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0화 (20/425)
  • 만화공장 (2)

    갑작스런 질문에 좀 황당해 하던 박상식이 곧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영화가 성공했으니까.”

    “영화가 성공하면 영화사가 돈을 벌지 감독은 아니야. 그리고 그는 첫 번째 영화에서 감독 개런티를 별로 받지 않았어.”

    “그럼?”

    “캐릭터 라이센스와 영화 판권을 소유한 것이지. 그게 그 양반을 떼돈 벌게 해준 거야. 그 돈으로 속편을 제작하게 된 거고. 영화사는 아마도 그 두 가지를 넘긴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을 거야.”

    “오, 그렇구나.”

    자신이 모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꽤나 감탄하고 있다.

    “넌, 어떻게 그런 것도 아냐?”

    “뭐, 기사로 읽었어.”

    이 시대가 아닐 뿐이지.

    아무튼 대충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박상식이 곧 표정이 밝아진다.

    “그나저나, 한 달 동안, 7편에 175만원이라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반으로 나눠야지. 87만 5천원.”

    “아니 난 75만원할게. 네가 100만원 가져라.”

    “정확히 반. 87만 5천원.”

    “······너도 고집은 정말.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너 자신 있냐? 매달 7권씩 작업하는 거 쉽지 않을 텐데. 몰라도 쉬지 않고 반년이상씩 꾸준히 작업이 몰릴 테고, 쉰다 해도 잠시야.”

    “괜찮아. 이야기야 뭐. 어떻게는 만들어낼 테니까. 형이나 부지런히 써. 콘티도 일이잖아.”

    “콘티에 대사 만들어 넣는 거야 스토리만 완성되면 일도 아닌데. 대본소 만화는 콘티도 간단하고.”

    “그럼 됐지 뭐.”

    대화는 버스에 타고나서도 이어졌다.

    “그나저나 너 B팀도 알고 있었냐?”

    “왜?”

    “아니, 나도 최근에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그런데 어째 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 말고 만화계에 아는 사람이 또 있냐?”

    “뭐, 없다고는 못하지.”

    내가 알고 있을 뿐, 상대방이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말에 이제야 박상식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나도 언제 기회 있으면 소개시켜주라.”

    “뭐, 그닥 친한 건 아니라서.”

    “그래? 그럼 뭐 할 수 없지.”

    그런데 곧 박상식이 멈칫하더니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왜?”

    “잠깐만, 뉴스.”

    “뉴스?”

    “지금 뉴스 안 들었어?”

    그러고 보니 버스 라디오 방송이 아까부터 작게 흘러나오고는 있었다.

    무슨 뉴스를 말하는 거지?

    그때 버스 우측 편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채로 앉아있던 노인이 소리를 쳤다.

    “어이, 기사양반 뉴스 볼륨 좀 올려주쇼.”

    “아, 네.”

    버스 안에서 아까부터 조그맣게 들리던 라디오소리가 커졌다.

    [······버마 경찰국장은 북한 정찰국이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파견한 북한군 장교 암살단의 소행이라고 밝혔으며······.]

    응? 이게 뭔 얘기래? 대통령 암살?

    나야 만화에 대해서나 알지 이 시절에 대한 건 까막눈이나 다름없으니.

    “야, 진짜,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닌가 몰라.”

    “뭔 소리야?”

    “거 왜 저번 달 초에 있었던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 때문이지.”

    버마라면 미얀마의 옛날 이름인가?

    그나저나 이 시절에 이렇게 큰 일이 있었다고?

    “대통령이 죽었으면 진짜 전면전이 일어났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어. 와, 올해는 무슨 사건사고가 이렇게나 많은지.”

    “무슨 사건?”

    “벌써 잊어버렸냐? 올 초엔 이웅평이가 전투기 몰고 귀순하질 않나, 여객기가 소련상공에서 격추되더니, 한 달 좀 넘어서는 아웅산 묘소에서 테러까지 발생했으니.”

    “······.”

    순간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하나하나가 살벌한 사건 같은데, 이게 한해에 모두 일어난 일이라니. 나야, 83년도 만화계 소식이나 알뿐이라 충격이 상당했다.

    “왜 그래?”

    “올해 엄청난 일이 많았구나 싶어서.”

    “그래. 맞아. 엄청난 일이 많았지.”

    박상식이 머리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

    집으로 돌아온 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보았다.

    선불로 받은 30만원.

    기존에 모아둔 돈 71만원과 합쳐서 101만원이 되었다.

    어느새 100만원이 넘어버린 것이다.

    100만원이라······.

    원래 시절에서의 100만원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1983년에 100만원이라니, 대충 1,000만원 가치,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르는 거금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만에 벌어버렸다.

    이곳에 와서 한 거라고는 그냥 덕후로서의 기질을 좀 더 생산적으로 발휘한 것이 다였는데, 이게 또 돈이 되었으니.

    뭔가 뿌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묘한 느낌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곳 가족에게 쓸모 있다는 생각에 왠지 가슴이 울리는 것 같아서.

    늦은 오후, 평소처럼 엄마가 먼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쌍둥이들은 요즘 계속 학교에 남아 입시공부중이라 평소보다 귀가시간이 조금 늦어져 아직 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평소보다 요즘 녀석들 표정이 더 밝아져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기는 하다.

    아무튼 엄마가 집에 들어오시더니 혼자 있는 날 보고는 반갑게 웃으신다. 그리고는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슬쩍 들어 올리신다.

    “아들, 엄마가 늦었지? 소세지 사왔으니까. 계란 입혀서 부쳐줄게.”

    “저기, 엄마. 드릴 말씀이 있는데.”

    “뭔데?”

    엄마는 슈퍼와 시장에서 사온 반찬거리를 부엌에 풀어놓으며 날 바라보신다.

    “이거.”

    내가 불쑥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자 엄마가 동그랗게 눈을 뜨더니 날 바라본다.

    “이게 뭐니?”

    “직접 보셔.”

    엄마는 내가 내민 하얀 봉투를 받아들고는 안을 들여다보신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날 다시 바라봤다.

    “이, 이게 다 뭐니?”

    “뭐긴, 돈이지. 백만 원.”

    개인적으로 쓸 돈이 필요해서 만원은 뺐다.

    아무튼 100만원이라는 말 때문인지 엄마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미 커져 있던 눈이 더 커진걸 보면.

    “배, 백만 원?”

    “응. 이걸로 해결할 거 있으면 해결해.”

    “해결할 거······, 라니?”

    아,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뭐, 살다보면 이래저래 쓸 돈이 많잖아. 그런 거.”

    “······.”

    “아들이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동안 이만큼이나 공짜로 키워 주셨는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돈 봉투를 내려다보며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곧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변해간다.

    아, 진짜.

    할 수 없이 서둘러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고, 오늘 받은 선불에 대한 이야기까지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금액이 금액인지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에휴, 할 수 없지.

    “엄마, 잠시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아래층에 내려가 박상식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 야, 왜 이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따라와.”

    “어어.”

    내 손에 억지로 우리 집에 끌려온 그가 어머니를 보더니 곧바로 90도로 인사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내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라고 박상식을 재촉했다. 그러자 눈알을 데굴거리며 눈치를 보던 그가 엄마 앞에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역시 스토리를 쓰는 인간이다 보니 간결하면서도 이해가 쉽게 잘 설명한다.

    그런데 그때 쌍둥이들이 집에 들어왔다.

    “다녀왔어요. 어? 손님? 아, 아래층 오빠네.”

    경희가 들어오다 박상식을 보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박상식이 쑥스러운지 표정으로 쌍둥이들에게 인사한다.

    “안녕.”

    “너희들도 이 총각 알고 있니?”

    “어, 가끔 만나면 맛있는 거······, 뭐 아무튼 오빠 랑도 친하잖아. 근데 무슨 만화일 한다고 들었는데. 맞지?”

    그 말에 박상식이 머리를 끄덕인다.

    경희가 확인까지 해주자 그제야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갑작스런 큰돈이 생긴 탓에 새로운 걱정이 생겼는데,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서야 편해지신 모양이다.

    “그럼, 내일부터 출근이라는 거니?”

    “출근은 아니고, 그냥 재택근무 같은 거지.”

    “재택근무?”

    “응. 집에서 일하는 거.”

    내 말에 경희가 관심을 보인다.

    “오빠, 취직했어?”

    “이 총각이랑 같이 만화가 일은 돕는다는 모양이다.”

    “만화가 사무실? 오빠, 아래층 오빠랑 같이 일하는 거야?”

    “그렇게 됐다.”

    “그럼 이번에도 스토리?”

    “그래.”

    가족의 분위기가 들뜨자 어색한지 박상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저녁 안 먹었으면 우리랑 같이 먹어요.”

    “아뇨, 폐가······.”

    “그냥 먹어. 잔소리 말고.”

    “아, 그래. 알았다.”

    내 말에 곧바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엄마랑 쌍둥이들이 음식을 준비하며 동시에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누나도 일찍 퇴근하고 들어온다.

    “다녀왔어요.”

    “오늘은 일찍 마쳤네? 어쩐 일이니?”

    “응, 기계 우리 담당인 기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 때문에.”

    “잘됐다. 빨리 씻어, 그리고 밥 먹자.”

    “응. 그런데······, 손님이 계시네. 어?”

    곧 누나가 박상식을 알아본 모양이다.

    “아, 안녕하세요.”

    박상식이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너도 아래층 총각을 알고 있었니?”

    “아래층?”

    “그래. 몰랐니?”

    “으응. 전혀.”

    “아무튼, 요즘 윤환이랑 이 총각이 같이 일한다고 하더구나.”

    “아······.”

    누나가 곧 수긍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다.

    잠시 후, 누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대충 씻고 올라오자 곧 다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박상식을 슬쩍 돌아보니, 이 인간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완전히 얼이 빠진 바보처럼 보인다.

    그런 눈치를 경희도 챘는지 밥을 먹으며 연신 큭큭거린다.

    그런 어색한 저녁식사를 끝내자 박상식은 뻣뻣한 몸을 이끌고 이상한 자세로 인사를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늦은 밤 쌍둥이들이 잠든 시간.

    가운데에서 잠들어 있던 엄마가 누나에게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얘, 진희야. 자니?”

    “으응, 아니. 왜?”

    “오늘 윤환이가 글쎄······, 내게 백만 원을 주더라.”

    “뭐?”

    깜짝 놀란 누나가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자 엄마가 쉬쉬 거리며 누나를 다시 붙들어 눕힌다.

    두 사람이 내 눈치를 보며 다시 조용히 대화를 시작했다.

    “백만 원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봤던 아래층 총각이랑. 내일부터 만화스토, 아무튼 뭔가를 한다더라.”

    그렇게 말하고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을 누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군데는 틀리긴 했지만 대략적으로 잘 이해한 듯한 설명이었다.

    그 때문에 누나가 놀라 다시 머리를 들어 내 쪽을 본다.

    난 계속 잠든 척 색색거리며 있자 잠시 날 바라보던 누나가 다시 눕는다.

    “윤환이가 나더러 필요한 곳에 먼저 쓰라더라. 쟤 뭔가 알고 있는 눈치던데.”

    그 말에 누나가 멈칫하는 느낌이더니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

    “말은 안했지만 다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쟤 성인이야. 어쨌건 군대도 다녀왔잖아. 이제 철이 든 거겠지.”

    군대?

    맞다, 누나의 말대로다.

    이곳에 도착한지 며칠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다행스럽게도 군대를 이미 다녀왔더라는 거다.

    옷장에 국방색 군복과 군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해보니, 올 초 방위병 생활을 시작해 여름에 끝냈다는 것이다.

    그 이름도 위대한 육방, 육개월짜리 방위였다.

    3대독자 외아들에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판정을 받았던 모양이다.

    자세한 건 가족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군대를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사실 반갑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현역으로 당당하게 전역한 내가 방위 전역자 취급을 받아야한다는 건 좀 그렇긴 하다.

    하긴, 뭐, 어때 원래의 내 인생도 아닌데.

    아무튼 이놈도 억세게 운이 좋은 녀석이었던 것 같다.

    육방이면 장군의 아들쯤 되는 운이니까.

    그런데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왜 그래, 엄마.”

    “윤환이가 너무 대견해서 그래. 언제 저렇게 의젓해 진거니? 그동안 말은 안했어도 얼마나 걱정했는데.”

    “당연하지. 우리 집 가장인데.”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

    누나가 엄마를 토닥거린다.

    아씨. 눈물 나오려고 하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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