐?”

    “······안녕하세요.”

    “이거야 원, 엎드려 절 받기네. 그 새끼, 그동안 사는 게 좋았나보다 얼굴에 살이 올랐네, 살이 올랐어.”

    부스스한 머리에 마른 체형, 2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검은 뿔테 안경의 남자인데 말투가 거슬린다. 비슷한 나이인데 오랜만에 만났다면서 뭔 꼰대 짓인지 모르겠다.

    “옆엔 누구? 친구? 아니, 어려보이니까, 동생인가?”

    “네. 친한 동생입니다.”

    “아.”

    나를 아래위로 한번 슥 훑는다.

    나쁜 인상을 받아서인가 짜증이 나려한다.

    곧 놈이 시선을 다시 박상식에게 돌렸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야? 전 선생님 팀에 들어가려고? 여긴 네가 들어오기엔 무리일 텐데.”

    “······아뇨. 그건 아니고요.”

    “오, 그럼 스토리 팔려고?”

    “네.”

    이죽거리는 낯짝을 한 대 쳐 주고 싶은 느낌이다.

    하지만, 박상식이랑 어떤 사이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일단 하는 짓을 참고 그냥 바라만 봤다.

    그런데 이놈은 정도라는 걸 모르는가 보다.

    “이야, 아무리 스토리 팔 데가 없어도 그렇지. 여긴······, 솔직히 네 수준으로 보면 너무 등급이 높지 않냐?”

    “······저기 더 이상 저에게 볼일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상식도 화가 나는 것을 누르는 지 부들거리다 곧 외면하려 한다. 그러자 녀석이 발끈했다.

    “이 새끼, 웃기는 놈일세. 선배가 우습냐?”

    버럭 하는 소리에 박상식이 멈칫했다.

    “······.”

    “남자새끼가 한 대 쥐어 터졌다고 화실을 때려치우고는 스토리맨이 되겠다느니 하며 꼴값을 떨더니 그동안 이 짓하고 있었구나? 그래, 그동안 많이 팔았어?”

    “······,”

    짜증나는 소리를 계속 해대는 대도 박상식은 별다른 소리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다.

    “시발, 안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라고 별수 있을 거 같냐?”

    “적당히 하죠. 이렇게 지인 앞에서 개망신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네.”

    결국 박상식 대신 내가 입을 열자 녀석이 갑작스런 상황에 어이가 없어한다.

    “······뭐?”

    “그렇잖아요. 군대도 아닌데, 때린 게 뭐 자랑이라고. 그리고 그만 뒀다는데 선배는 무슨.”

    그 말에 인상이 와락 일그러진다.

    “너 이 새끼, 뭐하는 놈이야. 이놈 떨거지야? 요즘엔 스토리맨도 따까리 따로 키우냐?”

    그 말에 내 몸이 반응하려하자 바로 박상식이 날 붙잡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쏘아붙이듯 한마디를 했다.

    “형, 말이 심하네요. 그래도 얜 형과 상관도 없는데.”

    그 순간, 눈을 희번덕거리던 남자가 손을 휙 들려한다.

    “뭐야? 이 새끼가? 밖에서 지내다보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이놈 폭력이 몸에 배인 놈이다.

    그동안 박상식이 어떻게 화실생활을 해왔을지 알만하다.

    하긴, 이 시절이야, 군대나 이런 화실처럼 단체생활을 하는 곳은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었을 것임은 어느 정도 예측은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와 관련된 사람이 이렇게 또라이 같은 놈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고 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지더니 반사적으로 놈의 멱살을 쥐고 놈을 벽으로 밀어 붙였다.

    “으악, 이 새끼가?”

    “양아치도 아니면서 손을 함부로 들면 곤란하지.”

    “뭐야, 이 새끼가 안 놔?”

    저 손이 박상식을 향하는 순간 내 주먹이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손, 놔 줘요.”

    갑자기 복도에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모두 돌아보았다.

    A팀 화실 앞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B팀 대장인 추양구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나온 모양이다.

    내가 녀석의 멱살을 놓고는 물러서자 추양구를 본 놈이 기가 살았는지 버럭 한다.

    “아, 이 새끼 쌩 양아치네. 저기, 양구 형. 이 새끼들······.”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네?”

    “지금 뭐하고 있었냐고?”

    “아, 그게 이 두 놈 새끼들이 싸가지 없게 굴잖아요. 선배를 뭐로 보고.”

    “그래서, 복도에서 폭력이라도 쓰려고?”

    “그게 아니고요.”

    “너 이 새끼, 전에 있던 화실에서도 그렇게 말썽을 피우더니, 여기까지 와서 또 그래?”

    “······아니, 그 얘긴 또 여기서.”

    “시끄러 새꺄, 오늘 선생님 만나기로 한 건 없던 걸로 할 테니까 그리 알아.”

    “네?”

    녀석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건 무시하며 우리를 돌아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해요. 이 일로 화실에 대해 감정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뭐, 화실에 대한 감정이 나쁠 게 뭐가 있어요? 저 사람이 문제지.”

    “뭐?”

    “넌 좀 닥쳐.”

    그리고는 우리를 살짝 가볍게 툭툭 치며 살짝 인사를 한다.

    “오늘은 수고했으니까, 그만 가보도록 해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곧바로 굳어있는 박상식을 끌어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곧바로 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너, 이 새끼가 미쳤어? 저 두 사람한테 이런 거 상길이 형이 알면 넌 다른 화실도 못 들어가 새끼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데요? 저 놈들이 뭐 길래요? 혹시 상식이 옆에 있던 애, 선생님 조카에요?”

    “그 주둥이 좀 닥쳐, 망할 새끼야. 그리고 한동안 이 쪽엔 얼씬도 하지 마. 그러다 내 눈에 띄면 시발, 너는 그냥 객사하는 거야? 알겠어?”

    “······.”

    추양구가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욕을 잘하는 지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같이 걸어가는 동안에도 박상식은 별 말이 없다.

    하기야, 저런 놈 밑에서 일했으면 트라우마가 생길법도 하지.

    어째 오래전에 했다는 화실 생활, 박상식에게는 크나큰 고통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박상식 옆에서 조용히 그와 같이 걸어갔다.

    ***

    그날 저녁.

    모처럼 토요일 저녁이라 가족모두와 함께 모두 시내로 향했다. 택시에 모두 타기엔 사람이 좀 많아서 두 대로 나누어 타고, 나름 유명하다는 중국집으로 찾아갔다.

    물론 이곳은 박상식이 알려준 곳인데, 예전에 이름 있는 만화가를 따라 한번 와본 적이 있다는데 음식 맛이 좋단다.

    아무튼 식당은 2층으로 만들어져 있고, 간판이나 건물 자체도 중국식 기와집의 형태로 되어있다.

    조금은 익숙지 않은 나무로 만들어진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인테리어는 생각보다 꽤나 고급스럽다.

    나를 따라 들어오는 가족들은 여전히 멀뚱거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기만 한다.

    프론트 쪽으로 다가가서 예약을 해두었다는 말을 전하자 직원이 우리를 위층으로 안내한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더니 이번엔 좁은 복도가 나온다.

    앞서가던 직원이 복도 한쪽 편에 있는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간다.

    가족들은 놀란 눈을 한 채로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들어간다. 중앙에 둥그런 테이블이 있다. 중앙엔 돌아가는 형태의 작은 테이블도 있다.

    오, 이 시절에도 이런 가게가 있구나.

    “엄마, 이쪽으로 앉으셔.”

    엄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가 빼준 의자에 앉는다.

    누나와 쌍둥이들도 비슷한 표정을 한 채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두 둘러앉는다.

    쌍둥이들은 연신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엄마와 누나는 조금은 불안한 듯한 표정이다.

    “여기 비싸지 않니?”

    “그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 이번에 새로 받은 원고료가 있으니까.”

    “벌써 또 돈을 받았다고?”

    “응. 그러니까 모처럼 가족끼리 외식이나 하려고.”

    내 말에 제일 기분 좋은 건 경희였다.

    “이런 가게는 테레비에서나 봤지 우리가 진짜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우리 진짜 재벌 된 거야?”

    “재벌이라니 넌 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언니는······, 오빠가 느닷없이 엄청난 재능을 개발했으니 우리도 덩달아 재벌 되는 거잖아. 덕분에 우리도 고등학교 갈 수 있게 된 거고. 그리고 언니도 얼른 회사 그만두고 공부시작해라.”

    “인수인계 해야 된다니까, 그냥 덜컥 그만둬버리면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민폐잖아.”

    “아.”

    “언니 공부 해.”

    그런데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선희까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자 누나가 깜짝 놀란다.

    “너까지 왜 그러니?”

    선희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다시 경희가 나선다.

    “그래, 전부터 공부 엄청 하고 싶어 했잖아, 언니.”

    “······아니야.”

    “오래전에 언니 한밤중에 우는 거 봤는데, 거짓말 하고 있어.”

    “나 그런 적 없어.”

    “있어, 그치?”

    경희의 물음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인다.

    그 때문인지 당황한 누나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버렸다. 그러더니 머리를 숙인다.

    “······어?”

    경희도 당황했는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엄마가 그런 경희를 보며 ‘으이그, 넌 좀.’하며 작은 소리로 질타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각종 요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탕수육, 팔보채, 깐풍기.

    평소라면 구경하기도 힘든 중국집의 요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음에도 가족들은 누구도 그것을 보며 흥분하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이 누나에게로 쏠려있었고, 누나는 곧 숙인 채로 눈가를 닦아낸다.

    잠시 그렇게 있던 누나가 곧 고개를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좋은 날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그때 경희가 깐풍기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더니 누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고 울어. 엄청 맛있어서 감동의 눈물이 나올 거야.”

    “아, 그래.”

    그렇게 말하더니 서둘러 경희가 내민 고기를 덥석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래, 네 말대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너무 맛있네.”

    그 모습을 본 엄마도 울컥했는지 눈가를 훔치신다.

    아, 진짜.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망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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